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의 몸은 생각보다 빨리 나았다. 부러진 다리는 아직 깁스를 하고 있긴 했지만 그럭저럭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퇴원을 한 날부터, 쿠로오는 자연스럽게 우시지마의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갈아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등교하는 것, 점심시간, 하교할 때, 집에 돌아와 씻고 잠이 들 때까지 우시지마가 도와주어, 생각보다 생활은 불편하지 않았다.
쿠로오는 침대 바닥에 앉아 제 머리를 털어주는 우시지마의 손길을 몽롱한 기분으로 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움직임에 제약이 있어 피곤함이 있던 터라 씻고 나오니 노곤함이 더했다. 꾸벅, 고개가 떨어지자 우시지마는 물기를 털어주던 것을 멈추고 쿠로오의 턱을 틀어 뺨에 입술을 눌렀다. 퍼뜩 눈을 뜬 쿠로오는 흐흫 웃으며 우시지마를 살짝 밀어냈다. 우시지마는 순순히 밀려나며 쿠로오의 팔 아래로 손을 넣어 쿠로오를 침대 위에 앉혔다. 하품을 한 쿠로오는 눈을 비비적거리다 우시지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졸려.”
“이만 자자.”
쿠로오를 품에서 떼어 먼저 눕힌 후 불을 끈 우시지마는 제 쪽으로 뻗는 손등에 입을 맞추고 그대로 침대에 누워 그 몸을 안았다. 병원에서 매일 간호를 했던 터라 말랐던 몸은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우시지마는 살이 좀 오른 허리를 살살 매만졌다. 간지럽다고 꿈틀거린 쿠로오는 손이 떨어지지 않자 고개를 들어 저를 내려다보는 우시지마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괴롭히지 마세요, 와카토시 군. 이를 드러내며 킥킥 웃는 얼굴에는 당해내지 못했다. 우시지마는 마주 웃으며 도장을 찍듯 꾹, 입술을 눌렀다 뗐다.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가슴팍에 이마를 기대며 품에 파고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몸을 데워주는 것 같아 기분이 나른해졌다. 내일이면 깁스를 풀게 되었다. 쿠로오는 석고 탓에 무거운 다리를 턱, 하고 우시지마의 위로 올렸다.
“무겁다.”
“흐흐, 내일이면 맨다리 된다.”
“좋은가?”
“그럼, 좋지. 내 맘대로 걸을 수 있잖아.”
“그렇게 말하면 좀 서운해진다.”
머리를 벅벅 쓰다듬는 손에 쿠로오는 키득키득 웃었다. 빨리 나아야 와카토시도 마음대로 해보고 그러지. 휘어지는 눈에 우시지마는 눈을 굴리다 그저 쿠로오의 뒤통수를 꾹 눌렀다. 얼른 자라. 쿠로오는 눌리는 뺨에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가 그저 눈을 감고 웃었다. 가슴팍에 눌린 뺨이 따끈했다.
우시지마는 문득 잠에서 깼다. 품에 있어야 할 쿠로오가 없어,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켜 머리맡의 탁상 등을 켰다. 이불 아래로 손을 넣어보았지만 온기는 없었다. 언제 나간거지. 우시지마는 마른세수를 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편히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문득 밖에서 찰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시지마는 침대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갔다. 하아. 낮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시지마는 문을 열었다. 엇, 하며 저를 보는 쿠로오의 손에는 담배가 들려있었다. 요즘은 피지 않는 것 같더니 다시 피는 모양이었다. 우시지마는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왜 일어났어? 더 자지.”
“그냥 눈이 떠졌다.”
제 어깨에 기대오는 머리가 편하도록 좀 더 몸을 움직이자 거의 몸 전체를 기대왔다. 우시지마는 그 허리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를 묻었다. 씻고 온 듯 진한 바디워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우시지마는 목덜미에 남은 자국을 발견하고 눈을 반쯤 내리깔았다. 쿠로오가 깁스를 푼 지 고작 한 달 만이었다. 쿠로오가 기절할 때까지 패놓고 뻔뻔스럽게도 다시 쿠로오를 불러들이는 것이 징그러울 지경이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눌렀다. 쪽쪽 얼굴에 내려앉는 입맞춤에 쿠로오는 낄낄 웃으며 우시지마를 밀어냈다.
“나 담배 안 껐어, 데여.”
“괜찮다.”
“내가 안 괜찮아. 어휴, 우리 와카 짱 때문에 담배도 못 피우겠네.”
쿠로오는 결국 담배를 비벼 끄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먼저 앉은 쿠로오는 씩 웃으며 팡팡 제 옆을 두드렸다. 자기, 이리 와봐. 목소리 톤이 벌써부터 장난기가 가득했다. 우시지마는 마주 씩 웃으며 그 앞에 섰다. 손이 뻗어져 허리를 숙이자, 팔이 익숙하게 목덜미에 둘러졌다. 침대 위에 무릎을 올리자 자연스레 뒤로 넘어가는 몸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위로 올라탄 모양새가 되었다. 짧게 입술이 닿았다. 짧게나마 피웠던 담배 탓에 입술이 조금쯤 썼다. 우시지마는 입술을 핥고 쿠로오의 머리칼을 위로 쓸어 올리며 다시 입술을 겹쳤다. 입술이 겹쳐지자마자 벌어져 혀가 섞였다. 양치를 과하게 한 듯 입안의 표피가 조금씩 벗겨져 있었다. 우시지마는 슬쩍 눈을 뜨며 고개를 틀었다. 눈을 꼭 감은 모양새가 귀여웠다. 우시지마는 입술을 떼고 이마를 맞댔다.
