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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5.12.17  [우시쿠로] 그믐달 3
  3. 2015.12.16  [우시쿠로] 그믐달 2
  4. 2015.12.15  [우시쿠로] 그믐달 1

 

 

 

 

 

 

 

 

 

 

 우시지마는 문득 눈을 떴다. 품 안에 안긴 체온은 여전했지만, 왠지 모르게 잠이 깼다. 우시지마는 눈을 끔뻑이다 팔을 조심스럽게 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확인하니 3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가볍게 마른세수를 하고 숨을 내쉰 우시지마는 방을 나섰다. 제 움직임에 쿠로오까지 깨면 난감하니까. 부엌에 들러 물을 몇 모금 마신 후 우시지마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달이 꽤나 밝았다. 나온 김에 잠시 바람을 쐬고 들어갈 참이었다.

 

 

 장례식 이후 제 아비는 전보다 더 자주 쿠로오를 불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던 부름은 두세 번으로 늘어났다.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인가 싶었다. 그에 쿠로오는 그다지 별 말은 하지 않았다. 넌지시 물어본 말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냥 익숙해졌다는 말 뿐이었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집안일을 해주시는 아주머니 덕에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쿠로오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원래도 그다지 살집이 있는 편이 아니었건만 몇 달 새에 쿠로오는 꽤나 수척해졌다. 먹는 것이 다른 것도 아니었는데. 좀 더 신경 써서 챙겨줬음에도 쿠로오는 쉬이 살이 붙지 않았다. 역시 제 아비 탓인가. 심장에 돌덩이가 얹힌 듯 마음이 무거웠다.

 

 

 

 

 

 “……와카토시……?”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채 졸음을 떨쳐내지 못해 눈을 비비며 걸어오는 쿠로오에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켰다. 손을 쭉 뻗는 것에 응해 품에 안자 뺨을 부비는 행동이 귀여워 우시지마는 그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

 

 

 

 

 

 “깨웠나?”

 “…… 와카토시 없으면 못 자겠어…….”

 

 

 

 

 

 눈도 뜨지 못하고 제 어깨에 기대오는 머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허리를 안고 다시 마루에 걸터앉아 제 허벅지 위에 쿠로오를 앉혔다. 마주 안은 모양새라 쿠로오는 다리를 우시지마의 허리에 감고 제 허리를 단단히 앉는 팔에 흐으, 하며 웃었다. 부드럽게 머리칼을 넘겨주는 손이 따뜻해서 좋았다. 쿠로오는 눈을 반쯤 뜨고 고개를 움직여 우시지마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목덜미는 아직 따끈했다. 머리칼을 쓸어주던 손이 내려가 등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멀리 가지 않았던 졸음이 금세 다시 몰려왔다.

 

 

 

 

 

 “나 자도 돼?”

 “침대로 옮겨 주겠다.”

 “와카토시만 믿을게.”

 

 

 

 

 

 목선에 꾸욱, 눌리는 입술에 쿠로오는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맞닿은 가슴이 따뜻해서 좋았다. 잘 자라, 테츠로.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 학교 끝났나?”

 -아직. 담임 안와서 종례도 못했어!

 “저녁 먹고 싶은 거 있나? 아주머니께 말씀드려 놓겠다.”

 -별로 없는데. 꽁치구이?

 “알겠다. 천천히 와라.”

 -, 집에서 봐-.

 

 

 

 

 

 우시지마는 쿠로오가 먼저 전화를 끊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늘 쿠로오보다 자신이 집에 먼저 도착하는 편이었기에 저녁 메뉴 같은 것은 저가 아주머니에게 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와카토시 왔니?”

 

 

 

 

 

 대답이 돌아오는 것을 예상치 않은, 버릇처럼 한 인사에 답이 돌아왔다. 우시지마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마당 한 쪽에서 제 아비가 손을 흔들었다. 우시지마는 살짝 고개를 까닥이고 제 방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제 아비와의 대화는 단절되었었다. 원래 저가 그다지 말이 많은 편도 아닐뿐더러, 쿠로오의 일까지 알고 있으니 더더욱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방에 들어서 가방을 놓고 옷을 갈아입은 우시지마는 아주머니께 저녁 메뉴를 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당연히 아주머니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시지마는 보이는 큰 등짝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

 

 

 

 

 

 “오늘 아주머니가 일이 있다고 하셔서 일찍 가셨다.”

 

 

 

 

 

 저녁 반찬은 만들어 놓고 가셨어. 우시지마는 식탁을 훑었다. 꽁치는 내일 해달라고 해야 하나, 따위를 생각하던 우시지마는 문득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제 아비를 보았다.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우시지마는 그저 쓱 몸을 돌려 부엌을 나섰다. 아니, 그러려 했다.

 

 

 

 

 

 “와카토시, 잠깐 얘기 좀 할까?”

 

 

 

 

 

 저를 부르는 말에 우시지마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제 아비를 보았다. 다시 한 번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먼저 걸음을 옮기는 제 아비의 뒤통수를 보던 우시지마는 곧 걸음을 옮겼다. 어릴 때부터 잘 들어오지 않았던 아비의 서재였다. 우시지마는 방 안을 쓱 훑어보고 책상 앞에 선 제 아비를 보았다. 부정할 수 없이 저와 닮은 얼굴이었다. 한 쪽에 놓인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늦어도 30분 내로는 쿠로오가 올 것이었고, 저녁을 챙겨줘야 했다. 제 아비와 같이 소파의 등받이 뒤쪽에 걸터앉은 우시지마는 제 아비를 보았다.

 

 

 

 

 

 “학교는 어떠니? 할만 해?”

 “……괜찮습니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요.”

 “테츠로는 어떻대?”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르지 않으실까요. 자주 보시지 않습니까.”

 

 

 

 

 

 사실 그다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간 말에 아비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우시지마는 그 표정에 고개를 갸웃, 꺾었다. 말을 잘못했나, 싶었는데 아비의 표정이 다시 가다듬어졌다. 애써 웃어 보이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바로 하며 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너도 자주 안 보는데 테츠로를 어떻게 자주 봐. 그 말에 우시지마는 하, 하고 웃었다. 저가 알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나? 그렇게 저를 멍청하게 여겼었나? 아니면, 스스로가 완벽하게 숨겼을 거라 생각했었나. 우시지마는 터져 나오는 웃음에 입을 가린 채 큭큭 웃었다. 웃으면서도 가슴은 까맣게 가라앉았다. 기만도 이런 기만이 없다.

