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로오는 카운터에 몸을 기대며 꼰 다리를 까닥였다. 학교 근처에 있는 탓에 그다지 장사가 안 되는 편은 아니었지만, 하교시간이 아닌 이상 사람이 오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지금은 한가한 시간 대였다. 심지어 근처 학교는 오늘 개교기념일이라나. 쿠로오는 사람 없는 내부를 쓱 훑어보다 푹 한숨을 내쉬었다. 심심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시원한 카운터에 뺨을 대고 있을 때, 딸랑, 하는 소리를 내며 유리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퍼뜩 고개를 들어 인사를 한 쿠로오는 한 눈에 들어오는 태양빛 머리칼을 보았다. 염색을 한 건가 싶을 정도로 쨍한 오렌지 빛에 쿠로오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 저를 보는 시선에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제 가슴쯤 밖에 오지 않는 키에 쿠로오는 흐응, 웃으며 카운터 밖으로 나왔다. 흰 후드티를 입은 모습은 영락없이 초등학생의 모습이었다. 뭐 문구류라도 사러 왔나 싶어 쿠로오는 영업용 미소를 얼굴에 걸쳤다. 무표정으로 있으면 험악해 보인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치비 쨩 뭐 사러 왔어요?”

 

 

 

 

 

 눈까지 휘어가며 친절하게 한 물음에도 꼬마의 표정은 애매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곤 본인의 등 뒤를 확인하더니 어이없는 표정으로 저요? 하고 되물어왔다. 뭔가 잘못했나 싶어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갸웃, 하는데 푹 한숨을 내쉰 꼬마는 주변을 쓱 훑어보더니 고등학생 참고서가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형 심부름으로 왔나, 하는 생각이 들어 뒤를 따라가자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쪽지와 책꽂이를 번갈아 보며 참고서를 찾는 모습에 쿠로오는 손을 뻗어 그 앞에 있는 참고서에 손을 올렸다.

 

 

 

 

 

 “형 카라스노 다녀요?”

 “?”

 “카라스노면 참고서 이거 써요. 쪽지에 적혀 있는 것도 이건데.”

 

 

 

 

 

 아까보다 좀 더 활짝 웃으며 한 말에도 떨떠름한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쿠로오는 제가 손을 올리고 있던 것을 집어 드는 손에 제 손을 떼고 카운터로 느긋한 걸음으로 돌아왔다. 참고서를 카운터에 내려놓고 돈을 내미는 얼굴은 여전히 묘하게 기분이 나빠 보였다. 뭐 더 필요한 거 없어요? 바코드를 찍으며 하는 말에 어두운 표정으로 쓰윽, 고개를 든 남자는 쿠로오의 손에 들린 참고서를 받아들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제 거예요.”

 “……?”

 “형 거 아니고, 제 거. 저 고등학생이에요.”

 

 

 

 

 

 수고하세요. 말을 툭 뱉으며 유리문을 열고 나가는 뒤통수에 쿠로오는 반사적으로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한 후 꼬마의 말을 곱씹었다. 고등학생? 쿠로오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실수했다.

 

 

 

 

 

 

 

 

 

 

 “너보고 치비 짱이라 그랬다고?”

 

 

 

 

 

 푸하하학, 하고 넘어갈 듯 웃어 재끼는 제 친구에 히나타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웃지 마!! 하고 빽 소리를 내질렀다. 며칠 전 서점에서 참고서를 샀을 때의 이야기였다. 개교기념일에 다음 주까지 꼭 필요한 참고서를 사러 학교 근처 서점에 갔었다. 제 집 근처보다 학교 근처로 가면 더 쉽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 때문에 굳이 거기까지 간 것이었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꽤나 험악하게 생긴 남자였다. 늘 그 근처를 지나다니면서 봐왔던 터라 어느 정도 남자의 험상궂은 얼굴에 면역이 있는 편이었다. 좀 쫄아있는 채인 저를 보던 남자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리고 싱긋 웃는 얼굴이 꼭 기분이 좋은 고양이를 보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찰나.

