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고양이 같다. 공을 떨어뜨리지 않는 유연한 리시브, 빈틈을 정확히 파고드는 날카로운 스파이크, 팀원의 실수마저 커버하는 매끄러운 토스까지. 도쿄의 검은 재규어라 소문난 그를 보며  우시지마는 고양이를 떠올렸다. 짙게 느껴지는 페로몬에도 왠지 그는. 삐익-, 경기의 끝을 알리는 휘슬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우시지마는 마주친 눈이 휘어지는 것을 보았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눈동자는 도둑 고양이의 그것이었다. 우시지마는 그런 그와 시선을 마주했지만 먼저 눈을 돌린 것은 그였다. 등번호 1번, 네코마.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그의 등에 적힌 숫자와 글자를 되뇌인 우시지마는 몸을 돌렸다. 더 안 보고 가십니까, 주장? 다급히 저를 부르는 소리에도 우시지마는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일본 내에서 반류는 원인보다 뛰어난 편에 속했다. 그 중 중종의 반류는 자신들의 혈통을 지키기위해 아등바등한 결과 일본 내의 전통 깊은 가문들은 보통 중종의 반류들 이었다. 그 중에는 우시지마 가문도 있었다. 개체 수가 적었던 비행종이 현혼이었던 선조들은 더욱 악착같이 혈통을 지켜냈고, 우시지마 가문은 일본 내 최고 유서깊은 가문이 되었다. 그들의 혈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우시지마는 경기장 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느긋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걸음은 빨랐다. 빠르게 성큼성큼 걷던 걸음이 코너를 돌려는 순간.






 "어이-."






 우시지마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저를 부르는 사람을 보았다. 팔짱을 낀 채 씩 웃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경기를 치룬 후 땀 때문인지 페로몬이 짙었다. 이 정도라면 같이 경기를 하던 놈들이 대단하다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지시마는 고양이의 앞에 섰다. 풍기는 페로몬 만큼 큰 키였다. 우시지마는 그 귀를 살짝 만졌다. 저도 모르게 뻗은 손에도 그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그 귀를 만지작거리며 고양이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름이 뭔가?"

 "쿠로오 테츠로."

 "쿠로오."






 더 짙게 웃는 것에 덩달이 호르몬에 짙어졌다. 우시지마는 한 걸음 더 그에게 다가갔다. 살짝 뒤로 물러난 쿠로오는 벽에 등을 기대며 제 귀에 닿은 우시지마의 손을 떼어냈다. 우시지마는 떨어진 손을 벽에 붙이고 남은 손으로 한 쪽 눈을 가린 머리칼을 살짝 쓸어올렸다. 땀에 젖은 머리칼은 쉽게 옆으로 재쳐졌다. 그대로 손을 내려 뺨과 턱을 쓰다듬은 우시지마는 제 얼굴을 기대며 살짝 뺨을 부비는 행동에 눈을 가늘게 떴다. 용케 여태껏 블라인드도 없이 잘도 속이며 살아왔다. 우시지마의 표정에 그 손에 뺨을 기대고 있던 쿠로오가 킥,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며 웃던 쿠로오는 저가 고개를 숙인 탓에 떨어진 손을 늘어뜨린 우시지마의 팔을 잡고 고개를 들었다.






 "감이 좋네. 다들 모르던데."

 "모르는 놈들이 이상한 거다."

 "네가 지나치게 감이 좋은 거야."






 중종? 현혼이 뭐야? 여태 내내 눈을 맞춰 왔으면서 지금은 저가 쥔 팔의 옷깃을 만지작거리며 그곳에만 시선을 두었다. 독수리다. 우시지마는 순순히 대답을 하며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짙은 페로몬과 격한 운동으로 인해 여태 붉게 달아오른 뺨, 젖은 피부가 눈에 띠었다. 그래, 이 앙큼한 고양이를 어찌 모를 수가 있는가. 우시지마는 시선을 제 팔에 고정한 채 들지 않는 턱을 쥐고 당겨 시선을 맞췄다. 조금 크게 뜨였던 눈은 금세 휘었다. 슥, 귓가에 입술을 가져간 우시지마는 땀에 젖은 손이 턱을 쥔 제 손을 잡아오는 것을 느꼈다. 조금쯤, 뜨거운.






 "네가 흥분한 모습을 보고싶다."






 풋, 다시 터진 웃음이 귓가에서 들렸다. 제 손을 쥐고 있던 손이 떨어져 제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부원들이 찾을텐데. 속삭이는 목소리는 조금쯤 즐거운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그 관자놀이에 입술을 눌렀다. 피차일반이니 금방 끝내겠다.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 페로몬에 쿠로오는 벽에 몸을 기댔다. 그 허리를 한 팔로 감아 안은 우지시마는 다시 눈을 가린 검은 머리칼을 다시 쓸어올렸다. 왼쪽 눈이 금빛에서 서서히 붉은 색으로 물들어갔다. 우지시마는 그 눈꺼풀 위에 입술을 누르며 걸음을 옮겼다. 복도에는 짙은 페로몬만 감돌았다.





