 

 

 

 

 

 “저보다 테츠로를 더 자주 보시잖아요. 그제도 밤중에 불러내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테츠로를 범하는 거,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우시지마의 말에 아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우시지마는 웃음을 멈추고 똑같이 표정을 굳혔다. 10년 이었다. 지금 제 키에 반도 되지 않던 어린 아이를, 친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들로 들여온 자식을 범하는 추악한 짓을 10년 동안 해 왔었다. 그러면서도 앞에서는 다정한 척, 올바른 척 연기를 해온 저 모습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 우시지마는 분노로 일그러져가는 제 아비의 표정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신은 이제 울던 쿠로오를 달래주는 것 밖에 하지 못했던 일곱 살의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그렇게 자주 부르시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테츠로의 목에 그렇게 자국까지 남겨 놓으셨으면서.”

 “닥쳐!”

 “낮에는 아들이라 부르시면서 밤에는 테츠로에게 발정하고.”

 “닥치라고!!”

 “역겨워.”

 

 

 

 

 

 왈칵, 달려들어 제 팔을 잡는 손에 우시지마는 힘껏 그 손을 뿌리쳤다. 순간 휘청인 몸은 그대로 넘어지며 쾅, 하고 책상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바닥에 쓰러졌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액자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우시지마는 눈을 치켜뜬 채 바닥에 쓰러져 미동조차 없는 제 아비를 내려다보았다. 흔한 비명 소리 하나 없었다. 밖에서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카토시!!”

 

 

 

 

 

 문이 벌컥, 열리며 얼굴이 파랗게 질린 쿠로오가 뛰어 들어왔다. 우시지마는 여전히 커다랗게 치켜 뜬 눈으로 아비를 보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쿠로오를 보았다. 쿠로오 역시 바닥에 쓰러진 아비를 보다 우시지마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와락 서로를 껴안았다. 쿠로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시지마의 양 뺨을 쥐었다.

 

 

 

 

 

 “, 집에, 왔는데, 큰 소리가 나서. 괜찮아? 다친데 없어?”

 

 

 

 

 

 우시지마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상처가 있는 지 확인했다. 몸에 상처가 없음을 전부 확인하고 나서야 쿠로오는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우시지마를 꽉 껴안았다.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마주 안고 자신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간신히 트며 헐떡였다. 쿠로오는 제 등을 안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 다는 것을 깨달았다.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어깨 너머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몸뚱이를 보며 우시지마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천천히 가빴던 호흡이 진정되어갔다. 호흡이 완전히 진정되자 쿠로오는 몸을 떼고 우시지마의 뺨을 쥐어 시선을 맞췄다.

 

 

 

 

 

 “내가, 내가 했다고 할게.”

 “테츠로, 네가 왜…….”

 “나는 당한 게 있잖아. 내가 했다고 하면, 죄가 크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테츠로.”

 

 

 

 

 

 쿠로오는 제 입술에 겹쳐지는 것에 말을 멈췄다. 손목을 쥔 손이 부드럽게 제 손을 내렸다. 입술이 떨어지고, 우시지마는 다시 쿠로오를 품에 안았다. 너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 속삭이는 소리에 쿠로오는 그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도. 옷깃을 움켜쥔 손이 잘게 떨렸다.

 

 

 

 

 

 “테츠로.”

 “.”

 “아버지는 혼자 미끄러져 죽은 걸로 하자.”

 “?”

 “너에게 나대신 죗값을 치르게 할 생각도 없고, 너를 두고 감옥에 갈 생각도 없다.”

 

 

 

 

 

 큰 소리가 나서 달려와 보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 그런 걸로 하자. 쿠로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깨 너머 차갑게 식어가는 몸뚱이를 보다 우시지마를 꽉 끌어안았다. 이제 너를 괴롭게 할 사람은 없다, 테츠로. 마지막 말에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어깨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 내뱉어진 말에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안은 채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신호는 길지 않았다.

 

 

 

 

 

 “저희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우시지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익숙한 머리꼭지에 우시지마는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 서자 퍼뜩, 고개를 드는 것에 우시지마는 손을 내밀었다. 가자. 그 말에 마주 잡아오는 손은 긴장한 탓인지 조금쯤 차가웠다. 우시지마는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제 뒤에 서 있던 경찰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경찰서를 나와서도 둘은 말이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나서야 쿠로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시지마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직은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택시에서 내린 둘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우시지마의 방으로 들어섰다. 둘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와락 끌어안았다.

 

 

 

 

 

 “다 끝났다.”

 “……. 엄청 긴장했어.”

 “고생 시켜서 미안하다.”

 “아냐. 와카토시가 나 구해준거지.”

 

 

 

 

 

 저를 보며 씩 웃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마주 웃었다. 이제 널 괴롭힐 사람은 없다. 뺨을 쓰다듬으며 하는 말에 쿠로오는 그 손을 잡아 눌렀다. 나른하게 눈이 내리 감기자 우시지마는 다른 손으로 쿠로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쿠로오의 눈이 슬쩍 뜨였다.

 

 

 

 

 

 “솔직히 좀 무서운데.”

 “.”

 “와카토시랑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아.”

 

 

 

 

 

 사랑해. 제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속삭이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한다, 테츠로. 창문을 타고 들어온 노을빛이 온통 방 안을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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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오의 몸은 생각보다 빨리 나았다. 부러진 다리는 아직 깁스를 하고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퇴원을 한 날부터, 쿠로오는 자연스럽게 우시지마의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등교하는 것, 점심시간, 하교할 때, 집에 돌아와 씻고 잠이 들 때까지 우시지마가 도와주어, 생각보다 생활은 불편하지 않았다.

 

 

 쿠로오는 침대 바닥에 앉아 제 머리를 털어주는 우시지마의 손길을 몽롱한 기분으로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움직임에 제약이 있어 피곤함이 있던 터라 씻고 나오니 노곤함이 더했다. 꾸벅, 고개가 떨어지자 우시지마는 물기를 털어주던 것을 멈추고 쿠로오의 턱을 틀어 뺨에 입술을 눌렀다. 퍼뜩 눈을 뜬 쿠로오는 흐흫 웃으며 우시지마를 살짝 밀어냈다. 우시지마는 순순히 밀려나며 쿠로오의 팔 아래로 손을 넣어 쿠로오를 침대 위에 앉혔다. 하품을 한 쿠로오는 눈을 비비적거리다 우시지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졸려.”

 “이만 자자.”

 

 

 

 

 

 쿠로오를 품에서 떼어 먼저 눕힌 후 불을 끈 우시지마는 제 쪽으로 뻗는 손등에 입을 맞추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그 몸을 안았다. 병원에서 매일 간호를 했던 터라 말랐던 몸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우시지마는 살이 좀 오른 허리를 살살 매만졌다. 간지럽다고 꿈틀거린 쿠로오는 손이 떨어지지 않자 고개를 들어 저를 내려다보는 우시지마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괴롭히지 마세요, 와카토시 군. 이를 드러내며 킥킥 웃는 얼굴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우시지마는 마주 웃으며 도장을 찍듯 꾹, 입술을 눌렀다 뗐다.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며 품에 파고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몸을 데워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른해졌다. 내일이면 깁스를 풀게 되었다. 쿠로오는 석고 탓에 무거운 다리를 턱, 하고 우시지마의 위로 올렸다.

