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우중충한 회색 하늘 아래 도시 전체가 회색으로 젖어 내렸다. 창가에 이마를 기대어 밖을 내다보다, 내뱉은 숨결에 뿌옇게 서리는 입김을 손으로 문질러 닦아냈다. 입김 탓에 잠시 보이지 않았던 바깥은 다시 보여도 여전히 우중충한 빛깔이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돌려 저만치 소파에 앉아있는 무뚝뚝한 뒤통수를 보았다. 완벽한 배구 실력처럼 깔끔을 떨 것 같았건만 머리칼은 어제 저가 흐트러뜨려 놓은 것 그대로 엉망이었다. 오이카와는 완전히 몸을 돌려 창문에 몸을 기대 시선을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굳센 목엔 뒷덜미에도 잇자국이 벌겋게 나 있었고 딱 벌어진 어깨는 말 할 것도 없었다. 좀 덜 깨물 걸. 문득 든 생각에 오이카와는 눈을 조금 크게 떴다가 고개를 저어 생각을 떨쳐냈다. 내가 우시와카 쨩을 왜 생각해 줘야 해? 늘 하는 치기어린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는 눈을 반쯤 감았다. 차가운 냉기가 창문의 유리를 타고 오이카와의 살갗을 차갑게 식혀냈다. 춥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쯤 오이카와의 시선이 머물러있던 뒤통수가 스륵,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오이카와.”

 

 

 

 

 

 고개는 반쯤 돌린 채 눈동자를 굴려 저를 보는 시선은 마치 매와 같았다. 이 쪽으로 오라는 말을 빙 돌려 말하는 것은 오이키와의 성이 차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그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었다. 오이카와는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 저를 보는 시선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시선을 먼저 거둔 것은 우시지마였다. 다시 앞을 보는 뒤통수에 오이카와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우시와카 쨩이 뭔데 내 눈을 먼저 피해. 울컥 올라오는 분노에 오이카와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러나 곧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에 오이카와는 발끝으로 시선을 내렸다. 제 발치 앞에 선 걸음과 제 입술께를 쓰다듬는 엄지는 다정함이 뚝뚝 묻어났다. 오이카와는 여전히 눈매를 일그러뜨린 채 시선을 들지 않았다.

 

 

 

 

 

 “씹으면 아프지 않은가.”

 “……아파.”

 “이를 세우지 마라.”

 

 

 

 

 

 엄지로 눌러 오이카와의 이에서 입술을 해방시킨 우시지마는 그대로 손을 뗐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무는 대신 이를 악 물었다. 멍청한 우시와카 쨩. 바보. 속으로 욕하면서도 오이카와는 제 어깨를 잡고 창문으로부터 떨어뜨리는 그 손에 제 몸을 맡겼다. 등을 쓸어내려 그 냉기를 떨쳐낸 우시지마는 다시 손을 뗐다. 오이카와는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제게 손을 대지 않으면서 제게서 멀어지지도 않는 우시지마의 가슴팍에 이마를 박았다. 여전히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건드리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그 바짓단을 움켜쥐었다. 추워. 내뱉듯 읊조리는 소리에 우시지마의 손끝이 움찔, 떨렸다. 그럼에도 움직이지 않는 팔.

 

 

 

 

 

 “안아줘, 바보 우시와카.”

 

 

 

 

 

 그제야 저를 품에 안는 팔에 오이카와는 그 품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았다. 저가 그렇게 만들었으면서, 오이카와는 우시지마의 가슴께를 퍽, 쳤다. 우시지마의 턱이 오이카와의 정수리를 꾹 눌렀다.

 

 

 

 

 

 “몸이 차다, 오이카와.”

 “추워.”

 “침대로 갈까.”

 “변태야, 우시와카 쨩?”

