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린 거야?”

 “아니.”

 “. 진짜 이래도 되는 거야?”

 “잠깐은 괜찮지 않나.”

 

 

 

 

 

 의심스러운 표정인 제 연인을 보던 우시지마는 씩 웃으며 머뭇거리는 손목을 꾹 움켜쥐었다. 이미 온 거 돌아갈 생각인가. 안 쪽으로 고개를 까닥, 하며 묻는 말에 쿠로오는 우시지마와 건물 안쪽을 번갈아가며 보다 한숨을 푹 내쉬며 걸음을 옮겼다. 빌리지도 않았다면서 시간은 어쩜 그렇게 잘 맞췄는지 건물 안은 텅 비어있었다. 아주 안쪽으로 들어가기 전, 쿠로오는 문 앞에 서서 건물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떻게 찾았는지 내부는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 저도 모르게 감탄하자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놓였다. 시선을 그 쪽으로 돌리자 가볍게 입술이 맞닿았다.

 

 

 

 

 

 “정신 빼놓지 마라.”

 “네네.”

 “잠깐 거기 서 있어라.”

 “?”

 “신부 입장처럼 하는 거다.”

 “내가 왜 신부인데?!”

 

 

 

 

 

 꽃 들고 있지 않나. 그러며 웃는 얼굴은 드물게 기분이 좋아 보여, 쿠로오는 어깨를 으쓱, 하고 마주 웃었다. 먼저 성큼성큼 걸어 가 단상 앞에 서는 것에 쿠로오는 그 안 쪽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제 옆으로 팔을 뻗으며 입술이 열렸다. 신부 입장. 그 말에 쿠로오는 씩 웃으며 꽃다발을 고쳐 잡고 제 연인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제 쪽으로 내민 손을 잡은 쿠로오는 그 옆에 나란히 서서 제 연인과 마주보았다. 잡고 있던 손을 돌려 깍지를 끼자 손바닥이 바짝 밀착했다. 쿠로오는 고개를 꺾으며 웃었다.

 

 

 

 

 

 “주례해주는 사람도 없어서 별로 할 게 없다.”

 “우리끼리 기도하면 되는 거 아닌가.”

 “잠깐, 와카토시. 넥타이.”

 

 

 

 

 

 들고 있던 꽃다발을 우시지마에게 넘겨 준 쿠로오는 조금 비뚤어진 검은 넥타이를 가다듬어 주었다. 장례식이라도 온 것 같다. 그러며 웃는 얼굴에 우시지마는 입술을 휘며 쿠로오를 살짝 당겼다. 쿠로오는 우시지마가 이끄는 대로 걸어가 단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서로 무릎을 맞대고 꿇어앉아 손을 마주 잡은 둘은 그대로 이마를 맞댔다. 가슴께까지 끌어 올린 손에서는 반지가 반짝거려, 쿠로오는 손끝으로 반지를 살짝 매만졌다. 우시지마는 그 시선에 손을 제 쪽으로 조금 당겨 반지 위에 입을 맞추곤 눈을 감았다.

 

 

 

 

 

 “이제 이 반지도 빼겠네.”

 “새 거가 좋은 법이다.”

 “아쉬우니까 가지고 있을래.”

 

 

 

 

 

 바꿔서 가져갈까? 조그맣게 물어보는 말에 우시지마는 감았던 눈을 뜨고 응, 낮게 대답했다. 쿠로오는 제 손가락에서 반지를 빼는 것에 빼기 쉽게 손가락을 쭉 폈다가 저도 우시지마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빼 손아귀에 꾹 쥐었다. 둥글고 단단한 금속은 몇 년째 제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쿠로오는 다시 닿아오는 이마에 입술을 휘며 눈을 감았다. 따뜻한 햇볕이 몸 위로 쏟아져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쿠로오는 제 입술에 닿아오는 것에 흐응, 웃으며 입술을 벌렸다. 성당 안에서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아무도 없는데 어떠랴 싶었다. 어차피 자신은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었다. 그렇게 단정 지은 쿠로오는 입술을 떼고 천천히 눈을 떴다.

 

 

 

 

 

 “영원히 사랑할게.”

 “사랑한다, 테츠로.”

 

 

 

 

 

 한쪽 뺨을 감싸며 다시 겹쳐지는 입술에 쿠로오는 그 목을 감싸 안았다. 바짝 밀착한 가슴에 쿵쿵, 뛰는 박동이 느껴졌다. 손아귀에 들린 꽃다발과 반지의 감촉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츄웁, , 하며 입술이 몇 번이고 떨어졌다 맞닿으며 키스는 길게 이어졌다. 쿠로오는 제 허리를 감싸 안는 팔에 입술을 떼며 그 눈을 들여다보았다. 명치께가 뻐근하게 벅차올랐다. 밝은 갈색 눈동자에선 꿀이라도 떨어질 듯 다정함이 흘러 넘쳤다. 우시지마는 바르르 떨리는 입술에 제 입술을 휘며 코를 부볐다.

 

 

 

 

 

 “울지 마라.”