 "읏, 아...."






 얽히던 혀를 떼고 뾰족하게 솟은 송곳니를 엄지로 문질렀다. 발갛게 달아오른 혀가 송곳니를 문지르는 엄지를 조금 핥다 말았다. 목덜미에 입술을 묻자 흐으, 하며 숨을 삼킨다. 좁은 화장실 칸 안에 건장한 남자 둘이 들어있자니 절로 밀착이 된 몸이 불편할 만도 하건만 껴안은 몸은 놓을 생각이 없어보였다. 머리 위로 튀어나온 까만 귀를 힘주어 문지르자 끄으응 앓는 소리를 내며 등허리의 옷깃을 움켜쥐는 손이 귀여웠다. 이 덩치를 귀엽다고 하는 것이 조금쯤 우스웠지만 사실이 그랬다. 상의 안으로 손을 넣자 옷깃을 움켜쥐었던 손이 흥분한 탓에 발현된 날개깃을 어루만졌다. 턱 밑까지 옷을 끌어올려 유두를 입에 물자 흐흥, 하고 웃더니 팔을 내려 바지춤에 손을 댄다. 우지시마는 눈만 굴려 그 금색과 붉은색의 오드아이를 보았다. 어지러운 페로몬이 진득히도 폐부 안으로 스몄다.






 "크네."

 "네 안으로 들어갈거다."

 "와, 엄청 야한 말."






 그렇게 안 생겨서. 씩 웃는 얼굴이 가까이 오더니 입술에 쪽, 닿았다 떨어졌다. 바지 안으로 들어온 손은 축축하고 뜨거웠다. 애무는 됐으니까. 저를 살짝 미는 손에 가슴에서 떨어지자 손목을 쥐어 제 뒤로 끈다. 시간 없잖아. 손이 뒤로 가있는 터라 닿을 듯 가까운 얼굴이 색스러웠다. 바지 안으로 손을 밀어넣으며 우시지마는 그 웃는 입에 입을 맞췄다. 다시 얽히는 혀는 여전히 뜨거웠다.





















 "쿠로."






 잠시 어디 좀 다녀 온다며 사라졌던 쿠로오는 한참이 지나고 부원들이 찾으러 나설 때 즈음에야 돌아왔다.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빨간 트레이닝복을 발견한 켄마가 쿠로오를 부르자 다른 부원들 또한 그쪽을 보았다. 슬슬 걸어오는 쿠로오가 손을 흔들었다. 켄마는 쿠로오가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켄마의 근처까지 다가온 쿠로오는 다른 부원들을 먼저 버스로 돌려 보냈다.






 "어디갔다 왔어. 찾았잖아."

 "그냥 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 하는 것에 켄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답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돌림의 말이었다. 한참 기다리게 해놓고는. 속으로 투덜거린 켄마는 먼저 발을 떼는 쿠로오를 따라 걸음을 옮기려다 멈추었다. 그에 덩달에 걸음을 멈춘 쿠로오는 켄마를 돌아보았다.






 "왜?"

 "쿠로, 뭐 뿌렸어?"






 네 원래 냄새랑 무슨 냄새랑 섞였어. 켄마의 물음에 눈을 깜빡이던 쿠로오는 씩 웃었다.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그대로 몸을 돌려 버스로 걸어가는 뒷모습에 켄마는 눈을 찡그렸다. 이상한데. 가만히 있던 켄마는 문득 저만치 가버리는 쿠로오에 걸음을 뗐다.






 "같이 가, 쿠로."











'HQ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시사쿠] 성매매  (0) 2017.03.17
[고시쿠니] 버스 (For. 밀체 님)  (0) 2017.02.10
[테루쿠로] 부장님 (For. 폴리 님)  (0) 2016.12.14
[보쿠로] 안에서 터지는  (0) 2016.11.28
[아카쿠로] 무거운 S와 가벼운 M 下  (0) 2016.11.25














 아, 졸려. 멍한 머릿속에 들어차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쿠니미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날씨는 퍽 추워졌고, 이젠 외투 없인 외출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른 아침의 등교는 아침잠이 많고 저기압인 저에겐 마냥 피곤하기만 일인데 거기에 추위까지 더해지니 만사가 다 귀찮고 힘이 들었다. 그냥 하루쯤은 아프다고 하고 학교 빼 먹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 보아도 평균보다 훨씬 큰 배구 부원에겐 택도 없는 일이었다. 목에 칭칭 감은 목도리에 코를 박으며 쿠니미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지만 몇 정거장 남지 않았다. 쿠니미는 눈에 힘을 주며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애써 떠보려 노력했다.






 -이번 정거장은…….






