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졸려. 멍한 머릿속에 들어차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쿠니미는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창밖을 내다보았다. 날씨는 퍽 추워졌고, 이젠 외투 없인 외출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른 아침의 등교는 아침잠이 많고 저기압인 저에겐 마냥 피곤하기만 일인데 거기에 추위까지 더해지니 만사가 다 귀찮고 힘이 들었다. 그냥 하루쯤은 아프다고 하고 학교 빼 먹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 보아도 평균보다 훨씬 큰 배구 부원에겐 택도 없는 일이었다. 목에 칭칭 감은 목도리에 코를 박으며 쿠니미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 눈을 감으면 금방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지만 몇 정거장 남지 않았다. 쿠니미는 눈에 힘을 주며 자꾸만 감기려는 눈을 애써 떠보려 노력했다.






 -이번 정거장은…….






 이번 정거장을 알리는 안내음성이 까맣게 멀어졌다. 꾸벅, 고개가 앞으로 떨어졌다. 아. 다시 고개를 든 쿠니미는 눈을 문질렀다. 갑작스레 추워진 탓인지 더 피곤한 것도 같았다. 끔뻑끔뻑 몇 번 눈을 감았다 뜬 쿠니미는 버스가 멈추는 것에 무심코 문 쪽을 보았다. 흰 자켓에 보라색의 바지. 시라토리자와의 학생이었다. 이 근처에도 거기를 다니는 애가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해봤자 저는 주변을 크게 의식하는 편이 아니었다. 뭐, 상관없지. 어깨를 으쓱, 했던 쿠니미는 팔짱을 끼며 목도리에 다시 코를 묻었다. 얼굴이 조금 따뜻해지니 조금 더 졸린 것도 같았다. 문득 제 옆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살짝 시선을 돌리자 보라색의 바지가 보였다. 시라토리자와. 까맣게 어두워지는 시야에 꾸벅 졸 때 쯤, 코에 좋은 냄새가 닿았다. 비누 냄새에 가까운 것도 같았다. 냄새 좋네. 스르륵 감기는 눈에 쿠니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꾸벅, 고개가 떨어졌다. 몇 정거장 남지 않았다고 자지 않겠다는 생각은 어느 새 지워져 있었다. 꾸벅꾸벅 고개가 땅으로 꺼지는 것 같은 느낌에도 쉬이 눈을 뜨지 못하고 졸던 쿠니미는 제 어깨 위로 올라오는 것에 부스스 눈을 떴다. 역광으로 들이치는 햇빛이 눈이 부셨다.






 “너 아오바죠사이지? 곧 내려야 해.”






 대중교통에서 보기 드문 친절이었다. 쿠니미는 끔뻑끔뻑 눈꺼풀을 움직이다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시야가 높아지자 아까 맡았던 좋은 향기가 좀 더 짙게 났다. 쿠니미는 바깥의 풍경을 한 번, 제 옆에서 저를 깨워준 이를 한 번 보았다. 반듯하게 잘린 앞머리가 독특한 남자였다. 커다란 키에 퍽 앳되어 보이는 얼굴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줬다. 그래봤자 기억은 안 나겠지만. 쿠니미는 까닥, 고개를 움직이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가 일어나 빈자리에 앉을 거란 예상을 했지만 의외로 저가 나가기 쉽게 몸을 비켜줄 뿐 앉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남자를 지나치자 아까 맡았던 비누 향에 가까운 향기가 스쳤다. 남자치고 좋은 향기. 새삼스러운 눈으로 남자를 보았던 쿠니미는 그대로 멈추는 버스에 고개를 돌렸다. 훅 밀려드는 찬 공기를 비집고 버스에서 내리자 뿌옇게 입김이 생겼다. 그러고 보니 이런 추운 날씨에도 남자는 교복에 목도리만 한 채였다. 건강하기도 하지. 걸음을 떼며, 공기 중으로 하얗게 입김이 흩어졌다.





















 “얼어 죽겠네…….”






 쿠니미는 제 팔뚝을 쓱쓱 문지르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어제보다 더 추워진 것 같았다.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자 어제와 얼추 비슷한 시간대였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운 좋게도 버스가 바로 도착했다. 쿠니미는 버스에 올라타 어제 앉았던 그 좌석에 앉았다. 종점 가까운 곳에 사는 자의 특권 같은 거였다. 쿠니미는 거의 잘 것처럼 목도리에 코를 묻고 등받이에 눕듯이 기댔다. 아직 운행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버스 내부는 바깥의 온도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꽤 추웠지만 금세 훈훈해질 것이었다. 학교까진 꽤 거리가 있었다. 이른 아침에 부족한 잠을 채워줄 꿀 같은 시간이었다. 쿠니미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금세 머리가 무거워졌다.



 툭, 머리에 닿는 느낌에 쿠니미는 퍼뜩 눈을 떴다. 얼마나 잤는지 모를 정도로 깊게 잠이 들었었다. 턱에 축축한 느낌은 없었지만 버릇처럼 입가를 손등으로 훔쳐낸 쿠니미는 창밖을 확인했다. 다행히도 아직 내릴 정류장을 지나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쿠니미는 저가 부딪친 것을 확인했다. 시야가 먼저 보이기 전, 코끝에 향긋한 비누 향기가 스쳤다. 그 남자였다. 멀뚱히 저를 보고 있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쿠니미는 눈을 깜빡였다.






 “더 자.”

 “어, 어……. 미안.”

 “때 되면 깨워줄게.”

 “아니, 잠 다 깼어.”






