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아시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새벽에 떠진 눈에 잠이 오지 않아 내내 뒤척일 바엔 잠깐 산책이라도 하자는 생각이었다. 여름임에도 밤이 되니 복도의 공기는 조금쯤 싸늘해 남아있던 졸음마저도 전부 날아가 버렸다. 괜히 나왔나. 아카아시는 헝클어진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둠은 학교에서 켜 둔 불빛마저 잡아먹을 듯 새카맸다.


 끼긱-.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아카아시는 고개를 돌려 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나무가 비틀리는 소리였다. 학교 내에는 합숙 탓에 남은 저들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아카아시는 발을 떼었다. 소리는 그 한 번이 전부였다. 일단 계단을 올라오긴 했지만, 복도는 그저 깜깜할 뿐이었다. 아카아시는 계단 앞에 서서 길게 뻗은 복도를 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교실 하나하나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며 아카아시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어둑한 복도를 걸으니 조금쯤 잠이 오는 것도 같았다. 하품을 한 번 한 아카아시는 찔끔 배어나온 눈물을 쓱 닦아내며 교실 안을 훑다 보이는 광경에 걸음을 멈추었다. 창문 밖에서 세어 들어오는 빛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는 분명 제 주장이었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목에는 낮에 썼던 수건이 매어져 있었다. 아카아시는 다급하게 문을 열어 젖혔다.






 “보쿠토 상!!”





 아카아시는 그 안으로 성큼, 발을 들였다가 그대로 멈추었다. 활짝 열린 문 너머의 공기는 복도와 달리 미적지근했다. 깜깜한 어둠에 익숙해진 눈은 창문을 타고 들어오는 미약한 빛에도 교실 내부를 전부 보여 주었다. 평소와 달리 축 쳐진 머리칼과 수건이 둘러진 목, 무릎께 까지 내려온 바지와 공중에 떠 있는 엉덩이까지 전부. 빳빳하게 굳어있을 것만 같던 다리가 슥 굽혀지고, 팽팽하던 수건이 느슨해졌다. 목을 꽉 조이던 수건이 헐렁하게 내려앉았다. 성기를 움킨 손이 번들하게 젖어있었다.






 “아카, 아시……?”






 목소리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목이 조인 탓인지 쾌감의 여운 탓인지 풀린 눈이 저를 보고 있는 것에도 아카아시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교실 안에는 헉헉 숨을 몰아쉬는 소리만 맴돌았다.





















 “그래서 목을 맸다고요?”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높아지는 것에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며 제 목을 쓰다듬었다. 목을 졸린 것은 보쿠토인데, 꼭 저가 목을 매고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보쿠토의 목은 벌겋게 자국이 남아 있었다. 잘못한 것을 들킨 아이마냥 무릎까지 꿇고 앉아 있는 것에 아카아시는 또 한 번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냉큼 저를 따라 몸을 일으키며 제 눈치를 보는 것이 커다란 개가 실수를 해놓고 눈치를 보는 것과 겹쳐보였다. 아카아시는 마른세수를 하곤 보쿠토를 흘긋, 보았다.






 “그렇게 제 눈치 보실 필요 없어요. 잘못하신 것도 아니고.”

 “아카아시…….”






 또 눈물이 그렁해져 저를 보는 것에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며 그 목덜미에 살짝 손을 댔다. 후끈한 열기와 수건에 쓸려 살갗이 조금 부풀어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내일이면 가라앉을 것 같았기에 아카아시는 속으로 안도했다.


 보쿠토가 털어놓은 것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목을 매고 있었던 이유는 한 마디로, 자위의 한 방법이라는 것이었다. 목을 조른 채 자위를 하면, 그 쾌감이 끝내준다는 것이 보쿠토의 말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손은 두 개 뿐이고, 한 손으로는 목을 제대로 조르지 못하니 수건으로 목을 매 자위를 해왔다고 했다. 아카아시는 그 말에 보쿠토는 이런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목을 맸다가 제 때 풀어내지 못한다면? 끔찍한 일이었다. 아카아시는 바닥에 떨어진 수건을 챙겨들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혼자 이런 짓 하면 위험하잖아요.”

 “응……. 미안해.”

 “미안하실 거 없다니까요. 앞으로는, 저라도 부르세요.”






 풀이 죽어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아카아시는 그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 걸음을 옮겼다. 큰 소리를 냈음에도 다행히 누가 깨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제 옆을 털레털레 따라오는 보쿠토를 한 번, 제 손에 들린 수건을 한 번 보곤 어깨를 으쓱, 했다. 오늘 잠은 다 잤다.





















 그냥 빈 말 같은 거였다. 크게 한 번 데였으니 다시는 하지 않을 거란 생각에 한 말이었다. 그러나 제 주장은 제 생각보다 단순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그 후 아카아시는 보쿠토의 자위를 실시간으로 구경해야만 했다. 목이 졸려 얼굴이 벌게지고, 침이 뚝뚝 떨어지며, 소리가 나오지 않아 끅끅 대는 신음소리만 간신히 새어나왔다. 처음엔 이해할 수 없었고 경악스럽기만 했던 것이,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경할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이런 거에 익숙해져서 뭐에 쓸 건가 싶었지만, 어쨌든 제 주장의 징징거림을 듣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다지 크게 신경을 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읏, 윽, 끄으, 흐윽……!”






 며칠 빼지 않은 탓에 양이 많아 정액은 마치 소변줄기처럼 찍 튀어나왔다. 아카아시는 그것을 보다 재빨리 목에 걸린 끈을 빼는 보쿠토를 보았다. 굳이 저렇게 해야 되나 싶어 물어봤었지만, 이젠 숨이 막히지 않으면 사정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했다. 아카아시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빤히 보았다. 바닥에 흐른 정액을 대충 닦아낸 보쿠토는 성큼 침대로 다가와 아카아시의 옆에 벌렁 누웠다.






 “바지 먼저 추스르시는 게 어떠세요.”

 “아 좀 이따가. 귀찮아!”






 성기를 내놓은 채 드러누워 있는 보쿠토의 목은 붉은 끈 자국이 꽤나 선명하게 나 있었다. 점 차 목을 조이는 끈의 강도가 세지고 있었다. 손을 뻗어 그 자국을 살짝 쓸자 부풀어 오른 느낌이 선명했다. 다른 부위보다 유난히 달아오른 온도도 느껴졌다. 그 자국을 유심히 보던 아카아시는 제 얼굴에 박히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흥분감이 가시지 않은 눈동자가 저를 보고 있었다. 한동안 시선을 맞추던 보쿠토는 몸을 일으켜 조금 가까이 다가왔다. 여전히 갈무리하지 않은 아래가 우스웠지만,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아카아시.”

 “네.”

 “내 목 좀, 졸라 볼래?”

 “……네?”






 아카아시는 미간을 좁혔다. 싫어요. 단번에 나온 말에 이번엔 보쿠토의 미간이 좁아졌다. 한 번만! 안돼요. 진짜 잠깐만 해주면 돼! 싫어요. 몇 번의 말이 오고 가는 사이 결국 승자는 보쿠토였다. 아카아시는 서서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는 보쿠토를 흘겨보았다. 빨리빨리. 기어코 재촉하는 소리에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며 침대 위로 올라섰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목에 손을 가져다대자, 목울대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아카아시는 무릎을 대고 양 손으로 보쿠토의 목을 감싸 쥐었다. 저를 올려다보는 표정이 반짝반짝 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목울대에 가져다댄 엄지에 약간 힘을 주었다. 흐윽. 숨이 삼켜지는 소리가 들려 흠칫, 손을 떼자 보쿠토가 그 손목을 쥐었다.






