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지마는 문득 눈을 떴다. 품 안에 안긴 체온은 여전했지만, 왠지 모르게 잠이 깼다. 우시지마는 눈을 끔뻑이다 팔을 조심스럽게 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간을 확인하니 3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가볍게 마른세수를 하고 숨을 내쉰 우시지마는 방을 나섰다. 제 움직임에 쿠로오까지 깨면 난감하니까. 부엌에 들러 물을 몇 모금 마신 후 우시지마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달이 꽤나 밝았다. 나온 김에 잠시 바람을 쐬고 들어갈 참이었다.

 

 

 장례식 이후 제 아비는 전보다 더 자주 쿠로오를 불렀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던 부름은 두세 번으로 늘어났다.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것인가 싶었다. 그에 쿠로오는 그다지 별 말은 하지 않았다. 넌지시 물어본 말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그냥 익숙해졌다는 말 뿐이었다. 어머니가 죽고 난 후 집안일을 해주시는 아주머니 덕에 빈자리는 크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쿠로오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원래도 그다지 살집이 있는 편이 아니었건만 몇 달 새에 쿠로오는 꽤나 수척해졌다. 먹는 것이 다른 것도 아니었는데. 좀 더 신경 써서 챙겨줬음에도 쿠로오는 쉬이 살이 붙지 않았다. 역시 제 아비 탓인가. 심장에 돌덩이가 얹힌 듯 마음이 무거웠다.

 

 

 

 

 

 “……와카토시……?”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채 졸음을 떨쳐내지 못해 눈을 비비며 걸어오는 쿠로오에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켰다. 손을 쭉 뻗는 것에 응해 품에 안자 뺨을 부비는 행동이 귀여워 우시지마는 그 이마에 쪽 입을 맞췄다.

 

 

 

 

 

 “깨웠나?”

 “…… 와카토시 없으면 못 자겠어…….”

 

 

 

 

 

 눈도 뜨지 못하고 제 어깨에 기대오는 머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허리를 안고 다시 마루에 걸터앉아 제 허벅지 위에 쿠로오를 앉혔다. 마주 안은 모양새라 쿠로오는 다리를 우시지마의 허리에 감고 제 허리를 단단히 앉는 팔에 흐으, 하며 웃었다. 부드럽게 머리칼을 넘겨주는 손이 따뜻해서 좋았다. 쿠로오는 눈을 반쯤 뜨고 고개를 움직여 우시지마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목덜미는 아직 따끈했다. 머리칼을 쓸어주던 손이 내려가 등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멀리 가지 않았던 졸음이 금세 다시 몰려왔다.

 

 

 

 

 

 “나 자도 돼?”

 “침대로 옮겨 주겠다.”

 “와카토시만 믿을게.”

 

 

 

 

 

 목선에 꾸욱, 눌리는 입술에 쿠로오는 웃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맞닿은 가슴이 따뜻해서 좋았다. 잘 자라, 테츠로.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잠에 빠져들었다.

 

 

 

 

 

 

 

 

 

 

 “, 학교 끝났나?”

 -아직. 담임 안와서 종례도 못했어!

 “저녁 먹고 싶은 거 있나? 아주머니께 말씀드려 놓겠다.”

 -별로 없는데. 꽁치구이?

 “알겠다. 천천히 와라.”

 -, 집에서 봐-.

 

 

 

 

 

 우시지마는 쿠로오가 먼저 전화를 끊을 때 까지 기다렸다가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늘 쿠로오보다 자신이 집에 먼저 도착하는 편이었기에 저녁 메뉴 같은 것은 저가 아주머니에게 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다녀왔습니다.”

 “와카토시 왔니?”

 

 

 

 

 

 대답이 돌아오는 것을 예상치 않은, 버릇처럼 한 인사에 답이 돌아왔다. 우시지마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마당 한 쪽에서 제 아비가 손을 흔들었다. 우시지마는 살짝 고개를 까닥이고 제 방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부터 제 아비와의 대화는 단절되었었다. 원래 저가 그다지 말이 많은 편도 아닐뿐더러, 쿠로오의 일까지 알고 있으니 더더욱 대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방에 들어서 가방을 놓고 옷을 갈아입은 우시지마는 아주머니께 저녁 메뉴를 전하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당연히 아주머니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우시지마는 보이는 큰 등짝에 눈을 살짝 찌푸렸다.