 퍽 친절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에 쿠니미는 오히려 떨떠름한 기분이 되었다. 언제 봤다고 이렇게 친한 척이람. 제 기분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무표정했던 얼굴에 쓱 미소가 떠올랐다. 앳된 얼굴에 어울리는 퍽 개구 진 미소였다.






 “나 너 알아.”

 “나를?”

 “아오바죠사이 쿠니미 아키라. 맞지?”






 퍽 자신 만만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불쾌할 정도로 맞는 말이었다. 표정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지? 저가 모르는 이가 저를 알고 있음에 그것을 물어보려 입을 열려 할 때, 저가 내릴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 음성이 저와 남자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남자는 여전히 웃는 낯으로 몸을 옆으로 살짝 비틀어 비켜주었다. 아무리 보아도 익숙한 느낌은 났지만 도저히 기억은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우선은 내려야했다. 쿠니미는 찜찜한 기분을 안고 남자를 지나쳤다.






 “내일 또 봐.”






 여태까지 마주친 것은 우연에 불과했음에도 남자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즐거운 것 같기도 했다. 지랄. 말을 무시한 채 버스에서 내려 뒤를 돌아보자 제 쪽을 보고 있던 얼굴이 활짝 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쿠니미는 못 본 척 몸을 돌려 발을 뗐다. 불쾌한 기분만 치솟았다.





















 어제 종일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남자의 정체는 알아내지 못했다. 딱히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 불편하다 느껴본 적이 없었건만, 상대만 저를 알고 있는 일방적인 관계는 퍽 기분을 불쾌하게 했다. 시라토리자와에서 저를 알 만한 사람은 없을 텐데 남자는 어떻게 저를 알고 있는 걸까. 혼자 생각해봤자 답은 없었다. 사실 귀찮은 부분이기도 했다. 남자가 어떻게 저를 알고 있는 지 저와 무슨 상관인가 싶기도 하고. 쿠니미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차게 식은 손을 비벼 문질렀다. 더 이상 귀찮게 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저만치에서 오는 버스에 쿠니미는 길게 숨을 내쉬곤 걸음을 뗐다. 평소와 다름없이 버스에 오르고, 이번엔 좀 더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늘 앉던 혼자 앉는 자리가 아닌 두 사람이 앉는 좌석이었다. 옆에 누가 있으면 그래도 말을 걸지는 않겠지. 쿠니미는 팔짱을 낀 채 몸을 웅크렸다. 아직 버스 내 공기는 쌀쌀했다.



 어느 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늘 있는 일이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눈을 떴을 땐 평소와 훨씬 다른 상태였다. 혼자 잤을 땐 단지 창문에 머리를 기대거나 앞으로 숙인 채 잠을 잤었는데, 지금은? 쿠니미는 얼굴에 닿는 따뜻한 느낌에 뺨을 문지르려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댄 채 자고 있었다. 냉큼 고개를 들어 제 옆을 확인하자 그 사이 눈에 익은 흰 자켓과 반듯하게 잘린 앞머리가 제일 먼저 보였다.






 “아, 깼어?”

 “뭐야…….”

 “너무 잘 자서 깨우기가 뭣하더라.”

 “네가 왜 내 옆에 앉아있는데.”

 “네 옆자리 비어 있어서 앉았지.”






 퍽 뾰족하게 나간 말임에도 돌아온 대답은 준비라도 한 것처럼 매끄럽게 나왔다. 심지어 저가 예민하게 군다는 듯한 말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것에 기분이 나빠 미간을 찡그리는데 마주 본 얼굴은 싱글싱글 웃고 있었다. 쿠니미는 고개를 돌려 앞을 본 채 팔짱을 꼈다.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유난히 남자에 대해서는 감정이 과할 정도로 치솟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러려니 하며 대충 넘겼을 것도 울컥, 불쾌하다 느꼈을 정도로. 골치가 아파오는 것 같음에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자 저를 보던 남자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2인 좌석에 앉은 것이 실수인 것 같았다. 내일은 또 어떻게 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 볼 때였다.






 “고시키 츠토무. 내 이름이야.”






 조금은 흥분한 것 같은 목소리였다. 왜? 쿠니미는 흘기듯 제 옆에 앉은 남자를 보았다. 초롱초롱한 눈이 무언가를 기대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 눈빛이 부담스러워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자 제 쪽으로 기울어지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쩌라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저…….”

 -이번 정류장은…….






 남자의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타이밍 좋게 저가 내릴 곳의 정류장을 알리는 안내음성이 나왔다. 쿠니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제 쪽으로 몸을 기울인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자리를 빠져나와 문이 열리고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쿠니미는 뒤 한 번 돌아보지 않았다. 남자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너 고시키 츠토무라고 알아?”






 턱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쓱 훔쳐내며 꺼낸 말에 물을 벌컥벌컥 먹고 있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쿠니미는 저가 물어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처럼 태연스레 바닥에 놓인 물통을 집어 들어 입에 물었다. 추운 날씨 탓에 물은 미지근하지 않고 꽤 시원했다. 꿀꺽꿀꺽 몇 모금 삼키고 입가로 흐른 물을 닦아내고 나서야 이상한 표정을 지은 얼굴이 이쪽을 향했다.






 “걔 왜?”

 “알아?”

 “알지. 시라토리자와 배구부 주전이잖아.”

 “배구부?”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라 생각했건만 배구부였다. 시라토리자와의 주전이라면 경기도 꽤나 봤고 같이 경기도 했을 것이 분명한데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 정도면 주변에 관심이 없는 수준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야 남자가 어떻게 자신을 알고 있는 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남자는 갑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었는가.






 “걔는 갑자기 왜?”

