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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12.25 [다이쿠로] 크리스마스 (From. 마헤나 님)
- 2015.12.24 [주장즈쿠로] 돌림빵
- 2015.12.22 [리에우시] 보충 수업
- 2015.12.21 [보쿠로] 지하철 (From. 마헤나 님)
- 2015.12.20 [모브쿠로] 비밀
- 2015.12.19 [마츠쿠로] 이사 (From. 마헤나 님)
- 2015.12.19 [우시쿠로] 그믐달 完
- 2015.12.17 [우시쿠로] 그믐달 3
“후으, 응, 하이바, 그만, 깨물어!”
“하아, 근데 이게 좋은데요.”
쿠로오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또 다시 발목에 콱, 박히는 이에 신음했다. 벌써 왼쪽 손목에는 피가 방울져 맺혀져 있었다. 발목에 박혔던 이가 떨어지고, 또 혀가 잇자국을 샅샅이 핥아냈다. 그 간지러운 느낌에 쿠로오는 시트를 움켜쥐었다. 발목에 난 잇자국을 핥으며 저를 내려다보는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저를 잡아먹을 듯 굴었다. 쿠로오는 드디어 놓이는 발목에 낮게 숨을 내쉬고 다시 제 손목에 입술을 가져가는 리에프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제 안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놓고 전희를 치르듯 물고 핥는 것이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지금은 또 은근히 제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도 좋아 내버려두고 있었다. 다만 손목이 저리고 아플 정도로는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게 지금의 심정이었다. 이번에는 손목에 난 피를 핥는 것이 목적이었던 듯 입술이 금세 떨어져 나갔다. 쿠로오는 혀가 떨어지면서 만족스럽게 입술을 핥는 리에프의 허리에 다리를 감았다.
“충분해?”
“네, 충분해요. 쿠로 상은 손목 발목이 너무 예쁘니까,”
허리를 뒤에서 받쳐 드는 손에 쿠로오는 허리를 들며 제 입술에 가볍게 닿는 입술에 턱을 살짝 들었다.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자꾸 핥고 싶어요. 웃음 섞인 목소리에 쿠로오는 눈썹을 찡그리며 리에프의 목덜미를 안았다. 몸이 밀착되며 아래에 들어선 것이 좀 더 깊숙이 들어왔다. 쿠로오는 길게 숨을 내쉬며 제 무릎 뒤로 손을 넣어 위로 누르는 손에 허리에 감았던 다리를 풀었다. 쿠로 상은 유연해서 좋아요. 찔꺽이는 소리가 조금씩 나기 시작하며 쿠로오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내가 안 좋은 구석이 있어?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하는 소리에 리에프는 씩 웃었다. 아니요. 리에프는 쿠로오의 눈꺼풀 위로 입술을 누르며 제 눈 또한 감았다. 야릇한 감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쿠로오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뭉친 근육을 풀었다. 잠을 조금 잘못 잤는지 목이 뻐근했다. 뒷목을 주무르던 쿠로오는 흘긋, 제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한 쪽은 그래도 어제 피까지 봤던 터라 붕대를 감아 놓아서 괜찮았는데, 반대쪽은 아니었다. 시계를 차자니 묵직한 시곗줄이 자꾸만 닿아 아프고 신경이 쓰여 시계는 차지 못했다. 그래도 배구부인 덕분에 손목 아대로 가릴 수 있긴 했지만, 어제는 유난히 손목에 집착을 해서 좀 넓게 멍이 들었다. 아대로 간신히 가려지긴 했지만 흘러내리거나 한다면 보일 게 뻔해서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아대 위로 손목을 주무른 쿠로오는 멍하니 칠판을 보다 제 손목을 잡는 손에 흠칫,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놀라.”
“어, 야쿠.”
“눈 뜬 채 꿈이라도 꿨냐?”
“아니, 잠깐 딴 생각 좀 했어. 왜?”
“오늘 훈련 시간 때문에. 오늘 약간 일찍 끝날 것 같다고 감독님이 전해 달라하셨어.”
“응, 땡큐.”
“근데 너 요즘 아대 하고 다닌다? 서포터도 답답하다고 안하던 놈이.”