 이번 정거장을 알리는 안내음성이 까맣게 멀어졌다. 꾸벅, 고개가 앞으로 떨어졌다. 아. 다시 고개를 든 쿠니미는 눈을 문질렀다. 갑작스레 추워진 탓인지 더 피곤한 것도 같았다. 끔뻑끔뻑 몇 번 눈을 감았다 뜬 쿠니미는 버스가 멈추는 것에 무심코 문 쪽을 보았다. 흰 자켓에 보라색의 바지. 시라토리자와의 학생이었다. 이 근처에도 거기를 다니는 애가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해봤자 저는 주변을 크게 의식하는 편이 아니었다. 뭐, 상관없지. 어깨를 으쓱, 했던 쿠니미는 팔짱을 끼며 목도리에 다시 코를 묻었다. 얼굴이 조금 따뜻해지니 조금 더 졸린 것도 같았다. 문득 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살짝 시선을 돌리자 보라색의 바지가 보였다. 시라토리자와. 까맣게 어두워지는 시야에 꾸벅 졸 때 쯤, 코에 좋은 냄새가 닿았다. 비누 냄새에 가까운 것도 같았다. 냄새 좋네. 스르륵 감기는 눈에 쿠니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꾸벅, 고개가 떨어졌다. 몇 정거장 남지 않았다고 자지 않겠다는 생각은 어느 새 지워져 있었다. 꾸벅꾸벅 고개가 땅으로 꺼지는 것 같은 느낌에도 쉬이 눈을 뜨지 못하고 졸던 쿠니미는 제 어깨 위로 올라오는 것에 부스스 눈을 떴다. 역광으로 들이치는 햇빛이 눈이 부셨다.






 “너 아오바죠사이지? 곧 내려야 해.”






 대중교통에서 보기 드문 친절이었다. 쿠니미는 끔뻑끔뻑 눈꺼풀을 움직이다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시야가 높아지자 아까 맡았던 좋은 향기가 좀 더 짙게 났다. 쿠니미는 바깥의 풍경을 한 번, 제 옆에서 저를 깨워준 이를 한 번 보았다. 반듯하게 잘린 앞머리가 독특한 남자였다. 커다란 키에 퍽 앳되어 보이는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줬다. 그래봤자 기억은 안 나겠지만. 쿠니미는 까닥, 고개를 움직이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가 일어나 빈자리에 앉을 거란 예상을 했지만 의외로 저가 나가기 쉽게 몸을 비켜줄 뿐 앉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남자를 지나치자 아까 맡았던 비누 향에 가까운 향기가 스쳤다. 남자치고 좋은 향기. 새삼스러운 눈으로 남자를 보았던 쿠니미는 그대로 멈추는 버스에 고개를 돌렸다. 훅 밀려드는 찬 공기를 비집고 버스에서 내리자 뿌옇게 입김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이런 추운 날씨에도 남자는 교복에 목도리만 한 채였다. 건강하기도 하지. 걸음을 떼며, 공기 중으로 하얗게 입김이 흩어졌다.





















 “얼어 죽겠네…….”






 쿠니미는 제 팔뚝을 쓱쓱 문지르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제보다 더 추워진 것 같았다.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자 어제와 얼추 비슷한 시간대였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운 좋게도 버스가 바로 도착했다. 쿠니미는 버스에 올라타 어제 앉았던 그 좌석에 앉았다. 종점 가까운 곳에 사는 자의 특권 같은 거였다. 쿠니미는 거의 잘 것처럼 목도리에 코를 묻고 등받이에 눕듯이 기댔다. 아직 운행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버스 내부는 바깥의 온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꽤 추웠지만 금세 훈훈해질 것이었다. 학교까진 꽤 거리가 있었다. 이른 아침에 부족한 잠을 채워줄 꿀 같은 시간이었다. 쿠니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금세 머리가 무거워졌다.



 툭, 머리에 닿는 느낌에 쿠니미는 퍼뜩 눈을 떴다. 얼마나 잤는지 모를 정도로 깊게 잠이 들었었다. 턱에 축축한 느낌은 없었지만 버릇처럼 입가를 손등으로 훔쳐낸 쿠니미는 창밖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아직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쿠니미는 저가 부딪친 것을 확인했다. 시야가 먼저 보이기 전, 코끝에 향긋한 비누 향기가 스쳤다. 그 남자였다. 멀뚱히 저를 보고 있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쿠니미는 눈을 깜빡였다.






 “더 자.”

 “어, 어……. 미안.”

 “때 되면 깨워줄게.”

 “아니, 잠 다 깼어.”






 퍽 친절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에 쿠니미는 오히려 떨떠름한 기분이 되었다.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한 척이람. 제 기분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무표정했던 얼굴에 쓱 미소가 떠올랐다. 앳된 얼굴에 어울리는 퍽 개구 진 미소였다.






 “나 너 알아.”

 “나를?”

 “아오바죠사이 쿠니미 아키라. 맞지?”






 퍽 자신 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불쾌할 정도로 맞는 말이었다. 표정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지? 저가 모르는 이가 저를 알고 있음에 그것을 물어보려 입을 열려 할 때, 저가 내릴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 음성이 저와 남자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남자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몸을 옆으로 살짝 비틀어 비켜주었다. 아무리 보아도 익숙한 느낌은 났지만 도저히 기억은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선은 내려야했다. 쿠니미는 찜찜한 기분을 안고 남자를 지나쳤다.






