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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이 더럽게 나쁜 날이었다. 불길한 기분에 눈을 떠보니 원래 일어날 시간보다 훨씬 지나있었고, 타야 할 버스가 오지 않아 급히 택시를 잡아타자마자 택시 뒤로 버스가 왔고, 지각한 강의에 들어오자마자 강의 자료를 놓고 온 것이 생각이 났다. 이렇게도 운 나쁜 날이 있을까. 오늘 같은 날은 집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누군가가 어깨동무를 하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오늘 누가 술 쏜대! 올 거지? 집에 처박혀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단박에 사라지고 오늘 같은 날은 술 마시고 풀어야지, 하는 맘이 들었다. 강의가 끝나자마자 술집으로 가서 신나게 부어라 마셔라 했던 것이 기억났다. 얼굴이 뜨거운 채로 술을 들이키다 그 자리에 익숙한 얼굴이 끼어 있어 그 옆에 앉아 아는 척을 했던 것이 기억의 끝이었다. 일단은.

 

 

 쿠로오는 제 몸을 더 단단히 끌어안는 팔에 끄응 앓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숙취 탓에 머리가 어지러웠고, 속이 뒤집혀 울렁거렸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허리가 아프고 엉덩이가 쓰렸다. 마치 무언가가 억지로 집어넣어졌던 것처럼. 눈을 뜨고 싶지가 않았다. 제 몸뚱이를 끌어안는 팔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여자는 아니었다. 저가 이마를 기댄 가슴팍은 절벽에 가까운 여자도 아닌 단단한 남자의 가슴팍이었다. 나 어제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기억을 더듬던 쿠로오는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저도 모르게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적나라하게 보이는 것은 벗은 남자의 가슴팍이었다. 그것도 몸이 엄청 좋은. 쿠로오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어제 제 기억이 맞다면, 이 가슴팍은. 쿠로오는 억지로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질끈 감았다.

 

 

 

 

 

 “……, 진짜 미쳤다.”

 

 

 

 

 

 어제 술자리에서 보았던 익숙한 얼굴의 주인이 여기 있었다. 이마를 반쯤 덮은 짧은 머리칼과 남자다운 눈썹, 굳센 턱까지. 저를 끌어안은 이 남자는 그러니까, 대학 동기인 우시지마였다. 쿠로오는 그 품에서 벗어나려 살짝 다리를 움직였다가 퍼뜩 몸을 굳혔다. 허리가 커다란 바늘에 찔린 것처럼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적나라한 그 아픔에 쿠로오는 울고 싶어졌다. 이 상황을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 떠올랐다. 남자랑 잔 것도 충격인데, 그것도 모자라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기였다. 쿠로오는 허리의 고통을 꾹 참고 잠에 빠진 얼굴을 감시하듯 보며 슬금슬금 몸을 뒤로 물렸다. 그 품에서 빠져나왔다, 싶은 그 때 감겨있던 눈이 방금 전 까지 잤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르륵, 뜨였다.

 

 

 

 

 

 “…….”

 “…….”

 

 

 

 

 