 “……미안해.”

 “언젠가는 하게 될 일이었다. 알고 있지 않나.”

 “그래도…….”

 “사랑하니까, 괜찮다.”

 

 

 

 

 

 쪽, 짧게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며 눈가에 그렁하게 차올랐던 눈물이 왈칵, 범람했다. 우시지마는 그 눈꺼풀 위로 입술을 눌렀다. 입술 틈으로 소금기 어린 물이 스며들었다. 결혼 축하한다, 테츠로. 낮게 속살거리는 말에 쿠로오는 목덜미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범람한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우시지마는 입술을 떼고 쿠로오의 뺨에 제 뺨을 문질렀다. 뺨이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오늘 같은 날은 울지 않았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우시지마는 제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히끅거리는 쿠로오의 등허리를 쓰다듬으며 주머니에서 케이스를 꺼내 들었다. 쿠로오는 어깨를 들썩이다 저를 품에서 떼어놓는 것에 벌써 조금 부어오른 눈으로 우시지마를 돌아보았다.

 

 

 

 

 

 “잠깐 그칠 수 있겠나.”

 

 

 

 

 

 쿠로오는 엄지로 제 눈물을 훔쳐내는 것에 코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시지마는 손바닥으로 젖은 뺨을 쓱쓱 문질러주며 쿠로오의 앞에서 케이스의 뚜껑을 열었다. 쿠로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나름 결혼식 이지 않나.”

 “와카토시!”

 “프러포즈 때 줬어야 했는데. 늦어서 미안하다.”

 

 

 

 

 

 아까 반지를 빼며 자국이 흐릿하게 남은 손가락에 새로운 반지가 끼워졌다. 다시 손 깊숙하게 깍지가 껴지고, 새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이 나란히 놓여 쿠로오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우시지마는 그 입술에 짧게 키스하고, 쿠로오를 다시 끌어안았다.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하겠다, 테츠로. 속삭이는 말에 쿠로오는 그 옷깃을 움켜쥐며 울먹이는 목소리 사이로 웅얼거렸다. 영원히 사랑할게, 와카토시. 그 말에 우시지마는 웃었다. 지금 이 순간은 그 여자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

 

 

 

 

 

 

 

 

 

 

 결혼식은 다른 이들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식이 시작한 이후엔 정말 마주할 시간이 없을 듯 해 아주 일찍 가서 턱시도를 입은 쿠로오를 제일 먼저 보았다. 또 울먹이는 쿠로오를 달래고 반지 두 개를 목걸이 줄에 걸어 목에 걸어주었다. 성당에서와는 달리 흰 턱시도를 입은 쿠로오는 생각보다 훨씬 예뻤고, 훨씬 탐이 났다. 화장실 칸에 틀어박혀 아주 촉박해지기 직전까지 몇 번이고 손을 마주 잡고, 몇 번이고 입을 맞췄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가 돼서야 그 손을 놓을 수가 있었다. 차림을 가다듬어 주고, 쿠로오를 먼저 내보냈다. 화장실에서 빠져나오기 전까지 몇 번이나 마음을 다잡아야만 했다. 식은 빠짐없이 전부 보았다. 다시는 없을 제 연인의 축복받은 결혼식이었다. 몇 번이고 마주치는 눈에 그 때마다 웃어주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몰랐다. 우리의 반지가 끼워져 있던 손가락에 전혀 다른 반지가 끼워지고, 저가 아닌 다른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할 것을 맹세하고, 입을 맞추는 순간까지 전부 눈에 담고 나서야 식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식은 다른 결혼식과 다를 것이 전혀 없었다.

 

 

 

 

 

 

 

 

 

 

 우시지마는 멍하니 제 앞에 놓인 사진을 보았다. 검은 띠가 둘러진 사진은 생전 저가 보았던 얼굴이 맞았다. 몇 번이고 부정했고,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지만, 제 앞에 놓인 사진은 달라지지 않았다. 우시지마는 손에 든 꽃을 그 사진 앞에 두며 발갛게 타오르는 향을 보았다. 그 연기에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우시지마는 마른 침을 삼켰다.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공항으로 가던 차는 공사 자재를 옮기던 트럭과 충돌하면서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피범벅이 되어 끌려오던 그 차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차에 타고 있던 신혼부부는 즉사했다. 시신을 수습하는 데에도 애를 먹었다고 들었다. 종잇장처럼 구겨진 차 안에서 그들의 몸조차 엉망으로 구겨졌을 것이 눈앞에 선했다.

 

 

 우시지마는 저를 부르는 이들을 돌아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향내에 질식할 듯 목이 꽉 죄여들었다.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며 우시지마는 갑갑한 가슴을 쾅쾅, 내리쳤다. 목을 틀어막은 뜨거운 덩어리가 내려가질 않았다. 우시지마는 이를 악물며 가슴에 손톱을 세워 움켜쥐었다. 흐윽, 하는 뜨거운 숨만 간신히 내쉬어졌다. 우시지마는 주차장 한 쪽 구석에서 벽에 머리를 박고 입술을 깨물었다. 손이 덜덜 떨려왔다.