 “내일 또 봐.”






 여태까지 마주친 것은 우연에 불과했음에도 남자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지랄. 말을 무시한 채 버스에서 내려 뒤를 돌아보자 제 쪽을 보고 있던 얼굴이 활짝 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쿠니미는 못 본 척 몸을 돌려 발을 뗐다. 불쾌한 기분만 치솟았다.





















 어제 종일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남자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다. 딱히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불편하다 느껴본 적이 없었건만, 상대만 저를 알고 있는 일방적인 관계는 퍽 기분을 불쾌하게 했다. 시라토리자와에서 저를 알 만한 사람은 없을 텐데 남자는 어떻게 저를 알고 있는 걸까. 혼자 생각해봤자 답은 없었다. 사실 귀찮은 부분이기도 했다. 남자가 어떻게 저를 알고 있는 지 저와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고. 쿠니미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차게 식은 손을 비벼 문질렀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저만치에서 오는 버스에 쿠니미는 길게 숨을 내쉬곤 걸음을 뗐다. 평소와 다름없이 버스에 오르고, 이번엔 좀 더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늘 앉던 혼자 앉는 자리가 아닌 두 사람이 앉는 좌석이었다. 옆에 누가 있으면 그래도 말을 걸지는 않겠지. 쿠니미는 팔짱을 낀 채 몸을 웅크렸다. 아직 버스 내 공기는 쌀쌀했다.



 어느 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늘 있는 일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눈을 떴을 땐 평소와 훨씬 다른 상태였다. 혼자 잤을 땐 단지 창문에 머리를 기대거나 앞으로 숙인 채 잠을 잤었는데, 지금은? 쿠니미는 얼굴에 닿는 따뜻한 느낌에 뺨을 문지르려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댄 채 자고 있었다. 냉큼 고개를 들어 제 옆을 확인하자 그 사이 눈에 익은 흰 자켓과 반듯하게 잘린 앞머리가 제일 먼저 보였다.






 “아, 깼어?”

 “뭐야…….”

 “너무 잘 자서 깨우기가 뭣하더라.”

 “네가 왜 내 옆에 앉아있는데.”

 “네 옆자리 비어 있어서 앉았지.”






 퍽 뾰족하게 나간 말임에도 돌아온 대답은 준비라도 한 것처럼 매끄럽게 나왔다. 심지어 저가 예민하게 군다는 듯한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것에 기분이 나빠 미간을 찡그리는데 마주 본 얼굴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돌려 앞을 본 채 팔짱을 꼈다.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유난히 남자에 대해서는 감정이 과할 정도로 치솟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하며 대충 넘겼을 것도 울컥, 불쾌하다 느꼈을 정도로. 골치가 아파오는 것 같음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자 저를 보던 남자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2인 좌석에 앉은 것이 실수인 것 같았다. 내일은 또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 볼 때였다.






 “고시키 츠토무. 내 이름이야.”






 조금은 흥분한 것 같은 목소리였다. 왜? 쿠니미는 흘기듯 제 옆에 앉은 남자를 보았다. 초롱초롱한 눈이 무언가를 기대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자 제 쪽으로 기울어지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쩌라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저…….”

 -이번 정류장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타이밍 좋게 저가 내릴 곳의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음성이 나왔다. 쿠니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제 쪽으로 몸을 기울인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리를 빠져나와 문이 열리고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쿠니미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남자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너 고시키 츠토무라고 알아?”






 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쓱 훔쳐내며 꺼낸 말에 물을 벌컥벌컥 먹고 있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쿠니미는 저가 물어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태연스레 바닥에 놓인 물통을 집어 들어 입에 물었다. 추운 날씨 탓에 물은 미지근하지 않고 꽤 시원했다. 꿀꺽꿀꺽 몇 모금 삼키고 입가로 흐른 물을 닦아내고 나서야 이상한 표정을 지은 얼굴이 이쪽을 향했다.






 “걔 왜?”

 “알아?”

 “알지. 시라토리자와 배구부 주전이잖아.”

 “배구부?”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라 생각했건만 배구부였다. 시라토리자와의 주전이라면 경기도 꽤나 봤고 같이 경기도 했을 것이 분명한데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주변에 관심이 없는 수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야 남자가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 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남자는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었는가.






 “걔는 갑자기 왜?”

 “뭐, 그냥.”






 의문을 파고들려던 것은 옆에서 다시 되물어오는 목소리에 의해 깨졌다. 쿠니미는 들고 있던 물을 조금 더 삼켜내고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차가운 물이 스쳐지나간 목이 조금 까끌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고시키 츠토무. 괜히 그 이름을 한 번 웅얼댄 쿠니미는 무거운 걸음을 뗐다. 목덜미에 열기가 맴돌았다.





















