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장면은 이어지는 장면이 아닙니다










ㅡ SAMPLE ㅡ










몇 달 째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는 한 남자가 나왔고, 그 남자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남자였다. 그 이름 모를 남자는 제 꿈속에 나와 밤새 온갖 야릇한 짓을 하곤 했다. 처음엔 가벼운 스킨십으로 시작했던 것은 날이 지날수록 점차 대담해졌고, 결국엔 몸까지 섞는 단계로 발전했다. 몸을 섞게 된 이후로는 체위며 상황이 바뀌어가며 배를 맞춰댔다. 꿈에서 깨어나면 늘 젖은 속옷을 빠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흔한 몽정이라 생각하면 편할 이 꿈을 이상하다 칭하는 것은,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제 또래의 다른 남자애들보다 성욕이 적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남자를 보고 성적인 흥분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자신은 이성애자라고 생각해왔건만, 꿈속의 남자는 그것을 뒤집어엎은 채 몇 달 째 제 꿈속에 나오는 것이었다. 이 나이 먹고 몽정을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꽤나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 남자는 도대체 누굴까. 젖은 속옷을 널며 우시지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꿈을 처음 꾸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 도쿄의 한 강호 학교와 시합을 한 직후였다. 그 날 어떤 일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크게 나쁜 일은 없었다. 경기의 승패는 연습경기에서 자신에게 크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아니었으니, 경기 때문에 이런 꿈을 꾸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어떤 일이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도 그밖에 다른 일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꾸지 않겠지. 가볍게 넘긴 것이 이런 상황이 될 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



꿈을 꾸게 된 계기를 생각해내지 못하자 그 다음으로 생각하게 된 것은 당연히 그 남자였다. 전혀 처음 보는 그 남자는 꿈에서 깨어나면 그 얼굴을 속눈썹 한 올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꿈속에서 느낀 감정이며 생각들은 그대로 남아 있어 그 남자가 쭉 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꿈을 꾸며 알아낸 남자의 생김새는, 검은 머리칼이 조금 긴 편이고, 자다 일어나 헝클어진 것처럼 비죽비죽 뻗친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눈동자는 밝은 갈색이었으며, 고양이 같은 느낌을 주는 남자였다. 분명한 것은, 그다지 잘생겼다거나 예쁜 느낌은 아니라는 거였다. 그럼에도 남자는 계속 제 꿈에 등장해 발가벗은 채 다리를 벌리고 제 품에 안겼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에게 그런 취향이 있었나. 기억을 되짚어 봐도 나오는 결론은 잘 모르겠다였다.



결국 몇 달을 고민했음에도 꿈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얻어내지 못해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마음먹은 그 즈음, 남자에 대한 것은 아주 의외로 간단하게 풀렸다.











경기를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집중력이 떨어져 몇 번 실수를 했었지만,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렸기에 질책은 면할 수 있었다. 다들 컨디션이 좋지 않냐며 물어왔지만 괜찮다는 말밖엔 할 수가 없었다. 관중석에 그 남자가 있었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고, 사냥감을 찾는 고양이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경기장 내부를 훑고 있었다. 남자의 시선을 스칠 때마다 벌거벗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벼운 저녁 운동까지 마치고 침대에 누워있던 우시지마는 몸을 일으켰다. 왠지 모르게 남자의 생각만 하면 몸에 열이 오르는 것만 같았다.






우시지마 상, 어디 가십니까?”

잠깐, 산책이라도 하고 오겠다.”

다녀오세요.”






한 시간 정도 바람을 쐬고 돌아오면 시간이 맞을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저지를 걸치고 호텔방을 나섰다. 도쿄의 밤은 미야기에 비해 시끄럽고 환했다. 사람이 조금 덜한 곳으로 걸음을 옮기다보니 호텔과 조금 떨어진 공원에 오게 되었다. 조금 멀리까지 왔나, 싶었지만 왔던 길은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우시지마는 퍽 조용한 공원 내로 걸음을 옮겼다. 공원은 생각보다 넓었다. 생각 좀 정리할 겸 평소보다 훨씬 느릿한 걸음으로 공원 내부를 천천히 걷던 우시지마는 걸음을 멈추었다. 맞은편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가로등을 등지고 있어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우시지마는 그 사람이 누군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쿠로오.”






우시지마 쪽으로 걸어오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었다. 갸웃,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우시와카?”






평소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별명이 오늘은 퍽 반가웠다. 남자가 저를 알고 있었다. 다리가 굳은 것처럼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제 쪽으로 남자가 다가왔다. 제 등 뒤의 가로등 불빛이 그 얼굴을 비춰주었다. 아까 보았던 그 얼굴이 제 앞에 있었다. 우시지마는 저도 모르게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남자의 얼굴엔 아까의 장난기는 없고 의아함만 한가득 담겨있었다. 가로등 불빛에 남자의 눈동자는 밝은 갈색이 아닌, 금색과 비슷하게 보였다. 눈동자만은 금색인, 검은 고양이.






내 이름을 네가 어떻게 알아?”

……아까 들었다.”

언제?”

경기장에서.”






우시지마는 길게 호흡하며 천천히 대답했다. 필요 이상으로 긴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상하게도. 쿠로오는 미심쩍다는 눈이었지만 곧 어깨를 으쓱, 하곤 우시지마의 앞에 딱 섰다. 쿠로오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190에 가까운 저와 눈높이가 비슷할 정도였다.






우시와카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니 영광인데. 나한테 관심 있어?”






장난스러운 말투였다. 팔짱까지 낀 채 저를 보고 있는 얼굴 또한 장난스런 미소를 가뜩 띠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우시지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빤히 그 얼굴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되래 머쓱한 표정을 짓는 것은 쿠로오였다. 장난인데 표정 참. 꿈속에서의 쿠로오보다 현실의 쿠로오는 당연하게 표정도, 말도 다양했다. 우시지마는 쿠로오의 팔뚝을 덥석, 잡았다. 몇 달 동안 저를 골치 아프게 했던 남자가 바로 제 앞에 있었다. 우시지마는 한 걸음,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바싹 얼굴이 가까워졌다. 갑작스런 행동에 머뭇대며 뒷걸음질 치려던 쿠로오는 제 팔뚝을 잡고 당기는 힘에 자리에 멈추어 섰다.






우시와카?”

있다.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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