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고 있었다. 당신의 흩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 세어 나오는 숨결 하나, 떨어지는 땀 한 방울까지 눈 안에 담느라 정신이 없는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당신의 불그스름한 웃음, 애열에 들뜬 목소리, 흘러내릴 듯 달콤한 눈동자 까지. 그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당신의 달콤한 시선이 닿는 그 끝에는 늘 내가 아닌 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면, 당신은 내 세상이 부서지도록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당신은 또 한 번, 내 이름이 아닌 그 사람의 이름을 가슴이 아릿하도록 애정 어린 그 목소리로 불렀다.

 

 

 

 

 

 “쿠로오!”

 

 

 

 

 

 어렵게 지켜왔던 나의 세상을, 당신은 이토록 쉽게 깨부숴냈다.

 

 

 

 

 

 

 

 

 

 

 당신을 갖고 싶었던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경기를 함께 했을 때였을 것이다. 당신은 나의 토스에 찬란하게 날아올랐다. 당신의 비상에 나는 멍하니 당신을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늘 어둡다고 느꼈던 나의 세상을 단 번에 밝혀 주었다. 스파이크를 멋지게 성공한 당신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나에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 소리를 내며 맞닿았던 손은 짧지만 짜릿한 열기를 전해주었다. 나는 다른 동료들에게 환호를 받는 당신을 보고 당신과 하이파이브를 했던 내 손을 보았다. 내 손은 에이스였던 당신의 힘 탓에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의 손은 지금 내 심장과 닮아있었다. 붉고, 아픈 열기.

 

 

 그 때 이후로 나는 당신의 모든 모습을 눈 안에 담기 시작했다. 당신을 좇다보니 당신 또한 나에게 의지를 해 주었다. 당신과 관련 된 모든 일에는 내가 같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이 좋았다. 찬란한 당신의 일부분이 되는 것 같은 기분. 그것이 일상이 되어 갈 때 즈음, 그 사람이 등장했다. 그 사람은 당신과 친밀해 보였다. 당신은 그 사람을 작년 합숙 때 만난 친구라고 소개를 시켜 주었고, 그 사람은 자연스레 당신에게 나에 대해 물었다.

 

 

 

 

 

 ‘얘가 걔야? 너랑 그렇게 죽이 잘 맞는 다는 세터?’

 ‘. 이름은 아카아시 케이지.’

 

 

 

 

 

 내가 모르는 당신이 있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짧은 시간 내에 당신을 모두 알았다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당신은 그 사람에게 다른 이들과는 다른 시선을 보냈다. 그 사람은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쿠로오 테츠로. 네코마 고교의 2학년이고, 미들 블로커야. 너도 고생이 많겠다.’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후쿠로다니 1학년, 세터입니다.’

 ‘고생이 많다니! 무슨 의미야!’

 ‘너 케어 하느라 힘들 거란 의미야.’

 

 

 

 

 

 장난을 치는 당신과 그 사람을 보며 나는 몸을 돌렸다. 당신으로 인해 환하게 밝혀졌던 내 세상에 어둠이 싹을 틔웠다. 그 사람이 당신은 훌쩍 데리고 떠날 것만 같았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불안했다. 나는 전보다 더 당신을 주시했지만, 당신과 시선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당신의 시선은 늘 그 사람을 향해 있었다. 합숙의 밤, 나는 자판기의 불빛 앞에서 깨달았다. 나는 당신을 우상으로써 존경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있구나.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내 세상에 어둠의 근원은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었구나. 왈칵, 터져 나오는 눈물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치졸한 감정이 사랑이라니. 당신이 밝혀준 세상을 좀 먹는 더러운 어둠이 사랑이라니. 울고 있는 내 어깨를 돌린 것은 당신이었다.

 

 

 

 

 

 ‘아카아시?’

 ‘……보쿠토 상.’

 ‘아카아시, , 왜 울어? 어디 아픈 거야?’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산을 떠는 당신의 모습에 나는 당신을 끌어안았다. 나는 오늘이 끝인 것처럼 당신에게 매달렸다. 좋아해요, 보쿠토 상. 막을 새도, 막을 생각도 없이 나온 말에 당신은 놀라했다. 아카아시? 다시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는 당신을 더 세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좋아해요, 보쿠토 상.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나를, 당신은 잔인하게도, 마주 안아 주었다. 서러움에 더 크게 터지는 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당신은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고마워. 당신이 나에게 준 두 번째 빛이었다. 나는 놀라 당신을 보았고, 당신은 나에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에 나는 울던 것도 잊은 채 당신의 얼굴만 보았다. 당신은 눈물에 엉망인 내 얼굴을 당신의 옷으로 닦아주고 다시 웃어주었다. 그럼 이제 우리 사귀는 건가? 당신의 가벼운 그 말에 내 심장은 몇 톤짜리 추를 얹은 것처럼 쿵하고 떨어졌다.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 치졸한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의 뺨을 쥐고 키스했다. 당신은 마찬가지로 잔인하게,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몸이 녹아 없어져 버려도 좋을 만큼 달콤한 입맞춤이었다.

