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쿠로오를 그런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 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단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더 이상 쿠로오를 마냥 보듬어주던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쿠로오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 제 아비의 잘못으로 속죄해야할 자신이 아비와 똑같은 눈으로 쿠로오를 보고 있었다, 그 사실이 스스로를 혐오스럽게 했다. 제 아비의 괴물같이 끔찍한 성욕을 모두 받고 오는 날이면 쿠로오는 자신의 품에서 잠이 들고, 자신은 잠들기 직전까지 속으로 제 아비의 잘못을 빌었던 그 과정에 어느 새 다른 감정이 섞여들었다. 품에 안긴 마른 몸에 사랑을 속삭이고 입을 맞추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던 순간 자신은 끔찍한 자기혐오에 빠져들었다. 들키면 안 된다. 어느 날인지도 모를 새벽, 거의 말라가는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들키면 제 아비를 보는 그 눈으로 자신을 볼 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 눈빛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몰래 그 이마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도둑 키스였다.

 

 

 

 

 

 

 

 

 

 

 쿠로오는 서늘한 기분에 눈을 떴다. 이불이 목 끝까지 덮여있긴 했지만 침대 위엔 혼자였다. 쿠로오는 멍하니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비볐다. 늘 저가 깨어날 때까지 팔베개를 해주던 우시지마가 없었다. 쿠로오는 반쯤 몽롱한 채로 침대 밖으로 몸을 내었다. 둔한 서늘함이 발끝을 타고 올라왔다. 토독, 톡 하고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쿠로오는 여전히 잠에 취한 채 멍하니 창밖을 보았다. 비 오네. 쩍 하니 하품을 한 쿠로오는 몸을 일으켜 비척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싸늘한 바람이 훅 밀려들어 쿠로오는 소름이 돋은 팔을 쓰다듬었다. 추운데 와카토시는 어딜 간 거야.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던 쿠로오는 부엌에 들어서 냉장고 문을 열었다.

 

 

 

 

 

 “테츠로 일어났니?”

 “…….”

 

 

 

 

 

 물병을 꺼낸 쿠로오는 제 옆에 선 제 어미를 흘긋, 보고 고개를 돌렸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툭하니 튀어나온 말에도 어미의 입은 꾹 다물렸다. 물을 몇 모금 마시고 물병을 냉장고에 넣은 쿠로오는 뻗친 머리를 긁으며 부엌을 빠져나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우시지마가 없는 것부터 기분이 나빴건만, 오늘은 잘 풀리는 날이 아닌 모양이었다. 쿠로오는 다시 제 방이 아닌 우시지마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묻었다. 아직 남은 온기가 기분을 조금쯤 풀어주는 것 같았다. 베개에 얼굴을 묻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쿠로오는 질끈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커다란 손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아직 자나.”

 “……안 자.”

 “밥은 먹고 자라.”

 “와카토시.”

 

 

 

 

 

 몸을 돌리자 저를 내려다보는 얼굴이 보였다. 손을 뻗자 허리를 숙여주는 것에 쿠로오는 킥킥 웃으며 그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나 추워. 어리광부리듯 중얼거리자 등허리를 쓸어내린 손이 곧 저를 떼어냈다. 쿠로오는 몸을 일으켜 앞장 서 방을 나서는 우시지마의 등을 보았다. 조금쯤 풀렸던 기분이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한참을 제 어리광을 받아줬을 터였다. 그 등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쿠로오는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따라오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우시지마는 고개를 돌려 몇 걸음 뒤에 멈춰있는 쿠로오를 보았다. 나 입맛 없어, 안 먹을래. 툭 말을 뱉어낸 쿠로오는 발을 돌려 제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테츠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도 쿠로오는 푹 한숨을 내쉬며 제 방에 들어서 문을 닫았다. 기분이 나빴다.

 

 

 

 

 

 

 

 

 

 

 “너 무슨 일 있냐?”

 “.”

 “요즘 저기압인 것 같아서.”

 

 

 

 

 

 쿠로오는 제 옆에서 말을 거는 이를 쓱 훑어보고 그 손에 들린 라이터를 빼앗아 들어 담배에 불을 붙였다. 확실히 요즘 쳐져있다는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원인인 이가 원래대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자신 또한 똑같이 저기압 일 수밖에 없었다. 여친이랑 잘 안되냐? 똑같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뻐끔거리며 연기를 뱉어내며 하는 말에 쿠로오는 인상을 썼다. 내가 여친이 어디 있어, 새끼야. 쿠로오의 말에 되래 놀란 것은 상대였다. 너 여친 없어? 당연히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는 투에 쿠로오는 자신이 애인이 있을 법한 행동을 했나 기억을 더듬었다. 폰을 자주 만진 것도 아니고, 반지를 끼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는 듯 상대를 돌아보자 상대의 손이 덥썩, 와이셔츠의 깃을 잡아 당겼다.

 

 

 

 

 

 “새끼야, 키스마크 달고 다니면서 뭔 여친이 없어. 섹파냐?”

 “…….”

 

 

 

 

 

 쿠로오는 조금쯤 떨려오는 손으로 제 와이셔츠를 잡은 상대의 손을 털어냈다. 그냥, 그럴 일이 있어. 쿠로오는 고개를 돌리며 목을 가렸다. 진짜 섹파야? 부러운 새끼. 그 후로 하는 말에 귀에 들리지 않았다. 쿠로오는 덜덜 떨려오는 손을 애써 주먹을 쥐어 막았다. 꽤나 길었던 담배를 비벼 끈 쿠로오는 몸을 돌렸다. , 너 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한 채 쿠로오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위로가 필요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달래주는 위로가 아닌, 진심으로 저를 보듬어주는 품이 당장 필요했다. 쿠로오는 교실 안으로 들어서 무작정 자리에 앉아있는 우시지마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테츠로?”

 “잠깐만.”

 

 

 

 

 

 금세 이끌려 올 것이라 생각했건만 우시지마는 되려 쿠로오의 팔뚝을 잡았다. 늘 제 눈을 똑바로 보던 시선은 전혀 저를 보고 있지 않았다. 지금 할 일이 있다, 못 갈 것 같은데. 그 말에 우시지마의 손목을 잡았던 쿠로오의 손이 뚝, 떨어졌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쿠로오는 손으로 눈을 덮고 숨을 골랐다. 토악질이 치밀어오를 것 같았다. 테츠로? 제 어깨에 닿으려는 손에 쿠로오는 그 손을 피하며 다시 한 걸음 물러섰다.

