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센티넬 버스 AU










 오이카와 토오루는 파트너를 잃었다.



 그 말은 오이카와의 등 뒤를 끈덕지게 쫓아다녔다. 이 바닥에서 파트너를 잃는 일은 흔한 일이었지만 오이카와에게만 그 말이 졸졸 따라다니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오이카와는 후천적 센티넬이었다.

 




















 소꿉친구였던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센티넬로 센터에 오게 된 날, 오이카와 또한 이와이즈미의 가이드로서 센터로 함께 왔다. 운명인지 아니면 형제처럼 같이 자란 탓인지 둘의 상성은 꽤나 잘 맞는 편이었고, 이와이즈미가 뛰어난 센티넬임에도 어릴 적에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옆에 늘 가이딩을 해주는 오이카와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둘은 낯선 센터에 들어왔어도 나름대로 잘 적응을 해냈다. 가이드임에도 오이카와는 신체적 능력이 좋았고, 이와이즈미 또한 꽤 능력이 좋은 상급 센티넬이었다.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지 몇 달 되지 않아 둘의 콤비는 센터 내에서 꽤 유명해졌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둘의 실력은 뛰어 넘을 사람이 몇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랬었다.



 오이카와는 눈 쪽으로 내리쬐는 햇빛에 눈을 찌푸리며 손을 뻗어 빛을 가렸다. 얼마 만에 햇빛을 보며 눈을 뜨는 건지 몰랐다. 오이카와는 뻑뻑한 눈을 문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지난밤의 지독히 혼란스러웠던 꿈이 뇌리에 남아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깜빡이던 오이카와는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늘 깔끔하게 세팅되어 있던 머리칼은 자고 일어난 탓에 엉망이었다. 터덜터덜 힘이 빠진 걸음걸이로 욕실로 들어선 오이카와는 칫솔을 집어 들며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몇 달 동안 쉬는 날 없이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탓인지 볼 살이 쑥 들어갔다. 오이카와 씨 잘생긴 얼굴 다 망가졌네. 뺨을 쓸며 그런 생각을 하던 오이카와는 칫솔에 치약을 짜며 어깨를 한 번 돌렸다. 거울 속 벗은 상체 여기저기 상처와 멍이 들어있었다. 이제 몸을 좀 사려야하나. 칫솔질을 하며 오이카와는 상처에서 눈을 뗐다. 오랜만의 휴가였다.



 오이카와는 그 날 이후로 가이드를 그만두었다. 이와이즈미 만의 가이드였지만 급할 땐 다른 센티넬들에게 가이딩을 해줬었던 것들을 모두 그만두고 오이카와는 센티넬의 임무만 수행했다. 센터 측에서는 가이드의 수가 적었기에 오이카와가 가이드를 계속해줬으면 싶은 기색을 내비췄지만, 뛰어난 센티넬을 잃은 후 새로 나타난 센티넬이 그 자리를 채워주게 되었으니 오이카와에게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일에 몰두하며 모든 잡생각들을 떨쳐냈다. 그렇게 지낸 생활이 몇 달째였다. 잡생각을 떨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던 탓인지 오이카와의 임무수행 효율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오이카와에겐 강제로 몇 주의 휴가가 주어졌다.

 


 필요 없는데 말이지. 오이카와는 머리를 만지려다 말고 모자를 집어 들었다.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훈련장이나 다녀올까 싶었다. 아무리 기본 신체 능력이 좋다고는 하지만 갑작스레 얻게 된 센티넬의 능력에 금방 익숙해지지는 않았고, 그것을 익힐 시간도 없이 임무를 수행하러 뛰어다녔기 때문에 연습을 할 틈이 없었다. 이번 기회에 그 힘을 다룰 연습을 할까 싶었다. 센터에 처음 들어왔을 땐 밥 먹듯 드나들던 곳이었건만 오지 않은 지 꽤나 되었다. 오이카와는 기억보다 좀 더 닳은 것 같은 문을 조금 들여다보다 문고리를 잡았다.