 쿠로오는 어정쩡한 자세로 그 얼굴을 본 채 굳었다. 말짱히 뜨인 눈은 몇 번 깜빡이더니 곧 시선을 조금 내렸다. 쿠로오는 그제야 제 벗은 몸이 이불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을 깨닫고 슬쩍 이불을 당겨 몸을 가렸다. 이게 꼭 부끄럼을 타는 여자 같아 기분이 상하는데, 무표정한 얼굴은 쿠로오에게서 시선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말짱한 얼굴과는 달리 눌린 머리가 우스웠지만 그 등에 한가득 난 손톱자국에 쿠로오는 시선을 돌렸다. 진짜 울고 싶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쓱쓱, 뻗친 뒷머리를 쓸어내린 우시지마는 쿠로오를 돌아보았다. 목과 이불 아래 드러난 어깨선엔 벌건 키스마크와 잇자국이 널려있었다. 우시지마는 다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벗은 옷가지가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침대 시트는 한껏 흐트러져 엉망이었다. 우시지마는 어제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니까, 어제는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원치 않는 술자리에 앉아있었다. 자주 좀 보자며 누군가가 계속 술을 따라줬고, 술 경험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주량이 꽤 세다 생각했던 자신은 그 술을 계속 받아 마셨다. 뜨뜻하게 양 볼이 달아올랐을 때 즈음 익숙한 얼굴이 다가와 아는 척을 했었다. 안녕, 우시와카 군. 발갛게 뺨이 달아올라 웃으며 저에게 하는 말에 저는 무어라 대답했었나.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하며 이름을 가르쳐 줬던 것 같다. 그리고 서로에게 술을 따라주고, 술잔을 맞부딪힌 후부터 기억이 없었다. 아니, 사실 문득문득 기억이 났다. 우시지마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술이 센 타입이라 생각했는데 그냥 뒤늦게 훅 올라오는 타입이었나 보다.

 

 

 

 

 

 “저기, 우시와카 군?”

 “……?”

 “, 일단 옷 좀 입을까.”

 

 

 

 

 

 어색하게 뱉는 말에 우시지마는 제 몸을 내려다보았다. 당연한 거였지만 속옷까지 전부 벗은 채였다.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켜 제 속옷을 주워들었다. 찝찝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우시지마를 보며 쿠로오는 이불로 몸을 돌돌 말았다. 옷을 입자고는 했지만 저릿저릿한 허리에 꼼짝도 할 수가 없어 쿠로오는 그저 우시지마가 옷을 입는 것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바지까지 입은 우시지마는 다시 침대에 앉아 머리를 쓸어 올렸다. 쿠로오는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우시와카 군, 아파, 물지 마…….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

 -아읏, 키스, 우시지마…….

 -내 이름이 뭐라고 했지, 테츠로?

 -후읏, 와카토시……, 거기…….

 -그렇게 불러라.

 

 

 

 

 

 쿠로오는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얼른 이불에 파묻었다. 진짜 미쳤다. 쿠로오는 어제 제 위에서 달아오른 얼굴로, 반쯤 풀린 눈으로 저를 몰아붙이던 우시지마와 그 목덜미를 끌어안은 채 헐떡이던 자신의 기억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둘 다 술에 취해 미쳤었던 거다.

 

 

 

 

 

 “테츠로.”

 “……이름으로 부르지 말아줬음 하는데, 우시지마 군…….”

 “어제는 아무 말 하지 않지 않았나.”

 “, 어제는 취했었다고!”

 

 

 

 

 

 쿠로오는 당황해 얼떨결에 소리를 지르고 찌잉 울리는 허리에 끄응 앓으며 천장을 보았다. 이게 진짜 무슨 꼴이야. 제 반응에 침대에 출렁인다, 싶더니 팔뚝에 따끈한 열기를 담은 커다란 손이 닿아왔다. 쿠로오는 흠칫, 놀라며 그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어제 얼마나 물고 빨았는지 입술이 부르터있었다. 쿠로오는 그 얼굴에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르는 기분이 되었다. 우시지마는 발갛게 부어오른 쿠로오의 눈가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댔다. 쓰라린 지 움찔, 눈을 감는 것에 우시지마는 쿠로오가 꽁꽁 덮은 이불을 재꼈다. 이불을 잡으려 허우적대는 반대쪽 팔 또한 잡은 우시지마는 울긋불긋한 상체를 내려다보았다. 지독히도 물어 놨다, 싶었다. 제 술버릇이 무는 건가 생각 될 정도로. 우시지마는 벌겋게 물든 쿠로오의 눈 위에 입술을 누르고 살짝 핥았다. , 하며 눈을 질끈 감는 것이 느껴졌다. 혀끝에 채 닦아내지 못한 소금기가 맴돌았다.

 

 

 

 

 

 “우시지마 군, 그만…….”