 

 

 

 

 

 “오늘 아주머니가 일이 있다고 하셔서 일찍 가셨다.”

 

 

 

 

 

 저녁 반찬은 만들어 놓고 가셨어. 우시지마는 식탁을 훑었다. 꽁치는 내일 해달라고 해야 하나, 따위를 생각하던 우시지마는 문득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고 제 아비를 보았다.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우시지마는 그저 쓱 몸을 돌려 부엌을 나섰다. 아니, 그러려 했다.

 

 

 

 

 

 “와카토시, 잠깐 얘기 좀 할까?”

 

 

 

 

 

 저를 부르는 말에 우시지마는 걸음을 멈추고 다시 제 아비를 보았다. 다시 한 번 허공에서 시선이 부딪혔다. 먼저 걸음을 옮기는 제 아비의 뒤통수를 보던 우시지마는 곧 걸음을 옮겼다. 어릴 때부터 잘 들어오지 않았던 아비의 서재였다. 우시지마는 방 안을 쓱 훑어보고 책상 앞에 선 제 아비를 보았다. 부정할 수 없이 저와 닮은 얼굴이었다. 한 쪽에 놓인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대화를 길게 이어나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늦어도 30분 내로는 쿠로오가 올 것이었고, 저녁을 챙겨줘야 했다. 제 아비와 같이 소파의 등받이 뒤쪽에 걸터앉은 우시지마는 제 아비를 보았다.

 

 

 

 

 

 “학교는 어떠니? 할만 해?”

 “……괜찮습니다. 별로 어려울 것도 없고요.”

 “테츠로는 어떻대?”

 “직접 물어보는 게 빠르지 않으실까요. 자주 보시지 않습니까.”

 

 

 

 

 

 사실 그다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다. 순간적으로 튀어나간 말에 아비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우시지마는 그 표정에 고개를 갸웃, 꺾었다. 말을 잘못했나, 싶었는데 아비의 표정이 다시 가다듬어졌다. 애써 웃어 보이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바로 하며 싸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너도 자주 안 보는데 테츠로를 어떻게 자주 봐. 그 말에 우시지마는 하, 하고 웃었다. 저가 알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었나? 그렇게 저를 멍청하게 여겼었나? 아니면, 스스로가 완벽하게 숨겼을 거라 생각했었나. 우시지마는 터져 나오는 웃음에 입을 가린 채 큭큭 웃었다. 웃으면서도 가슴은 까맣게 가라앉았다. 기만도 이런 기만이 없다.

 

 

 

 

 

 “저보다 테츠로를 더 자주 보시잖아요. 그제도 밤중에 불러내시지 않았습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테츠로를 범하는 거, 제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우시지마의 말에 아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우시지마는 웃음을 멈추고 똑같이 표정을 굳혔다. 10년 이었다. 지금 제 키에 반도 되지 않던 어린 아이를, 친 자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들로 들여온 자식을 범하는 추악한 짓을 10년 동안 해 왔었다. 그러면서도 앞에서는 다정한 척, 올바른 척 연기를 해온 저 모습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 우시지마는 분노로 일그러져가는 제 아비의 표정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신은 이제 울던 쿠로오를 달래주는 것 밖에 하지 못했던 일곱 살의 어린 아이가 아니었다.

 

 

 

 

 

 “너 지금 뭐라 그랬어.”

 “그렇게 자주 부르시는데 모르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테츠로의 목에 그렇게 자국까지 남겨 놓으셨으면서.”

 “닥쳐!”

 “낮에는 아들이라 부르시면서 밤에는 테츠로에게 발정하고.”

 “닥치라고!!”

 “역겨워.”

 

 

 

 

 

 왈칵, 달려들어 제 팔을 잡는 손에 우시지마는 힘껏 그 손을 뿌리쳤다. 순간 휘청인 몸은 그대로 넘어지며 쾅, 하고 책상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바닥에 쓰러졌다. 책상 위에 놓여있던 액자가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우시지마는 눈을 치켜뜬 채 바닥에 쓰러져 미동조차 없는 제 아비를 내려다보았다. 흔한 비명 소리 하나 없었다. 밖에서 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카토시!!”