 

 

 

 

 

 “, 요즘, 이상해.”

 

 

 

 

 

 토악질 대신 조각난 말을 토해낸 쿠로오는 그대로 몸을 돌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문을 걸어 잠글 새도 없이 점심에 먹은 것들을 죄 토해냈다. 숨 고를 새도 없이 연신 구역질을 해댄 쿠로오는 변기를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었다. 손끝이 시렸다. 어느 순간부터 울지 않게 된지 몰랐다. 지금 당장 울며 소리 치고 싶은데, 눈물은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쿠로오는 간신히 멈춘 구역질에 숨을 고르며 뚜껑을 덮고 물을 내렸다. 수업 종이 친 지 오래였다. 세면대에서 입을 헹군 쿠로오는 다시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교실 안을 창문 너머로 훑었다. 종례시간 내내 비어있던 쿠로오의 자리에는 가방만은 남아 있었다. 아까 교실에 찾아왔던 쿠로오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저가 거부하자 저를 피했던 몸짓에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힘들어 보였는데, 말을 들어줄 걸 그랬나. 그래봤자 뒤늦은 후회였다. 문자도 보내보고 전화도 몇 번 해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우시지마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섰다. 쿠로오와 어울리는 것을 몇 번 보았던 이의 어깨를 툭 쳤다.

 

 

 

 

 

 “저기.”

 “?”

 “테츠로 어디 있는지 아나?”

 “아니. 아까 점심시간 이후로 못 봤는데.”

 

 

 

 

 

 우시지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오의 자리에 걸린 가방을 연 우시지마는 가방 안에 휴대전화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러니 답이 없지. 책상 위에 놓인 것을 대충 가방 안에 쓸어 담고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몰라 걱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표정이 그런 표정이라 더더욱 그랬다.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 스스로 티를 안 내면 되는 것을, 쿠로오를 밀어내면서 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쿠로오의 담임이었다.

 

 

 

 

 

 “우시지마군, 쿠로오군에게 이것 좀 가져다줄래? 아까 깜빡하고 못 줬거든.”

 “……조퇴 했습니까?”

 “몰랐어? 안색이 안 좋아 보이더라. 가서 좀 챙겨줘.”

 

 

 

 

 

 담임이 스쳐지나가고, 우시지마는 꾸욱, 주먹을 쥐었다. 제 감정에 사로잡혀 그런 것도 보지 못했다. 자꾸만 피어오르는 자책감에 우시지마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옮겼다. 발이 무거웠다.

 

 

 

 

 

 

 

 

 

 

 쿠로오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온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팠다. 숨을 쉬는 것 마저 폐가 찢어질 듯 아픈 것이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쿠로오는 느릿하게 눈을 떴다. 눈앞이 흐린 것을 보니 피가 눈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아니, 눈을 맞았나? 쿠로오는 웃으려다, 아픈 가슴에 입을 그냥 다물었다. 엉덩이 사이로 질척한 것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마저 신경 쓰기에는 제 몸이 아프고 피곤했다. 이대로 그냥 다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부터 하지 않았던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입술이 터져 아팠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까지 막을 순 없었다. , 바람 빠진 소리를 낸 쿠로오는 그저 눈을 감았다. , 죽고 싶다.

 

 

 

 

 

 “테츠로!”

 

 

 

 

 

 쿠로오는 제 뺨에 확, 닿는 손에 눈을 찌푸렸다. , 하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뺨을 쥐었던 손이 화들짝 놀라 떨어졌다. 쿠로오는 다시 눈을 천천히 떴다. 흐린 시야로도 누군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와카토시. 쿠로오는 속으로 그 이름을 부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소리 내어 그 이름을 부르기엔 저가 지금 너무나 지쳐있었다. 테츠로, 눈떠 봐라 테츠로! 다급히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도 무어라 답을 해 줄 수가 없었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으며, 쿠로오는 잠에 빠져들었다.

 

 

 

 

 

 

 

 

 

 

 “패싸움 했어요. 들킬까봐 몰래 들어왔어요. 그래서 모르셨을 거예요.”

 

 

 

 

 

 차분히 말하는 목소리가 태연했다. 우시지마는 그저 가만히 서서 그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늑골이 2개가 나가고 다리가 부러졌다. 이도 두 개쯤 나갔고, 타박상이 온 몸에 있는데다가 입술이 찢어져 5바늘을 꿰맸다. 패싸움을 해서 다친 사람치고 얼굴이 무표정했다. 자신을 다치게 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라든가 분노 같은 것은 보이지도 않았다. 누가 때렸냐고 묻는 말에는 다 같이 때리고 맞느라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 뿐이었다. 결국 의사와 경찰은 돌아갔다. 조심했어야지. 아비의 손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시지마는 생체기가 잔뜩 난 손 끝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저는 여기 좀 더 있게 가겠습니다.”

 “그래, 와카토시가 좀 챙겨줘.”

 

 

 

 

 

 테츠로 내일 보자. 그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병실 안은 침묵만 맴돌았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머리 쪽을 높인 침대에 완전히 기대 있는 쿠로오는 며칠 새 말라있었다.

 

 

 

 

 

 “누가 그랬나?”

 

 

 

 

 

 창문 쪽을 보던 시선이 그제야 제 쪽을 향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여기저기 반창고가 붙은 얼굴이 엉망이었다. 우시지마는 손을 들려다 그저 주먹을 쥐었다. 싸운 거 아니지 않나. 제 말에 쿠로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네가 뭔 상관이야. 아까와 같이 차분하게 나온 말은 저를 밀어내는 말이었다. 주삿바늘이 꽂힌 손이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쓸어 올렸다. 환자복 안 쪽으로 보이는 팔뚝에도 멍이 즐비했다. 우시지마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 손목을 쥐었다. 짜증스런 기색이 역력한 표정에 저도 모르게 손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파. 문득 목소리가 떨리자 우시지마는 이를 악물며 손을 놓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누가 널 이렇게 만들었나.”

 “우시지마 상이 그랬어.”

 

 

 

 

 

 금세 벌겋게 손자국이 난 손목을 쓰다듬으며 하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닐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왜…….”

 “하지 말라고 그랬거든.”