“하아, 와카토시…….”
“테츠로.”
우시지마는 다시 쿠로오의 얼굴에 입을 쪽쪽 맞춰댔다. 나른하게 입맞춤을 받던 쿠로오는 물끄러미 우시지마를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문득 우시지마는 뽀뽀를 멈추고 쿠로오를 보았다. 키스 탓에 조금쯤 열이 오른 얼굴이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엽다 따위를 생각하던 우시지마는 저를 살짝 밀어내는 손에 몸을 일으켰다. 쿠로오를 덮친 자세였던 탓에 상체를 일으키자 그 위에 앉은 모양새였다. 우시지마는 조금쯤 흐트러진 쿠로오를 내려다보았다.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곧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그래도 쿠로오는 안 되었고, 된다고 해도 오늘은 아니었다. 쿠로오를 품에 안고 침대에 누운 우시지마는 등을 끄려 손을 뻗었다. 갑자기 턱, 팔을 잡는 손에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내려다보았다.
“그, 저기.”
“?”
“혹시, 섰으면.”
나, 괜찮은데. 고개를 숙였건만 보이는 귀 끝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우시지마는 그 머리꼭지를 보며 눈을 깜빡이다 쿠로오의 턱을 잡고 시선을 맞췄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시선을 피했다. 어, 저기, 그러니까. 더듬더듬 말을 뱉는 입술을 다시 한 번 집어 삼킨 우시지마는 숨이 부족해진 쿠로오가 제 팔을 탁탁 칠 때 즈음에야 겨우 입술을 떼었다. 쿠로오는 눈을 내리 깔고 우시지마의 손목을 쥘 뿐이었다.
“싫으면 지금 싫다고 해라.”
“나, 난 좋아. 하고 싶어, 너랑.”
“무서우면 멈출 테니까.”
다정하게 눈꺼풀에 내려앉는 입술에 쿠로오는 눈을 찔끔, 감았다가 우시지마를 보았다. 서로의 얼굴이 붉었다. 쿠로오는 터지는 웃음을 막지 않고 킥킥 웃었다. 양 뺨을 감싸 쥐고 쪽, 짧게 입을 맞춘 쿠로오는 제 허리를 잡은 채 저를 보는 우시지마를 보며 웃었다. 다정하게 해줘. 속삭이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쿠로오는 제 옷깃을 만져주는 우시지마를 물끄러미 보았다. 저랑은 다른 교복을 입고 있는 우시지마는 낯설었다. 됐다. 손이 떨어지자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품에 푹, 안겨들었다. 마주 안아준 우시지마는 그 등을 토닥여주었다. 초, 중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떨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쿠로오의 성적이 좋지 못해서 저가 쿠로오에게 맞추려고 했지만 부모와 담임의 성화에 못 이겨 넣었던 상위권 학교에 턱하니 붙어버렸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목덜미에 쪽, 입을 맞추고 쿠로오를 품에서 떼어냈다. 울상인 표정은 간만이었다.
“와카토시 보고 싶음 어떡하지?”
“수업 끝나면 데리러 가겠다.”
“완전 반대 방향이잖아. 그냥 집에서 보자.”
한숨을 푹, 내쉰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목덜미를 안고 입술에 짧게 뽀뽀했다. 바람피우지 말고, 어? 으름장 놓듯 하는 말에 우시지마는 피식 웃으며 화답하듯 쿠로오의 입술에 똑같이 뽀뽀했다. 너야말로. 그 눈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쿠로오는 곧 목덜미를 끌어안았던 팔을 풀었다. 제 학교가 좀 더 멀어서 우시지마보다 빨리 나가야 했건만, 우시지마는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저가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새삼스럽게 우시지마를 보던 쿠로오는 눈에 물음표를 달고 저를 쳐다보는 것에 곧 씩 웃으며 우시지마의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와카 짱 전화 잘 받고, 답장 잘 하고.”
“너나 휴대전화 잘 들고 다녀라.”
“잘 갔다 와.”
휘휘 흔들리는 손이 내려가고 몸을 돌리는 것까지 확인한 우시지마는 그제야 걸음을 옮겼다. 사실 걱정이 되지 않는 다면 거짓말이었다. 그 동안은 반은 달랐어도 점심시간마다 얼굴을 봤기 때문에 떨어져 있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예 같은 건물 내에 있지도 않았다. 우시지마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에서 가고 있는 이의 모습은 뒤통수 여야 했는데, 멀찍이에서도 얼굴이 보였다. 손이 번쩍 들려 휙휙 휘저어졌다. 우시지마는 어쩔 수 없이 웃으며 손을 마주 흔들었다. 조금쯤은, 마음이 놓였다.