 며칠을 내내 보아왔던 남자는 처음 존재를 눈치 챘던 날처럼,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저야 늘 등교를 하는 시간이 같았으니, 아마 남자는 앞의 버스를 탔거나 뒤의 버스를 탔겠지. 쿠니미는 퍽 뜨끈한 목덜미에 차게 식은 손을 가져다 댔다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며칠 전부터 목이 까끌댄다 싶더니 기어코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자 뜨끈한 열기가 손바닥에 전해졌다. 오늘따라 목도리도 깜빡하고 나온 채였다. 그나마 오늘 훈련이 없는 날이라 다행인건가. 쿠니미는 새삼스레 싸늘한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다 저만치에서 오는 버스에 발을 내딛었다. 다리에 추라도 매달아 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쿠니미는 가까운 자리에 앉아 몸을 잔뜩 웅크렸다. 유난히 날씨가 추운 것도 같았다. 머리가 마치 바닥에 끌려가는 것처럼, 쿠니미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더 무거워지는 머리에 쿠니미는 눈을 떴다. 양 뺨이 홧홧할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쿠니미는 흐릿한 시야를 씻어내기도 전에 차게 식은 제 손을 뺨에 가져다댔다. 뜨끈하게 열이 올라있었다. 감기 기운이 좀 더 심해진 것도 같았다. 이 정도면 조퇴는 문제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쿠니미는 덜컹거리는 버스의 움직임에 눈썹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냉기에 열기를 좀 식힐까 싶어 이마를 가져다 댄 쿠니미는 천천히 숨을 뱉어냈다. 숨결조차 뜨겁게 달아있었다. 그냥 결석을 해버릴걸 그랬나. 쿠니미는 제 이마에 닿는 것에 느릿하게 눈을 떴다.






 “너 열나?”






 꽤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흐릿한 시야에 눈을 몇 번 깜빡이는 사이, 이마에 살짝 닿았던 것이 앞머리를 헤치고 이마에 붙었다. 퍽 시원한 손이었다. 잠깐 그 냉기를 느끼는 사이 손이 떨어져나가고, 뺨을 더듬어 내렸다.






 “너 열 엄청 많이 나.”

 “네 손, 시원 하네…….”






 뺨을 감싸 쥐었던 손이 꾹, 뺨을 눌렀다가 금세 떨어졌다. 냉기가 떨어짐에 시선을 위로 들어 올리던 쿠니미는 마침 나오는 안내음에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허리에 팔이 둘러졌다. 그 정도는 아닌데. 쿠니미는 제 허리에 둘러진 팔을 떼어내고 버스에서 내렸다. 찬 공기가 열기와 졸음을 조금 가시게 해주는 것 같았다. 축축 늘어지는 다리를 한 걸음 떼려고 할 때, 목에 둘러지는 것에 쿠니미는 고개를 돌렸다. 반듯하게 잘린 앞머리가 제 앞에 있었다. 목에 둘러지는 것을 내려다보니 목도리였다. 비누 향 같은 좋은 냄새가 났다.






 “넌?”

 “난 원래 튼튼하니까.”

 “학교는.”

 “다음 버스 타면 돼. 됐다, 얼른 들어가. 조퇴 꼭 해.”






 이마를 한 번 더 만져본 손이 떨어져나갔다. 꽤나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왜? 쿠니미는 제 목에 둘러진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남자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남자가 입술을 휘었다.






 “들어가. 춥다.”

 “이거.”

 “아, 다음에 줘.”

 “언제?”

 “내일도 버스에서 만날 거니까.”






 그러며 활짝 웃는 얼굴에 쿠니미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려 눈을 굴렸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는 거지. 제 등을 떠미는 손에 쿠니미는 발을 돌렸다. 내일 봐! 신이 난 목소리를 하는 소리에 쿠니미는 발을 옮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목도리조차 하지 않았건만, 남자는 추위는 모르는 것처럼 굴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창피해. 이마에서 떠돌던 열기가 귀 끝까지 뜨겁게 만들었다.






 “고시키, 츠토무.”






 꼭 자기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쿠니미는 제 목에 둘러진 목도리에 코를 파묻고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코끝엔 비누 향을 닮은 향기만 가득했다.




















 “오늘 왜 이렇게 늦었냐? 또 걔 기다렸어?”






 지각은 아니었지만 꽤나 늦게 들어온 탓에 급하게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던 고시키는 제 옆에서 튀어나온 말에 활짝 웃었다.






 “아니!”

 “뭐야, 표정 기분 나빠.”






 질색하는 표정을 보아도 고시키는 여전히 활짝 웃고 있었다. 내일도 만날 거라고 하는 말에, 쿠니미는 인상을 쓰지도, 거절의 말을 하지도 않았다. 내일도, 내일도 만날 거야. 고시키는 창문 밖을 내다보며 도로에 지나가는 버스를 보았다. 휑한 목덜미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다.