 

 

 

 

 

 다시 저를 보는 눈에는 원망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우시지마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에 굳어졌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그 눈빛이 지금 저를 향해 있었다. 저도 모르게 뒤로 멈칫, 물러서자 쿠로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너 요즘 이상한 거 알아? 왜 나 피해? 씨발, 내가 모를 줄 알았어? 나 힘들 때 달래주겠다고 약속한 건 너였잖아. 근데 왜 네가 날 먼저 피해? 힘들어서 죽고 싶은데,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는데 네가 달래줘서 버틴 거잖아! 근데 네가 날 피해버리면 난 어떡해?”

 

 

 

 

 

 왈칵, 내질러버린 고함에 쿠로오가 숨을 헐떡였다. 헉헉, 내뱉는 숨소리에 쇳소리가 섞여들었다. 우시지마는 손을 들어 어느 새 젖은 쿠로오의 눈가를 쓸어냈다. 울지 마라. 그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쿠로오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 너무 힘들어 와카토시, 나 좀 달래줘, 죽고 싶은데 죽기가 무서워, 와카토시, 와카토시……. 우시지마는 처음 제 아비에게 당한 날처럼 꺽꺽대며 우는 쿠로오를 천천히 품에 안았다. 저를 마주 안아오며 우는 쿠로오의 숨에는 쇳소리가 섞여 정말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 우시지마는 떨리는 손으로 그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울지 마, 울지 마라, 테츠로. 미안하다, 그러니 제발. 그럼에도 쿠로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쿠로오는 저를 떼어내는 것에 그 옷깃을 움켜쥐려다 턱을 잡아 올리는 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입술이 겹쳐졌다. 쿠로오는 우는 것도 잊은 채 우시지마의 팔뚝을 쥐었다. 겹쳐졌던 입술은 금세 떨어졌다. 쿠로오는 아직 가쁜 숨을 히끅이며 골랐다.

 

 

 

 

 

 “미안, 하다.”

 

 

 

 

 

 나조차 널 이런 눈으로 봐서. 제 턱을 잡은 손이 떨어지려 하자 쿠로오는 다시 그 팔뚝을 꾹 움켜쥐었다. 호스를 타고 피가 역류했다.

 

 

 

 

 

 “, 안 싫어.”

 

 

 

 

 

 시선이 그대로 마주했다. 우시지마는 그대로 쿠로오의 뒤통수를 감싸 쥐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이번에는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것에 쿠로오는 그대로 우시지마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쿠로오의 몸이 뒤로 젖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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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시지마는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늘상 품에 안겨있던 온기가 없으니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조금쯤 불안하기도 했고. 우시지마는 발을 타고 오르는 둔한 냉기를 느끼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조금쯤 졸음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시간을 확인했다. 열두 시가 넘은지는 꽤 되었다. 문득 문이 열리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걸음을 빨리했다. 혼란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현관에 다다른 우시지마는 신발장에 손을 대고 꾸물거리고 있는 인영의 앞에 섰다. 내내 켜지지 않았던 현관불이 소리 없이 번쩍 켜졌다. 그 불빛에 꾸물거리던 인영이 문득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곧 멍하니 벌어져 있던 입술이 휘었다.

 

 

 

 

 

 “와카토시.”

 “늦었다.”

 “, 미안해.”

 

 

 

 

 

 평소 같았으면 목덜미를 끌어안았을 것을, 저가 높은 곳에 있어 팔을 두르는 위치가 허리였다. 우시지마는 그 어깨를 마주 안으며 바깥 공기 탓에 서늘한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코를 박은 머리에서는 옅은 담배냄새가 났다. 우시지마는 끌어안았던 어깨를 풀고 제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이의 뺨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나른하게 감겨있던 눈이 뜨이고 작게 웃었다. 나 담배냄새나? 속삭이는 목소리에서는 짙은 술 냄새가 풍겼다. 우시지마는 그 턱을 당겨 시선을 맞추었다. , 하니 현관불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반질반질한 눈동자가 빛이 났다. 우시지마는 그대로 벌어진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후응. 허리에 둘러져있던 손이 더듬더듬 등의 옷깃을 움켰다. 차가웠던 혀끝이 조금씩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입술을 떼고 제 눈앞의 뺨을 쥐었다.

 

 

 

 

 

 “술 냄새가 더 난다.”

 “그냥 가야겠다, 그럼.”

 “어디를.”

 “우시지마 상한테.”

 

 

 

 

 

 외박하려다가, 오라고 그래서. 담담히 눈가가 휘었다. 우시지마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허리를 감아 안자, 옷깃을 움켰던 손이 저를 꽉 안고 매달렸다. 닿은 혀끝의 온도는 이제야 뜨거웠다.

 

 

 

 

 

 

 

 

 

 

 철컥, 하는 문소리에 우시지마는 얼핏 눈을 떴다. 자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저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문 앞에서 얼쩡거리던 그림자가 금세 다가왔다. 나 때문에 깼어? 조용한 목소리에서는 나른한 비누향이 섞여있었다. 우시지마는 손을 뻗어 그 팔을 잡았다. 따끈한 열이 손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벅벅 문질러 닦는 버릇은 여전했다. 우시지마는 제 품에 안겨드는 몸을 마주 안고 그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물기에 젖은 입술이 가볍게 뺨에 닿고, , 젖은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우시지마는 그 양 뺨을 잡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얼굴은 또 바로 보였다.

 

 

 

 

 

 “물 떨어진다.”

 “씻자마자 바로 와서.”

 

 

 

 

 

 수건을 잡자 자연스레 품에서 빠져나가 침대 밑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우시지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 머리를 살살 털어주기 시작했다. 깨워서 미안하네. 수건에 막혀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우시지마는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털어내고 아직 젖은 머리칼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테츠로.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평소와 달리 축 쳐진 머리칼에 가려진 얼굴이 가련했다. 뻗어지는 손을 잡고 허리를 안자, 젖은 입술이 코앞에서 벙긋거렸다. 와카토시. 속삭이는 이름들은 족쇄 같은 것이었다. 우시지마는 닿는 입술에 젖은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쉬이 떨어진 입술이 휘었다. 얼른 자자. 침대에 먼저 눕는 몸을 끌어안으며 우시지마는 눈을 감았다. 잠이 금방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쿠로오를 처음 만난 것은 7살의 여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풀벌레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놀이를 하고 있을 때, 대문이 열리고 제 아비와 함께 여자와 제 또래의 남자 아이가 들어섰다. 와카토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그 때 제 아비의 목소리는 어땠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 아비가 엄마라 소개한 여자는 아름다웠다. 여자는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와카토시 군, 잘 부탁해. 저를 낳은 어미는 저가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세상을 떠났기에 엄마라는 것 자체가 낯설었지만, 기분은 좋았던 것 같다. 여자를 보던 중, 시선을 내린 곳에는 그가 있었다.