 

 

 

 

 

 “무겁다.”

 “흐흐, 내일이면 맨다리 된다.”

 “좋은가?”

 “그럼, 좋지. 내 맘대로 걸을 수 있잖아.”

 “그렇게 말하면 좀 서운해진다.”

 

 

 

 

 

 머리를 벅벅 쓰다듬는 손에 쿠로오는 키득키득 웃었다. 빨리 나아야 와카토시도 마음대로 해보고 그러지. 휘어지는 눈에 우시지마는 눈을 굴리다 그저 쿠로오의 뒤통수를 꾹 눌렀다. 얼른 자라. 쿠로오는 눌리는 뺨에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가 그저 눈을 감고 웃었다. 가슴팍에 눌린 뺨이 따끈했다.

 

 

 

 

 

 

 

 

 

 

 우시지마는 문득 잠에서 깼다. 품에 있어야 할 쿠로오가 없어,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켜 머리맡의 탁상 등을 켰다. 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보았지만 온기는 없었다. 언제 나간거지. 우시지마는 마른세수를 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편히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득 밖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시지마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하아. 낮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시지마는 문을 열었다. , 하며 저를 보는 쿠로오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요즘은 피지 않는 것 같더니 다시 피는 모양이었다. 우시지마는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왜 일어났어? 더 자지.”

 “그냥 눈이 떠졌다.”

 

 

 

 

 

 제 어깨에 기대오는 머리가 편하도록 좀 더 몸을 움직이자 거의 몸 전체를 기대왔다. 우시지마는 그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씻고 온 듯 진한 바디워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우시지마는 목덜미에 남은 자국을 발견하고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쿠로오가 깁스를 푼 지 고작 한 달 만이었다. 쿠로오가 기절할 때까지 패놓고 뻔뻔스럽게도 다시 쿠로오를 불러들이는 것이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눌렀다. 쪽쪽 얼굴에 내려앉는 입맞춤에 쿠로오는 낄낄 웃으며 우시지마를 밀어냈다.

 

 

 

 

 

 “나 담배 안 껐어, 데여.”

 “괜찮다.”

 “내가 안 괜찮아. 어휴, 우리 와카 짱 때문에 담배도 못 피우겠네.”

 

 

 

 

 

 쿠로오는 결국 담배를 비벼 끄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먼저 앉은 쿠로오는 씩 웃으며 팡팡 제 옆을 두드렸다. 자기, 이리 와봐. 목소리 톤이 벌써부터 장난기가 가득했다. 우시지마는 마주 씩 웃으며 그 앞에 섰다. 손이 뻗어져 허리를 숙이자, 팔이 익숙하게 목덜미에 둘러졌다. 침대 위에 무릎을 올리자 자연스레 뒤로 넘어가는 몸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위로 올라탄 모양새가 되었다. 짧게 입술이 닿았다. 짧게나마 피웠던 담배 탓에 입술이 조금쯤 썼다. 우시지마는 입술을 핥고 쿠로오의 머리칼을 위로 쓸어 올리며 다시 입술을 겹쳤다. 입술이 겹쳐지자마자 벌어져 혀가 섞였다. 양치를 과하게 한 듯 입안의 표피가 조금씩 벗겨져 있었다. 우시지마는 슬쩍 눈을 뜨며 고개를 틀었다. 눈을 꼭 감은 모양새가 귀여웠다. 우시지마는 입술을 떼고 이마를 맞댔다.

 

 

 

 

 

 “하아, 와카토시…….”

 “테츠로.”

 

 

 

 

 

 우시지마는 다시 쿠로오의 얼굴에 입을 쪽쪽 맞춰댔다. 나른하게 입맞춤을 받던 쿠로오는 물끄러미 우시지마를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문득 우시지마는 뽀뽀를 멈추고 쿠로오를 보았다. 키스 탓에 조금쯤 열이 오른 얼굴이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엽다 따위를 생각하던 우시지마는 저를 살짝 밀어내는 손에 몸을 일으켰다. 쿠로오를 덮친 자세였던 탓에 상체를 일으키자 그 위에 앉은 모양새였다. 우시지마는 조금쯤 흐트러진 쿠로오를 내려다보았다.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곧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그래도 쿠로오는 안 되었고, 된다고 해도 오늘은 아니었다. 쿠로오를 품에 안고 침대에 누운 우시지마는 등을 끄려 손을 뻗었다. 갑자기 턱, 팔을 잡는 손에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내려다보았다.

 

 

 

 

 

 “, 저기.”

 “?”

 “혹시, 섰으면.”

 

 

 

 

 

 나, 괜찮은데. 고개를 숙였건만 보이는 귀 끝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우시지마는 그 머리꼭지를 보며 눈을 깜빡이다 쿠로오의 턱을 잡고 시선을 맞췄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시선을 피했다. , 저기, 그러니까. 더듬더듬 말을 뱉는 입술을 다시 한 번 집어 삼킨 우시지마는 숨이 부족해진 쿠로오가 제 팔을 탁탁 칠 때 즈음에야 겨우 입술을 떼었다. 쿠로오는 눈을 내리 깔고 우시지마의 손목을 쥘 뿐이었다.

 

 

 

 

 

 “싫으면 지금 싫다고 해라.”

 “, 난 좋아. 하고 싶어, 너랑.”

 “무서우면 멈출 테니까.”

 

 

 

 

 

 다정하게 눈꺼풀에 내려앉는 입술에 쿠로오는 눈을 찔끔, 감았다가 우시지마를 보았다. 서로의 얼굴이 붉었다. 쿠로오는 터지는 웃음을 막지 않고 킥킥 웃었다. 양 뺨을 감싸 쥐고 쪽, 짧게 입을 맞춘 쿠로오는 제 허리를 잡은 채 저를 보는 우시지마를 보며 웃었다. 다정하게 해줘. 속삭이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쿠로오는 제 옷깃을 만져주는 우시지마를 물끄러미 보았다. 저랑은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우시지마는 낯설었다. 됐다. 손이 떨어지자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품에 푹, 안겨들었다. 마주 안아준 우시지마는 그 등을 토닥여주었다. , 중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떨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쿠로오의 성적이 좋지 못해서 저가 쿠로오에게 맞추려고 했지만 부모와 담임의 성화에 못 이겨 넣었던 상위권 학교에 턱하니 붙어버렸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목덜미에 쪽, 입을 맞추고 쿠로오를 품에서 떼어냈다. 울상인 표정은 간만이었다.