 “뭐, 그냥.”






 의문을 파고들려던 것은 옆에서 다시 되물어오는 목소리에 의해 깨졌다. 쿠니미는 들고 있던 물을 조금 더 삼켜내고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차가운 물이 스쳐지나간 목이 조금 까끌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고시키 츠토무. 괜히 그 이름을 한 번 웅얼댄 쿠니미는 무거운 걸음을 뗐다. 목덜미에 열기가 맴돌았다.





















 며칠을 내내 보아왔던 남자는 처음 존재를 눈치 챘던 날처럼,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저야 늘 등교를 하는 시간이 같았으니, 아마 남자는 앞의 버스를 탔거나 뒤의 버스를 탔겠지. 쿠니미는 퍽 뜨끈한 목덜미에 차게 식은 손을 가져다 댔다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며칠 전부터 목이 까끌댄다 싶더니 기어코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자 뜨끈한 열기가 손바닥에 전해졌다. 오늘따라 목도리도 깜빡하고 나온 채였다. 그나마 오늘 훈련이 없는 날이라 다행인건가. 쿠니미는 새삼스레 싸늘한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다 저만치에서 오는 버스에 발을 내딛었다. 다리에 추라도 매달아 놓은 것처럼 무거웠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쿠니미는 가까운 자리에 앉아 몸을 잔뜩 웅크렸다. 유난히 날씨가 추운 것도 같았다. 머리가 마치 바닥에 끌려가는 것처럼, 쿠니미는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더 무거워지는 머리에 쿠니미는 눈을 떴다. 양 뺨이 홧홧할 정도로 달아올라 있었다. 쿠니미는 흐릿한 시야를 씻어내기도 전에 차게 식은 제 손을 뺨에 가져다댔다. 뜨끈하게 열이 올라있었다. 감기 기운이 좀 더 심해진 것도 같았다. 이 정도면 조퇴는 문제없겠다 싶을 정도였다. 쿠니미는 덜컹거리는 버스의 움직임에 눈썹을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 창문에서 흘러들어오는 냉기에 열기를 좀 식힐까 싶어 이마를 가져다 댄 쿠니미는 천천히 숨을 뱉어냈다. 숨결조차 뜨겁게 달아있었다. 그냥 결석을 해버릴걸 그랬나. 쿠니미는 제 이마에 닿는 것에 느릿하게 눈을 떴다.






 “너 열나?”






 꽤나 익숙한 목소리였다. 흐릿한 시야에 눈을 몇 번 깜빡이는 사이, 이마에 살짝 닿았던 것이 앞머리를 헤치고 이마에 붙었다. 퍽 시원한 손이었다. 잠깐 그 냉기를 느끼는 사이 손이 떨어져나가고, 뺨을 더듬어 내렸다.






 “너 열 엄청 많이 나.”

 “네 손, 시원 하네…….”






 뺨을 감싸 쥐었던 손이 꾹, 뺨을 눌렀다가 금세 떨어졌다. 냉기가 떨어짐에 시선을 위로 들어 올리던 쿠니미는 마침 나오는 안내음에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허리에 팔이 둘러졌다. 그 정도는 아닌데. 쿠니미는 제 허리에 둘러진 팔을 떼어내고 버스에서 내렸다. 찬 공기가 열기와 졸음을 조금 가시게 해주는 것 같았다. 축축 늘어지는 다리를 한 걸음 떼려고 할 때, 목에 둘러지는 것에 쿠니미는 고개를 돌렸다. 반듯하게 잘린 앞머리가 제 앞에 있었다. 목에 둘러지는 것을 내려다보니 목도리였다. 비누 향 같은 좋은 냄새가 났다.






 “넌?”

 “난 원래 튼튼하니까.”

 “학교는.”

 “다음 버스 타면 돼. 됐다, 얼른 들어가. 조퇴 꼭 해.”






 이마를 한 번 더 만져본 손이 떨어져나갔다. 꽤나 걱정스러움이 묻어나는 얼굴이었다. 왜? 쿠니미는 제 목에 둘러진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남자를 보았다. 시선이 마주치고, 남자가 입술을 휘었다.






 “들어가. 춥다.”

 “이거.”

 “아, 다음에 줘.”

 “언제?”

 “내일도 버스에서 만날 거니까.”






 그러며 활짝 웃는 얼굴에 쿠니미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려 눈을 굴렸다.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는 거지. 제 등을 떠미는 손에 쿠니미는 발을 돌렸다. 내일 봐! 신이 난 목소리를 하는 소리에 쿠니미는 발을 옮기며 뒤를 돌아보았다. 목도리조차 하지 않았건만, 남자는 추위는 모르는 것처럼 굴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창피해. 이마에서 떠돌던 열기가 귀 끝까지 뜨겁게 만들었다.






 “고시키, 츠토무.”






 꼭 자기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쿠니미는 제 목에 둘러진 목도리에 코를 파묻고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코끝엔 비누 향을 닮은 향기만 가득했다.




















 “오늘 왜 이렇게 늦었냐? 또 걔 기다렸어?”






 지각은 아니었지만 꽤나 늦게 들어온 탓에 급하게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던 고시키는 제 옆에서 튀어나온 말에 활짝 웃었다.






 “아니!”

 “뭐야, 표정 기분 나빠.”