 

 

 

 

 

 툴툴거리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오이카와를 안은 팔에 힘을 주어 그를 침대 근처로 옮겼다.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오이카와는 침대 맡에 앉은 우시지마의 팔을 움켜쥐었다. 아무데도 가지 마. 이불 속에서 웅얼대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데도 가지 않는다. 마주 잡아지지 않는 손을 보던 오이카와는 잡았던 손을 놓고 그저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비가 그치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그랬다. 경기를 뛰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스쳐 지나가지 않고 꼭 몇 초라도 머물다가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위화감, 그 다음에는 의혹, 의혹은 곧 짜증으로 변모했지만 종내에는 깨달음이었다. 처음부터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우스울 정도였다. 저를 따라다니는 여자아이들의 눈빛에서 보이는 그 따뜻한 감정들이 무뚝뚝한 무표정에서 흘러 넘쳤다. 마치 경기에서 이긴 듯 한 쾌감이 일었다. 그 우시지마가 나를 좋아한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의 조합이 웃음을 참을 수 없게 했다.

 

 

 

 

 

 

 

 

 

 

 -우시와카 쨩. 혹시 나 좋아해?

 

 

 

 

 

 평소와 같이 그렇게 부르지 말라 하려 벌어졌던 입술이 그대로 다물렸다. 먼저 피한 적 없던 시선이 도르륵, 옆을 향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지 않고 그 목덜미 뒤로 팔을 뻗어 깍지를 낀 채 그 얼굴을 마주했다. 나 봐, 우시와카 쨩. 그제야 다시 마주치는 시선은 따뜻함을 넘어서 뜨거운 감정이 눈동자 안에 엉켜있다. ? 말해봐 우시와카 쨩. 나 좋아해? 한 걸음 다가가 가까워진 얼굴은 조금쯤 일그러진 듯 했다. 좀처럼 나오지 않는 대답에 들떴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이미 들킨 주제에 여전히 고민하고 있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깍지를 꼈던 손을 풀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꼼짝도 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저를 보는 시선은 뜨거웠다. 재미없어. 몸을 돌려 한 걸음 걷는 순간, 덥썩 손목을 잡아당기는 힘에 벽에 등을 부딪쳤다.

 

 

 

 

 

 -오이카와.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 팔 사이에 가두어져 올려다보는 얼굴이 점차 가까워졌다. 귓가에 입김이 닿았다. 좋아한다, 오이카와. 뜨거운 입김이 귀를 간질이고, 가까웠던 몸은 다가왔던 것처럼 천천히 멀어졌다. 커다랗게 뜨인 눈이 감기지가 않았다. 뺨을 감싸는 손에 간신히 정신이 들었다. 슬몃 닿아오는 입술의 감촉에 고개를 틀어 피했다.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하지 마, 키스.

 

 

 

 

 

 뺨을 쥐었던 손은 뒤통수로 넘어가 부드럽게 감쌌다. 허리를 안아오는 팔이 굳셌다. 다시 닿는 입술에 그 옷깃을 움켜쥐었다. 뜨거워. 밀려드는 혀에 눈을 감았다. 온통 뜨거웠다.

 

 

 

 

 

 

 

 

 

 

 오이카와는 눈을 떴다. 창문을 두드리던 빗방울은 여전했다. 오이카와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 몸을 일으켰다. 뒤통수를 느리게 잡아당기는 꿈의 여운에 오이카와는 마른세수를 하도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제 주위를 둘러본 오이카와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익숙한 뒤통수가 없었다.

 

 

 

 

 

 “우시지마.”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벗은 상체의 체온이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우시지마. 다시 한 번 부른 이름에 인기척이 들렸다. 돌아본 곳엔 고개를 내민 우시지마가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을 감출 수가 없어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곧 다가온 몸이 앞에 섰다. 어디 안 간다고 했잖아. 칭얼거리는 것처럼 나온 소리에 오이카와는 주먹을 꾹 쥐었다.

 

 

 

 

 

 “우시와카 쨩은 왜 말을…….”

 

 

 

 

 

 오이카와는 이마를 박으며 고개를 들었다. 저를 꾹 껴안는 품이 뜨거웠다. 식었던 살갗에 뜨거운 체온이 따뜻했다.

 

 

 

 

 

 “미안하다.”

 “……바보 우시와카 쨩.”

 

 

 

 

 

 그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오이카와는 팔을 들어 그 허리를 안았다. 누가 안아 달래. 자그마하게 툴툴거리는 소리에도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식은 몸이 점차 데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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