제 손목 위를 쓱 훑는 시선에 쿠로오는 머쓱하게 웃으며 손목 위를 살짝 쓰다듬었다. 요즘 손목이 좀 꺾이는 것 같아서. 급하게 한 변명에 대번에 등짝에 손이 날아왔다. 관리 안하냐! 빽 내질러지는 소리에 쿠로오는 낄낄 웃으며 그 등을 떠밀었다. 네네, 조심하고 있어요-. 등을 떠미는 손이 조금 불만스러운 것 같지만 야쿠는 발을 떼었다. 네가 아니면 누가 리에프 블로킹 가르치냐. 그 말에 쿠로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었다. 하긴, 리시브는 저보다 야쿠가 더 잘 했으니 괜찮았지만, 블로킹은. 쿠로오는 몸을 돌려 제 반으로 돌아오며 눈을 깜빡였다. 요즘 관계가 좀 잦긴 했다. 둘 다 십대 후반에 혈기 왕성한 남자 둘이었다. 방과 후면 연습을 한답시고 늘 붙어있었고, 땀에 젖은 모습을 보고 있으니 불타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좀 자제를 해야겠지. 쿠로오는 연필을 쥐며 눈을 내리깔았다. 조금 흘러내린 아대 아래로 벌건 잇자국이 보였다.
“에? 왜요!”
“쉿. 목소리가 너무 크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니! 안돼요! 못해요!”
쿠로오는 제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질 태세인 리에프의 몸을 휙, 피했다. 잽싼 몸놀림에 리에프는 울상을 지었다. 완전 멀쩡하시면서! 칭얼대는 목소리에 쿠로오는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리에프의 앞에 앉았다. 벌써 제 손을 잡고 냉큼 앞으로 다가서는 리에프에 쿠로오는 헛웃음을 지었다. 리에프의 표정은 퍽 진지했다. 쿠로오는 그 손을 살살 떨쳐내고 제 아대를 뺐다. 벌건 잇자국과 퍼런 멍이 남은 손목이 드러났다. 그제 어제 끈질기게 물고 빤 탓에 남은 리에프의 흔적들이었다.
“이거 보여, 안 보여.”
“이, 이건 쿠로 상 손목이 예뻐서…….”
“그건 둘째 치고, 손목이 이러니까 힘도 안 들어가서 블로킹 실패하고 심할 땐 필기도 못한다고. 내가 대학 못 가면 책임 질 거야?”
“네!”
“네가 졸업할 2년 동안 난 혼자 뭐하라고?”
바로 훅 치고 들어온 말에 리에프는 입을 다물었다. 쿠로오는 드물게 꽤나 진지한 표정이었다. 리에프는 멍이 든 손목과 쿠로오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보다 성큼, 쿠로오에게 무릎걸음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쿠로오는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리려다 제 손목을 잡고 당기는 손에 그대로 몸을 멈추었다. 리에프의 얼굴이 가까웠다. 할짝, 리에프가 살짝 쿠로오의 입술을 핥았다.
“섹스만 일주일에 한 번 인거죠?”
“……응.”
“그럼 키스는 상관없는 거죠.”
“그렇다니까.”
리에프가 슬금슬금 쿠로오의 위로 올라왔다. 쿠로오는 점점 다가오는 리에프에 벽에 등을 기댔다. 입술이 닿기 직전, 창고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쿠로오는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려다 제 턱을 잡는 손에 그대로 리에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반질반질한 초록색 눈동자가 제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시선에 저는 늘 약했다. 쿠로오는 천천히 겹쳐오는 입술에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 당장 밖에서 웅성거리는 부원들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다문 입술 위를 핥는 혀에 쿠로오는 눈썹을 일그러뜨리다 제 손목을 쥔 손에 힘이 가해지자 저도 모르게 신음하며 입을 벌렸다. 이 새끼가. 쿠로오는 바로 저를 옆으로 쓰러뜨리며 손을 위로 잡아 누르는 손에 인상을 썼다.
“응, 읏, 잠깐, 하이ㅂ…….”
호흡을 하느라 잠깐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겹쳐졌다. 뒤로 빼는 혀를 집요하게 쫓아와 기어이 얽어내는 것에 쿠로오는 연신 호흡하느라, 밖의 소리를 신경 쓰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소리가 사라지고 나서야 겹쳐졌던 입술이 떨어졌다. 쪽,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입술에 쿠로오는 숨을 몰아쉬다 리에프를 발로 뻥 걷어찼다.
“악! 쿠로 상!”
“미친놈아, 누가 들어오면 어쩔 뻔 했어!”