 

 

 

 

 

 “와카토시 보고 싶음 어떡하지?”

 “수업 끝나면 데리러 가겠다.”

 “완전 반대 방향이잖아. 그냥 집에서 보자.”

 

 

 

 

 

 한숨을 푹, 내쉰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목덜미를 안고 입술에 짧게 뽀뽀했다. 바람피우지 말고, ? 으름장 놓듯 하는 말에 우시지마는 피식 웃으며 화답하듯 쿠로오의 입술에 똑같이 뽀뽀했다. 너야말로. 그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쿠로오는 곧 목덜미를 끌어안았던 팔을 풀었다. 제 학교가 좀 더 멀어서 우시지마보다 빨리 나가야 했건만, 우시지마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저가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새삼스럽게 우시지마를 보던 쿠로오는 눈에 물음표를 달고 저를 쳐다보는 것에 곧 씩 웃으며 우시지마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와카 짱 전화 잘 받고, 답장 잘 하고.”

 “너나 휴대전화 잘 들고 다녀라.”

 “잘 갔다 와.”

 

 

 

 

 

 휘휘 흔들리는 손이 내려가고 몸을 돌리는 것까지 확인한 우시지마는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 사실 걱정이 되지 않는 다면 거짓말이었다. 그 동안은 반은 달랐어도 점심시간마다 얼굴을 봤기 때문에 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예 같은 건물 내에 있지도 않았다. 우시지마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에서 가고 있는 이의 모습은 뒤통수 여야 했는데, 멀찍이에서도 얼굴이 보였다. 손이 번쩍 들려 휙휙 휘저어졌다. 우시지마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손을 마주 흔들었다. 조금쯤은, 마음이 놓였다.

 

 

 

 

 

 

 

 

 

 

 쿠로오는 제 담임이 하는 소리에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제 안색을 살피는 눈에 쿠로오는 그저 다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봐. 조심스레 하는 말에 쿠로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실에서 가방을 챙겨 나왔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려던 쿠로오는 한 발 앞서 울리는 진동에 잽싸게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늘 보는 이름이었다. 쿠로오는 가방을 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와카토시.”

 -들었나?

 “, 지금 막 가방 챙겨서 나왔어.”

 -괜찮나.

 “나 엄마랑 사이 별로였던 거 알잖아.”

 -학교 앞이다. 나와라.

 “헐 와카 짱 마중 나왔어?”

 

 

 

 

 

 쿠로오는 현관으로 한 걸음에 내달려 교문 쪽을 확인했다. 그 며칠 새 눈에 익은 교복이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쿠로오는 성큼성큼 발을 내딛어 빠르게 교문에 도착했다. 보자마자 와락 저를 끌어안는 팔에 쿠로오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마주 안았다. 사인이 뭐래?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심근경색.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품에서 나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옷 갈아입어야 하지. 우시지마는 그 옆에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먼저 하고 계신다.”

 “그럼 좀 천천히 가도 되려나.”

 

 

 

 

 

 쿠로오는 몸을 쭉 피며 기지개를 폈다. 우시지마는 그런 쿠로오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었나?”

 “?”

 “어머니가 너랑 아버지 일 알고 있다는 거.”

 “, 초등학생 때 알았어. 엄마가 우시지마 상한테 말하는 거 들었거든.”

 “뭐라 하셨나?”

 

 

 

 

 

 깍지를 껴오는 손을 꾹 잡으며 쿠로오는 우시지마를 돌아보았다. 드물게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부모의 이야기만 나오면 쿠로오는 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걸음이 늦춰졌다. 테츠로랑 자는 게 그렇게 좋냐, 나하고도 자자, 질투난다. 어느 새 둘은 멈춘 채였다. 쿠르릉, 아까부터 어둡던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우시지마는 저를 보는 시선에 매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쿠로오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꺾였다. 엄마는 가난한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라, 알면서도 모른 척 했을 거야. 곧 쿠로오는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근데 와카토시 있으니까 괜찮아.”

 

 

 

 

 

 얼른 가자. 저를 이끄는 손에 우시지마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라 부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괜찮았건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사랑한다, 테츠로. 작게 속삭인 소리에 쿠로오는 씩 웃으며 우시지마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나도. 쿠로오는 대답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 탓에 낮은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 같았다. 번쩍, 번개가 치며 다시 한 번 천둥이 울렸다.

 

 

 

 

 

 

 

 

 

 

 갑작스러웠던 죽음 탓에 장례식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쿠로오는 건물의 한 쪽 구석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낮던 하늘은 저와 우시지마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비를 퍼부었다. 아비가 하라는 대로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저녁이 다되어갔다. 쿠로오는 연기를 길게 뱉어냈다. 아주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 이었다. 그냥, 아침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쿠로오는 저쪽에서 걸어오는 이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안 보여서 찾았다.”

 “담배 피러 간다고 말 했는데.”

 “바빠서 못 들었나 보다.”

 “우리 엄만데 네가 생일 빠르다고 너만 바빠.”

 

 

 

 

 

 킥킥 웃으며 하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우산을 접으며 그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쏟아진다. 쿠로오는 담배를 끄고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저가 뱉어낸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눅눅한 옷에 금세 냄새가 밸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옆에 똑같이 앉아 그 얼굴을 보았다. 저에게 아까 그 말을 하고 난 이후 쭉 쿠로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멍하니 바닥에 떨어지던 빗방울을 보던 쿠로오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둘의 시선이 부딪혔다.

 

 

 

 

 

 “테츠로 군-.”

 

 

 

 

 

 저를 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키려던 쿠로오는 제 팔을 잡는 손에 우시지마를 돌아보았다. 차에 가려 잘 안 보인다. 작게 속삭인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턱을 잡고 살짝 입을 맞춘 후 몸을 일으켰다. 좀 더 쉬다 와라. 그렇게 말한 우시지마는 우산을 펼치고 걸음을 옮겼다. 쿠로오는 고개를 쭉 빼 우시지마와 그 옆에 나란히 걷는 아비를 보았다. 체격부터 시작해서 닮기는 진짜 닮았다. 쿠로오는 턱을 괴며 담배 하나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봤자 와카토시가 더 잘생기긴 했지만. 찰칵, 불을 당기며 쿠로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음이 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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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가 쿠로오를 그런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 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단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더 이상 쿠로오를 마냥 보듬어주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쿠로오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제 아비의 잘못으로 속죄해야할 자신이 아비와 똑같은 눈으로 쿠로오를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스스로를 혐오스럽게 했다. 제 아비의 괴물같이 끔찍한 성욕을 모두 받고 오는 날이면 쿠로오는 자신의 품에서 잠이 들고, 자신은 잠들기 직전까지 속으로 제 아비의 잘못을 빌었던 그 과정에 어느 새 다른 감정이 섞여들었다. 품에 안긴 마른 몸에 사랑을 속삭이고 입을 맞추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 자신은 끔찍한 자기혐오에 빠져들었다. 들키면 안 된다. 어느 날인지도 모를 새벽, 거의 말라가는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들키면 제 아비를 보는 그 눈으로 자신을 볼 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 눈빛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몰래 그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둑 키스였다.