 

 

 

 

 

 ‘와카토시 군, 너와 친구가 될 아이야. 테츠로, 인사해야지.’

 ‘……안녕.’

 

 

 

 

 

 어미의 치맛자락을 잡은 채 뒤로 숨었던 쿠로오는 그 때에도 저보다 조금 작았었다. 이리저리 뻗친 머리가 신기하다. 첫 인상은 그게 다였다. 사실 그 때는 쿠로오에게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다. 다른 애들에게는 있던 엄마라는 것이 생긴 게 좋았기 때문에, 쿠로오에 대한 생각은 별 것이 없었다. 그건 쿠로오도 마찬가지였다. 저보다 제 아비에 닿은 시선은 설렘만 가득해 보였었다. 쿠로오의 아빠는 쿠로오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고 했었다. 둘 다 원래 없던 엄마와 아빠가 생겼으니, 그 쪽에 관심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첫 시선은 그렇게 엇갈렸었다.

 

 

 쿠로오와 저는 그 이후에도 그다지 친해지지는 않았다. 유치원을 같이 다니긴 했지만 둘 다 혼자가 편한 성격이었고, 저보다 나중에 유치원에 들어온 탓에 어울리는 무리 또한 달랐다. 집에 온 이후에도 둘 다 서로의 방에 틀어박혀 각자 놀기 바빴다. 그렇게 겨울이 되었다. 그 날도 유치원에서 돌아온 이후 방에서 혼자 놀다 목이 말라 방 밖으로 나왔었다. 부엌으로 가기 위해 복도를 걷던 도중.

 

 

 

 

 

 ‘아악! ……!’

 

 

 

 

 

 짧고 강렬한 비명이었다. 쿠로오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대로 굳어 그 방을 보았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서 불어재끼는 바람소리가 그날따라 시끄럽다 느껴졌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어렵게 떼며 비명이 들렸던 방에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작은 비명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 들렸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채 닫히지 않은 문 틈 사이로 눈을 대자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입에 옷 뭉치가 물려 비명이 소리가 되지 못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눈에선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어리고 가느다란 다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은 제 아비였다. 제 아비가 움직일 때마다 붉은 얼굴이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려준 것은 제 아비였다. 다급히 내달린 곳에는 다행히 쿠로오의 어미가 있었다.

 

 

 

 

 

 ‘어머니!’

 ‘와카토시 군, 무슨 일이니? 이렇게 뛰고…….’

 ‘아버지가, 테츠로를…….’

 

 

 

 

 

 제 설명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 제 아비를 말릴 줄 알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저를 외면했다. 테츠로가 아빠한테 잘못한 게 있나보다. 무난히도 내뱉어진 말에 저는 제 아비를 방문 틈으로 보았을 때처럼 똑같이 뒷걸음질 쳤다. 다시 뜀박질을 했다. 허나 내달린 곳의 끝엔 활짝 열린 채 텅 빈 방 만이 있을 뿐이었다. 방 안은 아직 채 열기가 남아있었다. 멍하니 지옥 같던 방 안을 들여다보던 와중에,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살갗을 애일 것 같은 칼바람이 부는 마당의 한 쪽 구석에 옷차림이 엉망인 쿠로오가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테츠로.’

 

 

 

 

 

 제 부름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얼굴은 이미 엉망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끅끅 울음소리를 참던 쿠로오가 와락 안겨들었다. 그 때도 쿠로오는 저보다 조금 작았었다. 엉엉 우는 쿠로오를 데리고 제 방으로 가 울음을 간신히 달래고 손가락을 걸었다. 저가 달래주겠다고. 막아주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고맙다며 손가락을 걸어오는 손은 축축하고 뜨거웠다. 그렇게 쿠로오와 가까워졌다.

 

 

 

 

 

 

 

 

 

 

 “와카토시-.”

 

 

 

 

 

 책장을 넘기던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학교에서 그 밖에 없었다. 문틈으로 쏙 고개를 내밀고 저를 보는 얼굴에 손짓하자 금세 교실 안으로 들어서는 이의 교복은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명 아침에 나올 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아침의 기억을 더듬던 우시지마는 곧 제 옆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씩 웃는 얼굴을 보았다.

 

 

 

 

 

 “넥타이는 어디 갔나?”

 “목 조여서 빼놨어. 보자마자 잔소리하는 거야?”

 

 

 

 

 

 키득키득 웃는 얼굴에 더 길게 말 할 수도 없어서 우시지마는 입을 다물었다. 나 체육복 좀 빌려줘. 팔목을 잡으며 하는 소리에 미간이 좁혀지자 또 푸하하 웃어재낀다. 우시지마는 가방에서 체육복을 꺼내며 인상을 썼다.

 

 

 

 

 

 “아침에 챙기라 하지 않았나.”

 “아직 안 말랐더라.”

 

 

 

 

 

 쿠로오는 곱게 접힌 체육복을 받아들며 몸을 일으켰다. 씩 웃는 입매가 수상스러운데 휙, 넥타이를 휘어잡는 손에 우시지마는 눈을 크게 떴다. 훅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뺨에 쪽, 입을 맞췄다. 그렇지 않아도 험악했던 인상이 찌푸려지자 쿠로오가 낄낄 웃으며 잽싸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좀 이따 점심 때 갖다 줄게! 복도에서 들리는 외침에 우시지마는 뺨을 소매로 쓱, 문지르며 다시 몸을 바로 했다. 아무튼 이상한 장난은 엄청 친다. 다시 책장을 넘기려는데 쿠로오가 앉았던 자리에 다른 이가 앉았다. 우시지마는 저를 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들이닥친 쿠로오 탓에 밀려났던 제 짝이었다.

 

 

 

 

 

 “쿠로오랑 어떻게 친해진 거야? 별로 성격이 맞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같이 산다.”

 “? ? 성이 다르잖아.”

 “그럴 일이 있다. 질문은 거기까지 했음 좋겠군.”