'HQ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시사쿠] 성매매  (0) 2017.03.17
[우시쿠로] 섹스피스톨즈 AU  (0) 2017.02.27
[테루쿠로] 부장님 (For. 폴리 님)  (0) 2016.12.14
[보쿠로] 안에서 터지는  (0) 2016.11.28
[아카쿠로] 무거운 S와 가벼운 M 下  (0) 2016.11.2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 센티넬 버스 AU










 오이카와 토오루는 파트너를 잃었다.



 그 말은 오이카와의 등 뒤를 끈덕지게 쫓아다녔다. 이 바닥에서 파트너를 잃는 일은 흔한 일이었지만 오이카와에게만 그 말이 졸졸 따라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오이카와는 후천적 센티넬이었다.

 




















 소꿉친구였던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센티넬로 센터에 오게 된 날, 오이카와 또한 이와이즈미의 가이드로서 센터로 함께 왔다. 운명인지 아니면 형제처럼 같이 자란 탓인지 둘의 상성은 꽤나 잘 맞는 편이었고, 이와이즈미가 뛰어난 센티넬임에도 어릴 적에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옆에 늘 가이딩을 해주는 오이카와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둘은 낯선 센터에 들어왔어도 나름대로 잘 적응을 해냈다. 가이드임에도 오이카와는 신체적 능력이 좋았고, 이와이즈미 또한 꽤 능력이 좋은 상급 센티넬이었다.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둘의 콤비는 센터 내에서 꽤 유명해졌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둘의 실력은 뛰어 넘을 사람이 몇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랬었다.



 오이카와는 눈 쪽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눈을 찌푸리며 손을 뻗어 빛을 가렸다. 얼마 만에 햇빛을 보며 눈을 뜨는 건지 몰랐다. 오이카와는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지난밤의 지독히 혼란스러웠던 꿈이 뇌리에 남아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깜빡이던 오이카와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늘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던 머리칼은 자고 일어난 탓에 엉망이었다. 터덜터덜 힘이 빠진 걸음걸이로 욕실로 들어선 오이카와는 칫솔을 집어 들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몇 달 동안 쉬는 날 없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탓인지 볼 살이 쑥 들어갔다. 오이카와 씨 잘생긴 얼굴 다 망가졌네. 뺨을 쓸며 그런 생각을 하던 오이카와는 칫솔에 치약을 짜며 어깨를 한 번 돌렸다. 거울 속 벗은 상체 여기저기 상처와 멍이 들어있었다. 이제 몸을 좀 사려야하나. 칫솔질을 하며 오이카와는 상처에서 눈을 뗐다. 오랜만의 휴가였다.



 오이카와는 그 날 이후로 가이드를 그만두었다. 이와이즈미 만의 가이드였지만 급할 땐 다른 센티넬들에게 가이딩을 해줬었던 것들을 모두 그만두고 오이카와는 센티넬의 임무만 수행했다. 센터 측에서는 가이드의 수가 적었기에 오이카와가 가이드를 계속해줬으면 싶은 기색을 내비췄지만, 뛰어난 센티넬을 잃은 후 새로 나타난 센티넬이 그 자리를 채워주게 되었으니 오이카와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일에 몰두하며 모든 잡생각들을 떨쳐냈다. 그렇게 지낸 생활이 몇 달째였다.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탓인지 오이카와의 임무수행 효율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오이카와에겐 강제로 몇 주의 휴가가 주어졌다.

 


 필요 없는데 말이지. 오이카와는 머리를 만지려다 말고 모자를 집어 들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훈련장이나 다녀올까 싶었다. 아무리 기본 신체 능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갑작스레 얻게 된 센티넬의 능력에 금방 익숙해지지는 않았고, 그것을 익힐 시간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러 뛰어다녔기 때문에 연습을 할 틈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그 힘을 다룰 연습을 할까 싶었다. 센터에 처음 들어왔을 땐 밥 먹듯 드나들던 곳이었건만 오지 않은 지 꽤나 되었다. 오이카와는 기억보다 좀 더 닳은 것 같은 문을 조금 들여다보다 문고리를 잡았다.



 콰앙-!!



 꽤나 커다란 소리였다. 비명 소리 같은 것은 나지 않았으니 사람이 다친 것은 아닐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문고리를 돌려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씨발, 조심 해야지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꽤나 거센 소리였기에 크게 한 소리 듣겠구나, 했지만 의외로 튀어나온 목소리는 긴장한 목소리가 아닌 되래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오이카와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았다. 큰 소리를 낸 것 치고 주변은 깨끗했고,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이 보고 있는 남자 또한 멀쩡하게 서 있었다. 비죽비죽, 머리칼이 엉망으로 위로 솟아있었다. 남자의 손이 허공을 움키자 저만치에 있던 캔이 콰직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우그러들었다. 손가락이 휙, 위로 그어지자 캔은 위로 솟아오르고, 남자의 손끝을 따라 그대로 통 안으로 쏙 들어갔다. 섬세한 작업도 아님에도 남자의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쿠로오!”

 “네네, 갑니다.”