 

 

 

 

 

 

 

 

 

 

 당신은 천성이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솔직할지언정 당신은 남에게 못된 말은 하지 못했다. 그 천성은 나에게 황홀한 천국을 주기도 했고, 발 디딜 틈 없이 아찔한 지옥으로 내몰기도 했다.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당신은 늘 내 말에 긍정을 해 주었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 생각할 정도로 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를 알면서도 나는 모른 척 당신의 몸을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다. 당신은 내 옆에선 오롯이 나만 바라보아주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당신을 보면, 당신은 그 사람을 보고 있었다. 엇갈리던 시선 끝에 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면, 당신은 그 옛날 처음의 웃음처럼 활짝 웃었다. 당신을 가지면 시들어 버릴 거라 생각했던 어둠은 말라 죽지 않고 점점 자라 내 세상의 먹어 치웠다. 그럴수록 나는 당신에게 매달렸다. 다른 이들은 내가 당신을 다룬다 생각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당신은 늘 불안해하는 나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당신은 나에게 항상 미안함을 안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붙잡은 채 안간 힘을 써서 버티려했다.

 

 

 

 

 

 ‘사랑해요, 보쿠토 상.’

 ‘, 나도.’

 

 

 

 

 

 당신의 본심을 알면서도 나는 당신에게 나의 사랑을 강요했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 당신의 본심은 나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그런 본심을 사랑이란 단어로 포장해 그에게 속삭이는 내가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아마 당신은 그 대답이 나를 달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지만, 그것이 더 잔인하고 못된 말이라는 것을 몰랐을 터였다. 나의 속삭임에 본심과는 전혀 반대인 대답을 해오는 당신을 보며 나는 도리어 상처 입었다. 당신의 진심어린 애정을 받는 그 사람이 부럽고 미웠다. 그가 잘못이 없다는 것, 내가 일을 크게 틀어지게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이런 내가 낯설고 싫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밉지가 않아서 부러 혼자 있을 땐 당신을 탓하는 말을 뱉곤 했다. 보쿠토 상 때문이에요. 보쿠토 상의 잘못이에요. 그러면서도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고 지어지는 웃음에 자괴감 또한 피어올랐다.

 

 

 

 

 

 

 

 

 

 

 어느 날, 나는 당신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웃어주는 얼굴에서, 그 옛날의 찬란함은 사라져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마지막으로 나를 버티게 해 주던 바닥이 무너져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의 어둠이 당신을 좀먹어 버렸다. 그 사람을 보며 환하게 트이던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내가 아주 많이, 당신을 힘들게 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원래부터 내 사람이 아니었던 당신을 탐하며 나는 나도, 당신도, 그 사람도 괴롭게 했다. 나는 이제야 정말 당신을 놓아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보쿠토 상.”

 “으응?”

 “키스해도 돼요?”

 “당연하지.”

 

 

 

 

 

 당신은 여전히 아이같이 웃을 줄 알았다. 나는 당신의 입술에 내 입술을 겹치고, 그 숨결을 공유했다. 당신의 숨은 따뜻했고, 마지막 키스는 여전히 달콤했다.

 

 

 

 

 

 “보쿠토 상.”

 “.”

 “우리 이제.”

 

 

 

 

 

 헤어질까요? 웃으며 한 말에 당신의 표정이 사라졌다. 당신에게 지어주는 웃음이 얼마만인지 헤아리다 나는 그저 웃었다.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깝다는 생각에 그 눈꺼풀에 입술을 눌러 눈물을 핥아냈다. 당신은 어린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처음으로 당신을 달랬다. 그 동안 미안했어요, 당신을 힘들게 해서. 당신은 나를 껴안으며 서럽게 울었다. 당신이 이토록 힘들었구나. 나는 당신의 등허리를 연신 쓰다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참을 울던 당신은 내 품에서 벗어나 눈가를 마구 비볐다. 나는 그 손을 떼어주며 엄지로 눈물을 훑어내 닦아내주었다.

 

 

 

 

 

 “아카아시, …….”

 “보쿠토 상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어울릴 것 같아요.”

 

 

 

 

 

 처음 토스를 올렸을 때 찬란하게 비상하던 그 때의 보쿠토 상처럼. 내 말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눈물을 닦던 자세 그대로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는 당신을 향해, 다는 다시 한 번 웃었다. 때 마침 당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 사람이었다. 휴대전화를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보는 당신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얼른 가 봐요.”

 “아카아시…….”

 

 

 

 

 

 또 다시 훌쩍이기 시작하는 당신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는 다시 당신을 떠밀었다. 당신은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를 계속 돌아보았지만, 나는 손만 흔들어 주었다. 당신이 아주 보이지 않기 전에 발을 떼면, 당신을 다시 붙잡을 것 같아서. 당신이 보이지 않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손을 흔드는 것을 멈추었다. 당신에게 괜찮다고 했으니까, 나는 괜찮아야 했다. 먹먹하게 뛰는 가슴에, 나는 그 때 그 자판기 불빛 앞에서 울었던 것처럼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좋아해요, 보쿠토 상.”

 

 

 

 

 

 엉엉 우는 내 어깨를 잡아 돌려줄 당신은 더 이상 없었다. 나의 세상은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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