 

 

 

 

 

 

 

 

 

 

 쿠로오는 서늘한 기분에 눈을 떴다. 이불이 목 끝까지 덮여있긴 했지만 침대 위엔 혼자였다. 쿠로오는 멍하니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비볐다. 늘 저가 깨어날 때까지 팔베개를 해주던 우시지마가 없었다. 쿠로오는 반쯤 몽롱한 채로 침대 밖으로 몸을 내었다. 둔한 서늘함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토독, 톡 하고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쿠로오는 여전히 잠에 취한 채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비 오네. 쩍 하니 하품을 한 쿠로오는 몸을 일으켜 비척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싸늘한 바람이 훅 밀려들어 쿠로오는 소름이 돋은 팔을 쓰다듬었다. 추운데 와카토시는 어딜 간 거야.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던 쿠로오는 부엌에 들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테츠로 일어났니?”

 “…….”

 

 

 

 

 

 물병을 꺼낸 쿠로오는 제 옆에 선 제 어미를 흘긋, 보고 고개를 돌렸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툭하니 튀어나온 말에도 어미의 입은 꾹 다물렸다.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물병을 냉장고에 넣은 쿠로오는 뻗친 머리를 긁으며 부엌을 빠져나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우시지마가 없는 것부터 기분이 나빴건만, 오늘은 잘 풀리는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다시 제 방이 아닌 우시지마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묻었다. 아직 남은 온기가 기분을 조금쯤 풀어주는 것 같았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쿠로오는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커다란 손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아직 자나.”

 “……안 자.”

 “밥은 먹고 자라.”

 “와카토시.”

 

 

 

 

 

 몸을 돌리자 저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보였다. 손을 뻗자 허리를 숙여주는 것에 쿠로오는 킥킥 웃으며 그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나 추워. 어리광부리듯 중얼거리자 등허리를 쓸어내린 손이 곧 저를 떼어냈다. 쿠로오는 몸을 일으켜 앞장 서 방을 나서는 우시지마의 등을 보았다. 조금쯤 풀렸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한참을 제 어리광을 받아줬을 터였다. 그 등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쿠로오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우시지마는 고개를 돌려 몇 걸음 뒤에 멈춰있는 쿠로오를 보았다. 나 입맛 없어, 안 먹을래. 툭 말을 뱉어낸 쿠로오는 발을 돌려 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테츠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쿠로오는 푹 한숨을 내쉬며 제 방에 들어서 문을 닫았다. 기분이 나빴다.

 

 

 

 

 

 

 

 

 

 

 “너 무슨 일 있냐?”

 “.”

 “요즘 저기압인 것 같아서.”

 

 

 

 

 

 쿠로오는 제 옆에서 말을 거는 이를 쓱 훑어보고 그 손에 들린 라이터를 빼앗아 들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확실히 요즘 쳐져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원인인 이가 원래대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자신 또한 똑같이 저기압 일 수밖에 없었다. 여친이랑 잘 안되냐? 똑같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뻐끔거리며 연기를 뱉어내며 하는 말에 쿠로오는 인상을 썼다. 내가 여친이 어디 있어, 새끼야. 쿠로오의 말에 되래 놀란 것은 상대였다. 너 여친 없어? 당연히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는 투에 쿠로오는 자신이 애인이 있을 법한 행동을 했나 기억을 더듬었다. 폰을 자주 만진 것도 아니고, 반지를 끼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는 듯 상대를 돌아보자 상대의 손이 덥썩, 와이셔츠의 깃을 잡아 당겼다.

 

 

 

 

 

 “새끼야, 키스마크 달고 다니면서 뭔 여친이 없어. 섹파냐?”

 “…….”

 

 

 

 

 

 쿠로오는 조금쯤 떨려오는 손으로 제 와이셔츠를 잡은 상대의 손을 털어냈다. 그냥, 그럴 일이 있어. 쿠로오는 고개를 돌리며 목을 가렸다. 진짜 섹파야? 부러운 새끼. 그 후로 하는 말에 귀에 들리지 않았다. 쿠로오는 덜덜 떨려오는 손을 애써 주먹을 쥐어 막았다. 꽤나 길었던 담배를 비벼 끈 쿠로오는 몸을 돌렸다. , 너 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채 쿠로오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위로가 필요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달래주는 위로가 아닌, 진심으로 저를 보듬어주는 품이 당장 필요했다. 쿠로오는 교실 안으로 들어서 무작정 자리에 앉아있는 우시지마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테츠로?”

 “잠깐만.”

 

 

 

 

 

 금세 이끌려 올 것이라 생각했건만 우시지마는 되려 쿠로오의 팔뚝을 잡았다. 늘 제 눈을 똑바로 보던 시선은 전혀 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지금 할 일이 있다, 못 갈 것 같은데. 그 말에 우시지마의 손목을 잡았던 쿠로오의 손이 뚝, 떨어졌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쿠로오는 손으로 눈을 덮고 숨을 골랐다. 토악질이 치밀어오를 것 같았다. 테츠로? 제 어깨에 닿으려는 손에 쿠로오는 그 손을 피하며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 요즘, 이상해.”

 

 

 

 

 

 토악질 대신 조각난 말을 토해낸 쿠로오는 그대로 몸을 돌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문을 걸어 잠글 새도 없이 점심에 먹은 것들을 죄 토해냈다. 숨 고를 새도 없이 연신 구역질을 해댄 쿠로오는 변기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손끝이 시렸다. 어느 순간부터 울지 않게 된지 몰랐다. 지금 당장 울며 소리 치고 싶은데,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쿠로오는 간신히 멈춘 구역질에 숨을 고르며 뚜껑을 덮고 물을 내렸다. 수업 종이 친 지 오래였다. 세면대에서 입을 헹군 쿠로오는 다시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교실 안을 창문 너머로 훑었다. 종례시간 내내 비어있던 쿠로오의 자리에는 가방만은 남아 있었다. 아까 교실에 찾아왔던 쿠로오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저가 거부하자 저를 피했던 몸짓에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힘들어 보였는데, 말을 들어줄 걸 그랬나. 그래봤자 뒤늦은 후회였다. 문자도 보내보고 전화도 몇 번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우시지마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쿠로오와 어울리는 것을 몇 번 보았던 이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

 “테츠로 어디 있는지 아나?”