 

 

 

 

 

 다시 고개를 돌린 우시지마는 책을 들여다보았다. 방금 쿠로오의 입술이 닿았던 뺨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난 별로 상관없어.”

 

 

 

 

 

 대뜸 튀어나온 말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들었다. 똑같은 반찬인데도 굳이 제 것을 집어먹는 탓에 도시락은 늘 바닥에 내려놓고 먹는 것이 습관이었다. 우물우물 음식물을 씹던 얼굴이 곧 저를 보았다.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주려 손을 들자 익숙하게 고개를 내미는 것이 조금은 우스웠다. 떼어낸 밥풀을 입에 넣자 입 안 가득 우물거리던 음식을 삼킨 듯 쿠로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랑 나랑 같이 산다는 거. 말해도 별로 상관없다고.”

 “그다지 숨길 생각은 없었다만.”

 “네가 나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아니라면 됐어. 다시 씩 웃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왠지 입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더 안 먹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는 말에 우시지마는 말없이 제 도시락을 쿠로오 쪽으로 밀었다. 이상하다는 듯 쓱, 저를 훑어봤던 쿠로오는 다시 별 말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늘 도시락은 둘이 먹었었다. 딱히 약속이라든가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우시지마는 턱을 괴고 쿠로오가 먹는 것을 빤히 보았다. 얼핏 목덜미에 붉은 색이 눈에 스쳤다. 가만히 손을 뻗자 그대로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내민다. 우시지마는 옷깃을 여며주며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반창고라도 붙이는 게 낫겠다.”

 “섹스했다고 광고할 일 있냐.”

 

 

 

 

 

 섹스라고 하기도 뭐 하지만. 단추를 잠그며 그 얼굴을 보자 시선이 마주했다. 우시지마는 곧 손을 떼며 몸을 떨어뜨렸다. 끝까지 제 얼굴에 달라붙던 시선은 다시 도시락으로 떨어졌다. 드물게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우시지마는 손을 뻗어 쿠로오의 머리칼을 쓱쓱 쓰다듬었다. 어제는 제 품에서 잠들었던 탓에 머리가 뻗치는 것이 덜했다. 곧 빈 도시락 통의 뚜껑을 닫으며 쿠로오가 씩 웃었다. 담배 필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것을 막을 생각도 없었다. 뻐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옆에 나란히 앉아 제 쪽으로 기대는 머리에 어깨를 내어주었다. 쿠로오는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늘 동생 같았었다.

 

 

 

 

 

 “오늘 네 방에서 자도 돼?”

 “그렇게 해라.”

 “땡큐.”

 

 

 

 

 

 오늘 와카토시 친절하네. 흐흐 웃는 목소리에 우시지마는 물을 조금 들이켰다. 속이 조금 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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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신의 흩날리는 머리카락 한 올, 세어 나오는 숨결 하나, 떨어지는 땀 한 방울까지 눈 안에 담느라 정신이 없는 내가 모를 리 없었다. 당신의 불그스름한 웃음, 애열에 들뜬 목소리, 흘러내릴 듯 달콤한 눈동자 까지. 그것은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당신의 달콤한 시선이 닿는 그 끝에는 늘 내가 아닌 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면, 당신은 내 세상이 부서지도록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당신은 또 한 번, 내 이름이 아닌 그 사람의 이름을 가슴이 아릿하도록 애정 어린 그 목소리로 불렀다.

 

 

 

 

 

 “쿠로오!”

 

 

 

 

 

 어렵게 지켜왔던 나의 세상을, 당신은 이토록 쉽게 깨부숴냈다.

 

 

 

 

 

 

 

 

 

 

 당신을 갖고 싶었던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 당신을 만나고, 당신과 경기를 함께 했을 때였을 것이다. 당신은 나의 토스에 찬란하게 날아올랐다. 당신의 비상에 나는 멍하니 당신을 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늘 어둡다고 느꼈던 나의 세상을 단 번에 밝혀 주었다. 스파이크를 멋지게 성공한 당신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나에게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하이파이브를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 소리를 내며 맞닿았던 손은 짧지만 짜릿한 열기를 전해주었다. 나는 다른 동료들에게 환호를 받는 당신을 보고 당신과 하이파이브를 했던 내 손을 보았다. 내 손은 에이스였던 당신의 힘 탓에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열기를 머금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의 손은 지금 내 심장과 닮아있었다. 붉고, 아픈 열기.

 

 

 그 때 이후로 나는 당신의 모든 모습을 눈 안에 담기 시작했다. 당신을 좇다보니 당신 또한 나에게 의지를 해 주었다. 당신과 관련 된 모든 일에는 내가 같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이 좋았다. 찬란한 당신의 일부분이 되는 것 같은 기분. 그것이 일상이 되어 갈 때 즈음, 그 사람이 등장했다. 그 사람은 당신과 친밀해 보였다. 당신은 그 사람을 작년 합숙 때 만난 친구라고 소개를 시켜 주었고, 그 사람은 자연스레 당신에게 나에 대해 물었다.

 

 

 

 

 

 ‘얘가 걔야? 너랑 그렇게 죽이 잘 맞는 다는 세터?’

 ‘. 이름은 아카아시 케이지.’

 

 

 

 

 

 내가 모르는 당신이 있다는 것이 당황스러웠다. 짧은 시간 내에 당신을 모두 알았다 생각했는데, 내가 모르는 당신은 그 사람에게 다른 이들과는 다른 시선을 보냈다. 그 사람은 웃으며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쿠로오 테츠로. 네코마 고교의 2학년이고, 미들 블로커야. 너도 고생이 많겠다.’

 ‘아카아시 케이지입니다. 후쿠로다니 1학년, 세터입니다.’

 ‘고생이 많다니! 무슨 의미야!’

 ‘너 케어 하느라 힘들 거란 의미야.’

 

 

 

 

 

 장난을 치는 당신과 그 사람을 보며 나는 몸을 돌렸다. 당신으로 인해 환하게 밝혀졌던 내 세상에 어둠이 싹을 틔웠다. 그 사람이 당신은 훌쩍 데리고 떠날 것만 같았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불안했다. 나는 전보다 더 당신을 주시했지만, 당신과 시선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당신의 시선은 늘 그 사람을 향해 있었다. 합숙의 밤, 나는 자판기의 불빛 앞에서 깨달았다. 나는 당신을 우상으로써 존경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고 있구나.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내 세상에 어둠의 근원은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었구나. 왈칵, 터져 나오는 눈물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치졸한 감정이 사랑이라니. 당신이 밝혀준 세상을 좀 먹는 더러운 어둠이 사랑이라니. 울고 있는 내 어깨를 돌린 것은 당신이었다.