 “사정할 때까지, 놓지 마.”






 벌써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라있었다. 아카아시는 마른 침을 삼키고 다시 보쿠토의 목을 감싸 쥐었다. 제 벌어진 다리 사이로 손이 통과해 아직 드러나 있는 성기를 쥐었다. 아카아시는 손에 힘을 주었다. 흐윽, 하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보쿠토의 입이 벌어졌다. 다리 아래로 통과한 팔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목이 핏대가 섰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끄윽, 숨을 들이마시려고 노력하는 소리에도 아카아시는 힘을 풀지 않았다. 움직이는 팔도 멈추지 않았고, 보쿠토의 허리가 들썩였다. 놀고 있는 손이 시트를 움켜쥐었다. 몸은 숨을 쉬려 바르작거리는데, 정신은 아직 아니라는 것에 제 손을 밀어내지 않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었다.






 “끄으, 윽, 끄흐…….”






 벌어진 입술이 벙긋거렸다. 아카, 아시. 아, 카아, 시. 벙긋거리는 입술이 그려내는 말은 제 이름이었다. 아카아시는 저가 목을 졸린 것 마냥 숨을 멈추었다. 몸이 점점 팽팽히 휘어지고 있는 찰나, 아카아시는 한 손을 풀어 보쿠토의 것을 그것을 흔드는 손과 함께 콱, 움켜쥐었다. 목을 조르던 손이 풀리자 산소를 흡입하는 동시에, 보쿠토는 그대로 사정했다.






 “허억, 헉, 흐, 하윽, 하…….”






 아카아시는 상체를 일으켜 저도 같이 숨을 헐떡였다. 손은 아직도 보쿠토의 것을 움켜쥔 채였다. 아카아시는 멍하니 보쿠토를 내려다보았다. 목덜미에 새빨갛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아니라고 부정할 수도 없는 자국이었다. 아카아시는 문득 제 손에서 흘러내리는 느낌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손가락을 타고 정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카아시는 꽉 움킨 보쿠토의 것을 천천히 놓으며 제 손을 보았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 카아시…….”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과하게 쉬어있었다. 아카아시는 멍청히 보쿠토를 보았다. 흐트러진 채 저를 보는 얼굴은 완전히 풀어져있었다. 입가로 언제 흘린 지 모를 침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진짜, 최고. 헤 벌어졌던 입술이 휘었다. 아카아시는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숙여 제 아래를 확인했다. 조금 부풀어 오른 앞섬이 보였다. 아카아시는 다시 보쿠토를 보았다. 웃고 있는 얼굴은 여전했다.





















 “보쿠토, 목에 이 멍 뭐야?”






 보쿠토는 제 어깨를 당기며 묻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목을 쓰다듬었다. 그냥, 뭐에 잘못 쓸려서. 씩 웃으며 걸음을 옮기는 보쿠토의 목은 새까맣게 멍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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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햔 님 소재로 3차 연성 했습니다.











 “마츠……?”






 제 부름에도 쓱 스쳐지나가는 것에 하나마키는 멍하니 뒤를 돌아보았다. 늘 성큼성큼 모델마냥 매끄럽던 걸음걸이는 느릿하고 절뚝거렸다.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 이름을 다시 한 번 부르려던 하나마키는 입만 벙긋거리다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마츠카와가 무단결석 일주일 만에 등교를 한 날이었다.





















 마츠카와와 저는 그냥, 친구라고 정의 된 사이였다. 그게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건만 유난스러웠던 이유는, 마츠카와에겐 친구라고 꼽히는 사람이 몇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난 데 없이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었지만 마츠카와는 늘 어느 정도 선을 그었다. 저는 그 선을 넘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고, 그것은 꽤나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그건 자신이 엇나가기 시작했을 때도 똑같았다. 술 담배를 배우고, 학교를 건성으로 다니며, 본래 친했던 친구들과는 멀어지고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렸지만, 마츠카와만큼은 예외였다. 변해가는 저를 보면서도 마츠카와는 잔소리를 한다거나 변하는 것 없이 저를 똑같이 대했다. 그 덕에 자신도 똑같이 마츠카와를 전처럼 대할 수 있었다. 똑같이 떠들고, 밥을 같이 먹고, 방과 후 서로의 집에서 노닥거리는 것 전부.


 그랬었는데. 하나마키는 쪼록, 빨대를 빨며 다리를 까닥였다. 눈앞에서 저를 무시하며 그대로 지나가는 마츠카와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아니, 아예 멀어지는 것 자체를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마츠카와는 들고 있던 우유 곽을 구겨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뒤이어 바로 담배를 입에 물었다. 마츠카와가 등교하지 않은 일주일 동안 내내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었다. 마츠 어디야? 왜 안와? 어디 아파? 연달아 보낸 메시지와 전화엔 답이 없었다. 학교가 끝난 후 그 집 앞까지 찾아가 봤지만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마츠카와가 등교했다는 말에 냅다 찾아가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왜지.”






 뻐끔, 연기를 뱉어내며 하나마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마츠카와와의 마지막 기억을 더듬어도 그다지 나빴던 것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연신 뚝뚝 끊기는 기억을 더듬던 하나마키는 결국 으아! 소리를 치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그저 떠들 사람 하나 줄었구나, 하고 넘어갈 만도 했건만 마츠카와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필터만 잘근잘근 씹으며 앓던 하나마키는 뒤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움에 고개를 까닥였다. 다른 반 무리들이 이제야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아, 그 새끼 진짜 존나 독하네.”

 “경찰서 갔다 길래 개 쫄았다니까.ㅋㅋ”

 “걔 신고 못할 거라고 했잖아. 꼴에 존심은 있어가지고.”






 툭툭 튀어나오는 욕설 섞인 말들에 하나마키는 슥 눈썹을 끌어올렸다. 누구 하나 잡아다가 거하게 팬 모양이었다. 그러다 깜빵가도 모른다. 늘 서로 툭툭 치며 농담처럼 한 말이었다. 저러다 진짜 한 번 거하게 당해봐야…….






 “하나마키는 모르는 것 같지?”

 “지 친구의 친구들한테 줘 터졌다고 누가 말 하냐.ㅋㅋㅋ”






 그 말에 하나마키는 툭, 꽁초를 떨어뜨렸다. 오늘 아침에 본 마츠카와의 얼굴은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저를 훅 스쳐지나간 탓에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 사고가 아닌 맞아서 생긴 상처들이었다. 다리도 절었었지. 하나마키는 머리가 차게 식는 것과 동시에 뒷목이 후끈하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박자박, 옥상으로 들어서는 발소리들이 들렸다. 하나마키는 몸을 돌려 우르르 들어서는 이들을 보았다. 낄낄거리며 들어오던 얼굴들이 하나마키를 발견하자마자 삽시간에 굳었다.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간 하나마키는 그중 하나의 멱살을 움키고 뻑, 그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다.






 “개새끼야 지금 뭐라 그랬어.”

 “야, 야 진정 좀 해!”

