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에프는 아이의 양 팔을 단단히 움켜쥔 채 웃고 있었다. 제 앞에서 커다랗게 뜨인 눈이 엉망으로 흔들리는 모습이 가학심을 자극했다. 리에프는 쥔 채 덜덜 떨리는 손을 가만히 잡았다. 흠칫, 몸을 떨며 저를 보는 금빛 눈동자에 리에프는 씩 웃었다.

 

 

 

 

 

 “안 하고 뭐해요.”

 “, 리에프…….”

 “제가 뭐라고 했죠, 쿠로 상?”

 “, 못 하겠어…… 리에프, 제발…….”

 “그럼 쿠로 상 부모님이 죽어도 좋아요? 저는 쿠로 상 부모님이라면 쉽게 죽여 드릴 생각 없어요.”

 

 

 

 

 

 쿠로 상이랑 닮은 사람이잖아요. 그러며 웃는 얼굴에 쿠로오는 덜덜 떨리는 손을 다잡았다. 제 앞에 보이는 아이는 제 허리에도 미치지 못한 작은 아이였다. 손과 발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입에 재갈까지 물린 아이는 끅끅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마 엄마를 찾고 있거나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을 것이었다. 쿠로오는 자꾸만 흐려지는 눈을 손등으로 문질러 씻어냈다. 리에프는 농담을 하는 법이 없었다. 죽일 거라면 죽였고, 섹스를 할 거라 하면 섹스를 했다. 이번 말도 허투루 하는 말이 아닐 것이었다. 쿠로오는 몇 달 동안 보지 못한 부모님의 얼굴이 눈앞에 스쳐지나 가는 것을 느꼈다. 혹시 리에프가 자신의 집을 모르지 않을까, 얄팍한 생각이 스쳤다.

 

 

 

 

 

 “쿠로 상 혹시 내가 쿠로 상 부모님이 어디 사시는 지 모를 것 같아서 이러는 거예요? 날 너무 과소평가한다.”

 

 

 

 

 

 입가를 휘었던 리에프는 아이의 어깨를 놓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퍼억-! 옆으로 날아가는 아이를 보며 쿠로오는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굳었다. 리에프의 발에 차인 아이는 벽에 부딪친 후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져 미동도 없었다. 쿠로오는 제 턱을 당기는 손에 시선을 돌렸다. 드물게 웃고 있지 않는 얼굴이 코앞에 다가왔다. 등골이 오싹하도록 어둡게 가라앉은 초록빛 눈동자가 닿을 듯 가까웠다. 쿠로 상 저한테 이름 가르쳐 줬어요? 쿠로오는 눈조차 깜빡이지 못하고 그 눈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차라리 광기라도 보였으면 좋았을 텐데, 리에프의 눈동자는 차분했다. 쿠로오는 문득 리에프에게 납치된 날을 떠올렸다. 가방 안에 들어있던 지갑과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전화. 리에프가 그걸 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커다란 손이 눈을 가렸다.

 

 

 

 

 

 “결론이 났어요?”

 

 

 

 

 

 속살거리는 목소리가 어린 아이를 어르듯 부드러웠다. 쿠로오는 입술을 짓씹었다. 선택지는 결국 하나 뿐이었다. 리에프는 손바닥에서 묻어나는 물기에 손을 떼고 쿠로오의 몸을 돌렸다. , 내가 도와줄게요. 칼을 쥔 손 위로 제 손을 덮은 리에프가 몸으로 쿠로오를 밀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을 간신히 떼어 아이에게 다가간 쿠로오는 바닥에 쓰러져있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세게 부딪친 듯 아이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쿠로오는 천천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물이 자꾸만 눈앞을 흐렸다. 준비 됐어요? 속삭이는 목소리는 악마의 목소리였다. 쿠로오는 칼을 양 손으로 쥐고 천천히 높게 치켜들었다. 제 손을 감싼 손의 체온이 차가웠으면 좋았으련만, 악마의 손은 따뜻하기만 했다. 쿠로오는 이를 앙 물며 눈을 질끈 감고 그대로 칼을 찍어 내렸다.

 

 

 푸욱.

 

 

 

 

 

 “아흐윽!!”

 “, 착하다.”

 “, , 흐으…….”

 “잘했어요. 하면 되잖아.”

 

 

 

 

 

 쿠로오는 살과 뼈가 갈리는 느낌에 퍼뜩 칼을 놓고 뒤로 몸을 물렸다. 자연스레 등에 닿아오는 체온에 쿠로오는 흐려진 정신으로 그 체온으로 파고들었다. 몸이 덜덜 떨려왔다. 생고기를 썰 때의 느낌과 전혀 달랐다. 뼈가 갈리고 핏물이 베어 나왔다. 쿠로오는 여전히 제 손을 쥐고 놓아주지 않는 리에프를 돌아보았다. 리에프는 웃고 있었다.