 “어제 이름을 가르쳐 줬을 텐데.”

 “우리 그 정도로 친하진 않…….”

 “섹스까지 했는데 어떻게 해야 더 친해지지?”

 

 

 

 

 

 적나라한 단에 쿠로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우시지마는 눈꺼풀에 누른 입술을 떼고 쿠로오를 내려다보았다. 성애의 흔적이 난잡한 몸은 색정적이었다. 우시지마는 어제의 자신이 어째서 이 남자와 잤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쿠로오는 잡힌 손목이 침대에 눌리는 것을 느끼며 우시지마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귀 끝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끄러움을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쿠로오는 다시 그 얼굴이 내려와 뭉근하게 입술에 문질러지는 감촉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아마 어제 잔뜩 눌린 탓에 손목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아 밀어내기도 마뜩찮았다. 입 안으로 들어오진 않고 몇 번이고 입술을 핥던 혀는 곧 떨어져 다시 멀어졌다.

 

 

 

 

 

 “책임지겠다.”

 “……? ?”

 “처음이지 않았나.”

 “, 그건……!”

 “내가 책임지겠다.”

 “하아, 우시지마 군…….”

 “이름을 부르라 했다, 테츠로.”

 

 

 

 

 

 쿠로오는 제 뺨에 쪽, 하고 붙었다 떨어지는 입술에 으으, 하고 진저리를 쳤다. 곧 몸을 일으킨 우시지마는 바닥에 널브러진 쿠로오의 옷가지를 주워 와 쿠로오의 이불을 완전히 걷어냈다. ! 하고 소리를 지르는 쿠로오에게, 허리 아프지 않나 입혀주겠다. 하며 태연스레 쿠로오의 다리를 붙잡아 올리던 우시지마는 그대로 멈췄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멀건 액이 주륵, 흘렀다. 중요 부위는 잽싸게 가렸던 쿠로오는 더 이상 얼굴이 달아오를 수 없을 거라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깜빡이던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켜 서랍을 뒤지더니 구비되어 있던 물티슈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다시 발목을 붙잡는 손에 쿠로오는 질색을 했다.

 

 

 

 

 

 “내가 할게, 내가!”

 “일어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대충 닦기라도 할 거니까! 내가 할게!”

 “다음부턴 안에 하지 않겠다.”

 

 

 

 

 

 쿠로오의 말을 가뿐히 무시한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다리를 벌리며 물티슈로 흐른 것을 살살 닦기 시작했다. 진이 빠진 쿠로오는 그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손길을 받았다. 꽤나 조심스런 손길에 한숨을 내쉬던 쿠로오는 우시지마의 말을 곱씹었다. 다음?

 

 

 

 

 

 “저기, 우시지마 군?”

 “…….”

 “저기?”

 “…….”

 “하아…… 와카토시?”

 “왜 그러지, 테츠로?”

 “저기, 다음엔 안에 안 한다고……?”

 “책임지겠다고 하지 않았나.”

 “우시…… 아니, 와카토시. 우선 나는 여자도 아니고, 어제 잔 건 그냥 하루 실수 한 거라고 생각…….”

 “너와 사귀고 싶다, 테츠로.”

 

 

 

 

 

 대뜸 던져진 돌직구에 쿠로오는 멍하니 우시지마의 얼굴을 보았다. 꽤나 정성들여 아래를 닦던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얼굴을 보았다. 쿠로오는 눈을 깜빡이다 그대로 대자로 뻗었다. 자 고집을 꺾을 힘도, 자신도 없었다. 쿠로오는 제 발목을 잡아오는 손에 발목을 내밀어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맘대로 하십쇼…….”

 

 

 

 

 

 힘 빠진 목소리에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발목을 놓고 물티슈를 휴지통에 버린 뒤 쿠로오의 옆에 앉아 그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데려다 주겠다. 퍽 다정하게 이마를 쓸어주는 손에 쿠로오는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는 술이 떡이 되도록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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