 “씨발,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누군지 알면서 건드려? 지금 나한테 시비 터는 거지?”






 몇 번이고 그 얼굴을 내려치던 하나마키는 저를 억지로 떼어내는 손을 뿌리치고 바닥에 쓰러진 몸을 몇 번 더 콱콱 밟았다.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화가 풀리지가 않아 주변의 놈들을 닥치는 대로 몇 대 후려갈기고 나서야 씩씩대며 주먹질을 멈추었다. 주먹이 얼얼했지만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잡히는 대로 한 명의 멱살을 잡아당긴 하나마키는 반쯤 으르렁댔다.






 “똑바로 말해. 네 새끼들이 마츠카와를 그렇게 만들었어?”

 “아, 네, 친구를 그렇게 만든 건 미안한데!! 씨발, 그 새끼 면상이 재수가 없잖아!”






 사람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너 없으면 쌩 까는 게 좆같아서 그랬다! 멱살을 움킨 손을 팍 떨쳐내며 하는 말에 하나마키는 그대로 이마를 짚었다. 열이 뻗치고 화가 나는데 그게 자신 때문이라는 것에 목구멍이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하나마키는 그대로 몸을 돌려 옥상을 빠져나왔다.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 마츠카와의 교실로 다가가던 하나마키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저만치에서 못 알아 볼 수가 없는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여전히 느릿하고, 여전히 절뚝거리는 걸음걸이였다. 하나마키는 숨을 몰아쉬며 그 얼굴을 보았다. 여기저기 터지고 멍이 든 얼굴에 심장이 콱 죄여오는 것 같았다. 가까이 다가온 옷깃을 꽉 붙잡자 멈칫, 걸음이 멈추었다.






 “마츠.”





 제 부름에도 대답은 없었다.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늘 나른하게 반쯤 감겨있던 눈은 저를 보고 있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옷깃이 아닌 손목을 쥐었다. 마츠. 또 한 번의 부름에도 답은 없었다. 손이 툭, 제 손을 털어냈다.






 “미안.”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느릿하게 걸음이 떼어졌다. 하나마키는 그대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교복바지 아래로 드러난 발목이 시커멓게 멍이 들어 부어있었다. 입 안에선 욕지거리와 하고 싶은 말이 웅웅 울리며 어지럽게 소용돌이치는데, 입술만 뻐끔거릴 뿐 말이 되어 나오지가 않았다. 하나마키는 그대로 손으로 눈을 가렸다. 눈이 뜨겁고, 손이 축축했다.





















 “씨이발, 재수가 없으려니까.”






 뭘 믿고 지랄인지 알 수가 없다니까. 제 등을 퍽, 괜히 한 대 더 걷어차고 지나치는 것에 마츠카와는 몸을 둥글게 말며 비명을 참을 뿐이었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멀어지고 나서야 마츠카와는 멍하니 눈을 떴다. 대부분 눈에 익은 얼굴들이었다. 저가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니니, 분명 언젠가 하나마키 탓에 어울린 적이 있을 것이었다. 살짝 몸을 움직이자 끔찍한 고통이 올라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쉬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금세 편해졌다. 어차피 급할 것도 없었다. 다시 눈을 내리감자 아까의 욕설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처음 볼 때부터 면상이 재수가 없었어.’

 ‘맛키인지 마키인지 호모 새끼.’

 ‘뭐 우리말은 들을 필요도 없다?’






 딱히 상처가 된다거나 마음에 남는 다거나 하는 말들은 아니었지만, 하나마키에 관련된 말은 그냥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티가 났나. 최대한 숨긴다고 숨겼는데. 자조적인 쓴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입술을 조금 움직이자 터진 입술이 아려왔다. 아아. 작게 소리를 내자 쇳내가 올라왔다. 지독히도 맞았나보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느릿하게 눈을 뜬 마츠카와는 제 몸을 잡는 것에 움찔, 몸을 움츠렸다. 아릿한 고통이 온 몸에서 울려댔다.






 “학생, 괜찮아요? 눈 뜰 수 있겠어요?”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이제야 귀에 닿았다. 마츠카와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아프니까 그만 좀 흔들어요. 그 말이 잘 나오지가 않았다. 억지로 일으켜 앉혀진 마츠카와는 벽에 기대어 숨을 몰아쉬었다. 목에 가래가 끓어 카악, 뱉어내자 시뻘건 핏덩이가 뱉어졌다. 턱이 얼얼한 것을 보니 이도 성치 않을 것 같았다. 느릿하게 눈을 몇 번이고 깜빡여 흐릿한 시야를 씻어낸 마츠카와는 제 앞의 경찰을 보았다.






 “학생, 구급차 금방 올 거예요. 기다릴 수 있겠어요?”

 “……네.”

 “학생 이렇게 한 거 누군지 기억나요?”






 그 말에 마츠카와는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머리가 어지럽고, 온 몸이 얼얼하게 아팠다. 얼굴이 눈에 익었으니 누군지 안다고 묻는다면, 안다고 답을 했어야 했다. 다시 천천히 고개를 든 마츠카와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모르겠는데요.”

 “학생들이었다는 것 같은데, 정말 모르겠어요?”

 “……기억 안 납니다.”






 고개를 저을 힘마저 없었다. 쇳내가 나는 숨에 마츠카와는 다시 뭔가를 물어오는 경찰에 그저 눈을 감아버렸다. 고개까지 숙여버리니 더 이상의 물음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츠카와는 가만히 웃었다. 얽히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또, 티가 나 버렸으니까. 마츠카와는 다시 시끄럽게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에 그대로 아득해지는 정신을 놓았다. 그래도, 한 번 쯤은 더, 보고 싶었는데. 웃는 얼굴이 검은 먹물에 묻히듯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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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로른 전력 60분 44회차 참여











 “쿨럭! 읏……, 아으…….”






 숨소리로 가득한 체육관 내에 꽤나 크게 기침소리가 울렸다. 리에프는 그대로 멈추어 기침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목을 부여잡은 채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쿠로오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아까부터 몸이 좋지 않다던 제 주장은 이번 시합에서도 빠진 채였다. 바닥에 주저앉아 켁켁대던 쿠로오는 야쿠가 건네주는 물통을 받아들어 몇 모금 삼키다 고개를 내저었다. 입술이 말라 하얗게 질려있었다. 방금 전의 기침이 목을 긁었는지 찡그린 표정이 풀릴 줄을 몰랐다. 주장의 문제다보니 시합은 자연스레 멈추어 있었다.






 “그러니까 몸 관리 잘하라고 했지.”

 “아, 미안.”

 “다른 부원들한테 옮기지 말고 보건실로 꺼져.”






 엉덩이를 툭 차는 시늉에 쿠로오는 킥킥 작게 웃다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쳐내고 손을 들어보였다. 그럼 다들 잘 하고 있어. 아까부터 쉴 새 없이 콜록댄 탓인지 목이 걸걸하게 쉬어있었다. 괜히 찡한 가슴께를 툭툭 두어 번 두드린 리에프는 다녀오세요! 한 번 소리치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잠깐 멈추었던 시합은 금세 재개되었다.





