입술을 훔치고 아대를 끼며 하는 소리에 리에프는 그 등을 쳐다보다 와락, 허리를 껴안았다. 좋아해요, 쿠로 상. 사랑해요. 목덜미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는 것에 쿠로오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리에프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었다. 버릇을 잘못 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참이었다. 쿠로오는 리에프를 밀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일부러 둘이 개인 연습을 한다며 잠시 빠지긴 했지만 너무 오래 비우는 것도 이상할 것이었다. 쿠로오는 제 뒤에서 몸을 일으키는 리에프를 확인하고 문을 열려다 문고리를 잡은 제 손 위로 겹쳐지는 손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문고리에서 손을 떨어뜨린 손이 아대를 벗겨내고 느릿하게 입술이 내려앉았다.
“……뭐햐냐?”
“다음 주나 돼야 만나는 쿠로 상 손목에 작별 인사?”
흐흐, 웃는 것에 뜨끈한 입김이 손목에 닿았다. 쿠로오는 그것을 보다 손을 슬쩍 빼내고 다시 안대를 꼈다. 문고리를 열고 나가는 쿠로오의 등을 보며 리에프는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그 예쁜 손목을 남에게 보여 줄 수 없지. 리에프는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아직도 따끈한 쿠로오의 온기가 입술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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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시지마는 문득 눈을 떴다. 품 안에 안긴 체온은 여전했지만, 왠지 모르게 잠이 깼다. 우시지마는 눈을 끔뻑이다 팔을 조심스럽게 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확인하니 3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가볍게 마른세수를 하고 숨을 내쉰 우시지마는 방을 나섰다. 제 움직임에 쿠로오까지 깨면 난감하니까. 부엌에 들러 물을 몇 모금 마신 후 우시지마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달이 꽤나 밝았다. 나온 김에 잠시 바람을 쐬고 들어갈 참이었다.
장례식 이후 제 아비는 전보다 더 자주 쿠로오를 불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던 부름은 두세 번으로 늘어났다.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인가 싶었다. 그에 쿠로오는 그다지 별 말은 하지 않았다. 넌지시 물어본 말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냥 익숙해졌다는 말 뿐이었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집안일을 해주시는 아주머니 덕에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쿠로오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원래도 그다지 살집이 있는 편이 아니었건만 몇 달 새에 쿠로오는 꽤나 수척해졌다. 먹는 것이 다른 것도 아니었는데. 좀 더 신경 써서 챙겨줬음에도 쿠로오는 쉬이 살이 붙지 않았다. 역시 제 아비 탓인가. 심장에 돌덩이가 얹힌 듯 마음이 무거웠다.
“……와카토시……?”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채 졸음을 떨쳐내지 못해 눈을 비비며 걸어오는 쿠로오에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켰다. 손을 쭉 뻗는 것에 응해 품에 안자 뺨을 부비는 행동이 귀여워 우시지마는 그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
“깨웠나?”
“응…… 와카토시 없으면 못 자겠어…….”
눈도 뜨지 못하고 제 어깨에 기대오는 머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허리를 안고 다시 마루에 걸터앉아 제 허벅지 위에 쿠로오를 앉혔다. 마주 안은 모양새라 쿠로오는 다리를 우시지마의 허리에 감고 제 허리를 단단히 앉는 팔에 흐으, 하며 웃었다. 부드럽게 머리칼을 넘겨주는 손이 따뜻해서 좋았다. 쿠로오는 눈을 반쯤 뜨고 고개를 움직여 우시지마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목덜미는 아직 따끈했다. 머리칼을 쓸어주던 손이 내려가 등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멀리 가지 않았던 졸음이 금세 다시 몰려왔다.
“나 자도 돼?”
“침대로 옮겨 주겠다.”
“와카토시만 믿을게.”
목선에 꾸욱, 눌리는 입술에 쿠로오는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맞닿은 가슴이 따뜻해서 좋았다. 잘 자라, 테츠로.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어, 학교 끝났나?”
-아직. 담임 안와서 종례도 못했어!
“저녁 먹고 싶은 거 있나? 아주머니께 말씀드려 놓겠다.”
-별로 없는데. 꽁치구이?
“알겠다. 천천히 와라.”
-응, 집에서 봐-.
우시지마는 쿠로오가 먼저 전화를 끊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늘 쿠로오보다 자신이 집에 먼저 도착하는 편이었기에 저녁 메뉴 같은 것은 저가 아주머니에게 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와카토시 왔니?”
