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쿠로오를 그런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 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단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더 이상 쿠로오를 마냥 보듬어주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쿠로오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제 아비의 잘못으로 속죄해야할 자신이 아비와 똑같은 눈으로 쿠로오를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스스로를 혐오스럽게 했다. 제 아비의 괴물같이 끔찍한 성욕을 모두 받고 오는 날이면 쿠로오는 자신의 품에서 잠이 들고, 자신은 잠들기 직전까지 속으로 제 아비의 잘못을 빌었던 그 과정에 어느 새 다른 감정이 섞여들었다. 품에 안긴 마른 몸에 사랑을 속삭이고 입을 맞추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 자신은 끔찍한 자기혐오에 빠져들었다. 들키면 안 된다. 어느 날인지도 모를 새벽, 거의 말라가는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들키면 제 아비를 보는 그 눈으로 자신을 볼 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 눈빛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몰래 그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둑 키스였다.
쿠로오는 서늘한 기분에 눈을 떴다. 이불이 목 끝까지 덮여있긴 했지만 침대 위엔 혼자였다. 쿠로오는 멍하니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비볐다. 늘 저가 깨어날 때까지 팔베개를 해주던 우시지마가 없었다. 쿠로오는 반쯤 몽롱한 채로 침대 밖으로 몸을 내었다. 둔한 서늘함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토독, 톡 하고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쿠로오는 여전히 잠에 취한 채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비 오네. 쩍 하니 하품을 한 쿠로오는 몸을 일으켜 비척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싸늘한 바람이 훅 밀려들어 쿠로오는 소름이 돋은 팔을 쓰다듬었다. 추운데 와카토시는 어딜 간 거야.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던 쿠로오는 부엌에 들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테츠로 일어났니?”
“……어.”
물병을 꺼낸 쿠로오는 제 옆에 선 제 어미를 흘긋, 보고 고개를 돌렸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툭하니 튀어나온 말에도 어미의 입은 꾹 다물렸다.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물병을 냉장고에 넣은 쿠로오는 뻗친 머리를 긁으며 부엌을 빠져나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우시지마가 없는 것부터 기분이 나빴건만, 오늘은 잘 풀리는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다시 제 방이 아닌 우시지마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묻었다. 아직 남은 온기가 기분을 조금쯤 풀어주는 것 같았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쿠로오는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커다란 손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아직 자나.”
“……안 자.”
“밥은 먹고 자라.”
“와카토시.”
몸을 돌리자 저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보였다. 손을 뻗자 허리를 숙여주는 것에 쿠로오는 킥킥 웃으며 그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나 추워. 어리광부리듯 중얼거리자 등허리를 쓸어내린 손이 곧 저를 떼어냈다. 쿠로오는 몸을 일으켜 앞장 서 방을 나서는 우시지마의 등을 보았다. 조금쯤 풀렸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한참을 제 어리광을 받아줬을 터였다. 그 등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쿠로오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우시지마는 고개를 돌려 몇 걸음 뒤에 멈춰있는 쿠로오를 보았다. 나 입맛 없어, 안 먹을래. 툭 말을 뱉어낸 쿠로오는 발을 돌려 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테츠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쿠로오는 푹 한숨을 내쉬며 제 방에 들어서 문을 닫았다. 기분이 나빴다.
“너 무슨 일 있냐?”
“왜.”
“요즘 저기압인 것 같아서.”
쿠로오는 제 옆에서 말을 거는 이를 쓱 훑어보고 그 손에 들린 라이터를 빼앗아 들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확실히 요즘 쳐져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원인인 이가 원래대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자신 또한 똑같이 저기압 일 수밖에 없었다. 여친이랑 잘 안되냐? 똑같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뻐끔거리며 연기를 뱉어내며 하는 말에 쿠로오는 인상을 썼다. 내가 여친이 어디 있어, 새끼야. 쿠로오의 말에 되래 놀란 것은 상대였다. 너 여친 없어? 당연히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는 투에 쿠로오는 자신이 애인이 있을 법한 행동을 했나 기억을 더듬었다. 폰을 자주 만진 것도 아니고, 반지를 끼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는 듯 상대를 돌아보자 상대의 손이 덥썩, 와이셔츠의 깃을 잡아 당겼다.
“새끼야, 키스마크 달고 다니면서 뭔 여친이 없어. 섹파냐?”
“……아.”