 리에프는 계단을 올라갔다. 아까 해쓱해진 얼굴이 영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쿠로오가 감기에 걸린 것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주장에, 늘 배구가 아니면 그다지 움직임이 많지가 않다보니 어디가 아프다고 하는 것을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쿠로오가 아프다고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단순한 감기지만, 그래도. 리에프는 스스로에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마지막 계단을 올라 코너를 돌았다. 방학 중인 학교는 꽤나 조용해 복도를 걷는 제 발소리가 그대로 울렸다. 보건실의 팻말을 보며 걸음을 옮기던 리에프는 그 근처에 다가가자 제 발소리에 섞이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말소리였다. 누군가가 저처럼 쿠로오에게 왔나. 리에프는 저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이며 천천히 보건실로 다가갔다. 얄팍한 문 한 장은 말소리조차 걸러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어제 그만하자고 했잖아.”






 툭, 튀어나온 말은 꽤나 불퉁해보였다. 걸걸하게 쉬어있긴 했지만, 분명 쿠로오의 목소리였다. 평소 장난을 잔뜩 치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칭얼거리는 듯한 말은 거의 하지 않는 쿠로오였건만, 드물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은 투였다. 리에프는 숨소리마저 죽여 가며 그 문 앞에 서서 귀를 기울였다.






 “네가 너무 야한 걸 어떡해.”

 “지금 내 탓 하는 거야?”

 “아, 미안.”






 동시에 키득키득 웃음이 터졌다. 쿠로오의 말 상대 또한 익숙한 목소리였다. 후쿠로다니 주장의 목소리였다. 전부터 따로 둘이 연습을 할 정도로 친해 보이긴 했었는데. 리에프는 대화의 내용에 눈만 깜빡였다. 그만? 야해? 장난, 이겠지. 애써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쉽게 문을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왜 그런지도 모른 채 리에프는 몇 번이고 손만 올렸다 내렸다 하며 고민했다. 도란도란 새어나오는 목소리들은 퍽 다정하게만 느껴졌다. 간신히 용기를 내어 문고리에 손을 올린 그때.






 “대신 내가 가져갈게.”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 리에프는 그대로 멈춘 채 귀를 잔뜩 곤두세웠다. 뭐? 했던 소리가 뚝 끊겼다. 덜컹, 하는 소리가 한 번 나고는 그대로 침묵이었다. 리에프는 제 숨마저 멈춘 채 귀를 기울여봤지만, 안 쪽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입 안이 자꾸만 바짝 말라갔다. 한 번 침을 삼키자 꿀꺽, 하는 소리가 유난스레 크게만 느껴졌다. 리에프는 천천히 문고리에 올린 손에 힘을 주었다. 문은 꽤나 매끄럽게, 조용히 열렸다. 살짝 열린 그 틈으로, 리에프는 눈을 바짝 가져다댔다. 좁은 보건실은 그 작은 틈으로도 내부가 훤히 보였다. 쨍쨍한 햇빛이 드는 창문 앞에 입술을 맞대고 있는 둘이 보였다. 목을 꼭 끌어안은 팔이며 허리에 감긴 팔이 눈 안에 그대로 담겨들었다. 응, 하고 목이 울리는 소리와 질척하게 혀가 얽히는 소리가 마이크라도 가져다 댄 것처럼 크게만 들렸다. 쪽쪽 길게 입을 맞추던 둘은 하아-, 하고 숨을 내쉬며 입술을 떼었다. 붉게 달아오른 두 얼굴이 야릇했다. 리에프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붉게 달은 입술이 휘었다.






 “바보는 감기 안 걸린다는데, 내일 확인해보자.”

 “야!”






 키득키득 웃는 소리에 리에프는 그제야 움직이는 발을 떼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오전에 보았던 희게 질린 입술과 방금의 붉은 입술이 몇 번이고 겹쳐졌다. 리에프는 그대로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머리며 가슴은 차게 식는데 아랫배 부근에 떠도는 열기에 자꾸만 숨이 막혔다. 계단에 다다르자 리에프는 뛰다시피 복도를 벗어났다. 쿵쿵, 심장이 뛰며 뺨이 귀가 달아올랐다. 목이 뻑뻑해지고, 눈가가 후끈해졌다. 리에프는 손등으로 제 입술을 문질렀다. 체육관으로 들어선 리에프는 그대로 벽에 이마를 박으며 아래를 확인했다. 다행히 티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등허리를 툭, 치는 손에 리에프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야쿠 선배.”

 “뭐야, 너도 감기야? 얼굴이 왜 이렇게 벌개?”






 그 말에 리에프는 고개를 내저었다. 쿵쿵, 불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은 아직도 채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감기, 아니에요.”






 어렵게 내뱉은 말에 야쿠의 고개가 갸웃, 꺾였다. 리에프는 다시 벽에 이마를 박으며 숨을 몰아쉬었다. 뻐근한 가슴을 주먹으로 꾹 누른 리에프는 눈마저 꾹 내리감았다. 뒷목이며 눈이 후끈하게 달아올랐고, 목이 지끈거리며 아팠지만, 감기는 아니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리에프는 느릿하게 눈을 뜨고 고개를 돌렸다. 후쿠로다니의 주장이 체육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리에프는 제 목덜미를 더듬어 쓸어내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콜록, 헛기침이 터져 나오고, 마른 목이 피라도 낼 듯 쓰라렸다. 이제야 알았는데. 마르는 목에 몇 번이나 목울대를 움직이던 리에프는 헛웃음을 지었다. 알기도 전에 꺾여버렸다.






 “감기라도 걸렸으면 좋겠다.”






 끈질기게 들러붙는 감정에 리에프는 후끈한 손으로 눈을 덮었다. 뛰는 가슴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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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헤나 님 썰로 3차 연성 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릴 줄은 쿠로오도, 다이치도 몰랐다. 그냥 서로를 조금 더 꽉 안고 싶었고, 조금 더 탐하고 싶었고, 조금 더 사랑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둘 다 무엇도 몰랐었다. 그저 서로가 너무 좋아 정신없이 끌어안고 몇 번이나 입을 맞추고 배를 맞추었다. 처음은 여러 가지 의미로 짜릿했고, 서로가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둘 다 쾌락의 열기에 들떠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열락의 끝에서 둘은 사랑을 속삭이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뒤처리를 해야 한다는 것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였다.


 쿠로오는 멍청히 제 손에 들린 것을 내려다보았다. 뚜렷하게 나타난 빨간 줄 두 개에 쿠로오는 이마를 짚었다. 설마. 정말? 쿠로오는 다시 그것을 내려다보았다가 그대로 휴지통에 처박았다. 요 며칠 몸에서는 미묘한 열기가 떠돌았다.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닌데 체온이 뜨끈했다. 그것은 저와 내내 붙어있는 다이치도 느낄 정도였다. 감기에 걸릴 이유가 없었기에 기억을 더듬던 쿠로오는 퍼뜩 며칠 전 다이치와의 첫 경험을 떠올렸다. 콘돔을 썼었던가? 편의점도 아닌 자판기에서 부끄러움을 애써 참으며 뽑아온 콘돔은 금세 바닥이 났었다. 그리고 어떻게 했더라? 둘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둘 다 그렇게만 중얼대며 손깍지를 껴 손바닥을 바짝 밀착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랫배가 뻐근할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임신이라니. 쿠로오는 그대로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어떡하지. 눈앞이 캄캄했다.





