대답이 돌아오는 것을 예상치 않은, 버릇처럼 한 인사에 답이 돌아왔다. 우시지마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마당 한 쪽에서 제 아비가 손을 흔들었다. 우시지마는 살짝 고개를 까닥이고 제 방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제 아비와의 대화는 단절되었었다. 원래 저가 그다지 말이 많은 편도 아닐뿐더러, 쿠로오의 일까지 알고 있으니 더더욱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방에 들어서 가방을 놓고 옷을 갈아입은 우시지마는 아주머니께 저녁 메뉴를 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당연히 아주머니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시지마는 보이는 큰 등짝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
“오늘 아주머니가 일이 있다고 하셔서 일찍 가셨다.”
저녁 반찬은 만들어 놓고 가셨어. 우시지마는 식탁을 훑었다. 꽁치는 내일 해달라고 해야 하나, 따위를 생각하던 우시지마는 문득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제 아비를 보았다.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우시지마는 그저 쓱 몸을 돌려 부엌을 나섰다. 아니, 그러려 했다.
“와카토시, 잠깐 얘기 좀 할까?”
저를 부르는 말에 우시지마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제 아비를 보았다. 다시 한 번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먼저 걸음을 옮기는 제 아비의 뒤통수를 보던 우시지마는 곧 걸음을 옮겼다. 어릴 때부터 잘 들어오지 않았던 아비의 서재였다. 우시지마는 방 안을 쓱 훑어보고 책상 앞에 선 제 아비를 보았다. 부정할 수 없이 저와 닮은 얼굴이었다. 한 쪽에 놓인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늦어도 30분 내로는 쿠로오가 올 것이었고, 저녁을 챙겨줘야 했다. 제 아비와 같이 소파의 등받이 뒤쪽에 걸터앉은 우시지마는 제 아비를 보았다.
“학교는 어떠니? 할만 해?”
“……괜찮습니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요.”
“테츠로는 어떻대?”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르지 않으실까요. 자주 보시지 않습니까.”
사실 그다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간 말에 아비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우시지마는 그 표정에 고개를 갸웃, 꺾었다. 말을 잘못했나, 싶었는데 아비의 표정이 다시 가다듬어졌다. 애써 웃어 보이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바로 하며 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너도 자주 안 보는데 테츠로를 어떻게 자주 봐. 그 말에 우시지마는 하, 하고 웃었다. 저가 알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나? 그렇게 저를 멍청하게 여겼었나? 아니면, 스스로가 완벽하게 숨겼을 거라 생각했었나. 우시지마는 터져 나오는 웃음에 입을 가린 채 큭큭 웃었다. 웃으면서도 가슴은 까맣게 가라앉았다. 기만도 이런 기만이 없다.
“저보다 테츠로를 더 자주 보시잖아요. 그제도 밤중에 불러내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테츠로를 범하는 거,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우시지마의 말에 아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우시지마는 웃음을 멈추고 똑같이 표정을 굳혔다. 10년 이었다. 지금 제 키에 반도 되지 않던 어린 아이를, 친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들로 들여온 자식을 범하는 추악한 짓을 10년 동안 해 왔었다. 그러면서도 앞에서는 다정한 척, 올바른 척 연기를 해온 저 모습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 우시지마는 분노로 일그러져가는 제 아비의 표정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신은 이제 울던 쿠로오를 달래주는 것 밖에 하지 못했던 일곱 살의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그렇게 자주 부르시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테츠로의 목에 그렇게 자국까지 남겨 놓으셨으면서.”
“닥쳐!”
“낮에는 아들이라 부르시면서 밤에는 테츠로에게 발정하고.”
“닥치라고!!”
“역겨워.”
왈칵, 달려들어 제 팔을 잡는 손에 우시지마는 힘껏 그 손을 뿌리쳤다. 순간 휘청인 몸은 그대로 넘어지며 쾅, 하고 책상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바닥에 쓰러졌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액자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우시지마는 눈을 치켜뜬 채 바닥에 쓰러져 미동조차 없는 제 아비를 내려다보았다. 흔한 비명 소리 하나 없었다. 밖에서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카토시!!”