 콰앙-!!



 꽤나 커다란 소리였다. 비명 소리 같은 것은 나지 않았으니 사람이 다친 것은 아닐 것이었다. 오이카와는 미간을 살짝 좁히며 문고리를 돌려 안쪽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씨발, 조심 해야지 이 새끼야!”

 “죄송합니다-.”






 꽤나 거센 소리였기에 크게 한 소리 듣겠구나, 했지만 의외로 튀어나온 목소리는 긴장한 목소리가 아닌 되래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오이카와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았다. 큰 소리를 낸 것 치고 주변은 깨끗했고, 화를 내고 있는 사람이 보고 있는 남자 또한 멀쩡하게 서 있었다. 비죽비죽, 머리칼이 엉망으로 위로 솟아있었다. 남자의 손이 허공을 움키자 저만치에 있던 캔이 콰직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우그러들었다. 손가락이 휙, 위로 그어지자 캔은 위로 솟아오르고, 남자의 손끝을 따라 그대로 통 안으로 쏙 들어갔다. 섬세한 작업도 아님에도 남자의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쿠로오!”

 “네네, 갑니다.”






 한 쪽에서 훈련장 담당자가 부르고 나서야 남자는 어깨를 돌려가며 자리를 떠났다.






 “뭐야, 오이카와냐?”






 오이카와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훈련장 안으로 들어섰다. 아까 욕설을 하는 목소리가 익숙하다 싶었더니, 일 년 전 까지만 해도 저와 임무를 수행하던 나오이였다. 임무 수행 중에 다리를 다쳐 한동안 못 봤었는데, 재활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이카와는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나오이에게 다가갔다.






 “마나 짱 오랜만이에요.”

 “그 여자애 같은 호칭은 집어 치우라니까. 그나저나 네가 여기 웬일이냐? 임무 수행 중인 거 아니었어?”

 “요즘 빡세게 굴러다녔더니 효율 떨어진다고 휴가 나왔죠.”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근데 온 곳이 훈련장이냐?”

 “오이카와 씨는 부지런 하니까~.”






 그렇게 말하며 씩 웃자 상대도 크게 묻지 않고 따라 웃었다. 다른 무언가를 말하려던 오이카와는 문득 눈에 걸리는 것에 시선을 돌렸다. 벽에 커다랗게 무언가가 부딪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생긴 자국에 오이카와는 눈을 깜빡였다. 오래 된 자국은 아니었다. 마치, 방금 생긴 것 같은, 날카로운 균열이 마치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저거 아까 새로 들어온 놈이 만든 거야.”

 “새로?”

 “어, 쿠로오 테츠로 라고. 몇 달 전에 들어온 놈인데, 능력이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실전에 투입 안 되고 훈련장에 내내 처박혀있다.”

 “헤에-, 저렇게 벽을 다 부숴놨는데?”

 “힘이 강하긴 한데 섬세하지 못하거든. 그래서 등급도 낮다. B- 급.”






 오이카와는 아까 고작 우그러진 캔 하나를 옮기느라 미간을 잔뜩 찌푸렸던 남자의 모습을 떠올렸다. 엉망진창으로 뻗쳐있던 검은 머리칼이 어렴풋이 머릿속 구석에 처박아 둔 기억을 끄집어내려 했다. 오이카와는 모자를 벗어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 다시 모자를 눌러 썼다. 느물느물 스며나오는 기억은 머리칼을 빗어 넘긴 손끝에서 툭, 떨어져 나갔다.





















 “휴가라면서어-!”






