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와 보쿠토는 사귀는 사이였다. 우리 오늘부터 사귀자! 한 것은 아니었지만,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다보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스킨십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게 이상하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공통된 취미가 있었고, 서로에게 성적인 호감이 있었으니 어떻게 보면 이렇게 되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둘은 만나면 대부분의 시간을 배구 연습으로 흘려보냈다. 학생의 신분으로 갈 수 있는 곳은 그다지 많지 않았고, 둘 다 좋아하는 것을 고르자 남은 것은 배구뿐이었다. 그래도 둘 다 꽤나 즐겁게 공을 가지고 놀았었다. 쿠로오는 보쿠토의 배구를 좋아했다. 미들블로커인 자신의 포지션도 좋아했지만, 자신에겐 없는 보쿠토의 강한 힘을 부러워했다. 공중에 던져진 공이 그 손끝에서 스파이크가 되는 것은 늘 보아도 재밌고, 새롭다 생각했다. 뛰어오르기 전의 달음박질, 긴장되는 근육, 끝까지 공에 따라붙는 시선, 진지한 표정들과 뛰어오른 후 휘어지는 몸의 곡선, 뻗어지는 손끝 전부를 쿠로오는 늘 눈 안에 담아냈다. 보쿠토의 배구는 늘 그렇게 시선을 빼앗길 만큼 아름다웠다.




그랬던 시간이 깨어진 것은 한 순간이었다. 보쿠토의 마지막 모습 또한 웃는 모습이었다. 쿠로오는 통곡소리가 나는 장례식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날 저가 받아냈던 공 위로 눈물만 떨어뜨렸다. 다시는 그 아름다운 비상으로 만들어진 스파이크를 저가 받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 후 쿠로오는 배구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여전히 공을 만지는 것은 좋았고, 경기를 하면 재미있었다. 하지만 보쿠토에게서 보았던 아름다움은 늘 빈자리로 남아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스파이크에서 자꾸만 보쿠토를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날, 쿠로오는 방에 틀어박혀 장례식 때 다 못 운 울음을 토해냈다. 보쿠토가 죽은 지 1달도 되지 않은 때였다.












그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도쿄에서 하는 전국 체전은 어릴 때부터 늘 보러 갔었다. 보쿠토와도 갔었는데. 그런 생각으로 가지 않으려는 쿠로오를 친구가 끌고 온 참이었다. 미야기에서 온 유망주의 경기라고 했다.



그리고 쿠로오는 거기서 보쿠토를 보았다.



단번에 시선을 온통 빼앗겼다. 화려하게 날아오른 큰 몸은 쾅, 공을 상대 진영에 꽂아 넣었다. 같은 팀원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받는 모습까지 전부, 그 남자는 보쿠토와 겹쳐보였다. 아름답다. 몇 달 만에 쿠로오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남자의 스파이크는 보쿠토의 그것과 꼭 닮아있었다.






저 사람, 이름이 뭐야?

우시지마 와카토시. 미야기 현의 유망주. 너 진짜 요즘 배구 놨구나?






뒷말은 들리지 않았다. 쿠로오는 한 번 더 공중으로 떠오르는 남자를 보았다. 남자의 땀이 공중에서 흩어졌다. 역시, 아름다웠다.












쿠로오는 집에 돌아와 우시지마의 영상을 찾았다. 유망주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 듯 조금 검색을 하니 영상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쿠로오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앉아 우시지마가 나오는 모든 영상을 홀린 듯 들여다보았다. 달리기 위해 긴장하는 근육, 공만을 쫒는 집념 어린 시선, 도약 직전의 준비 자세, 공중으로 뛰어올라 활시위처럼 휘어지는 몸, 뻗어지는 손끝과 기어코 놓치지 않고 공을 쳐내는 어깨의 움직임까지. 쿠로오는 마지막 영상이 끝나고 그대로 책상에 엎드렸다. 보쿠토를 잃고 난 후 그 빈자리에 울었던 그 날처럼, 쿠로오는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다. 평생 보쿠토의 빈자리를 느껴가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건만 또 다시 그 아름다움을 보았다. 순식간에 시선을 빼앗겼고, 가슴이 뛰었다. 그런 자신이 역겨웠다. 자신은 보쿠토가 아닌 그의 배구를 좋아했던 건가? 그래서 우시지마의 스파이크에 이토록 가슴이 뛰는 건가? 스스로에 대한 배신감에 토악질이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쿠로오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보쿠토의 사진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엉엉 울었다.






미안해, 미안해.






닿지도 않을 말을 되뇌며 쿠로오는 연신 울음을 토해냈다. 끔찍한 밤이었다.












다음 날 쿠로오는 퉁퉁 부은 눈으로 또 다시 체육관을 찾았다. 밤새 울며 잘못을 빌었음에도 또 다시 그 모습이 보고싶어 이곳까지 온 자신이 우스웠지만, 아마 앞으로는 보지 못할 테니까. 스스로의 죄책감을 애써 외면하며 쿠로오는 또 다시 그를 찾았다. 스파이크를 연습하려는 듯 준비하는 자세에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공이 공중으로 던져지고, 그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쾅-!!



바닥에 꽂힌 스파이크가 2층 관중석으로 튀어 올랐다. 쿠로오는 제 얼굴로 날아오는 공을 저도 모르게 손으로 쳐냈다. 제 손에 쳐내진 공이 경기장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번 바닥에 부딪쳤던 공임에도 쳐낸 손이 얼얼할 정도의 힘이었다. 쿠로오는 벌겋게 달아오르는 제 손을 보다 느껴지는 시선에 시선을 내렸다. 눈이 마주쳤다.