 질색하는 표정을 보아도 고시키는 여전히 활짝 웃고 있었다. 내일도 만날 거라고 하는 말에, 쿠니미는 인상을 쓰지도, 거절의 말을 하지도 않았다. 내일도, 내일도 만날 거야. 고시키는 창문 밖을 내다보며 도로에 지나가는 버스를 보았다. 휑한 목덜미가 오늘따라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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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출입금지


아카쿠로마츠(아카아시 케이지 X 쿠로오 테츠로 X 마츠카와 잇세이)


글ㅣ성인본ㅣ떡제본ㅣA5ㅣ38pㅣ5000원




> 클럽에서 술에 취한 쿠로오가 관리자 마츠카와를 애인인 아카아시로 착각하고 들러 붙었다가 쿠로오 찾으러 온 아카아시가 섹스 직전인 마츠쿠로 발견하고 셋이 3P 하는 이야기

     ※3P, 심신미약자(취중)에 대한 강제적 성관계 묘사, 최음 약물 등 주의



수량조사 폼 주소

>http://naver.me/xUK8Wxfh











ㅡSAMPLEㅡ

* 아래 내용은 수정 될 수도 있습니다.











 “……, 지금 갈게요. 문자로 보내주세요.”






전화를 끊고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 연인의 마지막 학기가 끝나는 날이었다. 시험도 간단한 교양 하나뿐이라 했고, 본래 타고난 운이 좋은 건지 수완이 좋은 덕인지 남들에게 그토록 어렵다던 취업도 졸업 전에 이미 마친 상태였다. 졸업만 하면 탄탄대로. 결론 적으로, 제 애인은 현재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 똑같이 오늘 시험이 끝나지만 저는 끝나는 시간도 늦었고, 과목 수도 좀 있었기에 같이 놀자는 조름도 응해주지 못했고, 제 연인은 퍽 아쉬운 얼굴을 했었다. 정작 아침이 되니 온통 부산을 떠는 것에 뭐 얼마나 신나게 노냐고 농담 삼아 말했던 것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대학 생활 내내 노는 것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던 제 애인이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류로 속을 썩인 적이 없었기에 크게 걱정은 안 했었는데. 아카아시는 자꾸만 떨어지려는 머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헝클어져 있긴 했지만 그것마저 만지고 갈 정신은 없었다.






내일 죽었어.”






별 의미 없는 말을 허공에다 뱉어낸 아카아시는 아직 아래를 덮고 있는 이불을 치우고 몸을 일으켰다. 대충 아무 외투나 집어 들어 걸친 아카아시는 흘긋, 흐트러진 침대를 보았다. 혼자 자기엔 턱없이 넓은 침대였지만 저도 모르게 한쪽에서 자고 있었다. 익숙해진 탓이겠지. 아카아시는 한숨을 내쉬며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238. 뒤 배경으론 제 연인의 얼굴이 커다랗게 떠 있었다. 오늘은, 별로 예쁘진 않다. 메시지에 찍힌 가게 이름을 확인한 아카아시는 홀더를 눌러 화면을 끄고 현관을 나섰다. 12월의 중순 치고 공기가 퍽 쌀쌀했다.

 










……, ……로오, 쿠로오!”

, 으응?”






쿠로오는 제 몸을 흔드는 것에 어렵게 눈을 떴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쿠로오는 뻑뻑한 눈을 비비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리가 무겁고 시야가 퍽 좁았다. 음악이 사방에서 들려와 머리가 웅웅거릴 지경이었다. 술을 얼마나 마셨더라.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금세 가늘어진 기억은 까맣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멍하니 앉아 눈을 깜빡이던 쿠로오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 어디가? 너랑 같이 사는 애 불렀다니까?”

나아, 화장시일…….”






어깨를 붙잡은 손을 떨쳐내고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예전엔 고작 이 정도로 취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니, 그 때보다 지금 더 많이 마신 건가? 어렴풋이 제 졸업과 취업을 축하한다며 술잔을 자꾸만 채워줬던 것이 기억났다. 개새끼들. 저가 스스로 마신 것은 생각도 않고 쿠로오는 웅얼웅얼 잘 되지도 않는 발음으로 욕을 하며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 쿵짝거리는 음악이 꽤나 시끄러워 정신이 없었다. 화장실, 화장실이 어디지. 질질 끌리는 발로 걸음을 옮기던 쿠로오는 구석진 곳에 있는 통로로 들어섰다. 보통 이런 곳에 화장실이 있지 않나. 통로로 들어와 코너를 한 번 꺾자, 거짓말처럼 음악소리가 작아지고 퍽 깔끔하게 정돈 된 복도가 펼쳐졌다. 쿠로오는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그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여기는 예약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데?”






휘청휘청 걸음을 옮기던 쿠로오는 갑작스레 제 옆에서 튀어나와 앞을 막는 팔에 그대로 앞으로 넘어질 뻔 했다. 어어, 하며 제 팔을 잡아주는 손에 쿠로오는 간신히 똑바로 서 제 옆을 보았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검은 수트와,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쿠로오는 눈을 몇 번 깜빡이다 곧 헤에, 웃었다.






아카아시이-.”






제 팔을 잡은 손을 무시한 채 그대로 그 몸을 폭, 끌어안았다.

 










마츠카와는 좀 어리둥절한 기분이 되었다. 웬 취객이 한 명 VIP 룸 쪽으로 오기에 막아 세웠더니 웃으며 무슨 말을 웅얼대곤 저를 답싹 끌어안았다. 단단히도 취한 모양이었다. 마츠카와는 일단 저를 끌어안은 채 줄줄 흘러내리는 남자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술 냄새가 짙게 나는 걸로 봐선 엄청나게 퍼부은 것이 분명했다. 마츠카와는 제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술에 취해 흐릿하게 풀린 얼굴은 꽤나 반반했다. 근데 저만큼이나 큰 남자에게 이렇게 안기다니, 확실히 거하게도 취했다.






