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물게 훈련이 없는 날이었다. 주장인 저가 제일 먼저 알았어야 했지만 수업 시간, 쉬는 시간 할 것 없이 퍼질러 잤던 탓에 부주장인 아카아시가 종례시간이 다 되어서 알려주러 왔었다. 그 한심하다는 눈빛과 한숨에 딱히 할 말이 없어 턱에 흐른 침을 닦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훈련이 왜 없는 지에 대해서도 알려줬건만, 딱히 귀 담아 듣지 않았기에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보쿠토는 발에 차이는 돌에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어느 새 네코마 고교 앞이었다. 생각보다 조금 더 돌아 왔나보다. 보쿠토는 머리를 조금 긁적이다 단 위로 올라가 울타리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배구부 애들은 체육관 안에 있으려나, 구경이나 갈까, 따위를 생각하던 보쿠토는 뒤에서 엉덩이를 팍 치는 것에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악!!”

 “여기서 뭐하냐?ㅋㅋㅋㅋㅋ”

 “와, 씨! 욕 할 뻔 했어!!”

 “변태도 아니고 남의 학교를 왜 들여다보고 있어.ㅋㅋㅋㅋㅋㅋ”






 낄낄대며 웃는 얼굴에 보쿠토는 마구 뛰는 가슴을 꾹 누르며 머뭇머뭇 단 위에서 내려왔다. 쿠로오 뿐만 아니라 네코마 부원들도 하나 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보쿠토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쿠로오에게 걸린 것도 최소 한 달치 놀림감이건만 뒤늦게 도착한 애들은 배가 찢어져라 웃고 있는 쿠로오와 머쓱하게 서있는 저를 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멀뚱멀뚱 서 있기만 했다.






 “야, 그만 웃어.”

 “아 진짜 존나 웃겨.”

 “너 훈련 중 아니냐?”

 “아 맞긴 한데. 너희 먼저 들어가 있어라, 나 좀 이따 들어갈게.”






 아직 웃음의 여운을 갈무리하지 못한 쿠로오가 끅끅대며 손을 내젓자 다른 부원들은 어깨를 으쓱, 하곤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쿠로오는 웃느라 눈가에 맺힌 눈물을 쓱 닦아내곤 보쿠토의 어깨에 척하니 팔을 올렸다. 축축한 체취가 훅 밀려들었다.






 “자, 우리도 안으로 들어가자.”

 “다른 학교 교복 입고 들어가도 되나?”

 “누가 뭐라 하겠어?”






 제 어깨를 당기는 손에 보쿠토는 입술을 비죽 내밀며 교문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고작 교문 하나일 뿐인데도 뭔가 기분이 미묘했다. 후쿠로다니 학원의 교복을 입고, 네코마 안에 있는 자신. 보쿠토는 흘깃, 쿠로오를 보았다가 그저 걸음을 옮겼다. 아래로 늘어뜨린 손이 조금 아쉬웠다.






















 “뭐 마실래? 아, 나 지갑 없다.”

 “사달라는 거지?”






 입술을 비죽 내밀며 주머니를 뒤적이자 쿠로오는 미안하다며 낄낄 웃었다. 마주 웃은 보쿠토는 콜라를 두 개 뽑아 벤치에 앉았다. 시원하다며 캔을 뺨에 댄 쿠로오는 그렇지 않아도 러닝 탓인지 양 뺨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보쿠토는 그저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캔을 땄다. 치익-, 퍽 시원한 소리가 났다.






 “그나저나 웬일?”

 “그냥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쿠로오 씨 너무 좋아하지 마세요.”

 “뭐래.”






 팔을 주먹으로 가볍게 툭 치자 쿠로오는 낄낄 웃었다. 몇 모금 꿀꺽꿀꺽 삼켜내자 목구멍이 따가워지며 더위가 훅 가시는 것 같았다. 여름이 다가오며 낮이 길어지는지 수업이 끝나고 왔음에도 아직 해는 아직 중천이었다. 고개를 뒤로 꺾자 보이는 나무는 몇 주 전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슴을 간질여 놓더니 벌써 녹음으로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곧 있으면 매미의 울음소리도 들릴 것이었다. 진짜 여름이다. 보쿠토는 눈을 가늘게 뜨다 제 어깨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촉감에 몸을 뒤척여 제 어깨를 내주었다. 치익, 뒤늦게 캔을 따는 소리가 났다.






 “오늘 훈련 없어?”

 “엉. 아카아시가 없대.”

 “주장은 너인데 왜 네가 모르냐.”





 후배한테 떠넘기면 안 되지. 피식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보쿠토는 목구멍까지 치솟은 말을 남은 콜라와 함께 삼켜냈다. 목이 따가웠다. 가깝게 밀착한 몸 탓에 스치는 팔은 어느새 땀이 식어 끈적거리지 않고 보송보송해져 있었다. 보쿠토는 고개를 기울여 제 어깨에 기댄 머리 위에 뺨을 기댔다. 쿠로오의 키가 저보다 조금 더 큼에도 이 자세가 편할 정도로 익숙해져 있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편해졌는가. 쿠로오에 관한 것이라면 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은 기억력이 더 좋지 않아졌다. 보쿠토는 기억을 더듬느라 눈을 가늘게 떴다가 그 머리에 기댄 뺨을 문질렀다. 만지지 않아 조금은 까끌한 머리칼의 감촉에 뺨 아래 뭉개졌다.






 “이렇게 농땡이 피워도 돼?”

 “뭐 하루쯤이야 어때. 너희도 쉬는데.”

 “그렇긴 하지만.”






 괜히 손에 든 빈 캔을 구겨 휴지통에 던져 넣은 보쿠토는 눈만 굴렸다. 앞으로 모은 손을 까닥까닥 하던 보쿠토는 손을 뒤로 뻗어 제게 머리를 기댄 쿠로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약간 긴장했지만 손은 쳐내지지 않았다. 진즉에 이럴 걸. 보쿠토는 괜히 손에 쥐어지는 땀을 바짓단에 문질러 닦았다. 손아귀에 들어온 어깨는 생각보다 넓었고, 따뜻했으며, 마른 탓에 단단했다. 가슴께가 간질간질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눈앞의 까만 머리칼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축축했던 땀 냄새는 사라지고 평소와 같은 체취가 올라왔다. 뺨을 기댄 머리가 뒤척였다.






 “나 좀 졸린 것 같다.”

 “너희 언제 끝나는데?”

 “음, 글쎄. 애들 다 가고 나서야 내가 가겠지?”

 “주장이네.”