 다이치에게도 선뜻 말을 하지 못했다. 쿠로오는 때때로 뒤에서 제 허리를 감싸 안는 팔에 흠칫흠칫 놀라댔다. 쿠로오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다이치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쿠로오가 떠안은 문제는 너무 컸고, 그것을 능숙히 숨기기엔 쿠로오의 나이가 아직 어렸다. 다이치는 요 며칠 불안해 보이는 쿠로오를 데려다 앉혀놓고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야? 대뜸 날아온 말에도 쿠로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손끝이 초조하게 바짓단 위를 미끄러졌다. 시선을 마주하기가 무서웠다. 제 눈을 피하는 일이 거의 없는 쿠로오가 시선을 책상 위로 떨어뜨리자 다이치는 눈썹을 찡그렸다. 쿠로오. 다시 한 번 나직한 목소리로 불러도 쿠로오는 시선을 들지 못했다. 늘 이쯤이면 제 목소리에 약한 쿠로오는 흘끔흘끔 저를 보며 전부 말해왔었다. 다이치는 가슴께에 음험하게 자리 잡는 불안감에 마른 침을 삼켰다. 천천히 손을 뻗어 그 손을 잡자 그제야 간신히 시선이 들려 눈을 맞춰왔다.






 “……사와무라.”






 조금쯤 물기 어린 목소리가 저를 불렀다. 붙잡은 손이 살짝 풀렸다가 스륵, 손가락이 맞물렸다. 그 날처럼 축축이 땀이 배어난 손바닥이 바짝 밀착했다. 꾹 닫혀 있기만 했던 입술이 벙긋거렸다. 그, 저, 토막 난 말소리와 함께 하아, 낮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다이치는 쿠로오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재촉을 하기엔 제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싶다가도,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어지럽게 오갔다. 깍지를 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사와무라.”

 “응, 쿠로오.”

 “나, 있지.”






 한 박자 쉬며 목울대가 뻑뻑하게 움직였다. 둘 다 자꾸만 마르는 목에 침만 삼켰다.






 “나, 임신했어.”






 눈이 질끈 감기며 기어코 쥐어짜듯 나온 말에 다이치의 표정이 이완됐다. 뭐? 질끈 감았던 눈이 천천히 뜨이고 눈가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있었다. 붉은 혀가 바짝 마른 입술을 핥고, 크흠, 헛기침을 하며 목까지 풀었다. 쿠로오가 울음을 참는 동안 다이치는 쿠로오의 손만 꽉 움켜쥐고 있었다.






 “임신, 했다고…….”






 기어코 꾹 메인 목에 쿠로오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맞잡은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다이치는 멍하니 쿠로오를 보다 몸을 일으켜 고개를 떨어뜨린 쿠로오를 품안 가득 끌어안았다. 흠칫, 뒤로 물러나는 몸을 꽉 끌어안자 곧 익숙하게 제 몸을 마주 끌어안고 흐윽,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 늦게 알아차려서, 미안해. 그 머리에 뺨을 부비며 하는 말에 히끅이는 소리가 조금씩 커졌다. 다이치는 그 몸을 꽉 끌어안은 채 연신 미안해, 내가 미안해, 하는 말만 반복해댔다. 옷깃을 꽉 움켜 쥔 손이 애처로웠다.





















 쿠로오는 부쩍 끼니를 거르는 일이 잦아졌다. 아침을 굶는 것은 예사였고, 점심은 다이치와 함께 먹었기 때문에 어찌어찌 먹었지만 저녁도 거른다는 것을 안 다이치는 굳이 쿠로오를 제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였다. 쿠로오는 까칠해진 얼굴로 속이 더부룩해 먹기 싫다며 고개를 내저었지만 다이치는 굳이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노력했다. 쿠로오가 처음으로 밥을 먹다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간 날, 다이치는 침대에 누워 제 배 위에 피아노를 치듯 손장난을 치는 쿠로오에게 임신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드리자며 넌지시 말했다. 쿠로오는 그 말에 입을 다문 채 손가락만 거두었다. 침묵이었다. 다이치는 길어지는 침묵에 천장을 보던 시선을 돌려 제 팔을 베고 누워있는 쿠로오를 보았다. 까만 머리꼭지만 눈에 들어왔다.






 “싫어?”

 “……응.”

 “왜?”

 “무서워.”

 “뭐가?”

 “그냥, 다.”

 “말해봐.”

 “내가 임신, 한 것도 무섭고……, 엄마 아빠가 날 어떻게 볼 지도 무섭고, 네가 어떤 소리를 들을지도 무서워. 말하면, 애가 어떻게 될지 상상하는 것도 무서워.”






 제 허리를 끌어안고 가슴팍에 얼굴을 문지르는 것에 다이치는 몸을 돌려 그 몸을 마주 끌어안았다. 고개가 들리고, 다이치는 고개를 조금 숙여 그 입술에 짧게 입을 맞추었다. 까끌한 감촉에 다이치는 혀를 내어 그 입술을 핥아냈다. 늘 장난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던 얼굴은 어느 새 어둠이 깔려있었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찬찬히 핥는 혀에 제 입술을 내어주던 쿠로오는 입술을 벌려 혀를 안으로 끌어들였다. 조금 짙은 키스가 이어졌다. 쪽 소리를 내며 입술이 떨어지고, 쿠로오는 다시 그 품으로 파고들었다. 다이치의 손이 쿠로오의 배 위를 더듬었다. 아직 배는 나오지 않았다.






 “언젠가는 배도 나올 거고, 숨길 수 없는 날이 올 거야.”

 “그래도, 난 무서워.”

 “쿠로오.”

 “조금만 더 미루면 안 될까?”






 응? 사와무라. 금방이라도 울 듯 일렁이는 목소리에 다이치는 한숨을 삼키며 쿠로오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그래. 허리를 안고 있던 팔이 풀리고 제 목덜미에 닿아와, 다이치는 그대로 그 팔을 쓸어내리며 허리를 감아 안았다. 전보다 좀 더 마른 것 같은 몸이 품에 들어찼다.





















 쿠로오는 체질 탓인지 배가 잘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그럼에도 입는 옷이 조금씩 헐렁해질 때 즈음, 다이치는 침대아래에 앉아 쿠로오의 배 위에 귀를 가져다대고 있었다. 쿠로오의 손이 다이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들려?”

 “어. 움직이는 소리 나.”






 신기하다는 듯 웃는 얼굴에 쿠로오도 마주 웃었다. 쪽, 입술이 가볍게 배 위에 닿았다. 간지러워. 속살거리며 하는 말소리엔 웃음기가 섞여있었다. 다이치는 몸을 일으켜 쿠로오의 옆에 앉아 그 허리를 감싸 안았다. 전엔 한 팔에 감길 듯 했던 허리는 이제 어느 정도 두께가 잡히고 있었다. 제 어깨에 기대지는 머리가 편하도록 몸을 뒤척이던 다이치는 눈을 깜빡였다. 쿠로오의 임신 소식을 들은 지 몇 달이나 지난 채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울먹이며 그렇게 말하는 것에 단호하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조금만 더 뒤에. 그렇게 조금씩 미루던 것이 벌써 몇 달이었다. 다이치는 제 뺨에 닿는 쿠로오의 머리칼에 그 머리 위에 제 뺨을 기대고 손바닥에 닿는 부른 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쿠로오.”

 “응?”

 “이제, 말씀 드려야 하지 않을까?”