아카아시…….”

주정뱅이 씨, 여기는 들어오면 안 돼. 친구는 어디 있어?”

아카아시랑, 으응, 집에 갈래…….”






제 몸을 끌어안았던 팔이 어느새 목 뒤로 둘러져있었다. 이상한 자세로 안는다. 마츠카와는 미간을 조금 좁혔다. 아카아시. 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이름이 분명해 보이는 말을 웅얼거리며 남자가 흐릿하게 풀린 눈으로 저를 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애처로운 눈빛이기도 했다. 아카아시, , 많이 취해서, 화났어? 풀린 혀로, 뭉그러지는 발음으로 그렇게 묻는 것에 마츠카와는 피식 웃었다. 어쩐지 팔에 허리가 착 감겨 온다 했다. 목을 끌어안은 손이 뒤통수의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잘못, 해써어, 아카아시이…….”






제 어깨에 늘어지듯 기댔던 고개가 휘청휘청 들려 쪽, 뺨에 입을 맞춰왔다. 퍽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 어차피 취해서 기억도 못할 테고, 아카아시라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테니 거슬리는 것은 없었다. 생긴 것도 꽤나 제 마음에 들었고. 마츠카와는 저가 안은 몸을 벽 쪽으로 기대게 하며 휘청거리는 턱을 잡아 고정시켰다. 술 냄새가 좀 나긴 하지만, 토악질을 한 것 같진 않았다. 마츠카와는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흐응. 짧은 비음이 흘렀다. 혀를 비집어 넣자 입술은 쉽게 벌어졌다. 목 뒤로 둘러졌던 손이 옷깃을 꾹 움켜왔다. 구겨지겠지만, 어차피 오늘은 딱히 중요한 예약도 없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 ,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술에 취한 다리가 꺾이는 지 자꾸만 흘러내리는 몸에 다리 사이로 무릎을 밀어 넣자 움찔, 몸이 떨려왔다. 쪼옥, 긴 소리를 내며 입술이 떨어졌다.






하아, 아카, 아카아시…….”

얼굴은 진짜 타입이란 말이야.”






벌겋게 뺨에 달아오른 얼굴이 야살스럽게도 풀려 있었다.

Master's Cage


마츠쿠로(마츠카와 잇세이 X 쿠로오 테츠로) - M & S

아카쿠로(아카아시 케이지 X 쿠로오 테츠로) - Cage


글ㅣ성인본ㅣ제본ㅣA5ㅣ78pㅣ10000원




1. M & S (마츠쿠로) > M성향을 가진 마츠카와와 S성향을 가진 쿠로오가 만나 SM 플레이 하는 이야기

                (마츠른 성향이 있으므로 유의해주세요)

              ※SM, 폭력, 기구플 등의 취향타는 소재 포함


2. Cage (아카쿠로) > 아카아시가 고백을 하면서 아카아시에게 이상할 정도로 끌려다니는 쿠로오 이야기

              ※약 유혈, 강압 및 강제적인 성관계 묘사, 방뇨플 주의



현장수령 및 통판 폼 주소

>http://naver.me/FS3bnxRs








ㅡ SAMPLE ㅡ













1. [마츠쿠로] M & S






 따닥, 딱-, 마츠카와는 필터 안의 캡슐을 부수며 미간을 잔뜩 좁혔다. 몇 번째 허탕인지 몰랐다. 이렇게까지 이 바닥이 협소했었나 싶을 정도였다. 아니, 물론, 좁기는 좁은데, 좁은 바닥이니만큼 대놓고 자기 취향을 드러내 파트너 찾기도 쉽다고 들어왔건만 제 이야기는 아닌 모양이었다. 쓰읍, 평소 같았으면 짧게 뻐끔 거렸을 담배 연기를 폐부 깊숙한 곳까지 빨아들였다 뱉어내도 기분은 풀리지가 않았다. 마츠카와는 이미 잔뜩 씹어놓은 필터를 잘근거리며 주머니에 쑤셔 박듯 넣어 두었던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홀더를 눌러 화면을 켜자 폰을 끄기 전에 보았던 메시지가 그대로 켜졌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장난이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똑같은 글자의 나열을 보니 또 다시 열이 뻗치는 것 같았다. 끄응, 앓으며 마츠카와는 눈두덩이를 눌렀다. 메시지가 오고 나서 바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메시지를 보낸 이라 추측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 쪽 입장에서는 들키지 않는 편이 좋았다. 아마 잡혔으면 이 하나쯤은 가뿐히 나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화가 난 상태였으니까. 마츠카와는 손에 든 휴대전화를 확 집어 던지려다 꾹 쥐며 손을 내려놓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던져서 폰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신 꽤나 짧아진 꽁초를 던지며 마츠카와는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많은 이름들 사이 눈에 익은 이름을 찾아낸 마츠카와는 바로 그 이름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대기음이 꽤나 길었다. 기어코 부재중임을 알리는 녹음이 흘러나왔지만 마츠카와는 대수롭지 않게 다시 통화버튼을 누르며 찌푸려진 미간을 문질렀다. 이번에도 대기음이 길어지던 끝에 뚝, 소리가 끊겼다.






 “여보세요.”

 -어, 왜?

 “오늘 장사 하냐?”

 -하지. 왜, 또 바람 맞았냐?

 “닥쳐라.”