 어깨를 안고 있던 손을 올려 머리를 흐트러뜨리자 킥킥 웃음이 터지며 어깨에 기대고 있던 머리가 떨어졌다. 아쉬움이 가슴께에 들썩거리다 가라앉았다. 정말 졸음이 오는 지 머리를 몇 번 털어낸 쿠로오는 여태 손에 들고 있던 콜라를 비워내고 캔을 쓰레기통에 휙 던져 넣었다. 꽤나 큰 소리를 내며 캔이 골인하자 쿠로오는 예에, 하며 몸을 일으켰다. 쭉 기지개를 펴느라 티가 올라가 허리가 슬쩍 드러났다 가려졌다. 멍하니 그 허리를 보던 보쿠토는 그 허리가 틀어지는 것에 고개를 들었다. 장난기 가득하게 웃고 있는 얼굴이 보였다.






 “어이, 변태 씨. 지금 어디 보는 거?”

 “ㄴ, 내가 뭘!”

 “진짜 봤어? 반응이…….”

 “안 봤어!”






 낄낄 웃는 소리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 진짜.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고 고개를 숙이자 제 머리칼을 북북 쓰다듬는 손이 느껴졌다. 형이 다 안다. 장난스럽게 하는 말에 보쿠토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숙였던 고개를 바로 들자 능글맞게 웃고 있는 얼굴이 마주했다. 의자 위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주워 매며 보쿠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은 그대로 내려와 뺨을 가볍게 쓰다듬고 떨어졌다. 손가락이 두드리고 간 자리가 간질거리는 것만 같았다.






 “가게?”

 “너 부 활동 해야지. 이만 갈게.”

 “응, 뭔가 아쉽네.”






 그러면서도 굳이 잡을 생각은 없어보였다. 보쿠토는 어깨를 으쓱, 하곤 쿠로오의 등허리를 툭툭 두드렸다. 농땡이 피우지 말고. 그러며 씩 웃자 마주 씩 웃으며 팔이 척 허리에 감겨왔다. 교문까지만 같이 가줄게. 반바지를 입은 탓에 쭉 뻗은 다리가 쑥 앞으로 성큼 내딛어졌다. 보쿠토는 못이기는 척 걸음을 옮겼다. 그다지 먼 거리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조금 더 같이 있는 거니까. 교문까지 오면서도 둘 사이의 대화는 없었다. 운동장에서 다른 운동부가 소리치는 것이 환청처럼 들려왔다. 교문에 도착해 보쿠토는 허리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손아귀 가득 쿠로오의 체온이 들러붙어 있는 것 같아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진짜 간다.”

 “연락해. 다음엔 부 활동 없는 날에 오고.”






 어깨를 툭 친 손이 살랑살랑 눈앞에서 흔들렸다. 보쿠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손을 흔들었다. 들어가, 애들 기다려. 솟아오르는 아쉬움을 애써 가라앉히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몸을 돌리려는 찰나, 허공에서 흔들리던 손이 덥석 잡혔다.






 “아쉽지.”






 씩 웃고 있는 얼굴에 보쿠토는 고개를 갸웃, 하다가 성큼 제 손을 끌어당기는 것에 앞으로 한 걸음 끌려갔다. 얼굴이 퍽 가까워졌다. 보쿠토는 제 손을 움켜쥔 손을 잡았다. 어느새 달아오른 손은 꽤 뜨거웠다. 손을 쥐지 않은 손이 어깨를 쥐고, 좀 더 가까이 다가온 얼굴이 얼굴 옆을 배회했다. 숨결이 살갗을 간질였다. 어느새 떠밀린 몸이 교문의 기둥에 등이 닿았다. 부드러운 감촉이 뺨에 꾹 눌렸다 금세 떨어졌다. 그리고 순식간에 밀착했던 몸은 멀어졌다. 보쿠토는 멍한 표정으로 제 뺨을 감싸 쥐었다. 싱글싱글 웃고 있는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건만, 양 뺨이 아까 러닝을 하고 난 직후처럼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라있었다. 훅 열기가 올라왔다.






 “잘 가.”

 “어, 어어…….”






 교문까지 왔을 때의 느릿했던 걸음과는 달리 체육관으로 돌아가는 걸음은 퍽 빨랐다. 멀어지는 뒤통수의 귀는 새빨갛게 달아올라있었다. 툭, 어깨에 걸쳐져 있던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입술이 닿았던 부분이 화끈거렸다. 간질거리기만 했던 가슴이 쿵쿵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열기 탓에 머리가 어지러운 것 같기도 했다. 허공에 흔들거리던 손이 절로 입가로 다가왔다.






 “난 몰라…….”






 빨간 반바지가 사라질 때까지, 보쿠토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시원하게만 느껴졌던 바람이 여름바람처럼 후덥지근하게 느껴졌다.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 #해가_져도로_시작하는_글쓰기 태그 이용했습니다











 해가 져도 쿠로오는 오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현관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죄 없는 문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손에 꽉 움킨 휴대전화의 버튼 몇 개만 누르면 금세 그 나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건만, 아카아시는 그 휴대전화를 몇 번 주무르기만 할 뿐 그 화면조차 켜지 않았다. 사실 무서운 것이었다. 그 나른한 목소리에 다른 이의 목소리가 섞여 들릴까봐. 치졸한 감정이었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아카아시는 바닥에 녹아 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애써 떼어 현관문에 다가갔다. 깜빡, 자동 센서가 켜지고, 아카아시는 맨발인 채로 문 앞에 서서 가만히 그 차가운 문에 이마를 기댔다. 기다림에 대한 대가가 제 손에 떨어져 줄까. 아카아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새카만 시야가 어지럽게 엉켰다.



















 쿠로오를 만났던 것이 언제였을까. 사실 만난 날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 그를 만났고, 후에 그에게 두근거림을 느끼기 시작한 날부터 자신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것이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카아시는 그 길을 택했다. 가시밭 길 속 드문드문 나타나는 그 황홀한 꽃밭에 저는 이미 중독된 후였으니, 그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 저는 그렇게 핑계를 댔다.






 “쿠로오 상.”





