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시지마는 천천히 복도를 걸었다. 늘상 품에 안겨있던 온기가 없으니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조금쯤 불안하기도 했고. 우시지마는 발을 타고 오르는 둔한 냉기를 느끼며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조금쯤 졸음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시간을 확인했다. 열두 시가 넘은지는 꽤 되었다. 문득 문이 열리는 소리에 우시지마는 걸음을 빨리했다. 혼란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현관에 다다른 우시지마는 신발장에 손을 대고 꾸물거리고 있는 인영의 앞에 섰다. 내내 켜지지 않았던 현관불이 소리 없이 번쩍 켜졌다. 그 불빛에 꾸물거리던 인영이 문득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곧 멍하니 벌어져 있던 입술이 휘었다.
“와카토시.”
“늦었다.”
“응, 미안해.”
평소 같았으면 목덜미를 끌어안았을 것을, 저가 높은 곳에 있어 팔을 두르는 위치가 허리였다. 우시지마는 그 어깨를 마주 안으며 바깥 공기 탓에 서늘한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코를 박은 머리에서는 옅은 담배냄새가 났다. 우시지마는 끌어안았던 어깨를 풀고 제 가슴팍에 얼굴을 묻은 이의 뺨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나른하게 감겨있던 눈이 뜨이고 작게 웃었다. 나 담배냄새나? 속삭이는 목소리에서는 짙은 술 냄새가 풍겼다. 우시지마는 그 턱을 당겨 시선을 맞추었다. 툭, 하니 현관불이 꺼지고 어둠 속에서 반질반질한 눈동자가 빛이 났다. 우시지마는 그대로 벌어진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후응. 허리에 둘러져있던 손이 더듬더듬 등의 옷깃을 움켰다. 차가웠던 혀끝이 조금씩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시지마는 천천히 입술을 떼고 제 눈앞의 뺨을 쥐었다.
“술 냄새가 더 난다.”
“그냥 가야겠다, 그럼.”
“어디를.”
“우시지마 상한테.”
외박하려다가, 오라고 그래서. 담담히 눈가가 휘었다. 우시지마는 다시 한 번 입술을 겹쳤다. 등허리를 쓸어내리며 허리를 감아 안자, 옷깃을 움켰던 손이 저를 꽉 안고 매달렸다. 닿은 혀끝의 온도는 이제야 뜨거웠다.
철컥, 하는 문소리에 우시지마는 얼핏 눈을 떴다. 자지 않을 거라 생각했건만 저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문 앞에서 얼쩡거리던 그림자가 금세 다가왔다. 나 때문에 깼어? 조용한 목소리에서는 나른한 비누향이 섞여있었다. 우시지마는 손을 뻗어 그 팔을 잡았다. 따끈한 열이 손바닥을 타고 느껴졌다. 벅벅 문질러 닦는 버릇은 여전했다. 우시지마는 제 품에 안겨드는 몸을 마주 안고 그 등허리를 쓰다듬었다. 물기에 젖은 입술이 가볍게 뺨에 닿고, 뚝, 젖은 머리칼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우시지마는 그 양 뺨을 잡고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얼굴은 또 바로 보였다.
“물 떨어진다.”
“씻자마자 바로 와서.”
수건을 잡자 자연스레 품에서 빠져나가 침대 밑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우시지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 머리를 살살 털어주기 시작했다. 깨워서 미안하네. 수건에 막혀 목소리가 웅얼거렸다. 우시지마는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머리를 털어내고 아직 젖은 머리칼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테츠로.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평소와 달리 축 쳐진 머리칼에 가려진 얼굴이 가련했다. 뻗어지는 손을 잡고 허리를 안자, 젖은 입술이 코앞에서 벙긋거렸다. 와카토시. 속삭이는 이름들은 족쇄 같은 것이었다. 우시지마는 닿는 입술에 젖은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쉬이 떨어진 입술이 휘었다. 얼른 자자. 침대에 먼저 눕는 몸을 끌어안으며 우시지마는 눈을 감았다. 잠이 금방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쿠로오를 처음 만난 것은 7살의 여름이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풀벌레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놀이를 하고 있을 때, 대문이 열리고 제 아비와 함께 여자와 제 또래의 남자 아이가 들어섰다. 와카토시,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었지? 그 때 제 아비의 목소리는 어땠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 아비가 엄마라 소개한 여자는 아름다웠다. 여자는 웃으며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와카토시 군, 잘 부탁해. 저를 낳은 어미는 저가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세상을 떠났기에 엄마라는 것 자체가 낯설었지만, 기분은 좋았던 것 같다. 여자를 보던 중, 시선을 내린 곳에는 그가 있었다.