 

 

 

 

 

 문이 벌컥, 열리며 얼굴이 파랗게 질린 쿠로오가 뛰어 들어왔다. 우시지마는 여전히 커다랗게 치켜 뜬 눈으로 아비를 보다 천천히 시선을 돌려 쿠로오를 보았다. 쿠로오 역시 바닥에 쓰러진 아비를 보다 우시지마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둘 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들어 와락 서로를 껴안았다. 쿠로오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시지마의 양 뺨을 쥐었다.

 

 

 

 

 

 “, 집에, 왔는데, 큰 소리가 나서. 괜찮아? 다친데 없어?”

 

 

 

 

 

 우시지마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몸 여기저기를 만지며 상처가 있는 지 확인했다. 몸에 상처가 없음을 전부 확인하고 나서야 쿠로오는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우시지마를 꽉 껴안았다.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마주 안고 자신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간신히 트며 헐떡였다. 쿠로오는 제 등을 안은 손이 부들부들 떨린 다는 것을 깨달았다.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어깨 너머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몸뚱이를 보며 우시지마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천천히 가빴던 호흡이 진정되어갔다. 호흡이 완전히 진정되자 쿠로오는 몸을 떼고 우시지마의 뺨을 쥐어 시선을 맞췄다.

 

 

 

 

 

 “내가, 내가 했다고 할게.”

 “테츠로, 네가 왜…….”

 “나는 당한 게 있잖아. 내가 했다고 하면, 죄가 크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테츠로.”

 

 

 

 

 

 쿠로오는 제 입술에 겹쳐지는 것에 말을 멈췄다. 손목을 쥔 손이 부드럽게 제 손을 내렸다. 입술이 떨어지고, 우시지마는 다시 쿠로오를 품에 안았다. 너와 잠시라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다. 속삭이는 소리에 쿠로오는 그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나도. 옷깃을 움켜쥔 손이 잘게 떨렸다.

 

 

 

 

 

 “테츠로.”

 “.”

 “아버지는 혼자 미끄러져 죽은 걸로 하자.”

 “?”

 “너에게 나대신 죗값을 치르게 할 생각도 없고, 너를 두고 감옥에 갈 생각도 없다.”

 

 

 

 

 

 큰 소리가 나서 달려와 보니 아버지가 쓰러져 있었다, 그런 걸로 하자. 쿠로오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어깨 너머 차갑게 식어가는 몸뚱이를 보다 우시지마를 꽉 끌어안았다. 이제 너를 괴롭게 할 사람은 없다, 테츠로. 마지막 말에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어깨에 다시 얼굴을 묻었다. . 내뱉어진 말에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안은 채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신호는 길지 않았다.

 

 

 

 

 

 “저희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우시지마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익숙한 머리꼭지에 우시지마는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 서자 퍼뜩, 고개를 드는 것에 우시지마는 손을 내밀었다. 가자. 그 말에 마주 잡아오는 손은 긴장한 탓인지 조금쯤 차가웠다. 우시지마는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제 뒤에 서 있던 경찰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경찰서를 나와서도 둘은 말이 없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나서야 쿠로오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시지마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어깨를 끌어안았다. 아직은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택시에서 내린 둘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우시지마의 방으로 들어섰다. 둘은 방에 들어서자마자 와락 끌어안았다.

 

 

 

 

 

 “다 끝났다.”

 “……. 엄청 긴장했어.”

 “고생 시켜서 미안하다.”

 “아냐. 와카토시가 나 구해준거지.”

 

 

 

 

 

 저를 보며 씩 웃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마주 웃었다. 이제 널 괴롭힐 사람은 없다. 뺨을 쓰다듬으며 하는 말에 쿠로오는 그 손을 잡아 눌렀다. 나른하게 눈이 내리 감기자 우시지마는 다른 손으로 쿠로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쿠로오의 눈이 슬쩍 뜨였다.

 

 

 

 

 

 “솔직히 좀 무서운데.”

 “.”

 “와카토시랑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아.”

 

 

 

 

 

 사랑해. 제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속삭이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한다, 테츠로. 창문을 타고 들어온 노을빛이 온통 방 안을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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