 한 쪽에서 훈련장 담당자가 부르고 나서야 남자는 어깨를 돌려가며 자리를 떠났다.






 “뭐야, 오이카와냐?”






 오이카와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훈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아까 욕설을 하는 목소리가 익숙하다 싶었더니, 일 년 전 까지만 해도 저와 임무를 수행하던 나오이였다. 임무 수행 중에 다리를 다쳐 한동안 못 봤었는데, 재활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이카와는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나오이에게 다가갔다.






 “마나 짱 오랜만이에요.”

 “그 여자애 같은 호칭은 집어 치우라니까. 그나저나 네가 여기 웬일이냐? 임무 수행 중인 거 아니었어?”

 “요즘 빡세게 굴러다녔더니 효율 떨어진다고 휴가 나왔죠.”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근데 온 곳이 훈련장이냐?”

 “오이카와 씨는 부지런 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씩 웃자 상대도 크게 묻지 않고 따라 웃었다. 다른 무언가를 말하려던 오이카와는 문득 눈에 걸리는 것에 시선을 돌렸다. 벽에 커다랗게 무언가가 부딪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생긴 자국에 오이카와는 눈을 깜빡였다. 오래 된 자국은 아니었다. 마치, 방금 생긴 것 같은, 날카로운 균열이 마치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저거 아까 새로 들어온 놈이 만든 거야.”

 “새로?”

 “어, 쿠로오 테츠로 라고. 몇 달 전에 들어온 놈인데, 능력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실전에 투입 안 되고 훈련장에 내내 처박혀있다.”

 “헤에-, 저렇게 벽을 다 부숴놨는데?”

 “힘이 강하긴 한데 섬세하지 못하거든. 그래서 등급도 낮다. B- 급.”






 오이카와는 아까 고작 우그러진 캔 하나를 옮기느라 미간을 잔뜩 찌푸렸던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엉망진창으로 뻗쳐있던 검은 머리칼이 어렴풋이 머릿속 구석에 처박아 둔 기억을 끄집어내려 했다. 오이카와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 다시 모자를 눌러 썼다. 느물느물 스며나오는 기억은 머리칼을 빗어 넘긴 손끝에서 툭, 떨어져 나갔다.





















 “휴가라면서어-!”






 오이카와는 깔끔하게 세팅한 머리칼을 헝클이며 성큼성큼 거의 뛰다시피 걷고 있었다. 휴가라고 주어진 시간이 고작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제 자잘한 생채기들이 나아가고 멍도 슬슬 빠질 즈음이라 훈련장에 처박혀만 있지 말고 간만에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할까 계획을 하던 도중 불쑥 날아온 서류는 당장 현장에 돌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늘었는지 내내 훈련장에서 봤던 나오이도 어제부터 못 봤다. 아직 재활치료 중인 사람을 그렇게 바로 투입시켜도 되나 싶었건만, 이렇게 본인들이 먼저 휴가를 내준 저까지 불러들였다. 오이카와는 혀를 차며 복도를 걸었다. 며칠 새 눈에 익은 문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서툴다는 남자도 첫 날과 둘째 날 본 이후 보지 못했었다. 저가 알기로 훈련장은 하나뿐이니 남자도 현장에 투입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함부로 쓰다 난리나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던 오이카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그래, 그 난리가 나기 전에 어서 가야했다.



 이동 전담 센티넬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오이카와는 저를 이동시켜 준 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곤 걸음을 옮겼다. 아직 현장 근처에도 못 갔음에도 쾅쾅거리는 폭발음이 여기까지 들렸다. 오이카와는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어 두었던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몇 달 째 버릇을 들이기 위해 한 행동은 다행스럽게도 금방 손에 익었다. 장갑이 완전히 손에 끼워진 것을 확인 한 오이카와는 걸음을 빠르게 했다. 펑, 펑, 터지는 소리에 그치지 않고 진동과 공기의 흐름까지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심장에 두근두근, 강하게 뛰며 가슴의 중앙부터 평소보다 온도가 높은 혈액이 몸에 돌기 시작했다. 탁, 타악, 가볍게 자리에서 박차고 허공으로 떠오를 때마다 바닥이 움푹움푹 패어들었다. 거의 다 다가와 갈 때 즈음,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힘껏 뛰어오른 오이카와는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쾅, 소리와 함께 한쪽에서 먼지구름이 일었다.






 “이야아-, 화려하게도 해 놓으셨네, 들!”






 땅으로 착지할 자리를 찾던 오이카와는 방금 폭발이 일어났던 자리의 먼지구름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심해봐야 버섯모양 정도로 피어올라야 했던 것은 회오리처럼 뭔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돌고 있었다. 아, 불길한데. 오이카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아래로 내려섰다.






 “오이카와!!”

 “마나 짱!”

 “저기, 저기 좀 가봐!”

 “에?”