 “아니. 아까 점심시간 이후로 못 봤는데.”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오의 자리에 걸린 가방을 연 우시지마는 가방 안에 휴대전화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니 답이 없지. 책상 위에 놓인 것을 대충 가방 안에 쓸어 담고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표정이 그런 표정이라 더더욱 그랬다.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 스스로 티를 안 내면 되는 것을, 쿠로오를 밀어내면서 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쿠로오의 담임이었다.

 

 

 

 

 

 “우시지마군, 쿠로오군에게 이것 좀 가져다줄래? 아까 깜빡하고 못 줬거든.”

 “……조퇴 했습니까?”

 “몰랐어? 안색이 안 좋아 보이더라. 가서 좀 챙겨줘.”

 

 

 

 

 

 담임이 스쳐지나가고, 우시지마는 꾸욱, 주먹을 쥐었다. 제 감정에 사로잡혀 그런 것도 보지 못했다. 자꾸만 피어오르는 자책감에 우시지마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발이 무거웠다.

 

 

 

 

 

 

 

 

 

 

 쿠로오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온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숨을 쉬는 것 마저 폐가 찢어질 듯 아픈 것이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쿠로오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눈앞이 흐린 것을 보니 피가 눈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아니, 눈을 맞았나? 쿠로오는 웃으려다, 아픈 가슴에 입을 그냥 다물었다. 엉덩이 사이로 질척한 것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마저 신경 쓰기에는 제 몸이 아프고 피곤했다. 이대로 그냥 다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았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입술이 터져 아팠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까지 막을 순 없었다. , 바람 빠진 소리를 낸 쿠로오는 그저 눈을 감았다. , 죽고 싶다.

 

 

 

 

 

 “테츠로!”

 

 

 

 

 

 쿠로오는 제 뺨에 확, 닿는 손에 눈을 찌푸렸다. , 하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뺨을 쥐었던 손이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쿠로오는 다시 눈을 천천히 떴다. 흐린 시야로도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와카토시. 쿠로오는 속으로 그 이름을 부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소리 내어 그 이름을 부르기엔 저가 지금 너무나 지쳐있었다. 테츠로, 눈떠 봐라 테츠로! 다급히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무어라 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으며, 쿠로오는 잠에 빠져들었다.

 

 

 

 

 

 

 

 

 

 

 “패싸움 했어요. 들킬까봐 몰래 들어왔어요. 그래서 모르셨을 거예요.”

 

 

 

 

 

 차분히 말하는 목소리가 태연했다. 우시지마는 그저 가만히 서서 그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늑골이 2개가 나가고 다리가 부러졌다. 이도 두 개쯤 나갔고, 타박상이 온 몸에 있는데다가 입술이 찢어져 5바늘을 꿰맸다. 패싸움을 해서 다친 사람치고 얼굴이 무표정했다. 자신을 다치게 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라든가 분노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누가 때렸냐고 묻는 말에는 다 같이 때리고 맞느라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결국 의사와 경찰은 돌아갔다. 조심했어야지. 아비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시지마는 생체기가 잔뜩 난 손 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는 여기 좀 더 있게 가겠습니다.”

 “그래, 와카토시가 좀 챙겨줘.”

 

 

 

 

 

 테츠로 내일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병실 안은 침묵만 맴돌았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머리 쪽을 높인 침대에 완전히 기대 있는 쿠로오는 며칠 새 말라있었다.

 

 

 

 

 

 “누가 그랬나?”

 

 

 

 

 

 창문 쪽을 보던 시선이 그제야 제 쪽을 향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 반창고가 붙은 얼굴이 엉망이었다. 우시지마는 손을 들려다 그저 주먹을 쥐었다. 싸운 거 아니지 않나. 제 말에 쿠로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네가 뭔 상관이야. 아까와 같이 차분하게 나온 말은 저를 밀어내는 말이었다. 주삿바늘이 꽂힌 손이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쓸어 올렸다. 환자복 안 쪽으로 보이는 팔뚝에도 멍이 즐비했다. 우시지마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손목을 쥐었다. 짜증스런 기색이 역력한 표정에 저도 모르게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파. 문득 목소리가 떨리자 우시지마는 이를 악물며 손을 놓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나.”

 “우시지마 상이 그랬어.”

 

 

 

 

 

 금세 벌겋게 손자국이 난 손목을 쓰다듬으며 하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닐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왜…….”

 “하지 말라고 그랬거든.”

 

 

 

 

 

 다시 저를 보는 눈에는 원망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우시지마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에 굳어졌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그 눈빛이 지금 저를 향해 있었다. 저도 모르게 뒤로 멈칫, 물러서자 쿠로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요즘 이상한 거 알아? 왜 나 피해? 씨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나 힘들 때 달래주겠다고 약속한 건 너였잖아. 근데 왜 네가 날 먼저 피해? 힘들어서 죽고 싶은데,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네가 달래줘서 버틴 거잖아! 근데 네가 날 피해버리면 난 어떡해?”

 

 

 

 

 

 왈칵, 내질러버린 고함에 쿠로오가 숨을 헐떡였다. 헉헉, 내뱉는 숨소리에 쇳소리가 섞여들었다. 우시지마는 손을 들어 어느 새 젖은 쿠로오의 눈가를 쓸어냈다. 울지 마라.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쿠로오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 너무 힘들어 와카토시, 나 좀 달래줘, 죽고 싶은데 죽기가 무서워, 와카토시, 와카토시……. 우시지마는 처음 제 아비에게 당한 날처럼 꺽꺽대며 우는 쿠로오를 천천히 품에 안았다. 저를 마주 안아오며 우는 쿠로오의 숨에는 쇳소리가 섞여 정말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우시지마는 떨리는 손으로 그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울지 마, 울지 마라, 테츠로. 미안하다, 그러니 제발. 그럼에도 쿠로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쿠로오는 저를 떼어내는 것에 그 옷깃을 움켜쥐려다 턱을 잡아 올리는 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술이 겹쳐졌다. 쿠로오는 우는 것도 잊은 채 우시지마의 팔뚝을 쥐었다. 겹쳐졌던 입술은 금세 떨어졌다. 쿠로오는 아직 가쁜 숨을 히끅이며 골랐다.

 

 

 

 

 

 “미안, 하다.”

 

 

 

 

 

 나조차 널 이런 눈으로 봐서. 제 턱을 잡은 손이 떨어지려 하자 쿠로오는 다시 그 팔뚝을 꾹 움켜쥐었다. 호스를 타고 피가 역류했다.