 제 부름에 흘깃, 저를 돌아보는 얼굴은 늘 같은 표정이었고, 아카아시는 그것에 이를 꽉 다물었다. 손을 뻗으면, 쿠로오는 그 손에 뺨을 기대왔다. 아카아시는 그 뺨을 어루만지며 반대쪽 팔도 뻗어 그 몸을 제 품에 끌어안았다. 온전히 제 품에 기대오는 걸 알면서도 불안한 자신이 싫었다. 그것을 티 낼 수 없는 제 자존심 또한 더더욱 싫었다. 아카아시는 저를 마주 안아오는 쿠로오의 머리에 뺨을 기댔다. 쿠로오 특유의 조금 높은 체온이 뺨에 닿아왔다. 따뜻하고, 품에 가득 차는데, 마음이 허했다. 쿠로오, 쿠로오 상. 그렇게 속으로 부르는 것조차 버거운 것만 같았다. 아카아시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쿠로오 상.”

 “응.”






 제 이름을 마주 불러오지를 않는다. 아카아시는 가늘게 눈을 뜨며 쿠로오의 머리칼을 쓰다듬던 손에 힘을 주어 그 뒤통수를 감싸 제 쪽으로 당겼다. 아래로 쭉 쳐지며 휘어지는 눈꼬리에 입을 맞추고,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부족하다. 이걸로는, 부족해. 아카아시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였다가 꾹 감았다. 늘 쿠로오의 앞에 서면 뛰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불안하게 뛰기 시작했다. 손끝부터 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철컥-.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퍽 크게 울렸다.






 “나 왔어-.”






 집 안으로 들어서며 목소리를 늘인 쿠로오는 신발을 벗다가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었다. 집 안은 평소와 달리 불이 꺼져 있었다. 가만히 서있자 센서가 툭, 꺼지며 집안이 암흑으로 물들었다. 눈을 깜빡이며 귀를 기울여도 집 안쪽에서 소리는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을 리가 없는데. 손을 휘휘 내젓자 다시 불이 반짝, 켜졌다. 쿠로오는 훌훌 신발을 벗어 던졌다.






 “아카아시?”






 집 안으로 들어서며 그 이름을 불러도 인기척이 없었다. 어디 갔나? 쿠로오는 제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화면을 켜도 부재중 표시는 없었다. 연락도 안하고 어디를 간 거야. 쿠로오는 어깨를 으쓱, 하며 외투를 벗고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쿠로오는 문득 통화음 이외의 소리에 귀에서 휴대전화를 떼었다. 우웅-. 짧게 울렸다 끊어지는 소리는 진동음이었다. 쿠로오는 몸을 일으켰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딸깍, 거실의 불을 켰다. 휑한 거실이 그대로 창백한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러났다. 쿠로오는 진동소리가 나는 침실의 문을 열었다. 침대 위 눈에 익은 인영이 앉아있었다.






 “……아카아시.”






 쿠로오의 부름에 스륵, 고개가 돌아가 쿠로오를 보았다. 쿠로오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집에 있었으면 있다고 말을 해야지. 침실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선 쿠로오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아카아시를 보았다. 제 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아카아시는 익숙했다. 푹 숙인 고개에 쿠로오는 고개를 갸웃, 하며 그 쪽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양 팔을 벌렸다. 제 품으로 걸어들어올 것이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쿠로오는 제 양 뺨을 감싸는 손에 눈을 깜빡였다. 무언가 창백해 보이는 아카아시가 이마를 맞댔다. 조금, 식은 것 같기도 한 체온이었다.






 “쿠로오 상.”

 “아카아시?”

 “쿠로오 상.”






 뭔가 말을 할 것처럼 벙긋거리는 입술은 제 이름만 되뇌었다. 쿠로오는 제 뺨을 감싼 아카아시의 손목을 잡고 아카아시가 뭔가를 할 때까지 기다렸다. 쿠로오의 이름만 중얼거리던 아카아시는 다시 입을 다물고 손을 떼어내 쿠로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어깨에 파묻히는 얼굴에 쿠로오는 그 허리를 마주 끌어안고 어깨에 입가를 댔다. 유난히 쳐져있는 분위기가 미묘했다.






 “아카아시, 어디 아파?”






 조심스레 묻는 말에도 답은 없었다. 허리를 끌어안았던 팔이 살짝 풀리고, 옷 안으로 슬쩍 손이 들어왔다. 부드럽게 등허리의 살결을 쓰다듬는 손은 평소와 달리 조금쯤 식어있었다. 묘한 기분. 쿠로오는 저를 이끄는 손에 따라 얌전히 침대 위로 누웠다. 평소 같았으면 씻고 하자고 했을 텐데, 아카아시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여 그냥 응해주기로 했다. 쿠로오는 제 입술을 몇 번 할짝이는 혀에 제 혀를 살짝 문질렀다가 슬쩍, 아카아시의 눈치를 보았다. 퀭한 얼굴이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가로등의 불빛 탓에 어른거리며 보였다. 식은 손이 허리를 쓸어올리며 옷을 끌어올렸다. 손이 꾹, 가슴께를 눌렀다.






 “읏, 좀, 아파.”

 “아파요.”

 “응?”






 제 가슴을 꽉 누르는 손목을 저도 모르게 움켰던 쿠로오는 아카아시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픈 건 자신인데, 정작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것은 아카아시였다. 아카아시? 벙긋거리는 입술에 침대 위롤 짚고 있던 손이 콱, 목을 잡아 눌렀다. 컥, 숨통이 조여드는 소리가 짧게 터졌다. 가슴께를 누르던 손은 꼭 살갗을 뚫을 것처럼 얇은 살가죽 위를 손톱으로 후볐다. 쿠로오는 제 목 줄기를 누르는 손을 움킨 채 바르작거렸지만, 몸 위에 아예 올라탄 아카아시 탓에 몸을 들썩거리는 게 전부였다. 끅, 끄윽, 간신히 좁은 틈을 비어져 나오는 소리가 전부였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관자놀이에 핏대가 섰다. 아카아시의 손목이 쿠로오의 손톱자국으로 엉망이 되어갔다.






 “왜 당신을 전부 가질 수가 없어요?”

 “억, 끄, 윽, 끄으…….”

 “왜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나를 좋아해주지 않아요?”






 아카아시, 이것 좀, 놓고, 말해. 벙긋거리는 입술이 하는 말에도, 늑골을 쥐어뜯던 손마저 쿠로오의 목을 졸랐다. 입술이 점점 벌어지고, 눈이 점점 하얗게 까뒤집어졌다. 손목에 상처를 내던 손에도 힘이 점점 풀리고 있었다. 손이 툭, 침대 위로 떨어졌다. 바르작거리던 움직임마저 없어진 후에도 아카아시는 목을 조르는 손에 힘을 풀지 않았다. 뚝, 뚝, 눈물이 바들거리는 움직임마저 없어진 얼굴 위로 떨어졌다. 미워요. 당신이, 미워. 너무 좋아서, 미워요. 꼭 저가 목이 졸리기라도 한 것처럼 끅끅대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아카아시는 그대로 고개를 떨어뜨려 쿠로오의 가슴 위에 이마를 박았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당신을 빼앗길 것만 같았어.”