문이 벌컥, 열리며 얼굴이 파랗게 질린 쿠로오가 뛰어 들어왔다. 우시지마는 여전히 커다랗게 치켜 뜬 눈으로 아비를 보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쿠로오를 보았다. 쿠로오 역시 바닥에 쓰러진 아비를 보다 우시지마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와락 서로를 껴안았다. 쿠로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시지마의 양 뺨을 쥐었다.
“지, 집에, 왔는데, 큰 소리가 나서. 괜찮아? 다친데 없어?”
우시지마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상처가 있는 지 확인했다. 몸에 상처가 없음을 전부 확인하고 나서야 쿠로오는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우시지마를 꽉 껴안았다.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마주 안고 자신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간신히 트며 헐떡였다. 쿠로오는 제 등을 안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 다는 것을 깨달았다.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어깨 너머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몸뚱이를 보며 우시지마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천천히 가빴던 호흡이 진정되어갔다. 호흡이 완전히 진정되자 쿠로오는 몸을 떼고 우시지마의 뺨을 쥐어 시선을 맞췄다.
“내가, 내가 했다고 할게.”
“테츠로, 네가 왜…….”
“나는 당한 게 있잖아. 내가 했다고 하면, 죄가 크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테츠로.”
쿠로오는 제 입술에 겹쳐지는 것에 말을 멈췄다. 손목을 쥔 손이 부드럽게 제 손을 내렸다. 입술이 떨어지고, 우시지마는 다시 쿠로오를 품에 안았다. 너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 속삭이는 소리에 쿠로오는 그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도. 옷깃을 움켜쥔 손이 잘게 떨렸다.
“테츠로.”
“응.”
“아버지는 혼자 미끄러져 죽은 걸로 하자.”
“뭐?”
“너에게 나대신 죗값을 치르게 할 생각도 없고, 너를 두고 감옥에 갈 생각도 없다.”
큰 소리가 나서 달려와 보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 그런 걸로 하자. 쿠로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깨 너머 차갑게 식어가는 몸뚱이를 보다 우시지마를 꽉 끌어안았다. 이제 너를 괴롭게 할 사람은 없다, 테츠로. 마지막 말에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어깨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응. 내뱉어진 말에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안은 채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신호는 길지 않았다.
“저희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우시지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익숙한 머리꼭지에 우시지마는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 서자 퍼뜩, 고개를 드는 것에 우시지마는 손을 내밀었다. 가자. 그 말에 마주 잡아오는 손은 긴장한 탓인지 조금쯤 차가웠다. 우시지마는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제 뒤에 서 있던 경찰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경찰서를 나와서도 둘은 말이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나서야 쿠로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시지마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직은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택시에서 내린 둘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우시지마의 방으로 들어섰다. 둘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와락 끌어안았다.
“다 끝났다.”
“……어. 엄청 긴장했어.”
“고생 시켜서 미안하다.”
“아냐. 와카토시가 나 구해준거지.”
저를 보며 씩 웃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마주 웃었다. 이제 널 괴롭힐 사람은 없다. 뺨을 쓰다듬으며 하는 말에 쿠로오는 그 손을 잡아 눌렀다. 나른하게 눈이 내리 감기자 우시지마는 다른 손으로 쿠로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쿠로오의 눈이 슬쩍 뜨였다.
“솔직히 좀 무서운데.”
“응.”
“와카토시랑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아.”
사랑해. 제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속삭이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한다, 테츠로. 창문을 타고 들어온 노을빛이 온통 방 안을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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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로오의 몸은 생각보다 빨리 나았다. 부러진 다리는 아직 깁스를 하고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퇴원을 한 날부터, 쿠로오는 자연스럽게 우시지마의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등교하는 것, 점심시간, 하교할 때, 집에 돌아와 씻고 잠이 들 때까지 우시지마가 도와주어, 생각보다 생활은 불편하지 않았다.
쿠로오는 침대 바닥에 앉아 제 머리를 털어주는 우시지마의 손길을 몽롱한 기분으로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움직임에 제약이 있어 피곤함이 있던 터라 씻고 나오니 노곤함이 더했다. 꾸벅, 고개가 떨어지자 우시지마는 물기를 털어주던 것을 멈추고 쿠로오의 턱을 틀어 뺨에 입술을 눌렀다. 퍼뜩 눈을 뜬 쿠로오는 흐흫 웃으며 우시지마를 살짝 밀어냈다. 우시지마는 순순히 밀려나며 쿠로오의 팔 아래로 손을 넣어 쿠로오를 침대 위에 앉혔다. 하품을 한 쿠로오는 눈을 비비적거리다 우시지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졸려.”