 

 

 

 

 

 “, 안 싫어.”

 

 

 

 

 

 시선이 그대로 마주했다. 우시지마는 그대로 쿠로오의 뒤통수를 감싸 쥐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이번에는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것에 쿠로오는 그대로 우시지마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쿠로오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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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시지마는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늘상 품에 안겨있던 온기가 없으니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조금쯤 불안하기도 했고. 우시지마는 발을 타고 오르는 둔한 냉기를 느끼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조금쯤 졸음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시간을 확인했다. 열두 시가 넘은지는 꽤 되었다. 문득 문이 열리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걸음을 빨리했다. 혼란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현관에 다다른 우시지마는 신발장에 손을 대고 꾸물거리고 있는 인영의 앞에 섰다. 내내 켜지지 않았던 현관불이 소리 없이 번쩍 켜졌다. 그 불빛에 꾸물거리던 인영이 문득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곧 멍하니 벌어져 있던 입술이 휘었다.

 

 

 

 

 

 “와카토시.”

 “늦었다.”

 “, 미안해.”

 

 

 

 

 

 평소 같았으면 목덜미를 끌어안았을 것을, 저가 높은 곳에 있어 팔을 두르는 위치가 허리였다. 우시지마는 그 어깨를 마주 안으며 바깥 공기 탓에 서늘한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코를 박은 머리에서는 옅은 담배냄새가 났다. 우시지마는 끌어안았던 어깨를 풀고 제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이의 뺨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나른하게 감겨있던 눈이 뜨이고 작게 웃었다. 나 담배냄새나? 속삭이는 목소리에서는 짙은 술 냄새가 풍겼다. 우시지마는 그 턱을 당겨 시선을 맞추었다. , 하니 현관불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반질반질한 눈동자가 빛이 났다. 우시지마는 그대로 벌어진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후응. 허리에 둘러져있던 손이 더듬더듬 등의 옷깃을 움켰다. 차가웠던 혀끝이 조금씩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입술을 떼고 제 눈앞의 뺨을 쥐었다.

 

 

 

 

 

 “술 냄새가 더 난다.”

 “그냥 가야겠다, 그럼.”

 “어디를.”

 “우시지마 상한테.”

 

 

 

 

 

 외박하려다가, 오라고 그래서. 담담히 눈가가 휘었다. 우시지마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허리를 감아 안자, 옷깃을 움켰던 손이 저를 꽉 안고 매달렸다. 닿은 혀끝의 온도는 이제야 뜨거웠다.

 

 

 

 

 

 

 

 

 

 

 철컥, 하는 문소리에 우시지마는 얼핏 눈을 떴다. 자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저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문 앞에서 얼쩡거리던 그림자가 금세 다가왔다. 나 때문에 깼어? 조용한 목소리에서는 나른한 비누향이 섞여있었다. 우시지마는 손을 뻗어 그 팔을 잡았다. 따끈한 열이 손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벅벅 문질러 닦는 버릇은 여전했다. 우시지마는 제 품에 안겨드는 몸을 마주 안고 그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물기에 젖은 입술이 가볍게 뺨에 닿고, , 젖은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우시지마는 그 양 뺨을 잡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얼굴은 또 바로 보였다.

 

 

 

 

 

 “물 떨어진다.”

 “씻자마자 바로 와서.”

 

 

 

 

 

 수건을 잡자 자연스레 품에서 빠져나가 침대 밑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우시지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 머리를 살살 털어주기 시작했다. 깨워서 미안하네. 수건에 막혀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우시지마는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털어내고 아직 젖은 머리칼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테츠로.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평소와 달리 축 쳐진 머리칼에 가려진 얼굴이 가련했다. 뻗어지는 손을 잡고 허리를 안자, 젖은 입술이 코앞에서 벙긋거렸다. 와카토시. 속삭이는 이름들은 족쇄 같은 것이었다. 우시지마는 닿는 입술에 젖은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쉬이 떨어진 입술이 휘었다. 얼른 자자. 침대에 먼저 눕는 몸을 끌어안으며 우시지마는 눈을 감았다. 잠이 금방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쿠로오를 처음 만난 것은 7살의 여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풀벌레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놀이를 하고 있을 때, 대문이 열리고 제 아비와 함께 여자와 제 또래의 남자 아이가 들어섰다. 와카토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그 때 제 아비의 목소리는 어땠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 아비가 엄마라 소개한 여자는 아름다웠다. 여자는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와카토시 군, 잘 부탁해. 저를 낳은 어미는 저가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세상을 떠났기에 엄마라는 것 자체가 낯설었지만, 기분은 좋았던 것 같다. 여자를 보던 중, 시선을 내린 곳에는 그가 있었다.

 

 

 

 

 

 ‘와카토시 군, 너와 친구가 될 아이야. 테츠로, 인사해야지.’

 ‘……안녕.’

 

 

 

 

 

 어미의 치맛자락을 잡은 채 뒤로 숨었던 쿠로오는 그 때에도 저보다 조금 작았었다. 이리저리 뻗친 머리가 신기하다. 첫 인상은 그게 다였다. 사실 그 때는 쿠로오에게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다. 다른 애들에게는 있던 엄마라는 것이 생긴 게 좋았기 때문에, 쿠로오에 대한 생각은 별 것이 없었다. 그건 쿠로오도 마찬가지였다. 저보다 제 아비에 닿은 시선은 설렘만 가득해 보였었다. 쿠로오의 아빠는 쿠로오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고 했었다. 둘 다 원래 없던 엄마와 아빠가 생겼으니, 그 쪽에 관심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첫 시선은 그렇게 엇갈렸었다.

 

 

 쿠로오와 저는 그 이후에도 그다지 친해지지는 않았다. 유치원을 같이 다니긴 했지만 둘 다 혼자가 편한 성격이었고, 저보다 나중에 유치원에 들어온 탓에 어울리는 무리 또한 달랐다. 집에 온 이후에도 둘 다 서로의 방에 틀어박혀 각자 놀기 바빴다. 그렇게 겨울이 되었다. 그 날도 유치원에서 돌아온 이후 방에서 혼자 놀다 목이 말라 방 밖으로 나왔었다. 부엌으로 가기 위해 복도를 걷던 도중.

 

 

 

 

 

 ‘아악! ……!’

 

 

 

 

 

 짧고 강렬한 비명이었다. 쿠로오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대로 굳어 그 방을 보았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서 불어재끼는 바람소리가 그날따라 시끄럽다 느껴졌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어렵게 떼며 비명이 들렸던 방에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작은 비명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 들렸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채 닫히지 않은 문 틈 사이로 눈을 대자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입에 옷 뭉치가 물려 비명이 소리가 되지 못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눈에선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어리고 가느다란 다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은 제 아비였다. 제 아비가 움직일 때마다 붉은 얼굴이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려준 것은 제 아비였다. 다급히 내달린 곳에는 다행히 쿠로오의 어미가 있었다.