 

 

 

 

 

 ‘치비 쨩 뭐 사러 왔어요?’

 

 

 

 

 

 그 말에 남자의 얼굴이고 뭐고 기분이 팍 상했다. 아무리 자기가 어려 보여도 치비 짱이 뭐냔 말이다. 히나타는 제 앞에서 아직도 배가 찢어져라 웃는 친구에 팔꿈치고 그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그만 좀 웃지? 눈치를 주는데도 연신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피식피식 웃던 친구는 종아리를 거하게 한 번 차이고 나서야 웃음을 멈추었다.

 

 

 

 

 

 “그러니까 키 좀 크라니까.”

 “안 크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울컥하는 마음에 목소리가 높아지자 친구는 낄낄 웃더니 치비 쨩 내일 봐-. 하고 다른 길로 뛰어가 버렸다. !! 뒤에다 대고 소리를 질러 봐도 멀찍이서 손만 흔들어댈 뿐이었다. 히나타는 아우씨, 하고 머리를 헝클이고 성큼성큼 제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저 새끼한테 말한 내가 잘못이지. 중얼중얼 닿지 않을 욕을 중얼대던 히나타는 문득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학생! 하는 소리에 히나타는 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가 걷고 있는 골목에는 사람이 없었다. 고개를 돌리려 할 때, 제 어깨에 턱하니 올라오는 것에 히나타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시커먼 역광에 남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아 히나타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히익!”

 “, 미안, 미안. 놀랐어요?”

 

 

 

 

 

 손이 떨어지고 고개가 살짝 들리자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머쓱하게 눈까지 휘어가며 웃는 얼굴은 그때 그 서점 남자였다. 상대를 알고 나니 히나타는 약간 얼굴을 굳혔다. 방금 친구에게까지 놀림을 받은 그 원흉이 이 남자 아니었던가. 남자는 히나타의 표정에도 웃고 있는 얼굴을 풀지 않고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손에 든 것은 막대사탕 이었다.

 

 

 

 

 

 “지난번에 제가 오해해서 그렇게 불렀던 거 죄송해서요. 사과드릴게요.”

 

 

 

 

 

 치비 쨩이라고 불렀던 걸 사과한다는 사람이 막대사탕을 내민다. 히나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아들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진심인지 놀리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남자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히나타는 남자가 준 사탕을 까 입에 물었다. 남자의 웃음이 좀 더 짙어졌다. 무표정으로 있을 땐 험상궂은 얼굴이 웃으면 확실히 부드럽고 야살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히나타는 까득, 입에 문 사탕을 깨물었다.

 

 

 

 

 

 “다음에 또 와줄래요? 사과의 의미로 맛있는 거 사줄…….”

 

 

 

 

 

 히나타는 웃으며 말을 잇는 남자의 옷깃을 잡아 당겨 그대로 입술을 겹쳤다. 남자는 그대로 굳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히나타는 제 입에 물고 있던 사탕 하나를 혀로 밀어 남자의 입 안으로 넘기고 입술을 떼었다. 남자는 멍한 표정이었다. 히나타는 남자의 옷깃을 놓고 저가 잡아 구겨진 부분을 손으로 탁탁 털며 활짝 웃었다. 남자의 입 안에서 사탕이 도륵,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 다음에 또 봐요.”

 

 

 

 

 

 히나타는 얼이 빠진 남자의 얼굴을 본 것으로 만족하며 그대로 몸을 돌려 걸음을 떼었다. 남자는 그대로 입을 막고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히나타를 멍하니 보았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게 그대로 느껴졌다. 뭐야 이거. 치비 쨩이라 불렀다고 이러는 건가. 쿠로오는 멀어지는 태양 빛 머리칼을 보다 손에 얼굴을 묻었다. 도륵, 입 안을 굴러다니는 사탕의 단맛이 혀끝에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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