 

 

 

 

 

 ‘아카아시?’

 ‘……보쿠토 상.’

 ‘아카아시, , 왜 울어? 어디 아픈 거야?’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부산을 떠는 당신의 모습에 나는 당신을 끌어안았다. 나는 오늘이 끝인 것처럼 당신에게 매달렸다. 좋아해요, 보쿠토 상. 막을 새도, 막을 생각도 없이 나온 말에 당신은 놀라했다. 아카아시? 다시금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는 당신을 더 세게 끌어안을 뿐이었다.

 

 

 

 

 

 ‘좋아해요, 보쿠토 상. 좋아해요. 좋아해요…….’

 

 

 

 

 

 좋아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나를, 당신은 잔인하게도, 마주 안아 주었다. 서러움에 더 크게 터지는 울음을 막을 수가 없었다. 당신은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 등을 토닥여주었다. 고마워. 당신이 나에게 준 두 번째 빛이었다. 나는 놀라 당신을 보았고, 당신은 나에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에 나는 울던 것도 잊은 채 당신의 얼굴만 보았다. 당신은 눈물에 엉망인 내 얼굴을 당신의 옷으로 닦아주고 다시 웃어주었다. 그럼 이제 우리 사귀는 건가? 당신의 가벼운 그 말에 내 심장은 몇 톤짜리 추를 얹은 것처럼 쿵하고 떨어졌다.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는데도, 나는 그 치졸한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당신의 뺨을 쥐고 키스했다. 당신은 마찬가지로 잔인하게, 나를 끌어안아 주었다. 몸이 녹아 없어져 버려도 좋을 만큼 달콤한 입맞춤이었다.

 

 

 

 

 

 

 

 

 

 

 당신은 천성이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솔직할지언정 당신은 남에게 못된 말은 하지 못했다. 그 천성은 나에게 황홀한 천국을 주기도 했고, 발 디딜 틈 없이 아찔한 지옥으로 내몰기도 했다.

 

 

 사귀기 시작한 이후로, 당신은 늘 내 말에 긍정을 해 주었다. 그 전에도 그랬지만, 다른 사람이 이상하다 생각할 정도로 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이유를 알면서도 나는 모른 척 당신의 몸을 부둥켜안고 놓지 않았다. 당신은 내 옆에선 오롯이 나만 바라보아주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당신을 보면, 당신은 그 사람을 보고 있었다. 엇갈리던 시선 끝에 그 사람과 시선이 마주치면, 당신은 그 옛날 처음의 웃음처럼 활짝 웃었다. 당신을 가지면 시들어 버릴 거라 생각했던 어둠은 말라 죽지 않고 점점 자라 내 세상의 먹어 치웠다. 그럴수록 나는 당신에게 매달렸다. 다른 이들은 내가 당신을 다룬다 생각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당신은 늘 불안해하는 나를 안고 토닥여주었다. 당신은 나에게 항상 미안함을 안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붙잡은 채 안간 힘을 써서 버티려했다.

 

 

 

 

 

 ‘사랑해요, 보쿠토 상.’

 ‘, 나도.’

 

 

 

 

 

 당신의 본심을 알면서도 나는 당신에게 나의 사랑을 강요했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 당신의 본심은 나에게 상처를 준다는 걸. 그런 본심을 사랑이란 단어로 포장해 그에게 속삭이는 내가 역겹고 혐오스러웠다. 아마 당신은 그 대답이 나를 달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었지만, 그것이 더 잔인하고 못된 말이라는 것을 몰랐을 터였다. 나의 속삭임에 본심과는 전혀 반대인 대답을 해오는 당신을 보며 나는 도리어 상처 입었다. 당신의 진심어린 애정을 받는 그 사람이 부럽고 미웠다. 그가 잘못이 없다는 것, 내가 일을 크게 틀어지게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이런 내가 낯설고 싫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밉지가 않아서 부러 혼자 있을 땐 당신을 탓하는 말을 뱉곤 했다. 보쿠토 상 때문이에요. 보쿠토 상의 잘못이에요. 그러면서도 당신의 이름을 부른다고 지어지는 웃음에 자괴감 또한 피어올랐다.

 

 

 

 

 

 

 

 

 

 

 어느 날, 나는 당신의 얼굴에서 빛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웃어주는 얼굴에서, 그 옛날의 찬란함은 사라져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나는 마지막으로 나를 버티게 해 주던 바닥이 무너져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의 어둠이 당신을 좀먹어 버렸다. 그 사람을 보며 환하게 트이던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는 내가 아주 많이, 당신을 힘들게 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원래부터 내 사람이 아니었던 당신을 탐하며 나는 나도, 당신도, 그 사람도 괴롭게 했다. 나는 이제야 정말 당신을 놓아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보쿠토 상.”

 “으응?”

 “키스해도 돼요?”

 “당연하지.”

 

 

 

 

 

 당신은 여전히 아이같이 웃을 줄 알았다. 나는 당신의 입술에 내 입술을 겹치고, 그 숨결을 공유했다. 당신의 숨은 따뜻했고, 마지막 키스는 여전히 달콤했다.

 

 

 

 

 

 “보쿠토 상.”

 “.”

 “우리 이제.”

 

 

 

 

 

 헤어질까요? 웃으며 한 말에 당신의 표정이 사라졌다. 당신에게 지어주는 웃음이 얼마만인지 헤아리다 나는 그저 웃었다. 당신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깝다는 생각에 그 눈꺼풀에 입술을 눌러 눈물을 핥아냈다. 당신은 어린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처음으로 당신을 달랬다. 그 동안 미안했어요, 당신을 힘들게 해서. 당신은 나를 껴안으며 서럽게 울었다. 당신이 이토록 힘들었구나. 나는 당신의 등허리를 연신 쓰다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한참을 울던 당신은 내 품에서 벗어나 눈가를 마구 비볐다. 나는 그 손을 떼어주며 엄지로 눈물을 훑어내 닦아내주었다.

 

 

 

 

 

 “아카아시, …….”

 “보쿠토 상은,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어울릴 것 같아요.”