 병신 같이, 말은 못하는 주제에. 목을 조르던 손을 천천히 풀며 아카아시는 쿠로오의 가슴에 기댔던 얼굴을 들었다. 쿠로오의 목엔 이미 검붉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힘없이 늘어지는 쿠로오의 몸을 일으켜 품에 끌어안은 아카아시는 그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높았던 체온은 어느 새 미적지근한 채였다. 축축 늘어지는 등을 꽉 끌어안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가졌는데, 가졌다고 생각했는데, 왜, 당신은 여전히.”






 왜 여전히 차가워요. 옷이 축축이 젖어 들어갔다. 젖어드는 옷마저 차갑게 식어갔다.











'HQ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시쿠로마츠] 길들여지다 下  (0) 2016.11.25
[우시쿠로마츠] 길들여지다 上  (0) 2016.11.25
[우시쿠로] 꺾인 꽃  (0) 2016.11.25
[보쿠로] 벚나무  (0) 2016.11.25
[보쿠로] 술 취한 밤  (0) 2016.11.25
[아카쿠로] 일몰 :: 2016. 11. 25. 16:28 HQ/단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건이랑 민이는 형제 사이인데 이복형제. 민이는 처음부터 건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음. 건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사랑은 자기가 받았는데 건이가 어느 날 갑자기 툭튀 하더니 자기 사랑을 건이 독차지 해버렸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 하지만 건이는 왠지 모르게 어릴 때부터 형인 민이를 잘 따름. 민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도 형아, 형아 하면서 졸졸 쫓아다니고 형 말이라면 뭐든 잘 들음.





일단 그런 사이를 유지하던 둘의 사이가 완전히 망가진 것은 중학생 때 둘의 사춘기가 오면서. 그건 아주 우연하면서도, 언젠가는 들킬 일이었음. (건이는 섬세하지 못하니까.) 민이가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는 아무도 없었음. 간만에 자기를 귀찮게 구는 건이도 없는 것 같아 마음 편히 집에 있을까 싶었던 민은 건의 방 앞을 지나칠 때 그 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춤.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집에 있으면서 안 쫓아 나온 게 신기해서 민은 그 안을 들여다보게 됨. 원래는 문이 열리면 쪼르르 쫓아 나와 형 왔어? 하면서 귀찮게 굴었을 텐데, 오늘은 왜. 그렇게 안을 들여다 본 민은 그대로 굳음. 건이는 불 꺼진 방 안에서 자위 중이었는데, 새어나오는 소리에 민은 머리가 차갑게 식는 걸 느낌.


‘형……, 혀엉……, 민이 형…….’



헐떡이는 신음소리 사이로 나오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었음. 민은 문을 벌컥 열어 그 안으로 들어섬. 고개를 들어 제 쪽을 보는 얼굴에 민은 건의 뺨을 내려 침.



‘이 씹새끼야 너 지금 뭐하는 짓이야!!’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 같은 기분에 건을 내려다본 민은 성기에 둘러진 자신의 속옷에 한 번 더 건의 뺨을 갈기고 씨발, 더러운 새끼. 하고 방을 뛰쳐나감. 그딴 혐오스러운 짓을 했으면서도 아무 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는 건이 더 소름끼치고 역겨웠음. 그 후로 민은 건을 더 혐오하게 되었고, 건은 자신이 한 짓이 잘못이라는 것도 모른 채 민을 졸졸 쫓아다님.





아무튼 고교 생활로 넘어와서. 민은 저때 사건 이후로 여자들을 만나댔음. 여자와의 섹스로 자신은 건이와는 다르다는 확신을 받기 위해 더더욱 여자와의 섹스에 환장을 한 것처럼 달려듦. 그래서 민이의 이상형은 금발 글래머 누나. 연하 또한 건이의 영향으로 싫어하게 됨. 건은 형과 같은 학교에 올 정도로 여전히 형 바보. 민은 아직도 건이 싫어하고. 민은 학교에 다니면서 불량스런 애들이랑 어울리며 여기저기 치근덕댐. 자긴 절대로 여자가 좋다고 하며 여자와만 자던 민은 학교 내에서 유리가 구르는 것을 보며 약간 호기심이 생기긴 함. 그럼에도 유리는 더럽다고 느끼며(전형적인 씹치) 좀 예쁘장하고 자기 취향인 애들을 물색하기 시작함. 개 중 눈에 띈 게 호두. 호두는 얼굴이 귀염상이니까 먼저 접근해서 자기랑 자자, 자기가 남자 역할 하겠다, 등등 하면서 먼저 섹스하자고 하는데 정작 섹스하려고 했을 땐 호두가 확 뒤집어 버렸으면. 결국 자기가 박히는데 그 후에도 말로는 자기가 따먹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다니고 나대서 호두가 몇 번이고 데려와서 입에 처박고 뒤에 처박으면서 언제부터 네가 날 따 먹었냐, 입이라도 닥치고 있어라 하고 몇 번 강간 비슷하게 하다가 조금씩 소문이 남. 당연히 민은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게 되고, 급하게 둘러대다 보니 앞뒤가 안 맞는 말이 늘어남.





키스는 건이를 좋아하고, 건이가 형인 민이를 엄청 좋아하니까 민에게 거짓말 그만 하라며 돌려서 얘기 하는데 민은 아니 존심 때문에 돌이킬 수가 없음. 스트레스가 쌓이다보니 집에서 민은 더 히스테릭 해지고, 그런 민 앞에서 얼쩡거리던 건이에게 민은 화를 냄. 건은 마냥 형……. 하고 울망울망한 눈으로 쳐다보고, 민은 건이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는 지 아니까 역겨움.



‘형, 나는 형이 하라는 건 뭐든 다 할 수 있어.’

‘그럼 뒤져버려 씨발!’