 먼지 폭풍이 휘날리는 곳을 가리키는 것에 나오이 쪽으로 향하던 오이카와는 발의 방향을 바꿔 발을 떼었다. 싸한 느낌이 휘날리는 바람에 섞여 느껴졌다. 아. 오이카와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기분에 미간을 찌푸렸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살갗이 따끔거렸다. 엄청난 출력이었다. 먼지 폭풍 속 까만 머리칼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저거 그 신입 놈이야.”

 “누구?”

 “거 왜 지난주에 봤던 놈! 아직 훈련이 덜 됐다고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 급하다고 그냥 투입시켰더니 컨트롤 못하고 능력 팍팍 쓰다가 지금 저 꼴이다.”

 “폭주야? 싫다아!”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저 새끼 가이딩 해줄 만큼 능력 좋은 가이드가 없어.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 파트너도 없고, 컨트롤이 미숙해서 그렇지 출력은 센터 내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좋으니까.”






 쾅, 또 한 번의 폭발음이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훅 밀려오는 힘의 폭풍에 잠시 몸을 숙였다 그 먼지 폭풍 속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게 서 있을 뿐이었건만, 그 주변으로 모래며 파편들이 빠르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남자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폭풍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문득 새빨갛게 물들었던 눈이 뇌리를 스쳤다. 오이카와는 초조하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조금은 뻣뻣한 가죽의 촉감이 느껴졌다. 콰앙-, 또 한 번 남자의 힘에 의해 바닥이 움푹, 패였다. 흔들, 남자의 고개가 흔들리며 돌아갔다. 빛을 잃은 호박색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했다. 이미 한 쪽 눈알이 시뻘겋게 물들어있었다. 주륵, 남자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너 가이드였지.”






 옆에서 툭 튀어나온 말에 오이카와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센티넬이 폭주하는 것은 센터 내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본 것만 해도 여러 번이었다. 가죽장갑 안의 손에서 땀이 배어났다.






 “너 꽤 등급도 높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 더 이상의 가이딩은 안 해요.”

 “왜? 센티넬 되면서 가이딩 능력은 잃어버렸냐?”






 오이카와는 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센티넬들은 저만치에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센티넬과 다른 색의 옷을 입은 가이드들을 눈으로 훑어가며 찾았지만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이 목구멍 끝에서 넘실댔다. 가이드. 자신이 아닌 가이드. 그리고, 폭주를 멈추고 죽지 않는 센티넬. 머릿속이 엉망으로 뒤엉켰다. 탁. 팔이 붙잡혔다. 그 갑작스러움에 놀라기 무섭게 장갑이 벗겨지고, 그대로 손이 잡혔다. 오이카와는 화들짝 놀라 그 손을 뿌리쳤다. 손에 나오이의 체온이 느릿하게 들러붙었다 금세 식었다. 제 앞의 얼굴 또한 제 손의 체온처럼 차게 식어있었다.






 “그대로잖아.”

 “아니……,”

 “넌 지금 네 능력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도 손 놓고 죽어가는 걸 보기만 하겠다는 거냐?”






 늑골이 폐를 압박하듯 가슴이 뻐근해져왔다. 심장이 마구 뛰어대는 게 느껴졌다. 센티넬로 각성한 이후 예민하진 청각에 바람 소리에 섞여 컥, 하고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돌아보니 남자의 입에서 거멓게 죽은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 나는,”






 실핏줄이 모두 터져 벌겋던 눈과 코와 입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던 피, 제 몸을 무수히 두드리던 파편들, 그 앞에서 제 몸이 전부 녹아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열기에 잡혀 무능했던 자신.



 ‘이, 이와…….’



 그 이름을 부르려 입을 벌려도 성대가 불에 타는 것 같은 고통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핏줄 온통 두드러졌던 살갗들.






 “이 자식아, 네가 고집부리자고 여기 일대 초토화 만들 거야? 쟤 죽여 버릴 거냐고!”






 오이카와는 다시 남자를 돌아보았다. 방울방울 떨어지던 피가 어느새 줄줄 흐르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면 입을 다물 수도 없이 피가 콸콸 쏟아지겠지. 오이카와는 입술을 콰득, 씹었다.






 “마나 짱, 킨다이치를 불러줘요! 최대한 빨리!”






 그리고 그 모래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총알 마냥 몸에 쏟아지는 파편을 뚫고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간 오이카와는 남자의 목을 콱, 쥐었다. 까만 머리칼이 제 친우와 똑같았다. 남자의 손이 움직이기 전에, 오이카와는 남자의 목을 확 당겨 피가 쏟아지는 남자의 입술을 물었다. 짜고 비릿한 액체가 입 안 가득 차올랐다.










'HQ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카쿠로] 무거운 S와 가벼운 M 上  (0) 2016.11.25
[오이쿠로] 후천적 발생 下 (For. 하나 님)  (0) 2016.11.25
[보쿠로] 콘돔  (0) 2016.11.25
[아카쿠로] 비 (For. 몽돌 님)  (0) 2016.11.25
[보쿠로] 벚꽃이 지면 k  (0) 2016.11.25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open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