 또 침묵이었다. 하지만 더 미룰 수는 없었다. 다이치는 제 품에서 쿠로오를 떼어내어 그 어깨를 꼭 쥐었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쿠로오는 늘 이 말만 나오면 잔뜩 움츠러들었다. 쿠로오. 다시 한 번 나직하게 부르자 아래로 떨어져만 있던 시선이 슬그머니 위로 들렸다. 다이치는 그 눈을 똑바로 보며 어깨를 살살 쓰다듬었다. 괜찮아, 쿠로오. 내가 있잖아. 그 말에 쿠로오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스스로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헐렁한 옷을 입어도 부른 배는 이제 티가 날 지경이었고, 태동도 있었다. 그래도, 무서운 걸. 쿠로오는 버릇처럼 제 배를 더듬었다. 불안한 생각을 하면 아이에게 드는 미안함에 쿠로오는 부드러운 손길로 제 배를 쓰다듬었다.






 “이제 말씀드리자. 준비 할 것도 많잖아.”

 “…….”

 “쿠로오.”

 “……알겠어.”






 어깨를 쓰다듬던 손이 목덜미를 타고 뺨에 닿았다. 쿠로오는 그 손목을 가만히 잡았다. 굳건한 눈빛이 저를 보고 있었다. 둘이 같이 저지른 실수임에도 다이치는 꼭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굴었다. 쿠로오는 고개를 틀어 입술을 겹쳐오는 얼굴을 보다 눈을 감았다. 다이치를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배를 쓰다듬던 손이 다이치의 등을 끌어안았다. 몸이 뒤로 젖혀졌다.





















 쿠로오는 무릎을 꿇고 앉아 불안하게 눈을 굴렸다. 연신 시선으로 바닥을 더듬었다.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 무릎 위에 놓인 손에서 땀이 배어나왔고, 온 몸이 덜덜 떨리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느껴졌다. 슬쩍 제 손을 잡아주는 것에 쿠로오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입 모양이 뻐끔거려 쿠로오는 고개를 간신히 끄덕였다. 배가 뭉치는 것 같았다.






 “저희, 임신했습니다.”






 기어코 말이 나왔다.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뒷목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귀 끝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임신 6개월째고, 낙태할 생각은 없어요. 죄송합니다.”






 다이치의 머리가 숙여지자 쿠로오는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배가 무거웠다. 제 손을 꼭 쥐어주는 손이 지금 당장의 구원이었다. 쿠로오는 속으로 연신 아이와 다이치, 다이치의 부모님께 잘못을 빌었다. 임신해서 미안해, 죄송해요. 너를 이런 취급 받게 해서 미안해. 눈가가 뜨끈해졌다. 쿠로오는 제 어깨에 닿는 손에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퍼뜩, 고개를 들자 되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른 다이치의 어머니가 보였다.






 “어린 애가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제 어깨를 끌어안는 것에 쿠로오는 멍하니 있다 조심조심 그 등에 손을 올렸다. 목이 멨다.






 “죄송, 해요.”

 “나야말로 미안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괜찮니? 편하게 앉으렴. 어머, 배가 이만큼이나 나왔네.”






 쿠로오는 제 배에 닿는 손에 울컥, 눈물을 쏟아냈다. 죄송해요.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엉엉 우는 소리 사이로 쏟아지는 말에 다이치가 다급히 저를 끌어안았다. 쿠로오, 그만 울어. 그러면서 저도 눈가가 붉었다. 쿠로오는 다이치를 꽉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잠깐 무릎을 꿇었다고 다리가 저렸음에도 쿠로오는 그 몸을 끌어안은 채 놓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어. 그래서 도망쳤어. 미안해. 고마워, 사와무라. 훌쩍이는 소리 사이로 쏟아지는 말에 다이치는 그저 쿠로오의 몸을 안은 채 다독였다. 아이의 존재를 처음으로 둘만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는 날이었다.





















 짝-.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닌……!”






 쿠로오는 제 뺨을 감싸 쥔 채 바닥만 보았다. 막연히 이렇게 될 것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 탓에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보기도 했다. 뺨을 맞고, 얻어맞은 채 집에서 쫓겨나고. 그런 모든 일련의 과정을 쿠로오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상상과 달리 현실은 조금 더 아팠다. 짝-. 반대쪽 뺨까지 얻어맞은 쿠로오는 뺨을 감싸 쥔 손조차 내리고 바닥만 보았다. 죄송, 해요. 목이 막혀 말이 끊어졌다. 옷 아래로 부른 배가 숨겨지지 않았다. 고개를 푹 숙였음에도 보이는 얼굴이 혐오로 일그러져있었다. 실망하시는 것이 당연하다. 쿠로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볼 안쪽만 잘근잘근 씹어댔다. 부러 다이치는 같이 들어오지 않았다. 쿠로오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켜냈다. 자신 혼자 감당할 문제였다.






 “네 마음대로 하고 살 거면 혼자 살아! 당장 눈앞에서 사라져!! 꼴도 보기 싫어!!”






 말이 쿡쿡, 심장에 쑤셔 박혔다. 쿠로오는 느릿하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큰 소리가 났으니 다이치가 분명 들었을 것이었다. 쿠로오는 고개를 까닥, 숙인 후 미리 챙겨두었던 짐을 들고 집에서 빠져나왔다. 미리 짐을 챙겨두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 허, 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쿠로오는 버릇처럼 제 배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내가 잘못한 걸. 지금은 화를 내시는 게 당연해. 애써 메이는 목을 침을 삼켜가며 내리누른 쿠로오는 문 밖에서 초조하게 서성이는 다이치를 보고 웃었다. 조심스레 제 쪽으로 다가온 다이치는 손에 쥐인 짐을 가져갔다.






 “……괜찮아?”

 “……응. 괜찮아.”






 후끈하게 얼얼한 뺨에 뭉툭한 손가락이 닿았다. 쿠로오는 그 손에 제 뺨을 기대며 살짝 웃었다. 맞은 것은 저인데 다이치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쿠로오는 다이치의 눈가를 제 엄지로 쓸어내며 큼, 목을 풀었다. 이만 가자. 생각보다 말이 매끄럽게 나왔다. 다행이다. 쿠로오는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짓는 다이치의 손을 꼭 잡았다.






 “혼자 들여보내서 미안해.”

 “내가 그러겠다고 했는데 뭐. 기다려줘서 고마워.”

 “……사랑해 쿠로오.”

 “나도 사랑해.”

 “테츠로.”

 “……다이치.”






 참고 있던 눈물이 그렁하게 차올랐다. 억지로 꾹 깨문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다이치의 손이 쿠로오의 등허리를 끌어안았다. 쿠로오는 그 어깨에 제 얼굴을 파묻은 채 흐느꼈다. 배가 나온 탓에 몸이 바짝 밀착하지는 못했지만, 품 안에 들어차는 느낌에 다이치는 좀 더 꼭 껴안으며 등허리를 토닥였다. 앞으로 울게 하는 일 없게 할게. 빈 말이 아니라는 것처럼 굳센 목소리로 하는 말에 쿠로오는 울면서 웃었다. 바보야. 끅끅 울며 쿠로오는 다이치를 마주 힘주어 끌어안았다. 툭, 아이가 배를 차는 느낌이 들었다. 배가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둘 다 퍼뜩 놀라 몸을 떼었다. 쿠로오는 울던 것도 잊은 채 훌쩍이며 제 배를 어루만졌다.