 오이카와는 깔끔하게 세팅한 머리칼을 헝클이며 성큼성큼 거의 뛰다시피 걷고 있었다. 휴가라고 주어진 시간이 고작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제 자잘한 생채기들이 나아가고 멍도 슬슬 빠질 즈음이라 훈련장에 처박혀만 있지 말고 간만에 산책도 하고 쇼핑도 할까 계획을 하던 도중 불쑥 날아온 서류는 당장 현장에 돌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늘었는지 내내 훈련장에서 봤던 나오이도 어제부터 못 봤다. 아직 재활치료 중인 사람을 그렇게 바로 투입시켜도 되나 싶었건만, 이렇게 본인들이 먼저 휴가를 내준 저까지 불러들였다. 오이카와는 혀를 차며 복도를 걸었다. 며칠 새 눈에 익은 문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 서툴다는 남자도 첫 날과 둘째 날 본 이후 보지 못했었다. 저가 알기로 훈련장은 하나뿐이니 남자도 현장에 투입된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함부로 쓰다 난리나지.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던 오이카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걸음을 조금 더 빨리했다. 그래, 그 난리가 나기 전에 어서 가야했다.



 이동 전담 센티넬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오이카와는 저를 이동시켜 준 이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곤 걸음을 옮겼다. 아직 현장 근처에도 못 갔음에도 쾅쾅거리는 폭발음이 여기까지 들렸다. 오이카와는 주머니에 대충 구겨 넣어 두었던 장갑을 꺼내 손에 끼웠다. 몇 달 째 버릇을 들이기 위해 한 행동은 다행스럽게도 금방 손에 익었다. 장갑이 완전히 손에 끼워진 것을 확인 한 오이카와는 걸음을 빠르게 했다. 펑, 펑, 터지는 소리에 그치지 않고 진동과 공기의 흐름까지 다르게 느껴지고 있었다. 심장에 두근두근, 강하게 뛰며 가슴의 중앙부터 평소보다 온도가 높은 혈액이 몸에 돌기 시작했다. 탁, 타악, 가볍게 자리에서 박차고 허공으로 떠오를 때마다 바닥이 움푹움푹 패어들었다. 거의 다 다가와 갈 때 즈음, 할 수 있는 대로 가장 힘껏 뛰어오른 오이카와는 허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서 불길이 치솟고 있었고, 쾅, 소리와 함께 한쪽에서 먼지구름이 일었다.






 “이야아-, 화려하게도 해 놓으셨네, 들!”






 땅으로 착지할 자리를 찾던 오이카와는 방금 폭발이 일어났던 자리의 먼지구름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심해봐야 버섯모양 정도로 피어올라야 했던 것은 회오리처럼 뭔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돌고 있었다. 아, 불길한데. 오이카와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아래로 내려섰다.






 “오이카와!!”

 “마나 짱!”

 “저기, 저기 좀 가봐!”

 “에?”






 먼지 폭풍이 휘날리는 곳을 가리키는 것에 나오이 쪽으로 향하던 오이카와는 발의 방향을 바꿔 발을 떼었다. 싸한 느낌이 휘날리는 바람에 섞여 느껴졌다. 아. 오이카와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한 기분에 미간을 찌푸렸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고 살갗이 따끔거렸다. 엄청난 출력이었다. 먼지 폭풍 속 까만 머리칼이 얼핏, 눈에 들어왔다.






 “저거 그 신입 놈이야.”

 “누구?”

 “거 왜 지난주에 봤던 놈! 아직 훈련이 덜 됐다고 내가 그렇게 말렸는데 급하다고 그냥 투입시켰더니 컨트롤 못하고 능력 팍팍 쓰다가 지금 저 꼴이다.”

 “폭주야? 싫다아!”

 “중요한 건 지금 여기 저 새끼 가이딩 해줄 만큼 능력 좋은 가이드가 없어.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으니 파트너도 없고, 컨트롤이 미숙해서 그렇지 출력은 센터 내에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좋으니까.”