 

 

 

 

 

 ‘다녀올게.’

 

 

 

 

 

 애틋하게도 활짝 웃던 얼굴이 마지막이었다. 채 끌어안지도 못하고 간신히 손만 겨우 스쳤던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다. 차갑게 질린 뺨 위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다. 가슴을 움켜 쥔 손가락 사이엔 아프게도 마지막 날 그의 목에 걸려있던 반지들과 똑같은 것들이 끼워져 있었다. 테츠로. 테츠로. 쿠로오 테츠로. 나의 쿠로오 테츠로. 입술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는 이름이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 로오…….”

 

 

 

 

 

 간신히 뱉은 이름조차 눈치가 보일 만큼 숨기던 관계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 더 사랑 한다 말해줬어야 했는데. 마지막 날 울먹이던 입술에 한 번 더 키스했어야 했는데. 우시지마는 다시 한 번 가슴을 내리쳤다. 흐으윽.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흰색의 턱시도를 입었던 마지막 쿠로오의 잔상이 새빨갛게 물들어 갔다. 잔인하게도, 비조차 오지 않는 장례식이었다.

 

 

 

 

 

 

 

 

 

 

 달칵, 자동차의 문이 열리고,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남자는 조수석 쪽에 던져 놓았던 꽃다발을 꺼내들고 걸음을 옮겼다. 흐릿한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 끼어 어둑하게 낮았다. 남자는 습한 공기를 한 번 들이마셨다가 내쉬곤 성당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관리를 꽤나 잘 한 듯 성당은 낡긴 했지만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남자는 제 머리를 한 번 쓸어 올리고 성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때와 거의 다를 것이 없는 성당은, 그 때 제 눈에 아름다웠던 모습 그대로였다. 잘 골랐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남자는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오랜만이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낮게 말한 남자는 제 손에 겹쳐 끼워진 반지 두 개 위로 입술을 눌렀다. 반지는 이미 흠집이 꽤 많아 낡아보였지만, 깨끗한 편이었다. 남자는 단상 앞으로 걸어가 그 앞에 무릎을 천천히 꿇었다. 이쯤. 손바닥으로 바닥을 더듬은 남자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손에 든 꽃다발을 바닥에 내려놓은 남자는 가만히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성당 내부는 남자의 숨소리마저 삼킬 듯 조용했다. 남자의 입술이 열렸다.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오게 됐군. 미안하다.”

 

 

 

 

 

 가슴 앞에 모은 손이 살짝, 이마에 닿았다. 남자의 손끝이 닳은 반지를 어루만졌다. 남자는 살짝 눈을 뜨고 손조차 내렸다.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젠 잊고 싶어.”

 

 

 

 

 

 남자는 가슴 주머니에서 반지 두 개가 걸린 목걸이를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려놓는 손에 끼인 반지와 똑같았다. 남자는 제 가슴을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울컥, 뜨거운 덩어리로 뭉친 울음이 토해져 나올 것만 같았다. 테츠로. 간신히 쥐어짠 이름에 남자는 머릿속이 뜨겁게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뜨거운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시야가 흐릿하게 일렁였다. 몇 년이 지났음에도 그 이름은 먹먹하고 뜨거운 감정으로 목을 우시지마의 목을 졸랐다. 잘못된 사랑을 신 앞에서 맹세한 탓일까. 그래서 분노한 신이 이런 형벌을 내리는 걸까. 그렇다면 너무 잔인한데. 우시지마는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고 입술을 사려 물었다. 잇새로 물린 입술에서 비릿한 피 맛이 흘러들었다.

 

 

 

 

 

 “아직도 너무 사랑해. 보고 싶어. 네 웃음이 보고 싶어. 널 안고 싶다. 입 맞추고 그 온기를 느끼고 싶어. 왜 아직도, 넌 이렇게, 난 왜 아직도, 네가 이렇게, 사랑스럽고 보고 싶을까 테츠로…….”

 

 

 

 

 

 울컥, 흐느낌이 쏟아져 나왔다. 네가 너무 보고 싶어, 테츠로. 손아귀에 움켜 쥔 꽃다발이 엉망으로 흔들렸다. 꽃잎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우시지마는 결국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몸을 웅크렸다. 흐으, , 흐으으……. 텅 빈 성당 안에 울음소리만 뚝뚝 끊겨 울려댔다. 꼭 마주 끌어안고 울었던 그 날 쿠로오의 울음소리인 것만 같았다. 우시지마는 흐릿한 시야 사이로 제 눈물에 젖어드는 반지 목걸이를 보았다. 닳은 제 반지와는 달리 멀쩡히 빛을 발하는 반지는 지금도 새것이었다. 채 몇 번 껴보지도 못한 반지는 주인을 잃은 채였다.

 

 

 

 

 

 “아직도 사랑한다, 나의 테츠로.”

 

 

 

 

 

 우시지마는 물기어린 숨 사이로 이름을 부르며 눈을 감았다. 평생 잊지 못할 이름이 눈물에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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