말다툼 끝에 민이 그렇게 말하자 건은 그 자리에서 손목을 긋고, 민은 새빨간 피와 그 비릿한 냄새, 모든 것에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함. 형, 하면서 손목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자신에게 오는 건을 보다 민은 그대로 기절. 민이 깨어난 후 가족들은 형이 돼서 동생한테 그런 소리를 했니, 말리지 않았니, 하며 민 탓을 하고(건은 순진하고 순수한데 비해 민은 양아치였으니까) 민은 손목에 붕대를 감은 채 불쌍하게 자기를 쳐다보는 건에 한 번 더 토악질을 함. 그 후 건은 ‘형이 뒤지라고 해도 죽지 않는다. 형이 토하고 싫어하니까.’ 가 머리에 박혀서 자살 시도를 하지는 않게 됨. 건이가 손목에 붕대를 감고 등교한 날 키스가 그걸 보고 민을 좀 더 싫어하게 되는 계기. 민은 호두에게 굴려지다 기어코 거짓말이 탄로가 나고(키스의 언질이 있었다), 이리저리 핑계를 댔던 탓에 거짓말은 어마어마하게 불어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 결국 같이 놀던 애들에게 걸레 취급당하는 민이. 민이보다 윗 서열 인 애들은 당연하고 아래에 있던 애들 또한 민이를 단체로 강간함.





민이가 결국 그런 상태가 되자 키스는 민을 괴롭히기 시작하는데, 건이에게는 들키지 않으려고 함. 건이 세계는 민이가 최고니까, 자기가 민을 괴롭히는 걸 건이가 알게 되면 분명 싫어할 걸 알기 때문이었음.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거짓말도 하게 됨. 건이는 눈치가 없기 때문에 키스의 말을 대부분 믿었음. 민이가 키스에 관한 이야기를 건이에게 하지 않은 이유는 키스와 건의 관계를 잘 몰랐기 때문. 원래 건이라면 치를 떨기 때문에 건이에 대해 잘 모르는 탓도 있었음. 하지만 거짓말은 결국 탄로 나게 되었고, 건은 키스에게 정색함. 원래 건이는 정색할 줄 모르는데 처음으로 키스 앞에서 정색.



‘……키스 선배가 진짜 그런 거야?’

‘……건아.’

‘손대지 마.’



정색하고 뒷걸음질 치는 건에게 키스는 상처 받음. 하지만 민을 괴롭히는 건 멈추지 않고, 오히려 민을 더 괴롭힘. 사람들을 시켜 패는 것을 일상이고, 종종 갱뱅도 시켜 가면서. 건이를 불러다가 그 앞에서 민이를 괴롭히며 오히려 건에게 협박 비슷한 것도 함.



‘강 민이 당하는 거 싫지?’

‘……응.’

‘그럼 내 소원 들어줘.’

‘뭔데?’

‘나를 싫어하지 말아줘.’



팔 잡고 애틋하게도 하는 말에 건은 고개를 끄덕임. 여전히 자기를 보는 게 아니라 민을 보고 있는 시선을 눈치 챈 키스는 그 긍정이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이 괴롭지 않기 위해 선택한 걸 알았지만, 일단 모르는 척 함. 주도권을 자기가 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함. 소원은 하나만 들어달라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 후로도 키스는 건을 불러다 제 앞에 민을 굴리며 소원을 하나씩 말하며 건을 길들여감. 그렇게 건이랑 섹스도 하게 되고. 어느 날 건이 불려갔을 때, 늘 민을 바닥에 깔아뭉개던 사람들 없이 민이 혼자 바닥에 결박되어 누워있는 것을 발견함. 건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자기한테 손짓하는 키스에게 다가가는데, 키스는 건이 민을 보도록 세워놓고 그 앞에 서도록 함.



‘너 형 좋아하지.’

‘응.’

‘강 민이랑 자고 싶었잖아.’

‘잠?’

‘섹스 말이야. 하고 싶었잖아.’



내가 하게 해줄게. 민을 일으켜 세워 앉힌 키스는 건 뒤에 서서 성기를 꺼내고 대딸하듯 흔들어 줌. 건은 자기 앞에 형 얼굴이 있으니까 금방 그 얼굴에 사정함. 건이의 반찬은 몽정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늘 민이었으니까 사정은 빨랐음. 키스는 사정하고 숨을 몰아쉬는 건이에게 민이랑 섹스해도 좋다고 부추기고, 건은 그대로 민을 강간함. 민은 건이를 혐오해왔으니까 버둥거리지만 결박되어 있는데다가 건이 힘이 너무 세서 그대로 당함.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가 생각나 결국 민은 섹스 도중 몇 번이고 구역질을 하며 토하고, 키스는 뒤에서 그걸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만 봄. 강간이 끝난 후엔 건이를 일으켜 세워 뒷정리를 해주고 민이 버려둔 채 가버리고. 그렇게 건과 민의 섹스는 키스가 가끔 건이에게 상을 주듯 주선해줌. 섹스를 할 때마다 민은 토악질을 하는 게 점점 심해짐. 키스는 그걸 보면서 자기혐오 같은 감정도 들고.





키스와 건이 섹스를 하기 시작한 후 어느 날, 건은 자기도 모르게 형 또는 민이 형 같은 이름을 부르며 절정에 다다르는 일이 일어남. 건은 완전 무의식중에 한 말이라 기억도 못하지만, 키스는 열이 뻗침. 건이가 민이와 섹스를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자위를 하면서 늘 건이의 반찬은 민이었기 때문에, 절정=민은 당연한 공식 같은 것. 그런 날이면 키스는 민이를 더 굴리고 그랬다는 이야기.









키스는 과거 자기 쪽 조직과 상대 조직의 싸움에서 납치를 당한 적이 있는데, 감금 된 상태에서 여러 가지로 고문과 강간 등을 당함. 보복성으로 하루에 몇 개씩 영상이 찍혀서 하루에 하나 씩 키스의 아빠에게 영상이 들은 씨디가 배달되었고, 결국 키스가 돌아왔을 땐 아직 배송되지 못한 씨디들까지 같이 오게 됨. 키스는 그걸 숨기려고 아등바등 함. 자신의 섹스 비디오가 유출되는 것보다는 이게 유출 되어 자신의 입지가 좁아 질까봐 무서운 것이 더 큼. 그 탓에 스트레스를 받아 더욱 예민해지고, 가벼운 성적 농담에도 상대를 반 죽여 놓는 일이 잦아짐. 그러던 중 한 간부가 예민한 키스에게



‘생리라도 해? 왜 이렇게 예민해.’



라는 발언을 한 후 키스는 그 인간을 똑가이 반쯤 죽여놓고 결국 징계까지 받는 일이 일어남.