쿠로오는 조금쯤 떨려오는 손으로 제 와이셔츠를 잡은 상대의 손을 털어냈다. 그냥, 그럴 일이 있어. 쿠로오는 고개를 돌리며 목을 가렸다. 진짜 섹파야? 부러운 새끼. 그 후로 하는 말에 귀에 들리지 않았다. 쿠로오는 덜덜 떨려오는 손을 애써 주먹을 쥐어 막았다. 꽤나 길었던 담배를 비벼 끈 쿠로오는 몸을 돌렸다. 야, 너 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채 쿠로오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위로가 필요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달래주는 위로가 아닌, 진심으로 저를 보듬어주는 품이 당장 필요했다. 쿠로오는 교실 안으로 들어서 무작정 자리에 앉아있는 우시지마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테츠로?”
“잠깐만.”
금세 이끌려 올 것이라 생각했건만 우시지마는 되려 쿠로오의 팔뚝을 잡았다. 늘 제 눈을 똑바로 보던 시선은 전혀 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지금 할 일이 있다, 못 갈 것 같은데. 그 말에 우시지마의 손목을 잡았던 쿠로오의 손이 뚝, 떨어졌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쿠로오는 손으로 눈을 덮고 숨을 골랐다. 토악질이 치밀어오를 것 같았다. 테츠로? 제 어깨에 닿으려는 손에 쿠로오는 그 손을 피하며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너, 요즘, 이상해.”
토악질 대신 조각난 말을 토해낸 쿠로오는 그대로 몸을 돌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문을 걸어 잠글 새도 없이 점심에 먹은 것들을 죄 토해냈다. 숨 고를 새도 없이 연신 구역질을 해댄 쿠로오는 변기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손끝이 시렸다. 어느 순간부터 울지 않게 된지 몰랐다. 지금 당장 울며 소리 치고 싶은데,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쿠로오는 간신히 멈춘 구역질에 숨을 고르며 뚜껑을 덮고 물을 내렸다. 수업 종이 친 지 오래였다. 세면대에서 입을 헹군 쿠로오는 다시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교실 안을 창문 너머로 훑었다. 종례시간 내내 비어있던 쿠로오의 자리에는 가방만은 남아 있었다. 아까 교실에 찾아왔던 쿠로오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저가 거부하자 저를 피했던 몸짓에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힘들어 보였는데, 말을 들어줄 걸 그랬나. 그래봤자 뒤늦은 후회였다. 문자도 보내보고 전화도 몇 번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우시지마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쿠로오와 어울리는 것을 몇 번 보았던 이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엉?”
“테츠로 어디 있는지 아나?”
“아니. 아까 점심시간 이후로 못 봤는데.”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오의 자리에 걸린 가방을 연 우시지마는 가방 안에 휴대전화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니 답이 없지. 책상 위에 놓인 것을 대충 가방 안에 쓸어 담고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표정이 그런 표정이라 더더욱 그랬다.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 스스로 티를 안 내면 되는 것을, 쿠로오를 밀어내면서 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쿠로오의 담임이었다.
“우시지마군, 쿠로오군에게 이것 좀 가져다줄래? 아까 깜빡하고 못 줬거든.”
“……조퇴 했습니까?”
“몰랐어? 안색이 안 좋아 보이더라. 가서 좀 챙겨줘.”
담임이 스쳐지나가고, 우시지마는 꾸욱, 주먹을 쥐었다. 제 감정에 사로잡혀 그런 것도 보지 못했다. 자꾸만 피어오르는 자책감에 우시지마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발이 무거웠다.
쿠로오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온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숨을 쉬는 것 마저 폐가 찢어질 듯 아픈 것이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쿠로오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눈앞이 흐린 것을 보니 피가 눈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아니, 눈을 맞았나? 쿠로오는 웃으려다, 아픈 가슴에 입을 그냥 다물었다. 엉덩이 사이로 질척한 것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마저 신경 쓰기에는 제 몸이 아프고 피곤했다. 이대로 그냥 다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았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입술이 터져 아팠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까지 막을 순 없었다. 흐, 바람 빠진 소리를 낸 쿠로오는 그저 눈을 감았다. 아, 죽고 싶다.
“테츠로!”
쿠로오는 제 뺨에 확, 닿는 손에 눈을 찌푸렸다. 윽, 하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뺨을 쥐었던 손이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쿠로오는 다시 눈을 천천히 떴다. 흐린 시야로도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와카토시. 쿠로오는 속으로 그 이름을 부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소리 내어 그 이름을 부르기엔 저가 지금 너무나 지쳐있었다. 테츠로, 눈떠 봐라 테츠로! 다급히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무어라 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으며, 쿠로오는 잠에 빠져들었다.