 “얘도 껴 달래.”

 “누구 닮았어.”

 “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풋, 터진 웃음에 다이치는 마주 웃으며 쿠로오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정말, 좋아해 테츠로. 속살거리는 말에 쿠로오는 눈을 감고 이마를 맞댔다. 진짜 좋아해, 다이치. 푸흐흐 웃는 소리가 마주 울렸다. 맞닿은 이마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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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시쿠로 합작 참여










 제 마지막 경기는 네코마의 패배로 끝이 났다. 쿠로오는 체육관에 들어서기 전에 벤치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예선이 끝나자마자 바로 찾았던 담배였다. 호기심도 꾹 내리누르고 배구 하나만 봐오며 참았던 일탈이었다. 이젠 필요 없어진 인내였지만. 쿠로오는 연기를 빨아들이며 다리를 꼬고 한숨처럼 연기를 뱉어냈다. 약간 쌀쌀해진 날씨 탓에 연기가 좀 더 선명했다. 연기 탓에 시야가 흐릿하게 흐트러졌다. 보쿠토의 성화 탓에 여기까지 오긴 했지만 조금 분한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최선을 다했건만, 자신의 재능은 전국까지 오기엔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천천히 연기를 뱉어냈다. 처음엔 마냥 기침이 나왔던 연기는 이젠 씁쓰름한 맛만 남기고 혀를 스쳐 지나갔다. 거의 짧아진 꽁초를 벤치에 눌러 끄던 쿠로오는 문득 저만치에서 걸어오는 한 무리를 보았다. 자주색과 흰색 조합의 저지. 쿠로오는 새로운 담배를 꺼내 입에 물며 눈을 깜빡였다. 배구를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저지였다. 쟤네도 전국에 왔구나. 뻐끔, 연기를 뱉으며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제 눈에 익숙할 이를 찾았다.






 “우시지마 선배!”






 쿠로오는 그 외침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저보다 어려보이는 이가 익숙한 이름을 부르며 펄쩍, 뛰었다. 아마 전국 경기가 처음인 듯, 기뻐 보이는 얼굴의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쿠로오는 후, 그 얼굴들을 연기로 흐렸다. 제 눈에 익숙한 이가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였다. 거의 매일같이 읽었던 잡지에 제 친우와 나란히 나왔던 얼굴이었다. 쿠로오는 반도 타지 않은 담배를 비벼 끄고 몸을 일으켰다. 담배연기가 녹아 들러붙은 혀는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물이라도 마시고 싶다. 쿠로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다 문득, 그 배구부 무리의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날카로운 시선이 쿠로오를 쓱, 훑었다. 쿠로오는 가만히 그 얼굴을 보다 먼저 고개를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차피 상대는 제 이름은커녕 얼굴도 모를 텐데. 쿠로오는 제 주머니에 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어디냐는 아카아시의 문자에 쿠로오는 꾹꾹 버튼을 눌렀다. 곧 들어가. 낯설기도, 익숙하기도 한 건물 안이 서늘했다.







 “쿠로오!!”

 “으응-,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네?”

 “관리했어. 아카아시가 도와줬어!”

 “넌 아카아시 없으면 어쨌을까 모르겠다.”

 “와주셨네요.”

 “응, 안 오면 얼마나 귀찮게 할지 모르잖아. 너는 컨디션 괜찮아?”

 “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쿠로오는 제 목덜미에 매달려 응원을 해달라며 귀찮게 구는 제 친우의 엉덩이를 툭툭 두어 번 치고는 그 팔을 풀었다. 난 이만 위로 올라가 있을게.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을 때, 쿠로오는 저를 보는 시선에 그대로 몸을 굳혔다. 체육관 안으로 들어오기 전 보았던 얼굴이 저를 보고 있었다.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제 뒤를 한 번 돌아보았다가, 제 뒤에 있는 보쿠토와 아카아시를 보며 고개를 까닥였다. 대진표에서는 둘이 언젠가는 붙게 됐었지 아마. 쿠로오는 그 생각에 낮게 웃으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의외로 왕자는 탐색이라는 것도 하는 구나. 흘러내린 머리칼을 위로 쓸어 올리는 쿠로오의 뒤로 끈질기게 시선이 들러붙었지만, 곧 시선은 떨어졌다. 파앙, 배구공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로오는 조금은 지루한 기분에 물을 꿀꺽, 삼켰다. 배구에 관한 흥미는 저가 배구를 놓은 시점부터 뚝 떨어진 채였다. 심지어 어제 잠을 재대로 자지 못한 탓에 자꾸만 눈꺼풀이 무겁게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쿠로오는 제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내려다보고 그 유리를 한 번 툭 쳤다. 거의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후쿠로다니는 생각만큼 잘 해내고 있었다. 아마 내일이면 시라토리자와랑 붙지 않을까. 쿠로오는 천천히 경기장 내를 훑었다. 후쿠로다니 경기를 보느라 왕자의 경기는 잘 보지 못했지만, 한쪽 구석에 몰려 있는 것을 보니 오늘 경기는 괜찮은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문득 미묘한 이질감에 고개를 갸우뚱, 옆으로 꺾었다. 무리를 지어 무언가 회의를 하는 듯 보이던 무리 중 하나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기분에 쿠로오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루 세 번, 시선이 마주칠 일이 있을까. 쿠로오는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아니겠지. 부정하며 쿠로오는 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끝나고 그냥 가실 거냐고 보쿠토 선배가 물어보시는데요.






 아카아시의 문자였다. 쿠로오는 주머니를 뒤지며 자판을 꾹꾹 눌렀다. 오늘은 그냥 가고, 내일 또 올게. 전송 버튼을 누르며 쿠로오는 주머니 안에서 담배 곽을 꺼내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건물을 벗어나 라이터를 찾으려 주머니를 더듬는 중간, 입에 물려있던 담배가 쑥 빠져나갔다. 쿠로오는 멍하니 고개를 들었다.






 “실내에서는 금연 이다만.”






 내내 자꾸만 마주쳤던 얼굴이 제 앞에 있었다. 쿠로오는 주머니 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손아귀에 쥐며 눈을 깜빡였다. 잡지 안에서 봤던 얼굴이 그대로 제 앞에 있었다. 분명 아깐 경기장 안에 있던 걸 봤는데. 숙소로 안 돌아 가나? 왜 여기 있는 거지? 그 전에, 왜 자신에게 말을 걸었지? 쿠로오는 머뭇거리다 고개를 까닥이며 커다란 손에 들린 제 담배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나가서 필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손가락 사이에 들린 담배는 쉽게 제 손을 향해 오다, 그 커다란 손과 제 손 사이에 끼었다. 쿠로오는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손가락에 제 손과 그 얼굴을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배구 선수 아닌가.”

 “어, 어어……미들 블로커야.”

 “근데 담배?”

 “그만 뒀어.”