위의 일들 탓에 키스는 자신의 지시 하에 구르는 민이를 보며 역겹고 더럽다고 생각함. 키스의 머릿속엔 민이는 최악의 쓰레기. 그럼에도 민이를 좋아하는 건이 때문에 민이를 완전히 놓아버리진 못하고(건이는 쭉 형인 민이 하나만 보고 살아왔으니까.) 그냥 더러운 민이랑 섹스하고 나면 건이 일으켜 세워서 더러운 거 닦아주고 챙겨서 자기들끼리 가버리고 민이만 남아서 혐오스러움에 치떨고……그랬으면…….











 보쿠토는 깜빡, 가로등이 켜지자 고개를 들었다. 어둑한 가로등 불빛에 분홍색이었을 것이 분명한 벚꽃이 칙칙한 색으로 빛이 났다. 보쿠토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보쿠토, 행복해?

 “……응, 행복해.”






 허공에 양 손이 뻗어졌다. 휙, 봄 치고 서늘한 바람이 꽃잎을 잔뜩 떨어뜨렸다.




















 며칠 새 몽롱한 것이었다. 보쿠토는 턱을 괴고 멍하니 칠판을 보고 있었다. 평소에도 수업시간엔 자주 졸았지만 그것과는 다른 몽롱함이었다. 마치 잠을 하나도 자지 못한 것 같은 몽롱함과 피곤함. 분명 일찍 잠자리에도 들었건만 왜 그런 기분이 드는 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툭, 고개가 힘없이 떨어지는 것에 보쿠토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깜빡 졸았었나보다. 보쿠토는 피곤함에 제 얼굴을 한 번 쓰다듬었다. 꺼끌한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진짜 피곤하긴 하다. 보쿠토는 흘끔, 앞에 수업을 하는 선생을 본 후 그대로 책상 위에 엎어졌다. 실컷 자고 일어나면, 이 이상한 피곤함도 금세 없어질 것이었다. 조곤조곤 흐르는 말의 토막들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복해?






 보쿠토는 번쩍 눈을 떴다.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어댔다.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꿈의 잔상이 몸을 짓누르고 있었다. 눈을 커다랗게 뜬 채 가위라도 눌린 듯 숨마저 멈추고 있던 보쿠토는 어깨를 툭, 치는 손에 발작하듯 몸을 일으켰다. 쿠당탕, 몸을 벌떡 일으킨 탓에 의자가 뒤로 나동그라졌지만 그것을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보쿠토는 한 손으로 저가 여기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듯 제 얼굴을 더듬었다. 손에 축축한 땀이 묻어났다. 손마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보쿠토 상?”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보쿠토는 퍼뜩 고개를 돌렸다. 모든 자극에 하나하나 반응하는 모양새는 퍽 예민해보였다. 헉헉, 꿈에 짓눌리는 동안 멈췄던 숨을 몰아쉬던 보쿠토는 눈을 몇 번 깜박이고 나서야 잔뜩 세웠던 날을 누그러뜨렸다. 부릅떴던 눈 또한 꾹 감겨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보쿠토는 책상 위에 올려둔 손에서 느릿하게 냉기가 치고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다시 눈을 떴다. 그제야 시야에 모든 사물들이 정상적으로 들어왔다. 보쿠토는 눈을 굴려 제 옆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아카아시였다. 보쿠토는 길게 한숨을 내쉬곤 살짝 고개를 저었다.






 “미안, 악몽을 꿔서.”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피곤하신 것 같으니까 다음에 다시 올게요.”

 “응, 미안.”






 거듭 사과를 하는 것에 아카아시는 쉬세요, 하며 몸을 돌려 교실을 빠져 나갔다. 보쿠토는 시선을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분명 3교시 즈음에 잠을 잤던 것 같은데 어느 새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점심을 걸렀음에도 배가 고프지가 않았다. 확실히 이상한 것들 투성이였다. 보쿠토는 일단 바닥에 내팽겨 쳐진 제 의자를 끌어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깨어나는 순간 까맣게 잊혀 진 꿈이 조각조각 부스러기들만 떠올랐다. 모든 것들이 새빨갰고, 알 수 없는 미소들만 둥둥 머릿속에 떠다녔다. 기억을 조금 더 더듬던 보쿠토는 그대로 제 양 손에 얼굴을 묻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만 같았다. 악몽을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위안을 삼으며 보쿠토는 얼굴을 그대로 쓸어내렸다. 또 다시 묵직한 피곤함이 어깨에 쌓여만 갔다.





















 또 다시 온통 새빨간 공간이었다. 보쿠토는 그 한 가운데 서 있었다. 손을 내려다보면, 자신의 손조차 새빨간 색으로 되어 있었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 보쿠토는 발을 떼었다. 서 있는 것보단 움직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새빨간 길을 걷다보니 도착한 곳은 커다란 벚나무였다. 온통 새빨간 공간 속 벚나무는 유일하게 솜사탕의 단내라도 날 것 같은 분홍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예쁘다고 생각을 했을 텐데, 새빨간 공간 속 커다란 벚나무는 기괴한 느낌만 줄 뿐이었다. 바람 한 점 없던 공간 속 문득 미적지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휘잉, 가볍게 분 바람에 벚나무의 가지는 조금 흔들렸고, 벚꽃 잎이 조금 떨어졌다. 아깝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깝다, 그치.






 제 생각을 읽은 것 같은 소리가 뒤에서 툭 튀어나왔다. 시선을 돌린 곳엔 활짝 웃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이 공간 속 저도 새빨간 색이건만, 남자는 벚나무처럼 본연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 까만 머리칼과 적당히 색이 도는 피부, 퍽 단정한 교복과 빨간 넥타이. 보쿠토는 묘하게 드는 기분에 몸을 살짝 움츠렸다. 남자의 입술이 빨갰다.






 -벚꽃 너무 빨리 떨어지는 것 같아. 좀 더 오래 보고 싶어.

 “……비나 바람을 막아 주면 되지 않을까.”

 -그러기엔 벚나무가 너무 크잖아.

 “가지를 조금 꺾으면 되잖아.”






 제 말과 동시에 남자의 빨간 입술이 더욱 휘며 벌어졌다. 묘하게 들었던 기분이 조금씩 짙어지고 있었다. 자박자박, 흙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이 공간 안에서 별 다른 소리가 났던가. 바람 소리가 났던 것만 기억이 났다. 남자의 손이 어깨에 쓱 닿아왔다.






 -그러면 벚나무가 아프잖아.

 “그런가.”

 -넌 다른 사람을 이해할 필요가 좀 있어.