 

 

 

 

 

 처음 토스를 올렸을 때 찬란하게 비상하던 그 때의 보쿠토 상처럼. 내 말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눈물을 닦던 자세 그대로 눈을 깜빡이며 나를 보는 당신을 향해, 다는 다시 한 번 웃었다. 때 마침 당신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 사람이었다. 휴대전화를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보는 당신의 등을 떠밀었다.

 

 

 

 

 

 “나는 괜찮으니까, 얼른 가 봐요.”

 “아카아시…….”

 

 

 

 

 

 또 다시 훌쩍이기 시작하는 당신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는 다시 당신을 떠밀었다. 당신은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를 계속 돌아보았지만, 나는 손만 흔들어 주었다. 당신이 아주 보이지 않기 전에 발을 떼면, 당신을 다시 붙잡을 것 같아서. 당신이 보이지 않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손을 흔드는 것을 멈추었다. 당신에게 괜찮다고 했으니까, 나는 괜찮아야 했다. 먹먹하게 뛰는 가슴에, 나는 그 때 그 자판기 불빛 앞에서 울었던 것처럼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좋아해요, 보쿠토 상.”

 

 

 

 

 

 엉엉 우는 내 어깨를 잡아 돌려줄 당신은 더 이상 없었다. 나의 세상은 다시 어둠으로 물들었다.

 

 

 

 

 

 

 

 

 

 

* 딥킷 님 썰로 3차 연성했습니다.

 

 

 

 

 

 

 

 

 

 

 “잇세이-!”

 

 

 

 

 

 마츠카와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직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학교에서 저를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딱 한 명 뿐이었다. 마츠카와는 들이 마셨던 연기를 뱉어내며 코너를 주시했다. 곧 쏙하니 튀어나오는 얼굴은 역시나 예상한 얼굴이었다. 저를 발견하자 씩 웃는 얼굴에 마츠카와는 살짝 손을 흔들어주었다. 또 수업 재꼈지. 잔소리처럼 하는 말에 마츠카와는 고개를 돌리며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곧 뒤에 털썩, 앉는 소리는 두 사람의 몫이었다. 마츠카와는 짧아진 꽁초를 난간에 비벼 끄고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와카토시가 네 도시락 가져왔어.”

 “땡큐.”

 “귀찮으니 앞으로는 미리 가져와라.”

 “어엉.”

 

 

 

 

 

 마츠카와는 대충 대답하며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저 새끼 존나 영혼 없다. 낄낄 웃으며 우시지마 쪽으로 기대는 꼴을 보며 마츠카와는 입에 밥을 넣고 우물거렸다. 예전 같았으면 붙지 말라며 칼같이 밀어냈을 우시지마는 꽤나 다정한 눈을 할 줄 알았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제 애인이었던 쿠로오 테츠로는 저와 헤어진 지 거의 두 달 만에 스트레이트였던 친구를 꼬셔내 커플이 되는 것에 성공했다. 꼬셔낸 쿠로오도 대단했지만 그대로 넘어온 우시지마도 웃긴 놈이었다. 그 동안 열심히 붙어먹던 저와 쿠로오를 보며 인상을 쓰거나 자신이 안 보이는 데에서 하라며 툭툭 쳐대더니 이제는 자기가 커퀴짓이었다. 우시지마가 내미는 반찬을 받아먹으며 주머니를 뒤지던 쿠로오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입안 한 가득 음식을 씹고 있어 말을 못하는 듯 열심히 우물거리는 것에 우시지마는 물을 내밀었다. 마츠카와은 뚝 떨어진 입맛에 젓가락을 내려놓고 우유나 빨고 있었다. 음식을 다 삼킨 쿠로오가 마츠카와의 어깨에 탁, 손을 얹었다.

 

 

 

 

 

 “잇세이, 나 담배 하나만.”

 “넌 왜 나한테 만날 빌리냐.”

 “오늘 아침에 선생한테 뺏겼어. 하나만-!”

 

 

 

 

 

 제 옷깃을 쥐며 쨍알쨍알 조르는 것에 마츠카와는 인상을 쓰며 주머니를 뒤졌다. 제 험악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인물이 이토록 귀찮은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마츠카와가 담배를 내밀자 잽싸게 받은 쿠로오는 제 도시락을 대신 치우고 있는 우시지마의 뺨에 쪽, 입을 맞췄다. , 쿠로오를 돌아보는 우시지마의 눈빛은 불만이 가득해보였다. 쿠로오는 입에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물며 우시지마의 다리 위에 올라 앉아 그 허리에 다리를 감고 어깨 위에 팔을 얹었다. 우시지마의 팔이 쿠로오의 허리에 둘러졌다.

 

 

 

 

 

 “키스할 때 담배 냄새 나는 거 싫다.”

 “이거 하나만 피고 끊을게.”

 

 

 

 

 

 불신이 가득한 눈에 쿠로오는 키득키득 웃으며 우시지마의 얼굴에 쪽쪽 입을 맞췄다. 마츠카와는 얼굴을 구기며 몸을 일으켰다. 우시지마가 왜 질색을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아까처럼 난간에 몸을 기대며 담배에 불을 붙인 마츠카와는 연기를 깊게 빨아들였다. 무언가 얹힌 듯 갑갑했던 가슴이 조금쯤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철컹, 하며 단추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저와 똑같은 자세로 쿠로오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어떻게 우시지마를 잘 구슬린 모양이었다. 나른하게 눈을 반쯤 감은 모습으로 담배연기를 천천히 뱉어내던 쿠로오는 축 늘어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잇세이는 같이 펴서 신경을 안 썼는데, 비 흡연자랑 사귀니 신경 쓸게 많아.”

 “네가 끊으면 된다.”

 “이거 피고 끊는다니까.”

 

 

 

 

 

 볼멘소리로 투덜거리는 것에 마츠카와는 쿠로오를 돌아보았다. 담배 냄새가 싫다며 짐을 챙겨 옥상을 빠져나가는 우시지마를 보며 쿠로오가 뒤에서 야유를 했다. 애인도 버리고 가는 나쁜 새끼! 물론 우시지마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우시지마가 아주 나가자 쿠로오는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 몸을 돌렸다. 언뜻, 목덜미에 붉게 물든 잇자국이 보였다. 마츠카와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목 조심해라, 다 보인다. 흘리듯이 한 말에 쿠로오가 꺄, 하며 여자 같은 비명을 지르고 목을 가렸다. 마츠카와는 어이가 없어져 허, 하고 쿠로오를 보았다. 키도 비슷한 게 징그럽게. 마츠카와의 표정이 구겨지자 쿠로오는 낄낄 웃으며 마츠카와의 등을 퍽, 쳤다.

