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는 피곤한 눈을 꾹 누르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거의 한 달 만이었다. 언제 오냐고 재촉을 받기 시작한 것이 2주 전 부터였는데, 저가 바쁘긴 정말 바빴던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픽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어둑한 가게 안에 홀로 환하게 밝혀져 있는 바가 눈이 부셨다. 쿠로오는 살짝 눈을 찡그렸다가 벌써 저를 발견하고 손을 방방 흔드는 이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여전히 가게는 적당히 조용하고, 적당히 자리가 채워져 있었다. 쿠로오는 휘적휘적 걸어 익숙한 제 자리에 앉았다. 늘 저를 위해 비워두는 자리였다. 쿠로오는 저가 자리에 앉자마자 바짝 다가오는 얼굴에 히, 웃어보였다.

 

 

 

 

 

 “-로오!”

 “, 보쿠토. 오랜만.”

 “얼굴 까먹겠어. 보고 싶었어!”

 “나두우. 뽀뽀.”

 

 

 

 

 

 뺨을 톡톡 치니 쪽, 하고 뺨에 닿았다 떨어지는 입술에 쿠로오는 싱긋 웃었다. 늘어지는 제 말투를 눈치 챈 듯 자연스레 오늘은 알코올 빼고-? 하는 말에 쿠로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료를 제조하기 시작하는 보쿠토를 나른한 눈으로 보던 쿠로오는 턱을 괴고 슬쩍, 시간을 확인했다. 한 달 만에 마주한 얼굴이 좋았건만 제 어깨에 돌덩이처럼 쌓인 일 더미가 그렇게 봐주지 않았다. 쿠로오는 가볍게 눈두덩이를 누르며 끄응, 앓았다. 조금만 더 고생을 하면 전보다 훨씬 나을 것이었다. 쿠로오는 제 손목을 당기는 손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에 쪽. 쿠로오는 그 뺨을 잡고 그대로 눈을 감았다. 충전-. 답지 않게 부리는 어리광에 머리칼을 쓸어내리는 손이 다정했다. 시간만 나면 짧게라도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쿠로오는 떨어지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보쿠토의 뺨을 놓아주었다. 제 앞으로 밀어지는 잔은 예쁜 빛이었다.

 

 

 

 

 

 “우리 쿠로오 힘들어서 어떡해.”

 “보쿠토 충전 받아서 괜찮아.”

 “일 힘들면 때려 치고 오빠한테 시집와, 잘 해줄게.”

 

 

 

 

 

 그러며 씨익 웃는 얼굴에 쿠로오는 마주 씩 웃었다. 반쯤 확신으로 한 말이었고, 쿠로오도 웬만하면 그 말에 응해 줄 생각이었다. 친구라는 이름하에 연인보다 깊은 사이. 쿠로오는 이런 게 더 좋다고 생각했다. 음료를 한 모금 머금자 달큰하고 씁쓰름한 맛이 혀를 적셨다. 에너지 드링크 좀 섞었어. 잔을 닦으며 하는 말에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게가 외진 곳에 있어서 그렇지 보쿠토의 실력은 꽤 수준급이었다. 좀 더 번화가 쪽으로 가게를 낸다면 문전성시를 이룰 것이었지만 보쿠토는 그러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가게가 바쁘면 가끔 찾아오는 제 친구에게 신경 쓸 틈이 없어지니까. 쿠로오는 새삼스레 다른 이와 대화하는 친우의 얼굴을 보았다. 상쾌한 향이 날 것 처럼 호쾌한 얼굴이었다. 쿠로오는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 아무것도 못한다.

 

 

 

 

 

 “미안, 말이 좀 길어져서.”

 “괜찮아. 키스할 시간도 없어졌지만 괜찮아.”

 “으아,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갔단 말이야?”

 “바보야.”

 

 

 

 

 

 쿠로오는 손을 뻗어 보쿠토의 코를 툭 치며 웃었다. 보쿠토는 쿠로오의 뺨을 감싸며 눈 밑의 다크써클을 엄지로 꾹꾹 눌렀다. 묘하게 시원한 느낌에 눈을 감고 있던 쿠로오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진 가게에 슬몃 눈을 떴다. 저를 보고 있는 보쿠토의 얼굴도 그다지 당황스러워 보이지는 않았다. 쿠로오는 보쿠토의 손을 잡아 내리며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 하며 콘서트 같은 곳에서나 들릴 비명이 들려왔다. 쿠로오의 눈이 슬쩍 찡그려지자 보쿠토는 쿠로오의 얼굴을 제 쪽으로 돌렸다.