 쾅, 또 한 번의 폭발음이 들려왔다. 오이카와는 훅 밀려오는 힘의 폭풍에 잠시 몸을 숙였다 그 먼지 폭풍 속에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하게 서 있을 뿐이었건만, 그 주변으로 모래며 파편들이 빠르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남자가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폭풍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문득 새빨갛게 물들었던 눈이 뇌리를 스쳤다. 오이카와는 초조하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조금은 뻣뻣한 가죽의 촉감이 느껴졌다. 콰앙-, 또 한 번 남자의 힘에 의해 바닥이 움푹, 패였다. 흔들, 남자의 고개가 흔들리며 돌아갔다. 빛을 잃은 호박색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했다. 이미 한 쪽 눈알이 시뻘겋게 물들어있었다. 주륵, 남자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너 가이드였지.”






 옆에서 툭 튀어나온 말에 오이카와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센티넬이 폭주하는 것은 센터 내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본 것만 해도 여러 번이었다. 가죽장갑 안의 손에서 땀이 배어났다.






 “너 꽤 등급도 높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 더 이상의 가이딩은 안 해요.”

 “왜? 센티넬 되면서 가이딩 능력은 잃어버렸냐?”






 오이카와는 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센티넬들은 저만치에서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센티넬과 다른 색의 옷을 입은 가이드들을 눈으로 훑어가며 찾았지만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초조함이 목구멍 끝에서 넘실댔다. 가이드. 자신이 아닌 가이드. 그리고, 폭주를 멈추고 죽지 않는 센티넬. 머릿속이 엉망으로 뒤엉켰다. 탁. 팔이 붙잡혔다. 그 갑작스러움에 놀라기 무섭게 장갑이 벗겨지고, 그대로 손이 잡혔다. 오이카와는 화들짝 놀라 그 손을 뿌리쳤다. 손에 나오이의 체온이 느릿하게 들러붙었다 금세 식었다. 제 앞의 얼굴 또한 제 손의 체온처럼 차게 식어있었다.






 “그대로잖아.”

 “아니……,”

 “넌 지금 네 능력으로 사람을 살릴 수 있는데도 손 놓고 죽어가는 걸 보기만 하겠다는 거냐?”






 늑골이 폐를 압박하듯 가슴이 뻐근해져왔다. 심장이 마구 뛰어대는 게 느껴졌다. 센티넬로 각성한 이후 예민하진 청각에 바람 소리에 섞여 컥, 하고 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옆을 돌아보니 남자의 입에서 거멓게 죽은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 나는,”






 실핏줄이 모두 터져 벌겋던 눈과 코와 입에서 쉴 새 없이 쏟아지던 피, 제 몸을 무수히 두드리던 파편들, 그 앞에서 제 몸이 전부 녹아 없어져 버릴 것 같은 열기에 잡혀 무능했던 자신.



 ‘이, 이와…….’



 그 이름을 부르려 입을 벌려도 성대가 불에 타는 것 같은 고통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었다. 핏줄 온통 두드러졌던 살갗들.






 “이 자식아, 네가 고집부리자고 여기 일대 초토화 만들 거야? 쟤 죽여 버릴 거냐고!”






 오이카와는 다시 남자를 돌아보았다. 방울방울 떨어지던 피가 어느새 줄줄 흐르고 있었다. 조금 더 지나면 입을 다물 수도 없이 피가 콸콸 쏟아지겠지. 오이카와는 입술을 콰득, 씹었다.






 “마나 짱, 킨다이치를 불러줘요! 최대한 빨리!”






 그리고 그 모래폭풍 속으로 뛰어들었다. 총알 마냥 몸에 쏟아지는 파편을 뚫고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간 오이카와는 남자의 목을 콱, 쥐었다. 까만 머리칼이 제 친우와 똑같았다. 남자의 손이 움직이기 전에, 오이카와는 남자의 목을 확 당겨 피가 쏟아지는 남자의 입술을 물었다. 짜고 비릿한 액체가 입 안 가득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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