“이만 자자.”
쿠로오를 품에서 떼어 먼저 눕힌 후 불을 끈 우시지마는 제 쪽으로 뻗는 손등에 입을 맞추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그 몸을 안았다. 병원에서 매일 간호를 했던 터라 말랐던 몸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우시지마는 살이 좀 오른 허리를 살살 매만졌다. 간지럽다고 꿈틀거린 쿠로오는 손이 떨어지지 않자 고개를 들어 저를 내려다보는 우시지마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괴롭히지 마세요, 와카토시 군. 이를 드러내며 킥킥 웃는 얼굴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우시지마는 마주 웃으며 도장을 찍듯 꾹, 입술을 눌렀다 뗐다.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며 품에 파고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몸을 데워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른해졌다. 내일이면 깁스를 풀게 되었다. 쿠로오는 석고 탓에 무거운 다리를 턱, 하고 우시지마의 위로 올렸다.
“무겁다.”
“흐흐, 내일이면 맨다리 된다.”
“좋은가?”
“그럼, 좋지. 내 맘대로 걸을 수 있잖아.”
“그렇게 말하면 좀 서운해진다.”
머리를 벅벅 쓰다듬는 손에 쿠로오는 키득키득 웃었다. 빨리 나아야 와카토시도 마음대로 해보고 그러지. 휘어지는 눈에 우시지마는 눈을 굴리다 그저 쿠로오의 뒤통수를 꾹 눌렀다. 얼른 자라. 쿠로오는 눌리는 뺨에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가 그저 눈을 감고 웃었다. 가슴팍에 눌린 뺨이 따끈했다.
우시지마는 문득 잠에서 깼다. 품에 있어야 할 쿠로오가 없어,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켜 머리맡의 탁상 등을 켰다. 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보았지만 온기는 없었다. 언제 나간거지. 우시지마는 마른세수를 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편히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득 밖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시지마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하아. 낮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시지마는 문을 열었다. 엇, 하며 저를 보는 쿠로오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요즘은 피지 않는 것 같더니 다시 피는 모양이었다. 우시지마는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왜 일어났어? 더 자지.”
“그냥 눈이 떠졌다.”
제 어깨에 기대오는 머리가 편하도록 좀 더 몸을 움직이자 거의 몸 전체를 기대왔다. 우시지마는 그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씻고 온 듯 진한 바디워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우시지마는 목덜미에 남은 자국을 발견하고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쿠로오가 깁스를 푼 지 고작 한 달 만이었다. 쿠로오가 기절할 때까지 패놓고 뻔뻔스럽게도 다시 쿠로오를 불러들이는 것이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눌렀다. 쪽쪽 얼굴에 내려앉는 입맞춤에 쿠로오는 낄낄 웃으며 우시지마를 밀어냈다.
“나 담배 안 껐어, 데여.”
“괜찮다.”
“내가 안 괜찮아. 어휴, 우리 와카 짱 때문에 담배도 못 피우겠네.”
쿠로오는 결국 담배를 비벼 끄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먼저 앉은 쿠로오는 씩 웃으며 팡팡 제 옆을 두드렸다. 자기, 이리 와봐. 목소리 톤이 벌써부터 장난기가 가득했다. 우시지마는 마주 씩 웃으며 그 앞에 섰다. 손이 뻗어져 허리를 숙이자, 팔이 익숙하게 목덜미에 둘러졌다. 침대 위에 무릎을 올리자 자연스레 뒤로 넘어가는 몸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위로 올라탄 모양새가 되었다. 짧게 입술이 닿았다. 짧게나마 피웠던 담배 탓에 입술이 조금쯤 썼다. 우시지마는 입술을 핥고 쿠로오의 머리칼을 위로 쓸어 올리며 다시 입술을 겹쳤다. 입술이 겹쳐지자마자 벌어져 혀가 섞였다. 양치를 과하게 한 듯 입안의 표피가 조금씩 벗겨져 있었다. 우시지마는 슬쩍 눈을 뜨며 고개를 틀었다. 눈을 꼭 감은 모양새가 귀여웠다. 우시지마는 입술을 떼고 이마를 맞댔다.
“하아, 와카토시…….”
“테츠로.”