‘와카토시 군, 너와 친구가 될 아이야. 테츠로, 인사해야지.’
‘……안녕.’
어미의 치맛자락을 잡은 채 뒤로 숨었던 쿠로오는 그 때에도 저보다 조금 작았었다. 이리저리 뻗친 머리가 신기하다. 첫 인상은 그게 다였다. 사실 그 때는 쿠로오에게 그다지 큰 관심은 없었다. 다른 애들에게는 있던 ‘엄마’라는 것이 생긴 게 좋았기 때문에, 쿠로오에 대한 생각은 별 것이 없었다. 그건 쿠로오도 마찬가지였다. 저보다 제 아비에 닿은 시선은 설렘만 가득해 보였었다. 쿠로오의 아빠는 쿠로오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고 했었다. 둘 다 원래 없던 엄마와 아빠가 생겼으니, 그 쪽에 관심이 가는 것이 당연했다. 첫 시선은 그렇게 엇갈렸었다.
쿠로오와 저는 그 이후에도 그다지 친해지지는 않았다. 유치원을 같이 다니긴 했지만 둘 다 혼자가 편한 성격이었고, 저보다 나중에 유치원에 들어온 탓에 어울리는 무리 또한 달랐다. 집에 온 이후에도 둘 다 서로의 방에 틀어박혀 각자 놀기 바빴다. 그렇게 겨울이 되었다. 그 날도 유치원에서 돌아온 이후 방에서 혼자 놀다 목이 말라 방 밖으로 나왔었다. 부엌으로 가기 위해 복도를 걷던 도중.
‘아악! 읍……!’
짧고 강렬한 비명이었다. 쿠로오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대로 굳어 그 방을 보았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귓가에서 불어재끼는 바람소리가 그날따라 시끄럽다 느껴졌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어렵게 떼며 비명이 들렸던 방에 다가갔다. 다가갈수록 작은 비명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 들렸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채 닫히지 않은 문 틈 사이로 눈을 대자 끔찍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입에 옷 뭉치가 물려 비명이 소리가 되지 못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눈에선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 어리고 가느다란 다리를 움켜쥐고 있는 것은 제 아비였다. 제 아비가 움직일 때마다 붉은 얼굴이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려준 것은 제 아비였다. 다급히 내달린 곳에는 다행히 쿠로오의 어미가 있었다.
‘어머니!’
‘와카토시 군, 무슨 일이니? 이렇게 뛰고…….’
‘아버지가, 테츠로를…….’
제 설명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 제 아비를 말릴 줄 알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저를 외면했다. 테츠로가 아빠한테 잘못한 게 있나보다. 무난히도 내뱉어진 말에 저는 제 아비를 방문 틈으로 보았을 때처럼 똑같이 뒷걸음질 쳤다. 다시 뜀박질을 했다. 허나 내달린 곳의 끝엔 활짝 열린 채 텅 빈 방 만이 있을 뿐이었다. 방 안은 아직 채 열기가 남아있었다. 멍하니 지옥 같던 방 안을 들여다보던 와중에,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와 다시 걸음을 옮겼다. 살갗을 애일 것 같은 칼바람이 부는 마당의 한 쪽 구석에 옷차림이 엉망인 쿠로오가 웅크린 채 울고 있었다. 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테츠로.’
제 부름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얼굴은 이미 엉망이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밀었다. 끅끅 울음소리를 참던 쿠로오가 와락 안겨들었다. 그 때도 쿠로오는 저보다 조금 작았었다. 엉엉 우는 쿠로오를 데리고 제 방으로 가 울음을 간신히 달래고 손가락을 걸었다. 저가 달래주겠다고. 막아주겠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고맙다며 손가락을 걸어오는 손은 축축하고 뜨거웠다. 그렇게 쿠로오와 가까워졌다.
“와카토시-.”
책장을 넘기던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저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학교에서 그 밖에 없었다. 문틈으로 쏙 고개를 내밀고 저를 보는 얼굴에 손짓하자 금세 교실 안으로 들어서는 이의 교복은 단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분명 아침에 나올 땐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아침의 기억을 더듬던 우시지마는 곧 제 옆자리에 앉아 턱을 괴고 씩 웃는 얼굴을 보았다.
“넥타이는 어디 갔나?”
“목 조여서 빼놨어. 보자마자 잔소리하는 거야?”