경기가 끝나고 쿠로오는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왔다. 아니, 도망을 치고 있었다. 시합 중간 중간 마주쳤던 눈이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았다. 급히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던 쿠로오는 턱 잡히는 손목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엔 보쿠토가 있었다. 훅, 열기 섞인 땀 냄새가 쏟아지며 쿠로오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미안해.






흐릿한 시야에 보쿠토가 일그러지고, 뜨거운 손끝이 눈가를 쓸어냈다.






괜찮은가?






낯선 말투가 귀에 닿고, 깨끗해진 시야에 들어차는 것은 내내 자신이 보았던 남자였다.












받아라.






쿠로오는 남자가 내미는 것을 머쓱하게 받아들었다. 정신이 들고 나니 그 앞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것이 창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쿠로오를 달래주고 팀에 양해까지 구한 뒤 바깥 벤치에 쿠로오를 데리고 나갔다. 자신한테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나 싶다가도 쿠로오는 모른 척 남자의 호의를 달게 받았다. 조금 더 남자를 보고 싶었다. 제 이기적인 욕심에 쿠로오는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아까 남자에게 움켜졌던 손목이 후끈거리는 것 같았다.






아까.

?

왜 잡았어?






녹차를 홀짝이던 남자는 잊고 있었다는 듯 아, 하며 고개를 까닥이더니 쿠로오 쪽으로 고개를 쓱 들이밀었다. 쿠로오는 멈칫,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빼다 제 손을 끌어가는 것에 눈을 깜빡였다. 건조하기만 할 줄 알았던 눈이 흥미로 빛이 나고 있었다. 또. 쿠로오는 남자의 갈색 눈동자가 금빛으로 바뀌는 것 같은 착각에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배구, 좋아하지? (배구, 좋아하지?)






겹쳐지는 목소리에 쿠로오는 눈을 내리감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이 답답했다.






너와 한 번, 해보고 싶다. (너랑 배구 하고 싶어.)






자신이 거절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파앙-, 스파이크를 막아낸 손바닥이 얼얼했다. 쿠로오는 숨을 헐떡이며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전국을 오지 못했다 뿐이지 꾸준히 훈련과 경기는 해왔기 때문에 감은 전혀 녹슬지 않았다. 쿠로오는 벌겋게 달아오른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런 스파이크를 또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뻑뻑해지는 목에 쿠로오는 침을 삼키다 물통을 집어 들었다. 숨을 몰아쉬는 것은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쿠로오는 우시지마를 보았다. 꽤나 오랜 시간동안 스파이크를 때려 지칠 만도 하건만, 우시지마는 처음과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보쿠토도. 거기까지 생각했던 쿠로오는 멈칫,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가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언제까지 그 속박에 허덕거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쿠로오는 제 쪽으로 손짓하는 우시지마에 물통을 내려놓고 걸음을 옮겼다. 다시 연습이 시작하고, 쿠로오는 네트 위로 뛰어올랐다. 눈앞에 희고 검은 머리칼이 휘날리는 착각이 일었다. 갈색 눈동자가 반짝, 금색으로 바뀌었다. 쿠로오는 버릇처럼 손을 움직였다. 그 손을 스치고, 코트 바닥에 쾅, 공이 처박혔다. 쿠로오는 바닥에 착지하고 멍하니 그 공이 박힌 부분을 보았다. 지금 내가 뭘 한 거지.






왜 크로스를 막는 모양이었지? 여태껏 크로스는 한 적이 없는데.






그 말에 쿠로오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크로스는 보쿠토의 스파이크 방식이었다. 쿠로오는 덥석, 잡히는 손목에 멍청히 우시지마를 보았다.






뭐를 보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봐라.






내 스파이크를 막아. 그 말에 쿠로오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목에 내내 매달려있던 보쿠토가 무거웠다. 목이 조여 왔다. 네트를 넘어온 우시지마가 쿠로오의 팔을 주무르고, 그대로 쓰다듬었다. 네 블로킹은 좋아. 썩히고 싶지 않다. 굳건히 나온 말에 쿠로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네가 내 공을 막으면 막 뜨거워져.)



과거의 목소리가 귀와 몸을 옭아맸다. 쿠로오는 제 팔을 꾹 잡는 손에 고개를 끄덕였다.






쿠로오.






내 공에 집중해. 얼핏 활짝 웃고 있던 머릿속 얼굴이 흐릿해졌다. 쿠로오는 눈가를 문지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겋게 달아올라있는 눈매를 엄지로 쓸어낸 우시지마가 다시 네트를 넘어갔다. 그 등에 겹치던 비죽 서 있던 희고 검은색의 머리칼은 없었다. 쿠로오는 붙잡혀있던 팔뚝을 한 번 쓸어냈다. 심장이 뛰었다.






미안해.

?

다시, 시작하자.






준비 자세가 다시 잡혔다. 우시지마의 시선이 공에 진득이 들러붙었다. 그 갈색 눈동자가 금색으로 바뀌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쿠로오는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목 뒤로 보쿠토의 이름을 넘겼다. 다시는 읊조릴 일이 없을 것이었다. 공중으로 떠오르는 몸이 찬란히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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