우시지마는 다시 쿠로오의 얼굴에 입을 쪽쪽 맞춰댔다. 나른하게 입맞춤을 받던 쿠로오는 물끄러미 우시지마를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문득 우시지마는 뽀뽀를 멈추고 쿠로오를 보았다. 키스 탓에 조금쯤 열이 오른 얼굴이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엽다 따위를 생각하던 우시지마는 저를 살짝 밀어내는 손에 몸을 일으켰다. 쿠로오를 덮친 자세였던 탓에 상체를 일으키자 그 위에 앉은 모양새였다. 우시지마는 조금쯤 흐트러진 쿠로오를 내려다보았다.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곧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그래도 쿠로오는 안 되었고, 된다고 해도 오늘은 아니었다. 쿠로오를 품에 안고 침대에 누운 우시지마는 등을 끄려 손을 뻗었다. 갑자기 턱, 팔을 잡는 손에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내려다보았다.
“그, 저기.”
“?”
“혹시, 섰으면.”
나, 괜찮은데. 고개를 숙였건만 보이는 귀 끝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우시지마는 그 머리꼭지를 보며 눈을 깜빡이다 쿠로오의 턱을 잡고 시선을 맞췄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시선을 피했다. 어, 저기, 그러니까. 더듬더듬 말을 뱉는 입술을 다시 한 번 집어 삼킨 우시지마는 숨이 부족해진 쿠로오가 제 팔을 탁탁 칠 때 즈음에야 겨우 입술을 떼었다. 쿠로오는 눈을 내리 깔고 우시지마의 손목을 쥘 뿐이었다.
“싫으면 지금 싫다고 해라.”
“나, 난 좋아. 하고 싶어, 너랑.”
“무서우면 멈출 테니까.”
다정하게 눈꺼풀에 내려앉는 입술에 쿠로오는 눈을 찔끔, 감았다가 우시지마를 보았다. 서로의 얼굴이 붉었다. 쿠로오는 터지는 웃음을 막지 않고 킥킥 웃었다. 양 뺨을 감싸 쥐고 쪽, 짧게 입을 맞춘 쿠로오는 제 허리를 잡은 채 저를 보는 우시지마를 보며 웃었다. 다정하게 해줘. 속삭이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쿠로오는 제 옷깃을 만져주는 우시지마를 물끄러미 보았다. 저랑은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우시지마는 낯설었다. 됐다. 손이 떨어지자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품에 푹, 안겨들었다. 마주 안아준 우시지마는 그 등을 토닥여주었다. 초, 중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떨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쿠로오의 성적이 좋지 못해서 저가 쿠로오에게 맞추려고 했지만 부모와 담임의 성화에 못 이겨 넣었던 상위권 학교에 턱하니 붙어버렸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목덜미에 쪽, 입을 맞추고 쿠로오를 품에서 떼어냈다. 울상인 표정은 간만이었다.
“와카토시 보고 싶음 어떡하지?”
“수업 끝나면 데리러 가겠다.”
“완전 반대 방향이잖아. 그냥 집에서 보자.”
한숨을 푹, 내쉰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목덜미를 안고 입술에 짧게 뽀뽀했다. 바람피우지 말고, 어? 으름장 놓듯 하는 말에 우시지마는 피식 웃으며 화답하듯 쿠로오의 입술에 똑같이 뽀뽀했다. 너야말로. 그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쿠로오는 곧 목덜미를 끌어안았던 팔을 풀었다. 제 학교가 좀 더 멀어서 우시지마보다 빨리 나가야 했건만, 우시지마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저가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새삼스럽게 우시지마를 보던 쿠로오는 눈에 물음표를 달고 저를 쳐다보는 것에 곧 씩 웃으며 우시지마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와카 짱 전화 잘 받고, 답장 잘 하고.”
“너나 휴대전화 잘 들고 다녀라.”
“잘 갔다 와.”
휘휘 흔들리는 손이 내려가고 몸을 돌리는 것까지 확인한 우시지마는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 사실 걱정이 되지 않는 다면 거짓말이었다. 그 동안은 반은 달랐어도 점심시간마다 얼굴을 봤기 때문에 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예 같은 건물 내에 있지도 않았다. 우시지마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에서 가고 있는 이의 모습은 뒤통수 여야 했는데, 멀찍이에서도 얼굴이 보였다. 손이 번쩍 들려 휙휙 휘저어졌다. 우시지마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손을 마주 흔들었다. 조금쯤은, 마음이 놓였다.