 가볍게 어깨의 둥근 부분을 쓱 쓰다듬은 손은 금세 떨어져 멀어졌다. 사박사박, 다시 흙을 밟는 소리가 멀어졌다. 보쿠토는 그 뒤를 따라 발을 떼었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흙은 없었다. 새빨간 바닥일 뿐이었다. 시선을 들어 남자의 발아래를 보았다. 남자의 발이 닿는 부분마다 빨간색이 사라지고 흙이 생겼다 사라졌다. 보쿠토는 남자를 멍하니 눈으로 좇았다. 남자는 익숙했고,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이기만 했다. 남자는 자박자박 흙 밟는 소리를 내며 벚나무 주변만 천천히 걸었다. 그 느릿한 걸음에도 보쿠토는 남자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묘한 기분은 점차 고조되어 심장을 빠듯하게 옥죄이고 있었다. 쿵쿵, 심장 뛰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너무 네 위주로 생각하니까 다들 도망가 버리잖아.

 “잘 모르겠어.”

 -아카아시니까 네 옆에 있어주는 거지.

 “너는?”

 -나는, 글쎄.






 네가 하는 거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활짝 웃는 얼굴에 마주 웃을 수가 없었다. 표정이 굳어지고, 울컥, 괜히 화가 치솟았다. 왜? 이유는 이쯤 되니 굳이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리 빨리 걸어도 잡히지 않았던 것이 성큼성큼 몇 발자국 내딛자 금세 가까워졌다. 손을 뻗자 제 손은 어느 새 본래의 색을 가지고 있었다. 확 그 손목을 잡아 채 당기자 왈칵 당겨오는 얼굴은 아까와는 달리 미소 따윈 없었다. 그 목줄기를 움키고 바닥에 그대로 쾅, 잡아 눌렀다. 컥, 숨이 막히는 소리가 났다. 새빨갛기만 하던 바닥엔 어느새 흙이 깔려 있었다. 끅, 끄윽, 바둥거리는 손에 팔이 엉망으로 긁혔다. 피가 난다. 주륵, 새빨간 피가 흘러 손등에 빨간 길을 만들어냈다. 웃고 있던 얼굴은 이제 새빨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흰자위가 벌겋게 변해가고 있었다. 물 밖으로 건져진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던 몸이 점차 가라앉고, 숨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입술이 뻐끔거리기만 했다. 뻐끔거리던 입술이 씩, 웃었다.






 -보쿠토, 행복해?






 색을 갖고 있던 것들이 순간 온통 새빨갛게 물이 들었다. 아아.






 “응, 행복해. 쿠로오.”






 우수수 벚꽃 잎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아카아시는 흘끔, 밖에서 교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점심시간에 들렀던 보쿠토는 그다지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쿠로오가 실종된 이후 보쿠토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굴고 있었다. 아니, 실제로 정신이 나간 것도 같았다. 눈을 굴려 교실 안을 훑자 책상 위에 엎드린 보쿠토를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얌전히 자고 있는 것이 다행히 상태가 괜찮은 것 같았다. 어차피 주장의 일은 자신이 해왔으니, 간단히 서명만 해주면 될 것이었다. 슬쩍 교실 안으로 들어가 보쿠토에게 가까이 다가간 아카아시는, 늘 열이 넘쳐 걷어 올린 소매 탓에 팔뚝이 드러나 있었다. 마치 손톱자국 같은 상처가 여러 줄기가 나 있었다. 아카아시는 눈을 깜빡이다 보쿠토를 살살 흔들어 깨웠다.






 “보쿠토 상.”

 “……으, 응?”






 부스스 일어나는 모습은 평소의 보쿠토였다. 버릇처럼 입가를 소매로 훑은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보곤 흐흐 웃었다. 아카아시는 어깨를 으쓱, 하며 들고온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에 서명해주세요. 그 말에 슥슥 제 이름을 쓰는 반대쪽 팔뚝에도 똑같이 상처가 나 있었다.






 “보쿠토 상.”

 “응?”

 “고양이라도 키우세요?”






 발톱 잘 깎아줘야겠네요. 사인을 받은 서류를 받아들며 하는 말에 보쿠토는 제 팔뚝을 보다 씩 웃었다.






 “응, 잘 깎아줬어.”






 이젠 안 긁을 거야. 팔뚝을 슥 쓰다듬은 보쿠토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벚나무의 꽃잎엔 유난히 붉은 기가 돌았다.











'HQ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카쿠로] 일몰  (0) 2016.11.25
[우시쿠로] 꺾인 꽃  (0) 2016.11.25
[보쿠로] 술 취한 밤  (0) 2016.11.25
[하나마츠] 의미 (For. 햔 님)  (0) 2016.11.25
[아카보쿠아카] 질식  (0) 2016.11.25
[보쿠로] 벚나무 :: 2016. 11. 25. 16:20 HQ/단편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 햔 님이 주신 대사로 연성 했습니다("난 너한테 뭐야?")











 “나는 너한테 뭐야?”






 마츠카와는 대뜸 튀어나온 말에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바닥에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옷가지를 입고 있는 뒤통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보여주지 않았다. 제 침묵에도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은 것에 마츠카와는 다시 고개를 돌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군데군데 얼룩진 천장은 이 건물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가만히 매트리스에 씌워진 시트를 쓰다듬던 마츠카와는 낮게 들리는 한숨 소리에 눈을 깜빡였다. 뭔가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억을 더듬어도 그다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평소와 똑같이 연락을 했고, 평소와 똑같이 만나서 데이트를 하고, 평소와 똑같이 마지막 코스로 모텔에 왔을 뿐이었다. 평소와 다른 것은 없었다.






 “난, 너에게 내가 얼마만큼 중요한 사람인지 잘 모르겠어.”






 지익-. 바지 지퍼를 올리는 소리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섞였다. 마츠카와는 상체를 일으켰다. 소매의 단추를 잠그는 모습을 보며 마츠카와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가늠이 잡히지 않았다.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는 사이 풀어놓았던 시계까지 말끔하게 찬 하나마키는 의자에 걸쳐두었던 겉옷을 집어 들며 문고리를 잡았다. 생각 정리 되면 연락 줘. 말은 그게 끝이었다. 철컥, 녹슨 쇳소리를 내며 열렸던 문은 그대로 삐걱대며 굳게 닫혔다. 제 침묵의 뜻마저 알 정도로 저를 잘 알고 있으면서. 마츠카와는 그대로 다시 누웠다. 얼룩진 천장이 다시 눈 안 가득 들어찼다.



