 쿠로오는 제 손을 쓱 빼며 제 담배마저 가져왔다. 깍지를 꼈던 탓에 밀착했던 손바닥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흐음. 제 쪽으로 살짝 숙여지는 고개에 훅, 열기와 습한 땀 냄새가 났다.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며 살짝 뒷걸음질 쳤다. 이만 가 봐도 돼? 제 말에 굳게 다물린 입술은 별 말을 하지 않았다. 쿠로오는 그대로 그 몸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코 근처에서 자꾸만 그 체취가 떠돌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쿠로오는 확 달아오르는 얼굴에 제 손에 들린 담배를 그대로 움켜쥐어 꺾었다. 제 손가락에 배인 담배 냄새가 지독히도 싫은 기분이 들었다.






















 쿠로오는 멍한 기분으로 난간에 기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오늘은 꼭 남아 달라며 활짝 웃는 얼굴에 그러겠노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그다지 남아있을 생각은 없었다. 쿠로오는 제 쪽을 보며 손을 흔드는 것에 마주 손을 휘휘 흔들며 평소보다 축 쳐진 머리를 긁적였다. 오늘도 잠을 재대로 자지 못한 채였다. 쿠로오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경기장 내부를 훑었다. 저도 모르게 찾던 얼굴이 시야에 들어오자 쿠로오는 흔들던 손을 내리고 난간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역시나 이쪽을 보고 있었다. 어제와는 다른 자리였으니, 그 시선은 자신을 보고 있는 게 맞았다. 하지만 왜? 쿠로오는 물을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어제 이후로 한 대도 피지 않은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쿠로오는 시간을 확인했다. 담배 한 대쯤 피울 여유는 있을 것이었다. 쿠로오는 저를 보는 시선을 떨쳐내고 걸음을 옮겼다. 탐색당하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금세 건물 밖으로 나온 쿠로오는 익숙하게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 시야의 속박에서 벗어난 탓인지, 아님 어제 이후 한 대도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피운 탓인지 갑갑했던 속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았다. 한숨처럼 연기를 뱉으며 쿠로오는 평소보다 축 쳐진 제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렸다. 배구를 관둔 이후 순식간에 늘어난 흡연 횟수 탓에 야쿠가 잔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래도 냄새는 잘 없애잖아. 그렇게 핑계 댄 자신에게 야쿠가 무어라 말을 했었더라.






 “볼 때마다 피우고 있군.”






 쿠로오는 제 입술 사이에서 쑥 빠져나가는 것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경기장 안에서 보았던 얼굴이 보였다. 왜 여기 있지? 그런 생각을 하는 찰나, 제 얼굴 옆으로 슥 다가온 담배가 벽에 짓이겨져 꺼졌다. 쿠로오는 하아, 한숨처럼 남은 연기를 뱉어내며 뒷걸음질 쳐 벽에 등을 기댔다. 툭, 불이 꺼진 꽁초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너 경기 안 해?”

 “시간이 좀 남았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며 제 쪽으로 한 걸음 다가오는 것에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벽을 짚었다. 얼굴이 가까웠다. 경기 복을 입은 채인 모습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좀 더 크고, 좀 더 위압감이 있었다. 이게 탑3의 모습이라는 건가. 쿠로오는 볼 안쪽을 자근자근 씹었다. 커다란 손이 턱을 잡고, 얼굴이 목덜미 근처를 배회했다. 담배 냄새. 낮은 목소리가 나른하게도 들렸다. 떨쳐내면 그만인 것을, 왜 자신이 이 손에 얼굴을 내어주고 있는지 몰랐다. 쿠로오는 다시 멀어지는 얼굴에 이를 앙 물었다.






 “미련이 남은 얼굴을 하고 몸을 상하게 하는 짓을 하는 건 왜지?”

 “……하, 뭐?”

 “아직 하고 싶어 하지 않나, 배구.”






 그러면 이런 짓은 그만 둬라. 담배 곽이 들은 주머니를 툭 치는 손에 쿠로오는 그 얼굴을 노려보았다. 네가 뭘 알아. 앙 다문 잇새로 짓눌리듯 나온 말에 무표정한 얼굴이 슥 다가왔다. 코앞에서 멈춘 얼굴은 눈을 내리깔고 제 얼굴을 훑었다. 키는 저와 비슷한데, 어째서 이렇게 커다랗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담배 곽을 툭 쳤던 손이 그대로 등허리를 쓰다듬고, 상체를 더듬었다. 이렇게 괜찮은 몸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턱을 놓아준 것이 아니라 내내 억지로 마주친 시선은 올곧았다. 쿠로오는 턱, 막혀오는 숨에 흐윽 숨을 한 번 삼켰다. 턱을 잡은 손이 꼭 목을 조르는 것만 같았다.






 “인터하이, 끝났잖아.”

 “네 배구는 거기서 끝내고 싶은 건가?”






 툭툭 던지는 말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아니. 떨리는 목소리로 나온 말과 동시에 벽을 짚었던 손이 옷깃을 쥐어왔다. 나도 하고 싶어. 시선을 피하지도 못한 채 진심을 고백했다. 아직 관두고 싶지 않아, 하고 싶어 배구. 눈가가 달아오르는 느낌에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은 제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있어도 제 앞의 사람은 저에 대해 그 무엇도 모를 것이 분명했건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사실을 뱉어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깨문 입술이 위로 제 입술을 포갰다. 살짝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고, 다시 깊숙이 겹쳤다. 쿠로오는 손에 쥐었던 옷깃을 좀 더 꾹 움켜쥐며 뜨거워지는 눈을 감았다. 상체를 더듬던 손이 그대로 허리에 감겼다. 혀가 얽힌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입술은 쉬이 떨어지고, 턱을 쥐었던 손이 눈가를 쓸어냈다.






 “담배부터 끊는 게 좋겠군. 쓰다.”

 “……원래 사람을 이렇게 꼬셔?”






 주머니에 있던 담배를 꺼내 바닥으로 떨어뜨린 손이 등허리를 매만졌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담백하게 나온 말에 쿠로오는 옷깃을 쥐었던 손을 떼고 제 눈가를 문질렀다. 키스까지 하고 났음에도 정신이 드니 울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얼굴이 훅 가까이 오더니 눈을 문지르는 손을 떼어내며 그 눈꺼풀 위에 입술을 눌렀다. 축축한 혀가 젖은 눈가를 핥아냈다. 읏, 저도 모르게 앓자 속눈썹 하나하나를 핥아낼 듯 굴었던 혀가 떨어지고 엄지로 쓱 훑어내며 밀착한 몸이 떨어졌다.






 “이만 들어가 보겠다.”

 “어……. 잘 하고.”

 “끝나고, 여기로.”






 와 줄 수 있나? 담배 곽을 꾹 짓밟으며 하는 말에 쿠로오는 그 가슴팍에 이마를 기댔다. 어제 얼핏 맡았던 열기 섞인 체취가 코끝으로 스몄다. 너 경기 하는 거 보고. 부스러지는 담배를 빤히 보던 쿠로오는 제 등을 살짝 감싸 안는 팔에 고개를 들었다. 다시 짧게 입술이 닿았다. 끝나고 보자. 확정적으로 나온 말에 쿠로오는 피식 웃으며 멀어지는 몸을 놓았다. 왕자는 역시. 쿠로오는 버릇처럼 제 주머니를 더듬다 아, 하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부서져 안에 든 담뱃잎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쿠로오는 한숨처럼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보쿠토가 저를 찾고 있을 것이었다. 끝나고 나선 저 걸 보고 찾아오면 될 터였다. 입 안의 쓴맛은 채 남아있지 못하고 사라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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