 숨넘어가게 웃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마츠카와는 새 담배를 꺼내 물며 끝에 불을 붙였다. 이렇게 줄담배를 피우는 일도 드문데, 부쩍 담배를 태우는 일이 잦아졌다. 섹스 못해서 줄담배라니. 누가 안다면 비웃을 일이었다. 아니, 섹스는 할 수 있지. 다만 성에 안 차는 섹스여서 그렇지. 이번에도 빠르게 짧아진 담배를 던지듯 튕겨내며 마츠카와는 어느새 제 손아귀에 잡힐 만큼 길어진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다.






 “좀 이따 보자.”






 머금었던 담배연기와 함께 한숨을 내쉬듯 말한 마츠카와는 전화를 끊고 좁은 골목길을 빠져 나왔다. 찬바람에 답답했던 속이 조금 풀어지는 것도 같았다.











* 이어지는 장면이 아닙니다











 “엿들으려고 그런 건 아닌데, 오늘 무슨 일 있으셨나 봐요.”

 “네, 뭐 좀.”

 “아, 불편하시면 말씀 안 하셔도 괜찮아요.”

 “별건 아닙니다. 파트너 찾는 게 힘들어서 한탄 좀 하고 있었어요.”

 “왜요? 인기 많으실 것 같은데?”

 “아, 제가 돔이 아니라 섭이라서요.”

 “네. 인기 많으실 것 같은데?”






 변함없는 말에 마츠카와는 제 앞으로 두고 있던 시선을 돌려 남자를 보았다. 무표정하게 음료를 삼켜내던 남자가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저만큼이나 날카로워보였던 인상이 입술이 휘며 금세 섹시하게 변했다. 술에 젖은 입술이 유난스레 붉은 것도 같았다. 술의 색이 입혀진 것처럼. 사실 제 취향이시거든요. 비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목소리가 낮았다. 슥 다가오는 얼굴에 문득, 상큼한 과일향의 숨결이 닿아왔다. 마츠카와는 제 쪽으로 다가온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사실, 꽤, 마음에 드는 얼굴이기도 했다. 이런 류가 취향이었나 싶어졌지만 뭐 아무래도 좋았다.






 “저는 돔이거든요. 이런 거에 거부감 없으시면.”






 나가실래요? 쐐기를 박는 말이었다. 저가 그토록 구해도 구해지지 않던 돔이, 그것도 먼저 저가 취향이라며 다가왔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제 손을 잡아오는 손에 마츠카와는 흘깃, 다른 손님과 한창 수다를 떨고 있는 이를 보고 다시 남자를 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긍정의 말에 남자가 조금 더 짙게 웃었다.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떨어지고, 남자는 잔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마츠카와는 따라 제 음료를 한 모금 더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다시 한 번 제 친우를 보았지만 저가 나가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뭐, 괜찮겠지. 남자가 먼저 발걸음을 뗐다. 마츠카와는 그 뒤를 따라 걸으며 낮게 숨을 내쉬었다. 숨결에 옅은 알코올 향이 섞여 있었다.











 “음, 처음이세요?”

 “아뇨 처음은 아닌데 플레이한 지가 좀 오래 됐어요.”

 “그러면 어느 정도가 좋으세요? 뭐, 스팽킹이라든가 그런 거요.”

 “그 때는 그냥 다 좋았던 것 같아요. 오래 돼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럼 힘드실 때 말씀해주세요.”






 말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아마 경험이 꽤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츠카와는 제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까만 머리칼을 보았다. 남자의 외모에 홀린 채 성향을 듣자마자 무작정 따라 나오긴 했는데 사실 확신은 잘 들지 않았다. 제 성향을 자각하고 있긴 했지만 플레이도 한 지 오래 되었고, 여러모로 시험해보고 싶은 게 많아서 꽤 신중하게 파트너를 골랐던 거였는데, 이렇게 돔이 접근을 해 올 줄 몰랐다. 우선은 저와 키도 비슷하고, 덩치도 작은 편은 아니니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였다. 귀찮은 일은 최대한 만들지 않는 것이 좋았다. 앞장서서 걷던 남자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희 통성명도 안 했죠.”

 “아, 그러게요.”






 마츠카와는 남자가 열어주는 문에 고개를 까닥, 하고 그 안으로 들어섰다. 모텔은 생각보다 깨끗한 편이었다. 경험이 있어 보인다 생각은 했지만 그 끝이 제 생각보다 더 최근인 것 같다. 마츠카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겉옷을 벗어 한 쪽에 걸어두었다. 철컥, 문이 닫히고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까지 듣고 나니 조금 실감이 나는 것도 같았다. 마츠카와는 뒤를 돌아 남자를 보았다.






 “쿠로오 테츠로라고 합니다.”

 “……마츠카와 잇세이입니다.”






 내밀어지는 손에 얼떨결에 악수까지 했다. 원래 이랬었나. 과거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꽤나 된 일이라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먼저 씻으세요, 하며 제 등을 떠미는 것에 얼떨결에 샤워까지 깨끗이 하고 나왔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으니 약간의 후회가 드는 것도 같았다. 거의 흐릿해진 과거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사실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는 것밖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랬기에 저가 아직도 마조히스트라는 걸 자각하고 살고 있는 거였지만. 초조하게 남자를 기다리던 마츠카와는 문득 남자의 샤워시간이 꽤 길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래 오래 씻는 사람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면 때까지 밀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혹시 안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한 건가. 몸을 일으켜 욕실 앞으로 가자 쏴아-, 하고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났다.






 “저기-…….”

 “네?”

 “아니, 아닙니다.”






 다행히 멀쩡했다. 근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다시 침대에 걸터앉아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남자가 나왔다. 삐죽삐죽 서 있던 머리칼이 축 늘어져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오래 기다렸죠, 준비할게 좀 있어서.”