키득키득 웃는 얼굴에 더 길게 말 할 수도 없어서 우시지마는 입을 다물었다. 나 체육복 좀 빌려줘. 팔목을 잡으며 하는 소리에 미간이 좁혀지자 또 푸하하 웃어재낀다. 우시지마는 가방에서 체육복을 꺼내며 인상을 썼다.
“아침에 챙기라 하지 않았나.”
“아직 안 말랐더라.”
쿠로오는 곱게 접힌 체육복을 받아들며 몸을 일으켰다. 씩 웃는 입매가 수상스러운데 휙, 넥타이를 휘어잡는 손에 우시지마는 눈을 크게 떴다. 훅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뺨에 쪽, 입을 맞췄다. 그렇지 않아도 험악했던 인상이 찌푸려지자 쿠로오가 낄낄 웃으며 잽싸게 교실을 빠져나갔다. 좀 이따 점심 때 갖다 줄게! 복도에서 들리는 외침에 우시지마는 뺨을 소매로 쓱, 문지르며 다시 몸을 바로 했다. 아무튼 이상한 장난은 엄청 친다. 다시 책장을 넘기려는데 쿠로오가 앉았던 자리에 다른 이가 앉았다. 우시지마는 저를 보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들이닥친 쿠로오 탓에 밀려났던 제 짝이었다.
“쿠로오랑 어떻게 친해진 거야? 별로 성격이 맞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같이 산다.”
“뭐? 왜? 성이 다르잖아.”
“그럴 일이 있다. 질문은 거기까지 했음 좋겠군.”
다시 고개를 돌린 우시지마는 책을 들여다보았다. 방금 쿠로오의 입술이 닿았던 뺨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난 별로 상관없어.”
대뜸 튀어나온 말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들었다. 똑같은 반찬인데도 굳이 제 것을 집어먹는 탓에 도시락은 늘 바닥에 내려놓고 먹는 것이 습관이었다. 우물우물 음식물을 씹던 얼굴이 곧 저를 보았다. 입가에 묻은 밥풀을 떼어주려 손을 들자 익숙하게 고개를 내미는 것이 조금은 우스웠다. 떼어낸 밥풀을 입에 넣자 입 안 가득 우물거리던 음식을 삼킨 듯 쿠로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랑 나랑 같이 산다는 거. 말해도 별로 상관없다고.”
“그다지 숨길 생각은 없었다만.”
“네가 나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아니라면 됐어. 다시 씩 웃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왠지 입맛이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더 안 먹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하는 말에 우시지마는 말없이 제 도시락을 쿠로오 쪽으로 밀었다. 이상하다는 듯 쓱, 저를 훑어봤던 쿠로오는 다시 별 말없이 젓가락을 들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도 늘 도시락은 둘이 먹었었다. 딱히 약속이라든가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우시지마는 턱을 괴고 쿠로오가 먹는 것을 빤히 보았다. 얼핏 목덜미에 붉은 색이 눈에 스쳤다. 가만히 손을 뻗자 그대로 먹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내민다. 우시지마는 옷깃을 여며주며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반창고라도 붙이는 게 낫겠다.”
“섹스했다고 광고할 일 있냐.”
섹스라고 하기도 뭐 하지만. 단추를 잠그며 그 얼굴을 보자 시선이 마주했다. 우시지마는 곧 손을 떼며 몸을 떨어뜨렸다. 끝까지 제 얼굴에 달라붙던 시선은 다시 도시락으로 떨어졌다. 드물게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우시지마는 손을 뻗어 쿠로오의 머리칼을 쓱쓱 쓰다듬었다. 어제는 제 품에서 잠들었던 탓에 머리가 뻗치는 것이 덜했다. 곧 빈 도시락 통의 뚜껑을 닫으며 쿠로오가 씩 웃었다. 담배 필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에 우시지마는 고개를 저었다. 굳이 그것을 막을 생각도 없었다. 뻐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옆에 나란히 앉아 제 쪽으로 기대는 머리에 어깨를 내어주었다. 쿠로오는 동갑임에도 불구하고 늘 동생 같았었다.
“오늘 네 방에서 자도 돼?”
“그렇게 해라.”
“땡큐.”
오늘 와카토시 친절하네. 흐흐 웃는 목소리에 우시지마는 물을 조금 들이켰다. 속이 조금 죄어들었다.
'HQ > 장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시쿠로] 그믐달 完 (0) | 2015.12.19 |
---|---|
[우시쿠로] 그믐달 3 (0) | 2015.12.17 |
[우시쿠로] 그믐달 2 (0) | 2015.12.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