쿠로오는 제 담임이 하는 소리에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제 안색을 살피는 눈에 쿠로오는 그저 다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봐. 조심스레 하는 말에 쿠로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교실에서 가방을 챙겨 나왔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려던 쿠로오는 한 발 앞서 울리는 진동에 잽싸게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늘 보는 이름이었다. 쿠로오는 가방을 매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응, 와카토시.”
-들었나?
“어, 지금 막 가방 챙겨서 나왔어.”
-괜찮나.
“나 엄마랑 사이 별로였던 거 알잖아.”
-학교 앞이다. 나와라.
“헐 와카 짱 마중 나왔어?”
쿠로오는 현관으로 한 걸음에 내달려 교문 쪽을 확인했다. 그 며칠 새 눈에 익은 교복이 교문 앞에 서 있었다. 쿠로오는 성큼성큼 발을 내딛어 빠르게 교문에 도착했다. 보자마자 와락 저를 끌어안는 팔에 쿠로오는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마주 안았다. 사인이 뭐래? 작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심근경색.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품에서 나와 먼저 걸음을 옮겼다. 옷 갈아입어야 하지. 우시지마는 그 옆에 나란히 서서 걸음을 옮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먼저 하고 계신다.”
“그럼 좀 천천히 가도 되려나.”
쿠로오는 몸을 쭉 피며 기지개를 폈다. 우시지마는 그런 쿠로오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었나?”
“뭘?”
“어머니가 너랑 아버지 일 알고 있다는 거.”
“어, 초등학생 때 알았어. 엄마가 우시지마 상한테 말하는 거 들었거든.”
“뭐라 하셨나?”
깍지를 껴오는 손을 꾹 잡으며 쿠로오는 우시지마를 돌아보았다. 드물게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부모의 이야기만 나오면 쿠로오는 늘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걸음이 늦춰졌다. 테츠로랑 자는 게 그렇게 좋냐, 나하고도 자자, 질투난다. 어느 새 둘은 멈춘 채였다. 쿠르릉, 아까부터 어둡던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우시지마는 저를 보는 시선에 매여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쿠로오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꺾였다. 엄마는 가난한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사람이라, 알면서도 모른 척 했을 거야. 곧 쿠로오는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근데 와카토시 있으니까 괜찮아.”
얼른 가자. 저를 이끄는 손에 우시지마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머니라 부르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음에도 괜찮았건만 지금은 아니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사랑한다, 테츠로. 작게 속삭인 소리에 쿠로오는 씩 웃으며 우시지마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댔다. 나도. 쿠로오는 대답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구름 탓에 낮은 하늘이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 같았다. 번쩍, 번개가 치며 다시 한 번 천둥이 울렸다.
갑작스러웠던 죽음 탓에 장례식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쿠로오는 건물의 한 쪽 구석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낼 듯 낮던 하늘은 저와 우시지마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비를 퍼부었다. 아비가 하라는 대로 이것저것을 하다 보니 시간은 벌써 저녁이 다되어갔다. 쿠로오는 연기를 길게 뱉어냈다. 아주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 이었다. 그냥, 아침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잘 와 닿지 않았다. 쿠로오는 저쪽에서 걸어오는 이를 발견하고 고개를 들었다.
“안 보여서 찾았다.”
“담배 피러 간다고 말 했는데.”
“바빠서 못 들었나 보다.”
“우리 엄만데 네가 생일 빠르다고 너만 바빠.”
킥킥 웃으며 하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우산을 접으며 그 옆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쏟아진다. 쿠로오는 담배를 끄고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저가 뱉어낸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눅눅한 옷에 금세 냄새가 밸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옆에 똑같이 앉아 그 얼굴을 보았다. 저에게 아까 그 말을 하고 난 이후 쭉 쿠로오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멍하니 바닥에 떨어지던 빗방울을 보던 쿠로오는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둘의 시선이 부딪혔다.
“테츠로 군-.”
저를 부르는 소리에 몸을 일으키려던 쿠로오는 제 팔을 잡는 손에 우시지마를 돌아보았다. 차에 가려 잘 안 보인다. 작게 속삭인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턱을 잡고 살짝 입을 맞춘 후 몸을 일으켰다. 좀 더 쉬다 와라. 그렇게 말한 우시지마는 우산을 펼치고 걸음을 옮겼다. 쿠로오는 고개를 쭉 빼 우시지마와 그 옆에 나란히 걷는 아비를 보았다. 체격부터 시작해서 닮기는 진짜 닮았다. 쿠로오는 턱을 괴며 담배 하나를 더 꺼내 입에 물었다. 그래봤자 와카토시가 더 잘생기긴 했지만. 찰칵, 불을 당기며 쿠로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음이 심란했다.
'HQ > 장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시쿠로] 그믐달 完 (0) | 2015.12.19 |
---|---|
[우시쿠로] 그믐달 2 (0) | 2015.12.16 |
[우시쿠로] 그믐달 1 (0) | 2015.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