쿠로오는 제 담임이 하는 소리에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제 안색을 살피는 눈에 쿠로오는 그저 다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봐. 조심스레 하는 말에 쿠로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실에서 가방을 챙겨 나왔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려던 쿠로오는 한 발 앞서 울리는 진동에 잽싸게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늘 보는 이름이었다. 쿠로오는 가방을 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와카토시.”
-들었나?
“어, 지금 막 가방 챙겨서 나왔어.”
-괜찮나.
“나 엄마랑 사이 별로였던 거 알잖아.”
-학교 앞이다. 나와라.
“헐 와카 짱 마중 나왔어?”
쿠로오는 현관으로 한 걸음에 내달려 교문 쪽을 확인했다. 그 며칠 새 눈에 익은 교복이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쿠로오는 성큼성큼 발을 내딛어 빠르게 교문에 도착했다. 보자마자 와락 저를 끌어안는 팔에 쿠로오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마주 안았다. 사인이 뭐래?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심근경색.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품에서 나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옷 갈아입어야 하지. 우시지마는 그 옆에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먼저 하고 계신다.”
“그럼 좀 천천히 가도 되려나.”
쿠로오는 몸을 쭉 피며 기지개를 폈다. 우시지마는 그런 쿠로오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었나?”
“뭘?”
“어머니가 너랑 아버지 일 알고 있다는 거.”
“어, 초등학생 때 알았어. 엄마가 우시지마 상한테 말하는 거 들었거든.”
“뭐라 하셨나?”
깍지를 껴오는 손을 꾹 잡으며 쿠로오는 우시지마를 돌아보았다. 드물게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부모의 이야기만 나오면 쿠로오는 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걸음이 늦춰졌다. 테츠로랑 자는 게 그렇게 좋냐, 나하고도 자자, 질투난다. 어느 새 둘은 멈춘 채였다. 쿠르릉, 아까부터 어둡던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우시지마는 저를 보는 시선에 매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쿠로오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꺾였다. 엄마는 가난한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라, 알면서도 모른 척 했을 거야. 곧 쿠로오는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근데 와카토시 있으니까 괜찮아.”
얼른 가자. 저를 이끄는 손에 우시지마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라 부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괜찮았건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사랑한다, 테츠로. 작게 속삭인 소리에 쿠로오는 씩 웃으며 우시지마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나도. 쿠로오는 대답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 탓에 낮은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 같았다. 번쩍, 번개가 치며 다시 한 번 천둥이 울렸다.
갑작스러웠던 죽음 탓에 장례식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쿠로오는 건물의 한 쪽 구석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낮던 하늘은 저와 우시지마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비를 퍼부었다. 아비가 하라는 대로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저녁이 다되어갔다. 쿠로오는 연기를 길게 뱉어냈다. 아주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 이었다. 그냥, 아침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쿠로오는 저쪽에서 걸어오는 이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안 보여서 찾았다.”
“담배 피러 간다고 말 했는데.”
“바빠서 못 들었나 보다.”
“우리 엄만데 네가 생일 빠르다고 너만 바빠.”
킥킥 웃으며 하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우산을 접으며 그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쏟아진다. 쿠로오는 담배를 끄고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저가 뱉어낸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눅눅한 옷에 금세 냄새가 밸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옆에 똑같이 앉아 그 얼굴을 보았다. 저에게 아까 그 말을 하고 난 이후 쭉 쿠로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멍하니 바닥에 떨어지던 빗방울을 보던 쿠로오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둘의 시선이 부딪혔다.
“테츠로 군-.”
저를 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키려던 쿠로오는 제 팔을 잡는 손에 우시지마를 돌아보았다. 차에 가려 잘 안 보인다. 작게 속삭인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턱을 잡고 살짝 입을 맞춘 후 몸을 일으켰다. 좀 더 쉬다 와라. 그렇게 말한 우시지마는 우산을 펼치고 걸음을 옮겼다. 쿠로오는 고개를 쭉 빼 우시지마와 그 옆에 나란히 걷는 아비를 보았다. 체격부터 시작해서 닮기는 진짜 닮았다. 쿠로오는 턱을 괴며 담배 하나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봤자 와카토시가 더 잘생기긴 했지만. 찰칵, 불을 당기며 쿠로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음이 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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