 

 

 

 

 

 “칼 뽑아서 저 주셔야죠.”

 “, 리에프…… 나 못해…… 못하겠어…… ? 제발, 리에프…….”

 “이건 안 돼요. 이거까지 해야 인정해 줄 거예요.”

 

 

 

 

 

 어린 아이를 어르듯 하는 소리에 쿠로오는 차게 식은 손끝을 움켜쥐었다. , 얼른. 재촉하는 소리에 쿠로오는 칼을 쥐었다. 바닥을 적시기 시작하는 피에 시야가 어지러웠다. , 칼을 뽑아들자 울컥, 피가 솟구쳐 쿠로오를 적셨다. 쿠로오는 덮쳐오는 비릿한 피 냄새에 칼을 떨어뜨리고 제 손아귀를 보았다. 피에 젖어 붉은 손에 쿠로오는 제 옷에 손을 문질러 닦아냈다. 싫어, 싫어……. 멍하니 울며 읊조리는 말에 리에프는 쿠로오의 고개를 돌려 입술에 묻은 핏물을 핥고 그대로 혀를 밀어 넣었다. 쿠로오는 섞이는 혀 사이로 아릿한 쇠 맛이 느껴지자 리에프를 밀어내려 버둥거렸다. 리에프는 그런 쿠로오의 어깨를 잡고 그대로 바닥에 눕혔다. 쿠로오는 등에 닿는 축축한 느낌에 화들짝 놀라 제 어깨를 누르는 리에프의 팔을 잡았다.

 

 

 

 

 

 “그만, 리에프, 싫어, 하지 마!”

 “착하지? 가만히 있어.”

 “싫어 리에프, 여기서 싫어, 하지 마, 제발!”

 

 

 

 

 

 리에프는 쿠로오의 목에 연결된 쇠사슬을 위로 콱, 잡아 올렸다. 쿠로오는 순간 턱하니 목을 죄는 초커에 컥, 하며 입을 벌렸다. 그 사이로 혀를 집어넣은 리에프는 피에 젖은 손바닥으로 쿠로오의 뺨을 더듬었다. 온 몸이 선홍빛으로 예쁘게 물들어간다. 리에프는 혀를 떼며 이미 붉게 젖은 쿠로오의 티셔츠를 위로 밀어 올렸다. 초점을 잃은 금빛 눈동자가 무기력하게 리에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롯이 무력감과 공포로 점칠된 눈동자와 자신의 손아귀 안에 길들여져 가는 마른 몸뚱이 전부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것들뿐이었다. 리에프는 피로 쿠로오의 허벅지에 붉은 선을 그으며 웃었다.

 

 

 

 

 

 “역시 빨간 색이 잘 어울리네요. 예뻐.”

 

 

 

 

 

 쿠로오는 맨 살갗에 닿아오는 미끈거리고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가는 끈적한 액체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자신이 찌른 상처에서 쏟아져 나오는 피. 쿠로오는 느릿하게 제 살결을 핥아 올리는 혀에 리에프의 어깨를 쥐었다. 리에프의 눈이 휘었다. 공범 됐네요, 그쵸. 피에 흠뻑 젖은 쿠로오는 꼭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 같았다. 리에프는 이미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눈동자에 쿠로오를 안아 올려 욕실 안으로 향했다. 금세 식은 피가 쿠로오의 체온을 낮추고 있었다. 욕조에 쿠로오를 내려놓은 리에프는 따뜻한 물을 틀어 쿠로오의 머리 위로 쏟아냈다.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떠는 어깨가 처음 보았을 때보다 작아져 있었다. 내일 메뉴를 뭐로 만들어 줄까. 리에프는 씻겨 내려가는 핏물을 보다 쿠로오의 턱을 들어 시선을 맞추었다.

 

 

 

 

 

 “뭐 먹고 싶어요? 쿠로 상 첫 살인 기념으로 맛있는 거 만들어 줄게요. 지난번처럼 토하면 안돼요.”