 “아뇨, 괜찮아요. 안에서 일이라도 생기셨나 싶어서 불러본 겁니다.”

 “좋아요, 그럼 시작할까요?”






 성큼, 제 앞으로 다가온 남자가 뺨을 잡고 눈을 맞췄다. 마츠카와는 손을 늘어뜨린 채 얌전히 남자를 보았다. 여태 내내 퍽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남자는 어느새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자의 무표정은 아까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날카로워보였다. 조금, 흥분이 되는 것도 같았다.






 “갑자기 온 거라 제가 준비가 좀 안 되어 있어요. 오늘은 가볍게 묶고, 손으로만 할게요.”

 “……네.”

 “키워드 정할까요? 음, 만약에 제가 너무 과했다거나 견디기 힘드시다면 쿠로오, 하고 불러주세요. 그럼 바로 멈출게요.”

 “네.”

 “저는 플레이 중엔 마츠카와 씨를 마츠, 라고 부를게요. 마츠카와 씨라고 부르면 플레이를 끝낸 거예요. 아시겠죠?”

 “네.”

 “얌전해서 좋네요.”






 뺨을 감싼 손이 부드럽게 아래로 쓸어내려지고 젖어 축 쳐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겼다. 플레이 중엔 말 놓을게요. 아까 저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속삭였던 것처럼 낮고 퍽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개를 쓰다듬듯 머리칼과 귀, 뺨을 지나 턱까지 쓰다듬던 따끈한 손이 떨어지고, 꽤나 가까웠던 몸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꿀꺽,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바닥으로 내려와.”











2. [아카쿠로] Cage






 저가 눈치를 챘던 때는 언제였던가. 어떻게 눈치를 챘던가. 무심한 눈, 표정, 행동, 그 사이에서 앳된 달큰한 향을 맡았던 것은, 단순히 저가 남들보다 조금 더 눈치가 좋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온전히 저를 향한 호의, 그 사이에 섞인 분홍빛의 달콤한 내음. 초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을 안고 흘러든 파란 눈빛은 열기를 품고 있었다. 노골적인 시선이었다가도 금세 여름 햇빛에 스러져 버리고, 또 다시 열기를 품었다가 바람에 식어버리는 것을 몇 번이고 본 끝에 자신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매끄러운 유리알 같은 파란 눈동자가 제게 주는 그 미적지근한 시선은 호의나 호감을 조금 더 넘어선 감정이라는 것. 그것을 우습게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받아오고 의심했으면서, 가볍게 확신했다.



 그 확신을 가지고 저가 어떠한 행동을 그에게 해줬는가? 아니, 저는 부러 모르는 척을 했다. 호기심을 가졌다. 여자에게나 가질만한 감정이었다. 제 친우가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보내는 시선. 저가 받는 그 시선과 손길은 친우가 가진 그 시선과 닮아있었다. 평탄한 길은 아닌 것을, 누가 보아도 올곧은 길을 갈 것 같은 그가 어떻게 할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다. 금방 접게 될 것 이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 호의를 대했다. 그것이 어긋난 것 인줄도 모르고.






 ‘쿠로오 상.’

 ‘으응?’






 저를 부르는 단정한 목소리와 저를 향한 파란 시선. 평소와 다르게 이질적이라고 생각은 했었던가. 도륵, 한쪽으로 구른 눈동자가 다시 저를 향했을 때의 눈빛은 평소와 똑같았다. 조금은 간지럽고, 조금은 따뜻한, 유리벽 너머로 숨긴 열 띤 감정. 드물게 휘어지는 눈매에 저도 모르게 심장이 쿵, 떨어졌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휘어지는 눈매에 이어 부정하는 말을 남긴 채 그는 자리를 떠났다. 마치, 그 유리벽을 깨고 그 뜨거운 감정을 코앞에서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치, 마치, 그 웃음의 끝엔 아니에요, 가 아닌 좋아해요, 가 올 것만 같은 검게 그을린 눈짓이었다. 이토록 뜨거운 감정이었나? 제 입김 하나에 꺼질 만한 촛불 같은 것이 아니었나?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손끝이 차게 식어갔다.



 그 후로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감정은 여전히 조금 간지러웠고, 뜨뜻미지근해 보였으며, 조금씩 흘러드는 벚꽃 같은 호의도 그대로였다. 저 또한 똑같이 행동했다. 아니, 조금 더 필사적으로 굴었다. 아주 모르는 척, 그 감정을 눈치 채지 못한 것처럼 굴며 화기에 놀란 새끼 고양이처럼 그 근처로 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왠지 모르게 목이 조여드는 것 같은 압박감만 점차 심해져 갔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제 마음가짐만 달라졌을 뿐인데 자꾸만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왜지? 내가 뭘 놓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머리를 굴려 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그 눈매만 제 속을 까맣게 태워놓았다. 결론이 나지 않을 생각들만 둥둥 떠다니던 나날을 끝내준 것은 그였다. 그래, 끝이 난 게 아니라, 끝을 내준 것이었다.






 ‘쿠로오 상.’






 그토록 피해 다닌 것을 눈치라도 챈 것처럼 뜨거운 손이 손목을 잡아채며 저를 불렀다. 으응? 한 박자 늦게 대답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지만 시선은 마주칠 수가 없었다. 그 때와 다를 바 없는 단정한 목소리와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파란 시선. 간질거리고 뜨뜻미지근한 감정이 살갗에 닿아오는 것 같았다.






 ‘알고 계시죠.’