 

 

 

 

 

 “, 이런 건 모르는 척 단추를 잠가줘야지. 무드 없는 새끼.”

 “그런 건 네 애인한테나 바래라.”

 “그래서 네가 안 된다는 거야.”

 “뭐 이 새끼야?”

 

 

 

 

 

 팔을 찰싹 때리자 아프다 하면서도 웃는 얼굴에 마츠카와는 잘근잘근 필터를 씹어 캡슐을 깨뜨렸다. 시원한 민트 향이 입 안으로 흘러들었다. 마츠카와를 따라 딱딱거리며 캡슐을 깨뜨리던 쿠로오가 머리를 기댔다. 어깨를 탁, 튕겨 떼어내도 이번엔 팔을 붙잡으며 머리를 기대는 통에 마츠카와는 그 이마에 딱밤을 놓았다. ! 꽤나 아프게 들어간 듯 내지르는 비명이 날카로웠다. 이마를 문지르며 불퉁하게 저를 흘기는 얼굴에도 마츠카와는 모른 척 마지막 한 모금을 빨고 꽁초를 비벼 껐다. 푸흐, 하며 한숨 쉬듯 연기를 뱉어내자 쿠로오는 난간에 몸을 기대어 후, 하고 연기를 뱉어냈다. 잘하냐? 저도 모르게 튀어나간 말에 마츠카와는 모른 척 턱을 괴고 운동장을 내려다보았다. 방금 질문은 진짜 찌질했다. 뱉은 말을 후회하며 볼 안쪽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 짧아진 꽁초를 바닥에 던져 발로 밟아 끈 쿠로오는 뻐끔뻐끔 연기를 뱉어내며 대답했다.

 

 

 

 

 

 “테크닉은 잇세이가 훨씬 좋지. 와카토시는 내가 처음인걸.”

 

 

 

 

 

 별 거 아니라는 듯 술술 나오는 말에 마츠카와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까닥여 난간을 툭툭 쳤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려는 것에 마츠카와는 양 뺨을 잡아 눌러 막았다. 근데 와카토시는 힘이 좋아, 여러 번 하거든. 개구지게 웃으며 저를 보는 얼굴에 마츠카와는 제 뺨을 누르던 손을 뻗어 쿠로오의 얼굴을 밀치고 걸음을 옮겼다. 예상치 못한 행동에 쿠로오가 뒤로 휘청거렸다. 야 이 새끼야! 빽 내지르는 소리에도 마츠카와는 귀를 후비며 옥상을 빠져나왔다. 내가 조루란 거야 뭐야. 작게 투덜거리며.

 

 

 

 

 

 

 

 

 

 

 “와카토시-, 나 뭐 부를까.”

 

 

 

 

 

 쿠로오가 자연스레 우시지마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으며 리모콘을 들자, 우시지마는 그 얼굴을 잡고 뺨에 입술을 문질렀다. 마츠카와는 음료를 들고 들어오며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썼다.

 

 

 

 

 

 “야 진짜 오지게 붙어있다.”

 “꼬우면 너도 하나 꼬셔서 사겨.”

 “테츠로는 내거니까 안 된다.”

 “탐 안 나거든 시발?”

 

 

 

 

 

 마츠카와는 우시지마의 말에 그 뺨에 뽀뽀를 해대는 쿠로오의 손에서 리모컨을 빼앗아 들고 버튼을 눌렀다. 노래방은 간만이었다. 쿠로오나 저나 노래 부르는 건 꽤나 좋아했기 때문에 자주 왔었지만 한동안은 시험기간이란 핑계로 잘 오지 않았었다. 마츠카와는 시작 버튼을 누르고 마이크에 커버를 씌우며 흘긋, 딱 붙어있는 둘을 보았다. 우시지마는 성격 상 노래를 부르기 보다는 듣는 축에 속했기 때문에 노래방에 와서는 늘 앉아서 휴대전화를 만지거나 노래를 부르는 것을 구경하거나 했었다. 물론 둘이 사귀기 전에는. 쿠로오는 익숙한 듯 우시지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리모컨을 누르고, 우시지마는 그런 쿠로오의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허리를 안고 있었다. 마츠카와는 제 노래를 끝내고 몸을 일으켰다. 담배가 말렸다.

 

 

 

 

 

 “오자마자 어디가?”

 “담배 피러.”

 “우와, 나도 피고 싶다.”

 “너 끊는다며. 노래나 불러.”

 

 

 

 

 

 주머니 안에 들은 담배와 라이터를 확인한 마츠카와는 키득키득 웃으며 마이크를 집어 드는 쿠로오에게 대충 대답해주며 방을 나섰다. 노래방 밖으로 나온 마츠카와는 벽에 기대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제 기분이 왜 이런지 아는데, 그 이유가 너무 찌질한 것이 화가 났다. 마츠카와는 제 머리를 헝클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쿠로오와는 좋게 헤어졌고, 그렇게 보여야만 했다. 마츠카와는 볼이 홀쭉해지도록 담배를 빨고 바닥에 꽁초를 던졌다. 후우, 하고 길게 연기를 뱉어낸 마츠카와는 헝클어진 머리를 살살 가다듬으며 다시 노래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신 차리자, 나 새끼야. 문을 열려던 마츠카와는 문득, 유리창 너머로 방 안을 보았다. 반주만 들려오는 노래방 안에서, 우시지마와 쿠로오는 키스 중 이었다.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목을 끌어안고 뒤로 넘어갈 듯 했고,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허리를 받쳐 안은 채 앞으로 숙인 채였다. 얼핏, 우시지마와 눈이 마주쳤다. 날카로운 눈동자는 정확히 마츠카와를 보며 고개를 틀었다. 허리를 안은 손이 쿠로오의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 진짜.”

 

 

 

 

 

 마츠카와는 허탈하게 웃으며 문고리에서 손을 놓았다. 양 손을 들어 올리자 저를 노려보던 우시지마는 곧 시선을 쿠로오의 얼굴로 돌렸다. 마츠카와는 걸음을 떼어 문 옆에 몸을 기댔다. 존나 찌질하다. 마츠카와는 쿠로오의 노랫소리가 들릴 때 까지 그대로 문 옆에 서 있었다. 한심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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