 하나마키와 만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었다. 고등학생 때 배구부에 같이 입부를 하며 알게 된 하나마키는 저와 꽤나 성격이 잘 맞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 관계가 미묘해진 것은 배구부를 은퇴할 때쯤이었고, 대학시절 내내 혼란과 부정을 거쳐 결국 이런 관계가 된 것은 이십대의 중반이 다 되어서였다. 긴 시간을 알고 지냈고, 혼란을 겪어왔던 만큼 둘의 사이가 나빴던 적은 거의 없었다. 이미 친구라는 이름으로 오랜 시간을 지내왔었기 때문에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아니, 눈치 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츠카와는 팔짱을 낀 채 바닥에 놓인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까맣게 꺼진 화면은 켜질 줄을 몰랐다. 벌써 일주일 째였다.






 ‘생각 정리 되면 연락 줘.’






 그렇게 말을 해놓고 나갔으면서, 정신을 차리자마자 바로 보낸 메시지에는 일주일 내내 답이 없었다. 저에게 연락하라는 핑계로 속을 다스리고 있는 것은 하나마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츠카와는 제 머리를 헝클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너한테 뭐야? 그 말 만큼 쉽고도 어려운 질문은 없었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겁이 나고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그냥, 내가 사랑하는 사람. 그 말 한 마디로는 와 닿지가 않는 건가. 마츠카와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뒤로 젖혀 침대 위에 머리를 기댔다. 정리를 하자고 생각하면 할수록 더더욱 복잡해지는 머릿속이 엉망이었다. 멍하니 제 방 천장을 보던 마츠카와는 고개를 다시 숙였다. 반짝, 켜지는 휴대전화 화면에 마츠카와는 허리를 숙여 그 화면을 확인했다.






 -대출 상담.






 제목을 보자마자 마츠카와는 다시 머리를 뒤로 젖혔다. 하나마키는 저와 헤어질 생각인건가. 속이 답답하고 목이 꺼끌해지는 기분에 마츠카와는 마른 침을 삼켰다. 늘 하나마키의 기분을 생각하며 기다리기만 했건만, 오늘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마츠카와는 휴대전화를 챙겨 몸을 일으켰다. 만나야 이 엉망인 머릿속이 정리 될 것 같았다.





















 하나마키는 일주일 내내 연락을 씹었었음에도 의외로 쉽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 눈 밑에 짙게 자리 잡은 그림자에, 마츠카와는 저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낮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익숙한 공간 속으로 들어선 마츠카와는 낯선 공기의 흐름에 고개를 까닥였다. 뒤 쪽에서 쓱 스쳐 지나간 하나마키는 그대로 소파 위에 앉았다. 어정쩡하게 서있던 마츠카와는 그대로 벽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꼈다. 드물게 어색한 침묵이었다. 저가 말이 없는 탓에 침묵은 항상 편안하기만 했건만, 오늘따라 침묵이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마츠카와는 검지로 가만히 제 입술을 쓸어냈다. 거칠었다.






 “생각, 해봤어?”






 역시나 오늘도 침묵을 깨는 것은 하나마키였다. 마츠카와는 바닥에 두었던 시선을 하나마키에게로 옮겼다. 하나마키의 시선 또한 바닥에 박혀 있었다. 마츠카와는 그 벚꽃 잎 색의 머리칼을 보았다. 저가 그것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 머리칼이 얼마나 결이 좋은지 알고 있었다. 버릇처럼 다문 입 탓에 찾아온 침묵이 무거운지 바닥에 놓여있던 시선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마츠카와는 오랜만에 마주한 그 눈동자에 잠시 숨을 멈췄다. 이토록 좋은데, 중요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타카히로.”






 제 부름에 깜빡, 눈꺼풀이 움직였다. 늘 하나마키, 마키, 정도로만 불렀던 탓에 이름은 거의 처음이었다. 마츠카와는 제 귀 끝이 조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타카히로. 한 번 더 그 이름을 부른 마츠카와는 발을 떼어 하나마키가 있는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내내 맞추고 있던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무거웠던 침묵이 사라진 탓인가. 고개를 반쯤 숙이고 있는 하나마키의 앞에 선 마츠카와는 허리를 숙여 그 허벅지 위로 제 손을 올렸다. 뺨이며 귀 끝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렇게 느끼게 해서 미안.”

 “으, 마츠카와.”

 “그런데, 연락 안 되는 동안 미치는 줄 알았어.”






 십년이나 만났지만, 난 아직도 널 보면 좋아 어쩔 줄 모르겠어. 조금씩 들리던 시선이 드디어 제 눈과 마주쳤다. 목이 바짝 타들어가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이 삼켜졌다. 좋아해, 타카히로. 그 말을 마지막으로 소파 위에 놓여 져 주먹만 움켜쥐던 손이 뺨을 감싸 쥐었다.






 “잇세이.”






 간지러운 제 이름이 불리고 그대로 입술이 겹쳐졌다. 일주일만의 키스였다. 마츠카와는 고개를 살짝 틀며 제 입술을 할짝이는 혀에 입을 벌렸다. 간만이라 낯선 듯 톡톡 제 혀를 건드리던 것은 그대로 입 안으로 침범해 제 혀를 옭아맸다. 마츠카와는 반쯤 감은 뜬 눈으로 하나마키의 얼굴을 살짝 훑었다. 감은 눈이 슬쩍 뜨여 까만 눈동자가 제 시선과 마주했다. 일주일 동안의 불안이 싹 씻겨 내려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입술이 천천히 떨어지고, 뺨을 감싸 쥐었던 손이 떨어져 손목을 가볍게 붙잡았다. 뜨끈하게 열이 오른 손의 온도가 좋았다.






 “연락 안 해서 미안.”






 찾아와줘서 고마워. 조금 쳐진 눈썹에 마츠카와는 웃었다. 말해줘서 고마워. 손목을 쥐었던 손이 허리를 안았다. 둘 다 기분 좋은 열기가 몸을 데웠다. 그 허벅지 위에 앉아 똑같이 허리를 껴안은 마츠카와는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익숙한 체취가 콧속으로 스며들었다. 오늘은 자고 가. 웅얼거림마저 따스했다. 응. 낮게 대답하며 마츠카와는 그 온기에 몸을 맡겼다. 일주일 내내 미뤄두었던 잠이 온전히 쏟아져 내렸다.











'HQ > 단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쿠로] 벚나무  (0) 2016.11.25
[보쿠로] 술 취한 밤  (0) 2016.11.25
[아카보쿠아카] 질식  (0) 2016.11.25
[우시쿠로] 배달 초밥  (0) 2016.11.25
[보쿠로] 학교 (From. 이스터 님, 샤인 님)  (0) 2016.11.25
open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