 

 

 

 

 

 ‘어머니!’

 ‘와카토시 군, 무슨 일이니? 이렇게 뛰고…….’

 ‘아버지가, 테츠로를…….’

 

 

 

 

 

 제 설명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 제 아비를 말릴 줄 알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저를 외면했다. 테츠로가 아빠한테 잘못한 게 있나보다. 무난히도 내뱉어진 말에 저는 제 아비를 방문 틈으로 보았을 때처럼 똑같이 뒷걸음질 쳤다. 다시 뜀박질을 했다. 허나 내달린 곳의 끝엔 활짝 열린 채 텅 빈 방 만이 있을 뿐이었다. 방 안은 아직 채 열기가 남아있었다. 멍하니 지옥 같던 방 안을 들여다보던 와중에,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살갗을 애일 것 같은 칼바람이 부는 마당의 한 쪽 구석에 옷차림이 엉망인 쿠로오가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테츠로.’

 

 

 

 

 

 제 부름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얼굴은 이미 엉망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끅끅 울음소리를 참던 쿠로오가 와락 안겨들었다. 그 때도 쿠로오는 저보다 조금 작았었다. 엉엉 우는 쿠로오를 데리고 제 방으로 가 울음을 간신히 달래고 손가락을 걸었다. 저가 달래주겠다고. 막아주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고맙다며 손가락을 걸어오는 손은 축축하고 뜨거웠다. 그렇게 쿠로오와 가까워졌다.

 

 

 

 

 

 

 

 

 

 

 “와카토시-.”

 

 

 

 

 

 책장을 넘기던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학교에서 그 밖에 없었다. 문틈으로 쏙 고개를 내밀고 저를 보는 얼굴에 손짓하자 금세 교실 안으로 들어서는 이의 교복은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명 아침에 나올 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아침의 기억을 더듬던 우시지마는 곧 제 옆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씩 웃는 얼굴을 보았다.

 

 

 

 

 

 “넥타이는 어디 갔나?”

 “목 조여서 빼놨어. 보자마자 잔소리하는 거야?”

 

 

 

 

 

 키득키득 웃는 얼굴에 더 길게 말 할 수도 없어서 우시지마는 입을 다물었다. 나 체육복 좀 빌려줘. 팔목을 잡으며 하는 소리에 미간이 좁혀지자 또 푸하하 웃어재낀다. 우시지마는 가방에서 체육복을 꺼내며 인상을 썼다.

 

 

 

 

 

 “아침에 챙기라 하지 않았나.”

 “아직 안 말랐더라.”

 

 

 

 

 

 쿠로오는 곱게 접힌 체육복을 받아들며 몸을 일으켰다. 씩 웃는 입매가 수상스러운데 휙, 넥타이를 휘어잡는 손에 우시지마는 눈을 크게 떴다. 훅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뺨에 쪽, 입을 맞췄다. 그렇지 않아도 험악했던 인상이 찌푸려지자 쿠로오가 낄낄 웃으며 잽싸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좀 이따 점심 때 갖다 줄게! 복도에서 들리는 외침에 우시지마는 뺨을 소매로 쓱, 문지르며 다시 몸을 바로 했다. 아무튼 이상한 장난은 엄청 친다. 다시 책장을 넘기려는데 쿠로오가 앉았던 자리에 다른 이가 앉았다. 우시지마는 저를 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들이닥친 쿠로오 탓에 밀려났던 제 짝이었다.

 

 

 

 

 

 “쿠로오랑 어떻게 친해진 거야? 별로 성격이 맞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같이 산다.”

 “? ? 성이 다르잖아.”

 “그럴 일이 있다. 질문은 거기까지 했음 좋겠군.”

 

 

 

 

 

 다시 고개를 돌린 우시지마는 책을 들여다보았다. 방금 쿠로오의 입술이 닿았던 뺨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난 별로 상관없어.”

 

 

 

 

 

 대뜸 튀어나온 말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들었다. 똑같은 반찬인데도 굳이 제 것을 집어먹는 탓에 도시락은 늘 바닥에 내려놓고 먹는 것이 습관이었다. 우물우물 음식물을 씹던 얼굴이 곧 저를 보았다.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주려 손을 들자 익숙하게 고개를 내미는 것이 조금은 우스웠다. 떼어낸 밥풀을 입에 넣자 입 안 가득 우물거리던 음식을 삼킨 듯 쿠로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랑 나랑 같이 산다는 거. 말해도 별로 상관없다고.”

 “그다지 숨길 생각은 없었다만.”

 “네가 나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아니라면 됐어. 다시 씩 웃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왠지 입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더 안 먹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는 말에 우시지마는 말없이 제 도시락을 쿠로오 쪽으로 밀었다. 이상하다는 듯 쓱, 저를 훑어봤던 쿠로오는 다시 별 말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늘 도시락은 둘이 먹었었다. 딱히 약속이라든가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우시지마는 턱을 괴고 쿠로오가 먹는 것을 빤히 보았다. 얼핏 목덜미에 붉은 색이 눈에 스쳤다. 가만히 손을 뻗자 그대로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내민다. 우시지마는 옷깃을 여며주며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반창고라도 붙이는 게 낫겠다.”

 “섹스했다고 광고할 일 있냐.”

 

 

 

 

 

 섹스라고 하기도 뭐 하지만. 단추를 잠그며 그 얼굴을 보자 시선이 마주했다. 우시지마는 곧 손을 떼며 몸을 떨어뜨렸다. 끝까지 제 얼굴에 달라붙던 시선은 다시 도시락으로 떨어졌다. 드물게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우시지마는 손을 뻗어 쿠로오의 머리칼을 쓱쓱 쓰다듬었다. 어제는 제 품에서 잠들었던 탓에 머리가 뻗치는 것이 덜했다. 곧 빈 도시락 통의 뚜껑을 닫으며 쿠로오가 씩 웃었다. 담배 필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것을 막을 생각도 없었다. 뻐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옆에 나란히 앉아 제 쪽으로 기대는 머리에 어깨를 내어주었다. 쿠로오는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늘 동생 같았었다.

 

 

 

 

 

 “오늘 네 방에서 자도 돼?”

 “그렇게 해라.”

 “땡큐.”

 

 

 

 

 

 오늘 와카토시 친절하네. 흐흐 웃는 목소리에 우시지마는 물을 조금 들이켰다. 속이 조금 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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