 

 

 

 

 

 “깜빡하고 얘기 안했는데, 요즘 우리 가게에 인기 많은 탑 하나가 오거든.”

 “시끄럽게.”

 “다크써클 생긴 만큼 쿠로오 예민해졌네.”

 “너도 시끄러.”

 

 

 

 

 

 살짝 삐친 듯 하는 말에 보쿠토는 킥킥 웃으며 여태 잡고 있던 뺨을 놓았다. 쿠로오는 음료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에너지 드링크를 섞었다던 음료는 고장 난 기계처럼 뻑뻑한 몸에 기름칠을 해주는 것 같았다. 쿠로오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곧 가야할 시간이었다. 음료를 조금씩 비워내는 데, 옆 자리의 의자가 덜컥, 빠졌다.

 

 

 

 

 

 “헤에, 보쿠 쨩 애인-?”

 

 

 

 

 

 그렇지 않아도 수려한 눈매를 휘며 웃는 것에 쿠로오는 그 얼굴을 쓱, 훑었다. 퍽 잘생긴 얼굴이었다. 인기 많은 탑이라더니, 그 이유를 조금쯤 알 것 같았다. 쿠로오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며 턱을 괴었다. 남자가 옆에 앉자 소란스러운 무리가 바로 옆으로 와 웅성대니 머리가 아픈 기분이었다. 곧 저만치에서 무언가를 하던 보쿠토가 다시 돌아와 찡그린 미간을 살살 문질러 펴 주었다. 주름 생겨, 안 그래도 무서운 얼굴이. 키득키득 웃는 소리에 쿠로오는 한숨처럼 웃었다. 음료는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웅성거리던 소리는 곧 안녕-, 하는 소리와 함께 수그러들었다. 쿠로오는 꽤나 적나라하게 저를 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안녕?”

 

 

 

 

 

 시선이 마주치자 또 휘어지는 눈에 쿠로오는 눈을 깜빡이다 곧 흐응, 웃으며 같이 눈을 휘었다. 안녕. 순간 남자의 입매가 굳어졌다. 곧 보쿠토가 남자가 주문한 음료를 가져오자 쿠로오는 몸을 일으켰다. 남자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쿠로오, 벌써 가?”

 “, 오늘은 너 보러 온 거. 다음에 더 오래 있다 갈게.”

 “아쉬워라.”

 

 

 

 

 

 쭉 내민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춘 쿠로오는 여태 저를 좇는 초콜릿 빛 눈동자에 다시 한 번 웃어주었다. 다음에 또 보자. 살랑, 흔드는 손에도 남자의 표정은 멍했다. 쿠로오는 들어왔을 때 처럼 휘적휘적 가게를 빠져나갔다. 가게는 들어올 때보다 조금 더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웠다.

 

 

 

 

 

 

 

 

 

 

 오이카와는 멍하니 가게를 나서는 남자의 등을 끝까지 좇았다. 나른한 눈매와 웃을 때 쓱 올라가는 섹시한 입매에 가슴이 뛰었다. 오이카와는 저와 똑같이 남자의 뒤통수를 우울한 표정으로 좇는 보쿠토를 얼른 돌아보았다.

 

 

 

 

 

 “보쿠 쨩.”

 “으응?”

 “저 사람 누구야? 보쿠 쨩 애인?”

 “……애인은 아닌데……친구?”

 “이름은 뭐야? 나이는? 포지션은?”

 “한 가지 씩만 물어봐! , 마음에 들었어?”

 

 

 

 

 

 씩 웃는 얼굴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 꼬실 거야. 자신만만해 보이는 표정에 보쿠토는 흐응, 웃으며 쉐이커에 얼음과 음료를 담았다. 여태껏 쿠로오에게 들이댔던 남자들을 가만히 속으로 꼽아보던 보쿠토는 다시 저에게 이것저것을 조잘조잘 물어보는 오이카와에게 하나하나 답해주었다. 어차피 마지막은 나인 걸, 위기감은 없었다.

 

 

 

 

 

 “열심히 해봐-.”

 

 

 

 

 

 호탕하게 웃는 얼굴 아래 자신만만함을, 오이카와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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