 

 

 

 

 

 싱긋 웃는 얼굴에 쿠로오는 다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웃고 있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질 때 즈음, 쿠로오가 낮게 중얼거렸다. , 먹고 싶은 거. 그 말에 다시 씩 웃은 리에프는 쿠로오의 젖은 머리칼을 매만졌다. 맛있는 걸로 해줄게요. 붉게 물들었던 옷에서 핏기가 빠져가는 걸 가만히 보건 쿠로오는 제 어깨를 감싸 안는 팔에 머리를 기댔다. 비릿한 피비린내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리에프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봉지를 흔들었다. 쿠로오가 끊어내려 안간힘을 쓴 탓에 헤진 초커를 사러 다녀오는 길이었다. 요 며칠 쿠로오는 꽤나 얌전하게 굴었다. 살인을 시킨 이후 쿠로오는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밀랍인형 마냥 제 손길에 따라 움직였다. 그건 또 그거 나름대로 마음에 들어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것에 재미가 없어지면 또 다른 일을 시켜야겠지만. 시간을 시킬까 따위를 생각하며 문을 연 리에프는 그 자리에서 봉지를 떨어뜨렸다. 허공에 흔들리는 발끝에 리에프는 급히 축 늘어진 그 몸뚱이를 안아 들어올렸다. 툭하니 뒤로 꺾이는 목에 친친 감긴 얇은 사슬들에 리에프는 이를 갈았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은 몰랐다. 벽에 몸을 붙이며 한 손으로 버틴 리에프는 손을 뻗어 그 목에 감긴 사슬을 풀어냈다.

 

 

 

 

 

 “-, -.”

 

 

 

 

 

 진짜 재밌어. 이를 드러내며 웃은 리에프는 바닥에 시체처럼 차가운 몸을 내려놓았다. 목줄기를 눌러 맥박을 잡자 얄팍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리에프는 죽은 듯 누워있는 쿠로오의 옆에 앉아 낄낄 소리 내어 웃기 시작했다. 숨넘어갈 듯 웃어 재끼던 리에프는 쿠로오의 손끝이 움찔, 움직이는 것을 놓치지 않고 그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마음대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힘없이 뜨인 눈은 탁한 빛이었다. 리에프는 이제 조금씩 핏기가 도는 입술에 살짝 입을 맞췄다. 혀를 밀어 넣은 입 안은 여전히 따뜻했다. 리에프는 제 가슴팍을 밀어내는 손을 아랑곳 하지 않고 좀 더 깊게 키스했다. , 하는 목소리가 긁듯이 튀어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졸려 숨이 모자랐건만 짙은 키스 탓에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리에프는 제 옷깃을 움켜쥐는 손에 힘이 들어가자 입술을 떼고 쿠로오의 몸을 일으켜 제 품에 안았다. 휘청거릴 틈도 없이 그 품에 기댄 쿠로오는 여전히 핑핑 도는 어지러운 머리에 눈을 감고 숨을 헐떡였다.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아, 못 죽었다. 쿠로오의 숨이 좀 진정되자 리에프는 새빨갛게 줄이 난 목덜미를 선을 따라 혀를 내어 핥았다.

 

 

 

 

 

 “죽고 싶었어요?”

 

 

 

 

 

 쿠로오는 입을 다문 채 말이 없었다. 튀어나온 목젖을 혀로 돌려 핥은 리에프는 이를 세워 쿠로오의 턱 밑을 살살 긁었다. 쿠로오는 하얗게 질린 손을 리에프의 가슴 위에 얹은 채 눈을 가만히 깜빡였다. 아직 피가 돌지 않은 사지가 늘어져 움직이기 힘들었다. 쿠로오는 문득 저를 바닥에 눕히는 리에프를 슬며시 올려다보았다. 리에프는 드물게 무표정했다. 축 쳐진 손을 당긴 리에프는 그 손바닥에 가만히 입을 맞추더니 입술을 당겨 웃었다. 쿠로오는 문득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쿠로 상이 죽는 건 내 손에서 에요.”

 “…………에프…….”

 "어딜 마음대로 죽으려 들어."

 

 

 

 

 

 목소리가 섬짓했다. 쿠로오는 제 손목을 움켜쥐는 손에 잡히지 않은 손으로 리에프의 팔을 잡았다. 쿠로오가 그 팔을 밀어내기 전에, 잡힌 손목이 먼저 꺾였다. 아아아악-!!! 쿠로오가 발작하듯 발버둥 쳤다. 그럼에도 팔뚝을 붙잡은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괴이한 각도로 꺾인 손목을 잡아 다시 돌려놓으며 쿠로오가 한 번 더 비명을 내질렀다. 바들바들 떠는 반대쪽 손을 끌어다 팔을 잡게 한 리에프는 몸을 일으켜 붕대를 가져왔다. 그 사이 눈물에 젖은 뺨을 핥은 리에프는 쿠로오의 손목에 붕대를 감았다. 으스러지는 것 같은 감각에 쿠로오는 신음했다.

 

 

 

 

 

 “또 이러면 다음에는 다리를 부술 거예요.”

 

 

 

 

 

 다정하게 속삭이는 말의 내용에 쿠로오는 몸을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게 굴어요. 쿠로오를 품에 안은 리에프는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도 얌전히 제 품에 안겨오는 쿠로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쿠로오의 의지는 완전히 꺾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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