“패싸움 했어요. 들킬까봐 몰래 들어왔어요. 그래서 모르셨을 거예요.”
차분히 말하는 목소리가 태연했다. 우시지마는 그저 가만히 서서 그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늑골이 2개가 나가고 다리가 부러졌다. 이도 두 개쯤 나갔고, 타박상이 온 몸에 있는데다가 입술이 찢어져 5바늘을 꿰맸다. 패싸움을 해서 다친 사람치고 얼굴이 무표정했다. 자신을 다치게 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라든가 분노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누가 때렸냐고 묻는 말에는 다 같이 때리고 맞느라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결국 의사와 경찰은 돌아갔다. 조심했어야지. 아비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시지마는 생체기가 잔뜩 난 손 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는 여기 좀 더 있게 가겠습니다.”
“그래, 와카토시가 좀 챙겨줘.”
테츠로 내일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병실 안은 침묵만 맴돌았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머리 쪽을 높인 침대에 완전히 기대 있는 쿠로오는 며칠 새 말라있었다.
“누가 그랬나?”
창문 쪽을 보던 시선이 그제야 제 쪽을 향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 반창고가 붙은 얼굴이 엉망이었다. 우시지마는 손을 들려다 그저 주먹을 쥐었다. 싸운 거 아니지 않나. 제 말에 쿠로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네가 뭔 상관이야. 아까와 같이 차분하게 나온 말은 저를 밀어내는 말이었다. 주삿바늘이 꽂힌 손이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쓸어 올렸다. 환자복 안 쪽으로 보이는 팔뚝에도 멍이 즐비했다. 우시지마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손목을 쥐었다. 짜증스런 기색이 역력한 표정에 저도 모르게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파. 문득 목소리가 떨리자 우시지마는 이를 악물며 손을 놓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나.”
“우시지마 상이 그랬어.”
금세 벌겋게 손자국이 난 손목을 쓰다듬으며 하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닐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왜…….”
“하지 말라고 그랬거든.”
다시 저를 보는 눈에는 원망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우시지마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에 굳어졌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그 눈빛이 지금 저를 향해 있었다. 저도 모르게 뒤로 멈칫, 물러서자 쿠로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요즘 이상한 거 알아? 왜 나 피해? 씨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나 힘들 때 달래주겠다고 약속한 건 너였잖아. 근데 왜 네가 날 먼저 피해? 힘들어서 죽고 싶은데,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네가 달래줘서 버틴 거잖아! 근데 네가 날 피해버리면 난 어떡해?”
왈칵, 내질러버린 고함에 쿠로오가 숨을 헐떡였다. 헉헉, 내뱉는 숨소리에 쇳소리가 섞여들었다. 우시지마는 손을 들어 어느 새 젖은 쿠로오의 눈가를 쓸어냈다. 울지 마라.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쿠로오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 너무 힘들어 와카토시, 나 좀 달래줘, 죽고 싶은데 죽기가 무서워, 와카토시, 와카토시……. 우시지마는 처음 제 아비에게 당한 날처럼 꺽꺽대며 우는 쿠로오를 천천히 품에 안았다. 저를 마주 안아오며 우는 쿠로오의 숨에는 쇳소리가 섞여 정말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우시지마는 떨리는 손으로 그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울지 마, 울지 마라, 테츠로. 미안하다, 그러니 제발. 그럼에도 쿠로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쿠로오는 저를 떼어내는 것에 그 옷깃을 움켜쥐려다 턱을 잡아 올리는 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술이 겹쳐졌다. 쿠로오는 우는 것도 잊은 채 우시지마의 팔뚝을 쥐었다. 겹쳐졌던 입술은 금세 떨어졌다. 쿠로오는 아직 가쁜 숨을 히끅이며 골랐다.
“미안, 하다.”
나조차 널 이런 눈으로 봐서. 제 턱을 잡은 손이 떨어지려 하자 쿠로오는 다시 그 팔뚝을 꾹 움켜쥐었다. 호스를 타고 피가 역류했다.
“넌, 안 싫어.”
시선이 그대로 마주했다. 우시지마는 그대로 쿠로오의 뒤통수를 감싸 쥐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이번에는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것에 쿠로오는 그대로 우시지마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쿠로오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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