 제가 쿠로오 상 좋아하는 거. 유리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깨어졌다. 심장이 저기 아주 깊은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뜨거울 정도의 감정이 잡힌 손목을 타고 전해졌다. 고작 촛불 따위의 감정이 아니었다. 굳어진 것처럼 잘 들리지 않는 고개를 뻣뻣하게 들자 그 곳엔 파랗게 타오르는 눈동자가 있었다. 휘어진 눈매와, 호선을 그리는 입술. 제 몸 전체를 까맣게 태워버릴 것 같은 열기가 시선을 따라 제 몸 위를 배회했다. 아니라고, 몰랐다고 대답을 해야 하는데 입술만 벙긋거릴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손끝이 뺨에 닿아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쿠로오 상.’

 ‘아카, 아카아시.’

 ‘좋아해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이.











* 이어지는 장면이 아닙니다











 동아리 활동이 없는 날이었기에 훈련 없이 일찍 끝날 수 있었다. 오늘 후쿠로다니는 훈련이 있다고 했었나. 뿌연 기억을 더듬으며 짐을 챙긴 쿠로오는 버릇처럼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아까 이후로 메시지는 없었으니 일정에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통화 버튼을 눌러 스피커를 귀에 댄 쿠로오는 어깨로 휴대전화를 받치며 가방을 맸다. 연결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네, 쿠로오 상.

 “나 지금 나가려고.”

 -네, 저 교문 앞에 있어요.

 “벌써 왔어?”






 복도로 걸음을 옮기려던 쿠로오는 어깨로 받쳤던 휴대전화를 제대로 들고 창문으로 다가가 교문 쪽을 확인했다. 눈에 익은 교복들 사이로 이질적인 교복 하나가 서 있었다. 빨리도 왔다. 금방 내려갈게. 급하게 말하며 전화를 끊은 쿠로오는 퍽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성큼성큼 교실을 빠져나왔다. 금세 운동장까지 다다른 쿠로오는 교문 쪽만 바라보며 발을 재게 놀렸다. 급한 일도 아니면서, 다리가 흐느적거리는 것도 잊은 채 거의 뛰다시피 걷던 쿠로오가 아카아시를 부르기 위해 손을 올렸을 때.






 “아카아-,”

 “야! 쿠로오!”






 팍 어깨를 감싸는 팔에 그대로 다리가 꺾여 주저앉을 뻔 했다. 쿠로오는 미간을 확 찌푸린 채 뒤를 돌아보았다. 잔뜩 신이나 보이는 얼굴은 뭐 하나 걸릴 것을 찾고 있음이 뻔했다. 쿠로오는 제 어깨를 감싼 팔을 쳐내며 꺾이려는 다리를 억지로 세웠다.






 “뭔데?”

 “아니-, 우리 쿠로오가 그렇게 신이 나서 뛰어가면 내가 궁금해 안 궁금해?”

 “누가 네 쿠로오야?”

 “그래서 네 애인 님 어디 계시는데?”






 쿠로오는 퍼뜩 교문 쪽을 보았다. 교문 기둥에 기댄 채 서 있는 아카아시는 여전히 단정하고 차분한 얼굴로 저를 보고 있었다. 귀 끝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뭐야, 남자네?”






 그 말소리에 쿠로오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긴 했지만 흥미를 잃은 것 같지는 않았다. 쿠로오는 초조한 마음으로 다시 아카아시를 보았다. 기둥에 여전히 몸을 기댄 채 제 쪽을 보고 있던 아카아시가 기둥에 기댄 몸을 세우고, 걸음을 떼었다. 꽤 멀리 떨어져 있던 아카아시가 한 발, 한 발, 가까이 다가올 동안 주변의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기어코, 제 앞에 멈추어 섰다.






 “쿠로오 상.”

 “으응, 아카아시.”

 “진짜 얘가 그 문자 보낸 사람이야? 너 게이냐?”






 웃음 섞인 목소리로 가볍게 튀어나온 말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쿠로오는 눈을 내리 깔아 바닥을 보며 눈을 굴리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 앞에 선 아카아시는 그 웃음 섞인 무례한 말에 눈썹을 찡그린 채 저를 보고 있었다. 완벽히 곧은 얼굴이었다. 이탈을 모를 것 같은 단정하고 곧은 얼굴. 저가 처음 들었던 궁금증 또한, 이 얼굴이 평탄치 못한 길을 걸어가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탈을 한 길에서 또한, 곧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제 손아귀에서 구길 수 없었다.






 “……게이는 뭔 놈의 게이야. 네 머릿속엔 그딴 것만 들었냐? 야동 좀 그만 보고 공부 좀 해라.”

 “야 내가 뭘!”

 “아는 후배거든? 너야말로 여친 좀 사귀어. 고작 그런 거 보고 여자냐고 달려들지 말고.”

 “아, 씨발 재수 없는 새끼.”






 욕지거리를 뱉어내면서도 낄낄 웃어댄다. 꺼져, 새끼야. 등짝을 치며 밀어내자 간다, 가! 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라도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재수 없는 등짝이 저 멀리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쿠로오는 시선을 돌렸다. 익숙한 무표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 얼굴엔 미묘한 감정이 깔려 있었다. 쿠로오는 깜빡, 눈꺼풀을 움직였다. 파란 눈동자가 뜨겁다고 느껴졌다. 꾸욱, 느릿하게 제 손목을 잡아오는 손은 따뜻한 제 살갗에도 뜨겁다고 느낄 정도로 온도가 높았다.






 “아카아시?”






 손목을 움킨 손에 힘이 들어갔다. 성큼, 걸음이 옮겨지고 잡힌 손목이 당겨졌다. 평소 잘 보지 못한 뒤통수는 머리칼이 헝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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